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스 그리고 ‘혼돈의 시기’에 누리는 뜻밖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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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스 그리고 ‘혼돈의 시기’에 누리는 뜻밖의 행복
  • 서민교 기자
  • 승인 2024.04.12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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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추구_한 선수가 조용한 연습장에서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고독한 추구_한 선수가 조용한 연습장에서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마스터스가 열린 지 거의 1년이 지났다. 돌이켜봐도 17번홀의 티 앞에 서 있던 세 그루의 오거스타 소나무가 쓰러졌는데, 바람이 휘몰아치던 금요일 오후에 코스에 나와 있던 수천 명의 패트런 가운데 다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여성 한 명이 그 중간에 끼였는데, 간신히 손으로 머리를 감싸쥔 채 그 자리에 얼어붙은 것처럼 서 있었지만 어디 한 군데 다친 곳 없이 무사했다. 아슬아슬한 상황을 모면했을 때 어두운 유머를 늘어놓는 건 안도감의 표현일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 여성이 달리기를 금지한 오거스타내셔널의 정책을 위반할까 봐 겁이 나서 그렇게 서 있었던 것이라고 농담을 했을지도 모른다. 

토요일 동틀 무렵 쓰러졌던 나무들은 이미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금요일의 관중이 다 빠져나가기도 전에 전기톱을 치켜든 일단의 작업자들이 치운 것이었다. 뿌리가 뽑혀나간 빈자리도 메우고 평평하게 다진 후에 녹색의 나뭇조각으로 덮어서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서는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흩어졌던 솔방울과 솔잎마저도 핀셋으로 집어낸 것처럼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유일한 흔적이라면 비에 젖어 물컹해진 지면 위로 나무둥치를 끌고 가느라 남은 자국뿐이었다. 

그건 소모품에 대한 냉정한 교훈이었다. 세 그루의 오거스타 소나무가 30m 높이로 배의 돛대처럼 곧게 서 있다가 1~2시간 동안 세계적 풍파를 일으키더니 골프계가 가장 신성시하는 공간에서 가장 유서 깊은 토너먼트가 벌어지는 와중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는데, 그 과정이 너무 재빠르고 신중하게 진행된 나머지 옅은 안개가 내려앉은 토요일 아침의 갤러리 틈에서 불과 몇 시간 전에 사람들이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쳤던 그 자리에 서서 삶과 죽음을 가르는 차이가 기억과 꿈의 차이보다 덜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최고의 컨디션_존 람은 올해 PGA투어가 아닌 LIV골프 소속으로 마스터스 타이틀 방어에 나선다.
최고의 컨디션_존 람은 올해 PGA투어가 아닌 LIV골프 소속으로 마스터스 타이틀 방어에 나선다.

오거스타내셔널을 처음으로 방문한 느낌은 이미 불안한 터였다.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곳을 속속들이 알고, 직접 보지도 않은 일들이 뇌리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느낌은 이상하다. 오거스타에서의 첫날은 하루 종일 이어지는 데자뷔는 아닐 것이다. 그건 뭔가 아름다운 통증과 비슷할 텐데, 늘 와보고 싶었던 곳에 실제로 왔다는 감사함과 상상 속에서 변형된 곳을 떠나보내는 애도가 달콤쌉싸름하게 뒤섞이기 때문이다. 운이 좋다는 느낌과 함께 슬픔이 차오를 것이다. 기쁘면서도 불안할 것이다. 다정한 유령들 속에 있는 것처럼 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 같으면서도 엉뚱한 곳에 와 있는 느낌이 들 것이다. 

이곳을 자주 찾는 아주 유명한 선수들에게조차 오거스타내셔널은 익숙한 동시에 별천지 같은 느낌을 안겨주는 희한한 재주가 있는 모양이다. “코스만 보면 100년 넘게 그 자리에 있으면서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지난해 타이거 우즈는 토너먼트를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해마다 이곳에 오는데… 내가 처음 이곳에서 플레이를 한 이후로 모든 게 달라졌다.” 우즈는 17번홀에 아직 아이젠하워 나무가 있었을 때 그곳에서 플레이를 했었다. 그는 눈을 감고도 대통령의 이름이 붙을 만큼 웅장했지만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그 장해물을 돌아나가는 샷을 떠올릴 수 있다.

이제 같은 홀에서 나무 세 그루가 더 줄어들었다. 그 나무들의 갑작스러운 빈자리는 오거스타내셔널이 지니고 있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지만 절대로 그럴 수 없었을 것 같은 이미지를 더 짙게 만들어준다. 

안개 속으로_브라이슨 디섐보가 연습 그린으로 향하고 있다.
안개 속으로_브라이슨 디섐보가 연습 그린으로 향하고 있다.

