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인터뷰] Breaking Rule ‘예측불가’ 공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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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인터뷰] Breaking Rule ‘예측불가’ 공태현
  • 한이정 기자
  • 승인 2024.03.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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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오타니 쇼헤이, 혹은 존 람이 됐을지도 모를 1994년생 공태현은 이제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익숙하다. 어릴 적 펼쳤던 상상의 나래 덕분일까. 미디어를 종횡무진 누비는 그가 꿈꾸는 제2의 인생도 예사롭지 않다. 

 

아직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왜일까. 서른도 안 된 나이에 공태현은 단호하게 투어 생활을 그만뒀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골프 단체전 은메달, 송암배 우승 등 그가 선수로서 쌓은 업적을 뒤로한 채. 

공태현이 선택한 ‘인생 2막’도 독특하다. 선수 생활은 접었지만 골프는 놓지 않았다. 대신 대회장이 아닌 미디어 앞에 섰다. 각종 플랫폼에서 골프 레슨이 홍수처럼 나오는 이 시기에 공태현은 그동안 숨겨온 끼를 마음껏 발산하며 자신을 드러냈다. 화려한 말솜씨에 시종일관 밝은 표정, 확고한 레슨 철학으로 공태현은 유튜브, 예능 등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한때 야구 선수를 꿈꿨지만 ‘어쩌다 보니’ 골프계 유망주가 됐다. 골프 선수로서 탄탄대로를 밟나 했더니 과감하게 새로운 길에 뛰어들었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다지만, 이렇게 급변할 수 있을까. 공태현의 진로 변경을 두고 누군가는 도피 혹은 무모한 도전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는 누구보다 골프에 그리고 인생에 ‘진심’이다.

 

●○● 미디어 프로의 삶은 어떤가. 최근 인기가 좋은데 실감하나.
바쁘다. 집돌이라 밖에 잘 안 나가 유명세는 모르겠지만, SNS에 댓글 달리는 속도가 다르다(웃음). 오늘도 1시간 밖에 못 잤다. 바쁜 걸 목표로 미디어 프로에 뛰어들었으니 괜찮다.

●○● 미디어 프로 생활을 결심했을 때는 어땠나.
미디어 프로를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콘텐츠도 정말 많이 뽑아낼 수 있고 골프로 재미있게 풀어나갈 아이템이 너무 많은데, 그동안 선수라는 틀 안에 갇혀 있어서 다양하게 표출하지 못했다.

●○● 성공을 확신할 수 있었던 근거가 있을까.
어릴 적 내 꿈은 광고 영상 큐레이터였다. UCC 콘테스트 같은 것에도 관심이 많아서 영상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어릴 적 야구를 그만뒀을 때도 영상 디자인 쪽으로 진로를 정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가?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 하는 감이 온다. 또 ‘내가 하고 싶은 거 하자, 그러면 사람들이 재미있게 봐줄 거다’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통했다.

●○● 운동부가 UCC라니 정말 특이하다. 성격도 활발하고 톡톡 튀었을 것 같다.
못 믿겠지만 내 성격은 원래 진지하다. 말수도 많지 않은데 방송을 하다 보니 늘었다. 성격은 매사에 긍정적이다. 또 어릴 때부터 좋게 좋게 생각하는 게 습관이 됐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오늘 비가 너무 많이 온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이맘때 비가 온다는 건 곧 봄이 온다는 것이니 앞으로 따뜻해지겠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사람들이 내게 ‘바빠서 힘들겠다’고 하지만, 난 ‘이만큼 바쁘다는 건 내게 기회가 더 많다는 것이다’라고 여긴다. 

●○● 뚜렷한 꿈이 있었는데 운동선수를 한 걸 보면 운동 재능이 더 컸나 보다.
아버지가 태권도 공인 7단에 경찰 공무원 생활을 하셨다. 운동을 하시던 분이라 내가 운동에 재능이 있는 걸 알아보신 것 같다. 아버지는 ‘축구는 좀 어려울 것 같고 손으로 하는 구기 종목을 시키면 진짜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하셨단다. 그래서 야구부가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 가 야구를 시작했다. 

