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 인터뷰] 최예림 ‘우승 따위’
  • 정기구독
[GD 인터뷰] 최예림 ‘우승 따위’
  • 한이정 기자
  • 승인 2023.09.13 07: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왜 우승을 못 할까? 왜 나는 안 되는 걸까? 물음표를 떼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나. 우승 대신 쌓이는 준우승.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은 인생이잖아요. 

 

 

제주에서 서울로 향한 비행기.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미소 짓던 최예림은 그 안에서 펑펑 울었다. 평생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었을 정도로 내내.

지난해 8월 열린 KLPGA투어 제주삼다수마스터스. 1~3라운드 줄곧 선두였던 최예림은 와이어 투 와이어로 첫 승을 눈앞에 뒀다. 하지만 네 홀을 남겨두고 경기 흐름이 달라졌다. 지한솔이 15~18번홀에서 네 홀 연속 버디에 성공했고, 최예림은 더 이상 타수를 줄이지 못했다. 다 잡은, 눈앞에 펼쳐진 우승을 놓치고 말았다.

누구라도 속상할 만한 준우승. 그래도 최예림은 지한솔과 포옹했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애써 미소를 지으며 그린을 떠났다. 오히려 최예림을 열렬히 응원하던 갤러리의 속이 더 타들어갔다. 당시 최예림은 “괜찮다”며 또 웃었다. 그리곤 덩그러니 혼자 남은 비행기 안에서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했던 것이다.

그 뒤로 최예림은 두 번의 준우승을 더 했다. 제주삼다수마스터스 2주 뒤에 열린 하이원리조트여자오픈에서도 준우승했다. 그때는 무덤덤했단다. 올해 2월 베트남에서 열린 PLK퍼시픽링스코리아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한 이후에는 곧장 짐을 싸서 태국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6년 차지만, 무승 그리고 준우승 다섯 차례. 최예림은 말했다. “꾸준히 내 할일을 하다 보면 언젠가 우승은 오지 않을까.”

 

 

무한 경쟁 시대

매주 100명이 넘는 선수들이 우승 경쟁을 펼친다. 게다가 프로암과 연습 라운드까지 치르면 사실상 프로 선수들이 쉬는 날은 일주일에 월요일 하루뿐이다. 그 외에는 경쟁, 경쟁, 경쟁이다. 그렇다 보니 선수들의 스트레스도 극심하다.

“가시밭길을 매일 걷는 느낌이다”라고 넋두리를 늘어놓던 최예림은 이내 웃었다. “그래도 나만 이 길을 걷는 게 아니고 모두가 같이 하는 거니까 ‘다들 힘들지’ 하고 묵묵히 하고 있다. 내가 벌써 6년 차다. 지난 5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 같다.”

우승은 없고 준우승만 다섯 번이나 한 것도 스트레스로 작용할 터다. “나는 오히려 챔피언 조에 가는 게 싫다. 챔피언 조에서 항상 2등을 했더라. 약간 트라우마가 생긴 건가 싶을 정도다. 챔피언 조 앞에서 치고 올라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통산 세 번째 준우승이었던 제주삼다수마스터스도 곱씹을수록 아쉽다. “그렇게 압박을 받아본 적은 처음이었다. 엄청나게 응원을 많이 받았는데, 무겁게 다가왔다. 또 한솔 언니가 갑자기 치고 올라와 마지막 홀에서 역전당하니까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이게 내 복이구나. 내 운은 여기까지구나.’ 그래도 한솔 언니를 위해 웃으며 떠났다. 내가 그린에서 울면 우승자가 스포트라이트를 못 받을 것 같아서.”

“계속 아쉬움이 남는 게 있다면 내가 준우승할 때마다 ‘또 좌절’이라는 타이틀이 붙는 것이다. 준우승은 여전히 아쉽지만, 그래도 스스로 잘했다고 칭찬한다. 2등도 어려운 건데, 어떻게 이렇게 많이 했을까. 하지만 여전히 우승을 빨리 하고 싶다. 또래 선수들은 이미 한 번씩 했는데 나만 못 하고 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고 있다.”

어느새 투어에서 ‘언니’가 된 최예림은 막강한 신인 선수들과의 경쟁에서도 뒤지지 않기 위해 구슬땀을 흘린다. “요즘 후배들은 다 키도 크더라. 나도 어릴 때 언니들이 크다고 했는데, 우리 때보다 더 큰 것 같다. 이제 거리로는 안 될 것 같다. 다른 뭔가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교함으로 승부해야지. 아이언 샷에 자신 있는 편이다. 거리가 좀 덜 나가더라도 세컨드 샷의 정교함이 있어야 버디 확률이 올라가지 않나. 아이언 샷을 더 많이 연습해서 정교하게 가다듬을 것이다.”

