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의 골프 연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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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의 골프 연습장
  • 인혜정 기자
  • 승인 2019.02.1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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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공화국 시절의 경복궁 테니스장(국가기록원)

일제강점기, 경복궁의 경회루 뒤쪽에 3000여 평의 골프 연습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뿐만 아니라 야구장, 테니스장, 육상 트랙까지 갖춰 스포츠 파크를 연상케 한다.

서울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경복궁은 조선왕조 제일의 법궁(임금이 사는 궁궐)이었다. 지금은 많은 관광객이 찾는 서울의 관광 명소 중 하나다. 필자가 한국 골프 도입기를 연구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고서, 오래된 신문과 잡지를 살펴보다가 우연히 <매일신보> 1941년 2월 26일 자에서 ‘농장으로 변하는 경회루 뒤 골프장’이라는 기사를 발견했다. 다음은 기사 내용이다.

경복궁 경회루 골프 연습장 신문 기사(<매일신보> 1941년 2월 26일)

이 기사를 통해 경복궁의 경회루 뒤쪽에 조선총독부 소속의 고등관들이 사용하던 골프 연습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 왕실을 대표하는 법궁으로 근엄함을 자랑하던 이곳에 ‘과연 어떻게 골프 연습장을 만들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에 경복궁에 대해 다시 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경복궁은 대한제국이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1911년 그 소유권이 조선총독부로 넘어갔다. 1915년, 경복궁에서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하면서 많은 전각이 훼손됐다. 그 후 1916년부터 1926년까지 경복궁의 남북 주추를 가로막아 조선총독부 청사를 세우며 궁궐을 가려 조선 왕실의 흔적을 없애버리려 했다. 그러나 이 건물은 해방 이후 중앙청 건물로 형태를 유지하며 1990년대 중반까지 남아 있었다. 일본은 이에 그치지 않고 1926년과 1929년, 경복궁에서 ‘조선박람회’를 개최하며 경복궁은 또 한번 수난을 겪었다.

조선총독부가 건립되기 전까지 남아 있던 경복궁 건물은 396동 5505간이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356동 4648간이 철거되고 궁 밖으로 이전해 광복 이후에는 40동 857간만 남았다. 경복궁의 거의 모든 건물이 사라지고 대표 건물 몇 채만 남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당시 조선박람회에서 접대용으로 사용하던 ‘조선관’도 군자리골프장으로 이전, 설치돼 클럽하우스가 되었다.

1 경복궁 골프장 중단(<조선일보> 1963년 10월 24일), 2 테니스장과 야구장이 있는 경복궁 배치도(국가기록원), 3 경복궁 골프장(<조선일보> 1963년 10월 22일)

필자는 경복궁을 방문해 일제강점기 시기별 경복궁 지도를 살펴보면서 경회루 뒤쪽에 있었다는 골프 연습장의 위치를 찾아봤다. 고지도를 살펴본 결과 골프 연습장은 경회루 남쪽인 수정전 지역과 북쪽인 지금의 태원전 복원 권역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3000평 정도의 규모였다면 후자인 북쪽 지역이었을 가망성이 높다.

그뿐만 아니라 국립중앙박물관(1997)의 ‘구 조선총독부 건물 실측 및 철거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조선총독부를 경복궁에 건립한 뒤 1927년에는 총독부 청사 구내에 정원 공사를 했다. 총독부 청사 동쪽에는 야구장, 뒤쪽에는 테니스장, 400m 직선 트랙도 만들었다. 테니스장은 제5공화국 시절까지 남아 있었다. 3번 사진은 야구장과 테니스장이 표시된 당시 경복궁 배치도이다. 4번 사진은 제5공화국 때까지 남아 있던 궐내 테니스장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을 종합해보면 경복궁에는 골프 연습장, 야구장, 테니스장, 육상 트랙이 만들어져 왕실 법궁의 모습을 지우고 스포츠 파크와 같은 모습으로 변모시키려는 조선총독부의 숨은 의도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복궁을 훼손한 것은 일제강점기뿐만이 아니다. 후대에도 우리 손으로 경복궁을 훼손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조선일보> 1963년 10월 22일 자에 따르면 경복궁 경회루 동쪽 7000평의 잔디밭에 골프장을 만들려고 했지만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취소했다.

지금도 경복궁의 예전 모습을 찾기 위해 궐내 여러 곳에서 복원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걸리는 만큼 지금부터라도 우리의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려는 범국민적 노력이 사회 곳곳에서 필요하다.

조상우 : 호서대 스포츠과학부 골프 전공 교수이며, 한국 골프사 연구와 함께 골프 골동품을 수집하고 있다. 슈페리어에서 운영하는 세계골프역사박물관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글_조상우 / 정리_ 인혜정 골프다이제스트 기자(ihj@golfdig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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