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투어 선수들의 '조강지처' 클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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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A투어 선수들의 '조강지처' 클럽들
  • 김성준 기자
  • 승인 2023.10.3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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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덤 클라크 Wyndham Clark
지난 6월 열린 제123회 US오픈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윈덤 클라크의 손에 오디세이 버사 제일버드 퍼터가 들려 있다. 
리키 파울러 Rickie Fowler
로열리버풀골프클럽에서 열린 제151회 디오픈을 앞두고 연습 라운드 중인 리키 파울러. 캐디의 퍼터를 그대로 복제한 오디세이 버사 제일버드 퍼터를 사용하고 있다. 이 퍼터는 2014년 단종되었다가 지난 8월 버사 제일버드
380이라는 모델로 한정판 출시되었다. 
대니얼 버거  Daniel Berger
2022년 PGA챔피언십 2라운드 16번홀에서 두 번째 샷을 하고 있는 대니얼 버거. 그는 고등학생 시절 사용한 테일러메이드 TP MC 아이언 세트로 돌아왔다. 이 아이언은 2011년 출시된 구형 아이언이다.

투어 선수가 사용하는 골프 클럽은 전장에서 쓰이는 무기와 같다. 무기가 손에 익지 않거나 믿음직한 성능을 내지 못한다면 고도로 훈련된 병사라도 자기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없다. 따라서 프로 골퍼들은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장비를 사용하려고 다방면으로 노력하며, 클럽 제조사들은 소속 선수의 피드백을 반영한 클럽을 출시한다.

투어 선수들이 클럽 제조사에 요구하는 사항은 매우 구체적이면서도 까다롭다. 그 때문에 클럽 제조사는 투어 선수들의 요청에 따라 정식 출시하지 않은 프로토타입부터 양산형 모델과는 조금 다른 디자인과 스펙을 가진 투어 지급용 클럽을 만들어낸다.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투어 지급용 클럽은 장비병 환자들이 탐내는 용품 중 하나다. 투어 선수들은 계약한 제조사의 클럽을 언제든 요청해서 사용할 수 있지만, 제조사의 기술력을 총동원한 신형 클럽을 사용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구형 클럽을 사용하거나 신형 클럽을 사용하다가 다시 구형 클럽으로 돌아간 선수도 존재한다.

◆구관이 명관?
일반적으로 새로운 클럽이 출시되면 클럽 제조사들은 광고를 통해 비거리와 안정성 등 클럽의 성능을 향상했다고 주장한다. 또 제품 홍보에 도움이 되는 톱 레벨 프로 골퍼들을 동원해 제품의 우수성을 알린다. 따라서 많은 아마추어 골퍼는 ‘이왕이면 신제품’이라는 생각으로 신제품 출시 주기에 맞춰 자신의 골프백을 리뉴얼 한다. 하지만 투어 선수들은 장비에 대한 접근 방식이 조금 다르다. 신제품이 출시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새로운 장비로 교체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제조사들은 신제품을 출시하기 전 소속 선수들에게 클럽을 미리 지급하는 ‘투어 시딩(Seeding)’ 과정을 거친다. 제조사는 투어 시딩 과정에서 신제품에 대한 선수들의 피드백을 얻어낸다. 또 소속 선수들은 드라이빙레인지에서 신형 클럽을 테스트해보고 만족할 만한 결과를 보인다면 자신의 골프백에 넣어 다양한 상황에서 필드 테스트를 한다. 대회에서 사용할 수 있는 믿음직한 클럽인지 신중하게 살펴보기 위해서다.

프로 세계에서는 1타에도 많은 돈이 오가기 때문에 그들은 장비 교체에 신중한 것을 넘어 매우 보수적으로 접근한다. 현재 사용하는 클럽의 성능에 큰 문제가 없다면 신제품이 출시되더라도 신속한 장비 교체를 시도하지 않으며, 손에 익은 구형 클럽을 고집하는 선수도 많다. 

2015년 미국 PGA투어 신인왕 대니얼 버거는 2016년과 2017년 6월에 2년 연속 페덱스세인트주드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준수한 성적을 이어갔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2017~2018 시즌부터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평범한 선수로 전락할 위기에 있던 버거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 것은 2020년 1월, 3년간 맺었던 클럽 제조사와 계약이 종료되고 자신이 원하는 장비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자유 계약 선수가 되면서부터다.