오거스타내셔널의 가장 좋은 점으로 피멘토 치즈 샌드위치를 꼽는 사람들이 있다. 그 샌드위치는 녹색 비닐 포장지에 싸여 1.50달러에 판매된다. 그들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절대로 믿을 사람이 못 된다. 피멘토 치즈 샌드위치는 오거스타내셔널 안에서조차 최고의 샌드위치가 아니다. 그 명예는 조지아 피치 아이스크림 샌드위치에 돌아가야 한다. 그건 천상의 디저트다. 

아니, 오거스타내셔널의 가장 좋은 점은 휴대폰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건 위대한 정책이며, 철저하게 지켜지기 때문에 더욱 훌륭하다. 야구 모자를 거꾸로 쓴 패트런은 정중하게 그걸 제대로 쓰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휴대폰을 꺼내는 패트런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마스터스만의 많은 개성은 이제 더 이상 특이하다고 말할 수 없다. 지금의 오거스타내셔널이 어딘가 골프 테마파크처럼 느껴지지 않는 건 순전히 그곳만의 정책을 완벽하게 관리해온 덕분일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이곳은 무한한 자원을 쏟을 경우 뭔가를 얼마나 매끄럽게 운영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증거 사례가 되었다. 세 그루의 나무가 쓰러졌어도 밤새 코스의 다른 모든 나무가 안전한지 점검해서 다음 날 플레이를 할 수 있게 하고, 집에서도 대체로 광고 공세에 시달리지 않고 중계를 볼 수 있다. 

막강한 파워_브룩스 켑카는 2023년에 공동 2위를 차지했다.
막강한 파워_브룩스 켑카는 2023년에 공동 2위를 차지했다.

예전에는 기자들이 양철 지붕을 덮은 막사 형태의 건물에서 기사를 작성했다. 지금은 9m 높이의 아트리움에서 이중 계단을 올라가 연습장이 눈에 보이고 오케스트라 하나를 구성할 만큼의 황동 장식이 있는 원형극장으로 들어간다. 이와 비슷하게 새롭고 넓은 기념품 가게에서도 1시간쯤 그 화려함을 만끽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지난해 듣기로는 한 남자가 기념품에 3만6000달러를 썼는데, 그렇게 많은 가방을 들고 나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다행히 오거스타내셔널 운영자들은 이전의 독특한 개성을 인정하며 이곳만의 낭만을 지켜왔다. 이를테면 나이 든 남자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수작업으로 교체하는 리더보드를 비롯해 캐디들은 흰색 작업복을 입고 우승자는 그린 재킷을 입는 것, 저렴한 음식과 한결같이 행복한 표정으로 최선을 다하는 자원봉사자들, 잊지 못할 최고의 매그놀리아 레인 같은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마스터스가 왕년의 마스터스 같은 느낌이 들도록 유지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휴대폰 정책이야말로 그들이 확고하게 유지하는 정책 가운데 최고일 것이다. 오거스타내셔널에 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워싱턴 로드를 따라간다. 그러다 보면 교통체증에 걸리게 되고, 아비스와 올리브 가든을 이리저리 뚫고 가기도 한다. 그러다가 높은 산울타리를 통과하면 그곳만의 작은 우주로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낯선 평온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휴대폰으로 멍청한 짓을 하고 있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최대한 멀리_지난해 13번홀의 티잉 구역을 너무 뒤로 옮긴 나머지 선수들의 드라이버 샷을 보기 힘들어졌다.
최대한 멀리_지난해 13번홀의 티잉 구역을 너무 뒤로 옮긴 나머지 선수들의 드라이버 샷을 보기 힘들어졌다.