●○● 운동인 아버지의 밑에서 운동하기 힘들었겠다.
재능과 흥미는 다른 것 같다. 선수로서 끈기 있게 할 때는 했고, 재밌던 순간도 정말 많았지만 내가 자의적으로 흥미를 느낀 게 아니라 마냥 즐기지는 못했다. 또 아버지가 태권도로 국가대표 상비군까지밖에 못 하셨다. 그래서 내가 선수의 꿈을 대신 이뤄드려야 한다는 부담을 갖기도 했다.

아버지를 따라 체력 훈련도 많이 했다. 10년 동안 비가 오지 않는 이상 매일 새벽부터 운동장에서 체력 훈련을 했다. 400m 트랙을 뛰고 점프하고. 타이어만 안 맸지 모래사장에서 뛰기도 했다. 아버지는 늘 기초 체력이 좋아야 한다고 했다. 그때 당시 골프 선수들은 체력 운동을 잘 안 했는데 나는 정말 많이 했다. 이때 한 운동이 지금 비거리에 도움이 됐나 싶기도 하다.

 

●○● 부상 때문에 야구를 관두고 골프를 시작했다.
그래도 야구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배웠다. 지금도 야구를 좋아한다. 관둘 때 정말 속상했다. 하지만 골프는 타의 90%로 배웠다. 내가 골프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 집안에서도 골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억지로 시작한 골프로 선수 생활까지 한 것도 대단하다.
골프를 처음 배울 때도 재미만 추구했다. 공이 맞아 나갈 때 손맛이 너무 짜릿했다. 또 성격상 대충대충 하지 못 한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 그래도 골프가 개인 스포츠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더라.

●○● 골프를 시작하고 약 4년 만에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독했다. 골프 선수가 원하는 곳에 공을 보내지 못하면 안 되지 않나. 단순하게 공을 원하는 곳에 보낼 때까지 연습했다. 10분 만에 될 때도 있고 몇 시간 동안을 해도 안 될 때도 있다. 그럼 친구에게 물어봤다. 친구와 안 되는 이유를 얘기하다 보면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그걸 해보고 ‘괜찮네?’ 하면 그걸로 밀고 나갔다. 그 덕분에 생각하는 힘도 생겼고, 그때부터 나만의 골프를 할 수 있었다.

●○● 10대 공태현의 ‘나만의 골프’라니, 궁금하다.
골프의 좋은 점은 창의적인 부분이 허용되는 것이다. 다른 스포츠는 특이하게 하면 롱런할 수 없지만, 골프에는 표현의 자유가 있다. 한 폭의 추상화 같다. 정석대로 하지 않아도 된다. 어쨌든 목적지에만 빨리 가면 되는 스포츠다. 덕분에 내 방식대로 해서 누구보다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 그렇게 힘들게 했는데 선수 생활을 접기에 아쉽지 않았나. 복귀 생각도 했을 법하다.
전혀. 주변에서도 아쉽다고 한다. 특히 내가 선수로서 성공하길 바랐던 아버지는 오죽하셨겠나. 하지만 어릴 때부터 그렇게 노력했는데, 몸이 받쳐주지 못하더라. 아픈 데도 늘어나니 덜컥 겁이 났다. 혹시나 크게 다쳐서 선수 생활을 못 하면 그땐 뭘 해야 할까. 어영부영 관둬서 레슨을 하면 괜히 이도 저도 아닌 들러리로 도태될 것 같았다. 

 

●○● 아버지 반대를 꺾는 게 힘들었겠다.
아버지를 설득해야겠다고 결단했을 때 아버지께 ‘내가 무엇 때문에 선수로서 성공하기를 바라시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선수라면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게 맞지 않겠냐고 하셨다. “아버지, 그 길은 사는 게 즐겁지 않아요. 아들 인생이 즐겁길 바라세요, 아니면 어려운 길을 가길 바라세요. 선수를 그만둬도 제 삶이 행복해진다면 아버지도 후회 없지 않으실까요.” 아버지는 별다른 얘기 없이 고향으로 내려가셨고 나는 곧바로 미디어 프로로 전향했다.

●○● 고민 끝에 한 전향. 꿈꾸던 삶이던가.
어두운 터널에서 환한 세상으로 나온 기분이었다.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감사하게도 불러주는 곳도 많았고 해야 할 게 명확하게 보였다. 내가 가야 할 길이 쫙 보이는 기분이었다. 선수 때보다 훨씬 적성에 맞는다고 느낀다.