버거는 자기 집 창고에서 2011년에 출시된 테일러메이드 TP MC 아이언 세트를 찾아냈다. 테일러메이드 TP MC 아이언은 고등학생 시절과 투어 첫 승을 기록할 때 사용했던 아이언이었다. 그는 구형 아이언에 편안함을 느꼈고, 결국 오래된 아이언 세트를 다시 가방에 넣었다. 그의 선택은 탁월했다.

버거는 테일러메이드 TP MC 아이언으로 그동안의 부진을 털어내고 2020년 찰스슈와브챌린지에서 우승을 거두었으며, 2021년에는 AT&T페블비치프로암에서도 우승을 차지해 현재 투어 통산 4승을 기록 중이다. 버거는 2022년 소셜 미디어를 통해 “어떤 남성에게서 완벽하게 보관된 TP MC 한 세트를 더 구입했다. 이 클럽 말고도 백업 클럽을 지속해서 구했다”며 계속 이 구형 아이언을 사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헨리크 스텐손 Henrik Stenson
지난 6월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레알클럽발데라마에서 열린 LIV골프 발데라마 1라운드에서 헨리크 스텐손이 ‘조강지처 클럽’ 캘러웨이 디아블로 옥테인 우드를 꺼내고 있다. 그는 2011년부터 캘러웨이 디아블로 옥테인 페어웨이 우드 헤드와 그라팔로이 블루 샤프트를 조합한 클럽을 사용하고 있다.
빅토르 호블란 Viktor Hovland
지난 8월에 열린 PGA투어 최종전 투어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아이언 샷을 하는 빅토르 호블란. 2018년 출시된 핑 i210 아이언 세트로 우승을 차지했다.

2016년 디오픈 우승을 포함해 PGA투어 6승과 LIV골프에서 1승을 거둔 헨리크 스텐손도 오래도록 클럽을 바꾸지 않는 골퍼로 유명하다. 그는 2013년부터 캘러웨이 레가시 블랙 아이언을 사용하고 있다. 또 스텐손은 2011년부터 캘러웨이 디아블로 옥테인 페어웨이 우드 헤드와 그라팔로이 블루 샤프트를 조합한 클럽을 ‘조강지처’로 생각한다.

2019년 클럽 페이스에 문제가 생겨 에픽 플래쉬 서브제로 모델로 잠시 변경했지만, 이내 다시 예전에 사용한 클럽인 디아블로 옥테인 우드로 돌아갔다. 스텐손은 “만약 72번째 홀에서 대회에 우승할 수 있는 위치에 가져다줄 샷을 쳐야 한다면 2일 전에 집어 들었던 어떤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5000번은 친 어떤 것을 원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손에 익은 구형 클럽에 크나큰 신뢰를 보이기도 했다.

대니얼 버거와 헨리크 스텐손처럼 예전 장비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골퍼는 더 있다. PGA투어 통산 8승의 패트릭 캔틀레이는 타이틀리스트 TS3 드라이버, 915F 페어웨이 우드, 718 AP2 아이언을 사용 중인데, 드라이버는 2018년에 출시된 제품이고 아이언은 2017년, 우드는 2015년에 출시된 것이다. 

또 지난 8월에 열린 PGA투어 플레이오프 최종전 투어챔피언십 우승자 빅토르 호블란은 올해 초 핑의 프로토타입 블루프린트 S 아이언을 잠시 사용했지만 그의 가방에 오래 보관되지 않았으며, 2018년 출시된 핑 i210 아이언 세트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이 밖에도 토니 피나우와 브룩스 켑카의 골프백에는 오래전에 단종된 나이키 베이퍼 플라이 프로 3번 아이언이 들어 있다.

자신이 사용하던 클럽은 아니지만 오래된 클럽으로 바꾸고 나서 우승을 차지한 선수도 있다. 리키 파울러는 PGA투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수 중 한 명이다. 그는 2010년에 PGA투어 신인왕을 차지하고 2012년 웰스파고챔피언십부터 2019년 피닉스오픈까지 통산 5승을 거뒀다. 그러나 2019년 우승 이후 극심한 슬럼프가 찾아왔다. 2022년 시즌에는 세계 랭킹이 185위까지 추락했다. 그랬던 그가 4년 5개월 만에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골프클럽에서 열린 PGA투어 로켓모기지클래식에서 여섯 번째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재기에 성공했다.