 

 

소프트아이스크림

최예림은 KLPGA투어에서 스윙 폼이 부드럽기로 손꼽힌다. “빈 스윙도 많이 했지만, 워낙 근육이 많은 편이 아니라 스윙이 부드러워 보이는 게 아닐까 싶다. 어릴 때부터 스윙이 부드러웠다. 힘은 없는데 체구가 있으니까 스윙 아크가 커서 거리가 많이 나가는 편이었다. 근데 요즘은 세게 치는데도 부드럽다고 하더라. 그냥 내 스타일이 그런가 보다 한다.”

중계 화면에 비치는 최예림은 웃음기 없이 도도해 보이지만, 성격은 유들유들함 그 자체다. 감수성도 풍부하다. 그는 “성격이 무던해서 그런가 스윙도 내 성격을 닮은 것 같다”며 깔깔 웃었다. “옷도 진한 컬러는 별로 안 좋아한다. 부드러운 컬러, 특히 화이트 옷을 많이 입는다. 음식도 부드럽고 물렁한 걸 선호한다. 다들 할머니 입맛이라고 한다. 나는 센 걸 별로 안 좋아한다. 성격도 그렇고, 사람을 대할 때도 센 사람과는 잘 안 맞더라.”

선수로서 경쟁에 놓이면 승부욕이 불타오르기 마련이지만, 최예림은 다른 선수에 비해 승부욕이 강하진 않은 것 같다고 되돌아봤다. “내가 할 거 하고 있으면 언젠가 우승이 찾아오겠지 하는 생각이다. 다른 선수들은 승부욕이 활활 타올라서 눈에 불이 나고 그런다는데, 나는 묵묵히 내 할 일을 한다. 아, 그래서 우승이 없는 건가?”

말은 이렇게 해도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심하다. 위염, 식도염은 달고 산다. “나도 극한의 상황에서는 안에 있는 모든 에너지를 다 끌어다 써서 집중하니까. 하지만 그만큼 소비도 빠르다. 왜 경기 중에 웃지 않냐, 무뚝뚝해 보인다고 하는데, 경기할 때는 긴장되니까 그렇다. 웃을 여유도 없고, 홀을 마치면 다음 홀을 생각하느라 바쁘다. 경기 초반에는 긴장을 풀기 위해 캐디 오빠와 얘기하고 떠들지만, 어느 순간 말 한마디도 안 하게 된다.”

스스로 ‘승부욕이 없다’고 했지만, 들어보니 그렇지도 않다. 올해 태국으로 전지훈련을 갔는데, 주변에서 말릴 정도로 연습을 많이 했다. “어쨌든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으니까. 프로님도 약간 사명감이 생긴것 같았다. 귀국해서도 ‘좀 쉬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올 시즌도 자신 있게 시작했다. 연습 많이 했으니까 한 만큼 결과가 나올 것이다. 올해 비를 많이 맞아서 체력이 많이 떨어졌고, 회복하는 데 오래 걸렸다. 그래도 성적을 떠나 작년보다 마음에 든다. 필드에서 구사할 수 있는 샷이 다양해졌다.”

준우승으로 쓴맛도 봤고, 내적 성장도 했다. 우승도 당연히 해내야 할 일이지만, 어쩌면 우승보다 더 중요한 건 스스로를 아끼며 투어 생활을 건강하게, 오래 하는 것 아닐까.

“언제부턴가 내가 우승에 너무 목말라 있더라. 그러니까 우승을 놓치면 좌절하고 실망도 컸다. 그래서 이제 그런 마음을 좀 내려놓자고 마인드컨트롤하고 있다. 못 하면 못 한 거지, 죽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선수 생활을 그만둘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상금 순위 안에 들어서 시드 유지만 해도 된다고 최면을 걸고 있다.”

골프 선수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우승은 하늘이 정해주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다고 애걸복걸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착하게 살고 있다. 그래야 뭐가 오지 않을까?” 하고 웃던 최예림은 “대회를 너무 삭막하게, 스트레스받으면서 하고 싶지 않다. 여유를 갖고 ‘우승 못 하면 어때?’ 하며 즐겁게 하려고 한다. 우승을 해본 선수처럼. 그러면 언젠가 내게도 우승이 찾아오겠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 양희영 프로가 있다면, KLPGA투어에는 최예림이 있다. 부드러운 스윙, 부드러운 사람. 나는 그 수식어가 좋다. 팬분들이 나를 그렇게 기억해주실 수 있는 만큼 올라가겠다.” 

 

최예림_나이 만 24세 / 프로 입회 2017년 / 소속팀 SK네트웍스 / 성적 준우승 5회

사진_김시형(49비주얼스튜디오) / 헤어&메이크업_칼라빈 by 서일주
헤어 & 메이크업_칼라빈 by 서일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잡지사명 : (주)스포티비골프다이제스트    제호명 : 스포티비골프다이제스트
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2, 6층 ㈜스포티비골프다이제스트    사업자등록번호: 516-86-00829    대표전화 : 02-6096-2999
잡지등록번호 : 마포 라 00528    등록일 : 2007-12-22    발행일 : 전월 25일     발행인 : 홍원의    편집인 : 전민선   개인정보보호책임자 : 전민선    청소년보호책임자 : 전민선
Copyright © 2024 스포티비골프다이제스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ms@golfdigest.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