[남도로 가는 길목에서②] 포라이즌 ‘남도의 끝자락에서 만난 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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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로 가는 길목에서②] 포라이즌 ‘남도의 끝자락에서 만난 귀인’
  • 서민교 기자
  • 승인 2023.11.2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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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늘어진 여름의 끝자락에서 만난 남도의 가을 문턱은 해가 지지 않아도 붉게 물든 노을처럼 황홀하다. 골프 코스의 시대를 역행하듯 강진만을 지나 순천만에 닿으면 어느덧 짙은 가을의 정취에 물든다. 당신이 조금 더 멀리 골프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다. 

“근디 으디 갔다 온다냐?” 골프 코스 답사를 위해 카트를 타고 지날 때다. 라운드에 방해가 되지 않게 카트 도로를 지나던 중 정중하게 목례를 한 경기과 직원을 향해 한창 플레이를 하던 나이 지긋한 회원의 정겨운 한마디. 무심하게 던진 구수한 사투리 뒤로 숨기듯 미소 짓는다.

그렇게 두 홀을 지나자 쓰러질 듯 허리가 90도로 꺾인 한 노인이 페어웨이를 지나 클럽을 들고 그린을 향해 걷고 있다. 그린 근처에 다다르자 연습 스윙도 없이 가볍게 툭 칩 샷을 한 뒤 클럽을 지팡이 삼아 터벅터벅 그린에 오른다. “개장 때부터 계셨던 초대 회원입니다. 연세가 아흔이세요. 30년째 이곳을 찾으시는데, 아직도 정정하십니다.” 직원의 설명이 곁들여지자 존경을 담아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어떤 수식어로 첫인상을 표현해야 할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오랜 전통이 있는 한옥에서 만나는, 한 상 그득히 정갈하게 잘 차려낸 한정식 같은 곳. 전남에서도 산이 가장 많은 순천의 대자연 속 포근함과 편안한 여유로움에 탄복하며 어찌 자긍심을 갖지 않을 수 있으랴.

여자만과 순천만이 내려다보이는 남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포라이즌은 귀한 손님을 특별하게 대접하고 싶은 그런 곳이다. 어쩌면 이곳이 귀인이 아닐까. 

◇ 남도에 반하다, 품격에 취하다

남도에서도 동쪽으로 향하는 두 번째 길목에서 만난 전남 순천. 이곳의 소백산맥 한 자락, 광활한 대지 위 포근한 구릉에 자리 잡은 포라이즌은 이름만 듣고 어쩌면 신생 골프장으로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포라이즌은 오랜 전통을 간직한 전남의 터줏대감이자 포스코그룹이 운영하는 품격 있는 27홀 회원제 골프장이다. 골퍼들에게는 아직 승주가 더 익숙할지 모르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춰 지난해 포라이즌으로 개명해 새롭게 재출발했다. 사계절(Four seasons) 천혜의 자연환경을 품고, 포스코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재탄생(Reborn)을 기념하며, 수평선(Horizon)에서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라운드할 수 있는 골프장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올해 이곳을 찾은 건 두 번째다. 한 번은 기찻길로, 또 한 번은 찻길로. 수도권에서 순천은 멀게 느껴질 수 있지만, 놀랍게도 첫 방문은 당일치기였다. 골프백을 메고 순천행 KTX에 몸을 실어 2시간 30분이 채 걸리기 전에 순천역에 내리면 차로 15분 만에 클럽하우스에 도착한다. 요즘은 골프백을 미리 택배로 보내는 골퍼도 많지만, 기차에 골프백을 싣고 떠나는 낭만 여행은 이색적인 설렘에 도취된다. 잘 익은 여수 갓김치 한 박스를 사 들고 늦은 오후 KTX에 올라타 스르륵 눈을 감았다 뜨면 어느새 도착이다. 포라이즌의 장점은 바로 접근성이다. 수도권과 남도의 끝을 이어주고, 부산과 광주를 연결하는 순천은 그야말로 교통의 심장부이자 요충지다. 농담 삼아 순천이 ‘은거를 위한 도피처’로 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 순천 주변 가까이에는 여수 밤바다, 꼬막이 유명한 보성 벌교와 노란 유자가 유명한 고흥 등 30분 이내 거리에 다다를 수 있는 식도락 여행지가 즐비하다. 