그의 부활에는 스윙 교정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했지만, 퍼터를 교체한 것도 ‘신의 한 수’라는 평가가 많았다. 파울러는 올해 1월 존 람이 우승했던 PGA투어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대회가 열리기 직전에 자신의 캐디 리키 로마노의 퍼터를 시험해봤다.

캐디의 퍼터는 17인치 슈퍼스트로크 투어 3.0 퍼터 그립과 20~25g의 납 테이프가 바닥에 부착된 39인치짜리 오디세이 버사 제일버드 퍼터였다. 이 오디세이 버사 제일버드 퍼터는 2014년에 출시된 구형 퍼터다. 파울러는 캐디의 퍼터가 마음에 들었고, 오디세이 투어 담당자인 조 툴롱에게 연락해 캐디의 퍼터와 똑같은 복제품을 요청했다. 

공교롭게도 툴롱은 아메리칸익스프레스가 열리기 일주일 전 캘러웨이 투어밴을 정리할 때 투어밴 구석에서 버사 제일버드 퍼터헤드를 발견했고, 버려질 뻔했던 퍼터헤드가 파울러의 새로운 퍼터로 거듭났다. 결국 파울러는 1610일 만에 우승을 추가하며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라이더컵에 출전하는 12명의 선수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이 구형 버사 제일버드 퍼터는 리키 파울러 외에도 몇 명의 골퍼를 더 구원했는데, 그중 한 명이 2023년 US오픈 우승자 윈덤 클라크다. 클라크가 오래된 이 모델을 쓰게 된 건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 선배 리키 파울러 덕분이었다. 지난 3월 클라크는 파울러와 연습 라운드를 했다.

이때 파울러의 퍼터를 빌려서 테스트해본 클라크는 캘러웨이에 연락해 파울러와 똑같은 퍼터를 주문했다. 복제품의 복제품이었다. 스펙도 똑같이 만들었다. 공교롭게도 US오픈 3라운드까지 퍼트 1위는 파울러였고, 2위는 클라크였다.

6월에 열렸던 PGA투어 트래블러스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키건 브래들리도 오디세이 버사 제일버드 퍼터를 사용하며 부활한 사례다. 브래들리는 2011년 메이저 대회인 PGA챔피언십에서 벨리 퍼터를 사용해 우승했다. 이후 앵커링이 금지되면서 벨리 퍼터를 사용하지 못했고, 오래도록 우승 가뭄에 시달렸다. 그러나 브래들리는 2021년부터 오디세이 버사 제일버드 퍼터를 사용했고. 지난해 조조챔피언십과 올해 트래블러스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하며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수명 연장
몇몇 톱 레벨 프로 골퍼가 오래된 장비로 플레이한다고 해서 아마추어 골퍼들도 프로 골퍼의 룰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장비로 다시 돌아가거나 그대로 유지하는 선수들은 그들만의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 그들은 익숙한 것을 버리는 데 매우 보수적이다. 특히 플레이가 잘 풀리고 있을 때는 거의 집착하는 수준으로 변화를 거부하는 선수가 많으며, 아주 사소한 변화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두 번째 이유는 새로운 클럽이 자신의 게임에 확실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경우다. 예를 들어 새롭게 출시된 5번 우드가 예상보다 지나치게 멀리 날아간다면 프로 골퍼들은 결코 신형 우드를 선택하지 않는다. 투어 선수들이 원하는 5번 우드는 일관된 비거리로 날아가고 그린에 세울 수 있을 정도로 높은 백스핀과 탄도를 만드는, 예측 가능한 클럽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프로 골퍼들이 구형 장비를 사용하거나 다시 돌아간 것은 그들만의 플레이 특성에 맞는 가장 적합한 장비를 사용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아마추어 골퍼에게는 구형 클럽보다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신형 클럽이 스코어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가끔 구형 클럽에 향수를 느끼거나 새로운 장비에 수월하게 적응되지 않는다면 과거에 믿음을 주었던 구형 클럽의 수명을 연장해 다시 가방에 넣어보는 것도 골프를 재미있게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사진_게티이미지(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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