단 하나의 정책이 우리에게 뭘 요구하고, 그럼으로써 뭘 가능하게 하는지 상상해보라. 휴대폰이 없으면 시간을 알 길이 없다(물론 시계를 차는 걸 잊지 않는다면 가능하고, 시간을 꼭 알아야겠다면 상점에서 기념품 시계를 구입할 수도 있다). 그러면 눈앞의 순간에만 집중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길은 본능적으로 찾아갈 수 있지만, 도움이 필요하다면 누군가에게 물어보거나 종이 지도를 참고하면 된다. 동행과 따로 행동하고 싶을 때는 나중에 만날 장소를 정해야 한다. 눈앞에서 바로 펼쳐지는 역사의 현장을 제외하고는 코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을 테니까. 오거스타내셔널의 유명한 함성이 뭔가 위대한 일이 근처에서 일어났다는 걸 알려주지만, 노인이 사다리를 타고 오르기 전까지는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스릴을 견뎌야 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주변의 모든 사람이 고개를 들고 등을 뒤로 젖힌 채 얼굴을 앞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 모든 사람이 다음 조가 도착하기까지 유쾌한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낼 여유가 있다는 것, 모든 사람이 어떤 필터를 거치거나 시야를 가리는 그 무엇도 없이 골프를 지켜본다는 것. 모두가 자신이 사라져야 하는 순간이 올 때까지 모든 것을 빠짐없이 즐기겠다는 각오로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소나무의 반란_금요일에 17번홀 티 근처의 소나무 세 그루가 쓰러졌지만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나무의 반란_금요일에 17번홀 티 근처의 소나무 세 그루가 쓰러졌지만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게리 플레이어는 지난해 명예 시타를 한 후 개인적으로 기자회견을 했다. 우즈는 이미 오거스타내셔널이 골프판 테세우스의 배가 되었으며, 변화의 시대적 요구가 충만하다는 소회를 밝힌 바 있다. 플레이어는 예언과 선언을 섞어 말했으며, 그 주제와 관련해 그가 다음과 같이 짧고 단호하게 천명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변화는 생존의 비용이다.” 그의 말은 마치 투명한 의사봉을 두드리는 듯했다. 골프는 지각변동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거리 논란은 몇 년째 계속되고 있으며, 오거스타내셔널을 비롯한 코스들이 길이를 늘릴 수 있는 여력을 거의 소진한 상태이기 때문에 아마도 골프볼 롤백을 시행해야 할 것이다.

지난해에는 13번홀의 티잉 구역을 너무 뒤로 밀어서 선수들이 드라이버 샷을 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 정도였다. 재작년에는 11번홀의 길이를 늘였을 뿐만 아니라 나무를 넘어뜨렸고(이때는 의도적으로), 연못의 크기도 더 키웠다. 우즈는 작은 변화들이 일정한 수준까지 쌓일 경우 맞게 되는 정신적인 티핑 포인트에 도달했다며 불안정한 느낌을 토로했다. 심지어 오거스타내셔널조차 조금씩 추가한 것이 엄청난 규모로 늘어나면 어느 순간 엉뚱한 곳을 걷고 있는 느낌이 들게 된다. 

그리고 LIV골프의 행보도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해 마스터스 챔피언이었던 존 람은 이탈자였던 브룩스 켑카를 추격 끝에 물리치며 PGA투어를 대표해 우승을 거뒀다. 2024년에는 람도 그들의 일원이 되어 타이틀 방어에 나선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면 멀쩡한 산책을 망친 정도가 아니라 좋은 스포츠가 망가졌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게리 플레이어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향수(?)는 사고를 제약하며, 심지어 위험하다. 플레이어가 향수를 질색하는 건 어쩌면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의 남아공에서 자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에게 과거는 포용이 아닌, 벗어나야 하는 대상이었다. 

아마추어 기대주_텍사스 A&M 대학교 4학년 샘 베넷은 선두를 다투다가 공동 16위로 내려앉았다.
아마추어 기대주_텍사스 A&M 대학교 4학년 샘 베넷은 선두를 다투다가 공동 16위로 내려앉았다.

미국 남부에도 비슷한 정서가 존재한다. “예전에는 이랬었는데”라고 불평을 하려면 조금 더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야 한다. 오거스타내셔널이 예전 모습으로 남아주길 바랄 경우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잘못까지 다시 돌아오길 바라게 될 수 있다. 재키 로빈슨은 1947년 메이저리그 야구의 유색인종에 대한 장벽을 무너뜨렸다. 리 엘더는 1975년에야 마스터스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이 클럽은 1983년까지 흑인 캐디만을 토너먼트에 배치했다. 이 클럽의 첫 흑인 회원인 론 타운젠드의 가입이 허용된 건 1990년이었다. 오거스타내셔널의 갤러리는 지금도 압도적으로, 거의 기이할 정도로 백인 일색이지만 마스터스가 여전히 미국 사회에서 지금과 같은 위상을 점유하고 있다는 건 어느 정도 양해를 받았다는 뜻이다. 만약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누군가가 클럽하우스에 불을 질러 잿더미로 만들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침내 그곳에 도착해서 자신이 생각해오던 오거스타와 다르거나 어딘가 현대적인 실체에 아쉬움이 느껴진다면 11번홀의 티까지 멀리 돌아가는 길을 따라 걸어보자. 그곳은 오거스타의 아이다호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어딘가로 가기 위해 지나쳐가는 곳이 아니라, 사색할 마음이 있다면 멀리 돌아서라도 가볼 만한 그런 곳. 

