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 복귀’ 전지원 “골프는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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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A 복귀’ 전지원 “골프는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 한이정 기자
  • 승인 2024.01.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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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호주로 떠나게 되면서 언어와 골프라는 큰 벽에 연달아 부딪혔다. 새벽 5시 반부터 달리며 새로운 세상에 꿋꿋하게 맞선 나는 LPGA투어를 향해 다시 뛰고 있다. 

 

지금도 생각한다. ‘내가 그때 그 대회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태극마크를 노리던 난 국가대표 포인트를 쌓을 수 있는 중요한 대회들을 앞두고 있었다. 당시 처음 열린 세한대학교 총장배 코리아힐스국제주니어골프대회에는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단호했다. “연습이라 생각해. 어차피 대회장도 가깝잖아.” 제안을 거역하지 못한 나는 덜컥 종합우승을 차지했고, 예상치 못하게 인생 첫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

 

●○● 유학 생활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대회 우승자에게 주어진 1년 장학금을 받고 호주 힐스 국제학교로 떠났다. 내가 갔던 국제학교는 공부뿐 아니라 골프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었다. 장학생이었던 나는 제일 높은 반에 들어갔지만, 골프를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나를 짓눌렀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영어를 배웠으나 해외에서 수업을 듣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준비 없이 떠난 유학이라 타격은 더 컸다.

●○● 내가 택한 것은 달리기였다. 타지에서 홀로 이를 악물었다. ‘잘해야겠다. 살아남자.’ 평소 운동을 좋아하던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부터 산악 구보를 함께 하게 했다. 아버지 덕분에 달리는 건 익숙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체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매일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달렸다. 새벽이슬을 맞고 아침 식사를 하면 내 하루가 시작됐다.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대화하기 위해 전자사전 늘 품고 살았다. 골프도 결과에 상관없이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그렇게 1년 뒤, 한국에 돌아가려던 나를 코치가 불렀다. “2년 더 장학금을 줄 테니 여기에 남는 게 어때?” 아직 제대로 보여준 게 없는 내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다.

●○● 국제 대회에 꾸준히 출전하며 경험을 쌓았다. 갈망하던 국가대표의 꿈은 접었지만, 유학 생활이 연장되면서 나는 인도, 태국, 호주 등 세계를 누비며 대회에 출전했다. 호주에서 열린 주니어 대회에서 우승하며 코치의 믿음에 보답하기도 했다. 졸업이 다가올 때쯤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일본 무대에 도전할 생각을 하던 내게 코치는 미국 대학에 진학할 것을 제안했다. “네가 더 경험을 쌓았으면 좋겠어.” 타이밍 좋게도 데이토나 주립대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미련 없이 짐을 싸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더 큰 세계에 뛰어들었다. 2년제 대학에 진학 후 두  갈랫길에 섰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Q시리즈를 보느냐, 경험을 더 쌓느냐. 데이토나 주립대학교 골프 팀이 연습하던 코스에서 Q시리즈가 열렸다. 그 코스에서 나는 항상 미래를 꿈꿨다. 4년제 대학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4년제 대학생이 출전하는 1부 리그에서 더 경쟁하고 싶었다. 당시 앨라배마가 대학교 랭킹 2위였다(1위였던 스탠퍼드는 로스터가 꽉 차서 갈 수 없었다). 코치에게 앨라배마와 연결해 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앨라배마에서도 내게 관심을 보였다.

●○● 나는 더 강해졌다. 운동, 훈련, 식단까지 체계적인 시스템 속에서 학교의 1부 리그 우승에 힘을 실었고, 2018년 US오픈여자아마추어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아마추어 세계 랭킹에서 6위까지 올라섰다. 4학년 때 더 늦기 전에 LPGA투어에 도전했다. 자신 있게 나선 Q시리즈에서 공동 16위로 단번에 시드를 획득했다.

●○● 시드를 잃고 골프에 회의를 느꼈다. LPGA투어 루키 시즌 22개 대회에 출전해 일곱 차례 컷 통과했다. 그러다가 2021년 9개 대회에서 여섯 번이나 컷 탈락했다.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 여기에 손가락 부상까지 겪으며 평생 해본 적 없던 대회 기권도 해야 했다. 엡손투어 성적도 좋지 않았다. 오랜 해외 생활에 지칠 대로 지쳤다. 넘어지면 빨리 일어날 줄 알아야 하는데 심리적으로 준비돼 있지 않으면 일어나기 힘들다는 걸 루키 시즌에 배웠다.

●○● 인생은 서바이벌이다. 1년만 더 참아보자고 다짐했다. 사막처럼 삭막한 투어 생활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재미로 살았다. 투어 친구들과 렌터카를 빌려 함께 운전하고 다녔다. 프로암은 많아졌고, 대회 중 제공받는 식사 횟수는 줄었다. 160여 명 중 10명만이 올라갈 수 있는 1부 무대를 위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스스로 초라해지는 것 같아 많이 울기도 했다. 그때 새로운 에이전트, 루키 시즌부터 날 믿고 지지해준 스폰서 미즈노가 큰 힘이 됐다. ‘잘하고 있다’는 말에 자신감을 얻었고, 다시 일어선 나는 2023년 엡손투어에서 2승을 손에 쥐었다. 주변을 다 끊고 운동과 훈련에만 매진한 결과다.

●○● 해내고자 하면 부딪혀서 이뤄내는 성격이다. LPGA투어에 처음 갔을 때는 그 무대가 얼마나 크고 소중한지 와닿지 않았다. 시드를 잃은 건 한 번의 실패라고 생각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 지금은 모든 게 준비됐다. 내가 얼마만큼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설렘이 크다. 최선을 다해서 내 모든 걸 쏟아내고 싶다. 포기하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 

 

전지원 나이 26세 / 주요 성적 2023 엡손투어 2승

사진_윤석우(49비주얼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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