●○● 하지만 아버지는 속상하셨을 텐데.
아버지와 얘기하고 2년 정도 있다가 고향에 갔다. 아버지 반응이 궁금했다.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안고 아버지를 뵀는데 ‘잘하고 있더라’ 하셨다. 거기서 오는 희열감. 캬, 정말 사람을 미치게 했다. 이것 때문에 사는구나. 내가 선택한 길이 맞는구나. 전혀 후회가 없었다. 확신에 차서 선택한 길이라도 물음표로 바뀔 수 있는데, 아버지가 마침표를 찍어준 것 같았다. 정말 뿌듯했다.

●○● 투어 생활을 그만두고 오히려 비거리가 더 늘어난 것 같더라.
오히려 투어 생활을 그만하고 샷이 더 안정적이다. 그만큼 레슨을 하면서 나도 깨닫는 게 있고, 내 스윙 매커니즘이 더 체계적으로 잡힌 덕분이지 않을까. 나도 더 성장 중이다. 미디어 프로라도 대충이라는 게 없다. 정말 열심히 산다. 예전보다 방법이나 방향성이 다를 뿐 삶의 노력이나 목표는 지금도 뚜렷하다.

●○● 이제 바라는 삶을 살게 된 건가.
아니다. 가야 할 길이 더 멀다. 골프를 모르는 사람도 알아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운동선수였지만 사람들에게 재밌는 사람. 강호동 씨처럼! 지금은 연기 공부도 한다. 나중에는 음악이 될 수도 있고 앞으로 예능이나 다큐, 여행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골프는 생각보다 다양한 장르로 퍼져나갈 수 있다. 골프를 매개체로 엔터테이너가 되고 싶다.

 

●○● 엔터테이너 외에도 꿈이 있을까.
선수 육성!

●○● 엔터테이너와 선수 육성은 전혀 다른 길 아닌가?
맞다. 나는 레슨에 정말 진심이다. 현재도 주니어 선수 7~8명 정도를 가르치는데, 나는 그 선수들에게 정말 진심이다. 진심으로 가르치고 있고 다들 잘 됐으면 좋겠다.

●○● 선수 육성을 하고 싶은 이유가 있나.
이번 겨울에 훈련 캠프를 다녀왔다. 한 주니어 선수에게 SNS로 메시지를 받았다. 아버지와 함께 보낸 것 같았다. 일면식도 없는 내게 메시지를 보낼 정도로 골프에 의지가 있구나 싶은 생각에 그 학생과 아버지의 비용을 내가 다 부담하고 함께했다. 알려주고 싶었다. 비용을 덜 들이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는걸. 와서 레슨을 한번 받고 꿈을 키워봐라! 나도 어릴 때 지원을 받아본 적이 많지 않다. 그래서 사소한 도움이 정말 크다는 걸 안다. 앞으로 선수들을 도우면서 육성하고 싶다. 그러려면 내 위치도 올려야 하고, 돈도 많이 벌어야 한다.

●○●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정말 많다. 제1의 목표는 무엇일까.
지금은 먼 미래보다 당장 눈앞에 있는 단기적인 목표를 많이 보려고 한다. 현재는 콘텐츠 개발이 우선이다. 유튜브 채널도 더 키우고 싶다. 올해는 어떤 프로그램을 해볼까, 어떤 레슨을 할까 이미 구체적인 목표는 정해놨다.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골프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
골프에 진심인 사람! 스포츠 자체를 정말 다방면으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 나는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만큼 골프를 재미있게 하고, 골프를 사랑하니까 그 즐거운 기운이 나오는 것 같다.

●○● 한때는 공태현을 힘들게 했던 골프, 지금은?
삶의 동반자다. 골프는 정말 어렵다. 도를 닦아야 한다. 내가 아직 아이를 키워보진 않았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들어보면 골프는 아이 같다. 어떤 때는 말을 잘 듣기도 하고 어떤 때는 너무 말을 안 듣고 때로 내 예상을 벗어나지만, 예상이 맞으면 너무 기분 좋고 희로애락이 있다. 예상할 수 없는 스포츠다. 그래서 매력이 있다.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반자다.

 

사진_이종수(49비주얼스튜디오) / 헤어&메이크업_칼라빈 by 서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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