순천은 살아 숨 쉬는 생태 수도로 불린다. 가을 무렵은 경이로운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최적의 계절이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세계 5대 연안 습지 중 하나인 순천만 갯벌은 가을이면 갈색빛으로 물든 갈대밭과 어우러져 몽환적인 자태를 드러낸다. 순천만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한민국 1호 순천만국가정원에서는 세계 각국의 특색을 담은 정원에서 다양한 생태 식물을 관찰할 수 있고, 일출과 일몰 명소인 화포해변과 와온해변의 정취에 흠뻑 젖는다. 자연의 품에 고스란히 안긴 채 다채로운 사계절의 변화를 감상할 수 있는 포라이즌이 왜 자연 속 숨 쉬는 공간으로 표현되는지 수긍할 수밖에 없다. 
코스 설계가 장정원의 밑그림으로 1992년에 개장한 포라이즌은 2008년 로버트트렌트존스(RTJ)디자인의 수석 디자이너인 게리 로저 베어드가 리뉴얼을 통해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했다. 투 그린에서 원 그린으로 탈바꿈한 코스는 장정원이 설계한 넓고 시원하게 뻗은 페어웨이의 자연스럽고 편안한 루트에 베어드의 섬세한 손길이 닿아 그린 콤플렉스를 풍부하게 개선했다. 

포라이즌은 올드 코스의 전형이다. 산 하나를 통째로 정원으로 만든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우거진 수목에 골프 코스를 살포시 앉힌 느낌이다. 덕분에 홀 간 독립성은 보장한다. 단지 숲이 울창한 것만이 아니다. 부지런한 정원사가 불철주야 관리하는 대저택의 정원처럼 조경에 심혈을 기울였다. 소나무 숲 사이로 메타세쿼이어, 편백나무, 벚꽃, 황매화, 금사매 등 다양한 식재로 사계절이 다채롭다. 잔디 밀도가 높아 어찌나 촘촘한지 페어웨이의 한국 잔디가 양잔디처럼 푹신하고, 느리지도 너무 빠르지도 않은 그린은 정직하다. 평소 꾸준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유지하기 힘든 코스 컨디션이다. 특히 올해 호남 지역은 많은 비가 내리면서 역대 최다 장마 평균 강우량을 기록해 잔디 관리가 지독히도 힘든 시즌이었다. 이날도 홀마다 블루 티가 있는 티잉 구역을 통째로 들어내 잔디 교체 작업을 하느라 코스는 분주했다. 

포라이즌은 스카이·베이·가든 코스로 구성됐다. 코스가 평이해 보이는 건 착각이다. 숲에 둘러싸인 페어웨이는 넓고 아늑해 보이지만, 완만한 굴곡이 굽이쳐 평평한 라이를 찾기 힘들다. 원 그린으로 리뉴얼한 그린도 면적은 커졌으나 퍼트는 더 까다로워졌다. 핀 위치에 따라 난이도 조절이 가능하다. 순천만을 안고 있는 스카이 코스는 탁 트인 넓은 페어웨이로 호쾌한 샷을 내지를 수 있고, 순천만을 비롯한 다도해의 풍광이 한눈에 보이는 베이 코스는 아름다우면서도 전략적인 홀의 조화가 돋보인다. 시그너처 홀이자 ‘춘향이 홀’로 불리는 베이 코스 파4 4번홀은 넓은 연못이 페어웨이와 그린을 나누어 정돈되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지만, 샷은 신중해야 한다. 커다란 벙커가 페어웨이와 그린 주변 낙구 지점에 포진해 있어 장타자라면 전략적인 홀 공략이 필수다. 포라이즌에서 가장 높은 베이 코스 파4 7번홀은 티잉 구역에서 다도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최고의 뷰 포인트다. 골퍼를 위한 배려로 마련된 전망대에서 환상적인 경관을 즐기며 잠시 숨 쉴 시간을 선사한다. 비교적 전장이 짧은 가든 코스는 나무숲에 둘러싸인 정원에서 프라이빗한 플레이를 즐기는 착각에 빠지지만, 섬세하고 전략적인 코스 매니지먼트로 도전 정신을 고취시킨다. 아기자기한 작은 정원에 나온 듯한 가든 코스 파3 4번홀은 눈앞에 펼쳐진 연못과 벙커에 대한 두려움만 넘기면 타수를 잃지 않는 편안한 홀이다.    

40실 규모의 골프텔과 조망이 뛰어난 글램핑장, 12개 타석의 드라이빙레인지와 퍼팅 그린, 벙커가 있는 골프 연습장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는 포라이즌은 최근 클럽하우스 리뉴얼을 마친 데 이어 조만간 프리미엄 빌리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코스가 내려다보이는 숲속의 글램핑장 위치에 들어설 프리미엄 빌리지는 내년 7월 착공해 2026년 봄에 완공할 예정이다. 기존 골프텔은 직원 기숙사로 활용한다. 호남 명문 골프클럽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포라이즌은 이를 통해 순천을 대표하는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더욱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포라이즌 Pick_막걸리와 어울리는 두루치기두부생김치 & 부드러우면서 쫄깃한 식감의 갑오징어 플래터.

[사진=윤석우(49비주얼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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