그곳은 조용하다. 코스의 다른 어느 곳보다도 조용하다. 로프 바로 앞에 자리를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위대한 골퍼들이 줄지어 자신들의 시간이 아닌, 우리의 시간에 맞춘 듯이 그곳에 나타나 나무들과 언덕이 액자처럼 가장자리를 두른 창공을 향해 호쾌한 드라이버 샷을 날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마치 나를 위해, 오직 나만을 위해 플레이를 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 것이다. 자, 그들은 말할 것이다. 내가 무슨 샷을 선보일지 잘 보세요. 

그래서 롤백 이전의 볼들이 모조리 자취를 감추기 전에 펼쳐지는 플레이를 실컷 봤다면 그중 한 조를 따라 그린으로 가서 아멘 코너의 정점에 모여 있는 인간 군상 속으로 들어가보자. 원유처럼 검은 연못 위로 다채로운 군중의 모습이 비친다. 사람들은 흥에 겨워 호건 다리를 건너간다. 이제 눈을 감고 기대에 찬 웅성거림과 이윽고 눈앞에 펼쳐지는 결과에 터져나오는 함성을 들어보자. 그런 다음 다시 눈을 뜨고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를 떠올리며 그 순간의 만족감,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령처럼 그저 존재하는 가운데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를 만끽해보자. 

거침없는 자태_코스를 멀리서 굽어보는 것은 사진 속 2번홀처럼 그 자체만으로 시각적 즐거움을 안겨준다.
거침없는 자태_코스를 멀리서 굽어보는 것은 사진 속 2번홀처럼 그 자체만으로 시각적 즐거움을 안겨준다.

인생이 관점의 문제라면 골프는 선택의 게임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골퍼나 그룹을 따라다니며 마스터스를 관람한다. 또 어떤 이는 1번홀 티나 12번홀 언덕, 아니면 16번홀 관람석에서 온종일 같은 자리를 지킨다. 그런가 하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함성이 들리거나 직감에 따라 멈춰서 구경하고 또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오거스타내셔널을 처음 찾은 날이 일요일이라면 선택의 폭은 좁아질 테고, 그건 단 하나뿐이다. 승부가 결정되는 순간을 봐야 한다면 가장 뛰어난 골퍼들의 조합을 목격해야 한다. 

날이 오후로 접어들어 앞선 그룹들이 라운드를 마치고 떠나가면 볼 수 있는 플레이가 점점 더 줄어들고,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사람들은 마지막 홀로 모여든다. 그때 조금 뒤로 물러나 마치 군대의 이동을 지켜보는 전장의 장군처럼 그 현장을 멀리서(그때쯤이면 텅 비었을 8번홀의 페어웨이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바라본다면 승자의 마지막 퍼트를 가까이에서 볼 수 없는 대신 수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이 영원히 변하는 순간을 지켜보기 위해 순례자처럼 걸어가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만약 빛이 적당하다면(아마도 그럴 테지만), 그리고 기온이 적당하다면(아마도 그럴 테니까) 마스터스와 골프, 어쩌면 미국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해 탄식하던 것은 까맣게 잊고 다시 한번 그 모든 것의 가능성을 긍정하며 잠시 달콤한 만족감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지난해 몇몇 회원이 클럽하우스의 베란다에 서서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람이 그린으로 향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들은 강렬하게 내리쬐는 오후의 햇빛 때문에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어제 같은 날이 없다면 오늘 같은 날도 있을 수 없지.” 그중 한 명이 말했다. 그는 날씨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토요일에도 강풍이 몰아쳤지만 다행히 더 많은 나무를 쓰러뜨릴 만큼 세차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건 우리의 현재와 과거, 우리의 길이 하나로 모여 우리를 여기로 이끌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내일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일 수도 있었다. 

또 다른 토너먼트의 소중한 추억들이 오거스타내셔널 위로 담요처럼 내려앉기 전인 화요일 오후, 존 람이 마스터스 챔피언이 되고 나서 LIV골프로 넘어가기 전인 그 화요일 오후에 나이가 지긋한 한 여성이 9번홀의 티 왼쪽에 서 있는 커다란 나무를 감탄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젊은 연인이 기념품 가게에서 방금 구입한 마스터스 로고의 골프 셔츠를 맞춰 입고 나타났다. 그들은 마치 이제 모든 놀이기구를 다 탔으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기운 없이, 어쩌면 조금 지루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가슴이 벅차지 않아요?” 나이 든 여성이 그 웅장하고 아름다운 나무를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나뭇가지 밑으로 몸을 숙이며 물었다. 연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이 든 여성은 두 사람을 쳐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나무를 올려다봤다. “이런 걸 보면 가슴이 벅차올라야죠.” 그는 말했다. 

글_크리스 존스(Chris J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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