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거미가 내려앉은 뒤, 그곳 ① 이븐데일골프앤리조트 ‘다이 코스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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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가 내려앉은 뒤, 그곳 ① 이븐데일골프앤리조트 ‘다이 코스의 재발견’
  • 서민교 기자
  • 승인 2023.07.1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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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 뜨거운 햇빛을 재운 뒤 은은하게 비치는 불빛 조명은 고요함 속 잠든 감각을 깨운다. 어둠이 선사한 여유로움은 야간 골프의 묘미이자 낭만이다. 

첫 야간 골프를 했던 기억은 생생하다. 청명하고 습습했던 공기는 당장이라도 숨을 들이쉬고 싶은 기분이 들게 하고, 개구리와 풀벌레 울음소리는 귓가에 맴도는 듯 고스란히 남아 있다. 페어웨이를 걷다 나타난 그린 너머 보름달은 영화 속 CG를 입힌 것처럼 영롱해 조명의 필요성을 잃게 만들었다. 타구음은 확성기를 틀어놓은 듯 선명했고, 동반자와 나누던 얘기는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탑재한 것만 같았다. 그날의 순간들이 오히려 ‘머리를 올린 날’보다 더 또렷하다.

이때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야간 골프의 매력을 지배하는 것은 밤이라는 시적 공간이 주는 무드다. 대자연에 스며든 고요하고 푸근한 분위기는 이내 인간을 느긋하고 여유롭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골퍼에게 이만한 즐거움이 또 있을까. 여름밤, 나이트 ‘무드’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이 곳은 특별한 매력이 있다.

◇ 사필귀정: 다이 코스의 재발견

이븐데일골프클럽을 방문하기 전 혼란스러웠다. 두 가지 선입견 때문이다. 이븐데일은 세계적 골프 코스 디자인 회사인 다이 디자인 그룹에서 설계했고, 거장 피트 다이의 직계인 신시아 다이 맥거리의 작품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신시아는 피트 다이의 설계 철학을 물려받은 여성 코스 설계가다. 게다가 이곳은 충청북도 청주의 역사 깊은 초정약수터에 자리 잡은 데다 해발 400m 고지에 위치해 공기가 맑고 경치가 좋기로 정평이 나 있다. 높은 고지에 자리잡은 코스 장점은 기후 환경이다. 한여름 밤이라면 더없이 시원한 야간 라운드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이븐데일은 모든 홀을 가장 밝은 LED 조명으로 설치해 코스 안에 있으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처럼 색다른 라운드를 만끽할 수 있다. 

코스 이름에서도 청정 자연의 풍치가 느껴진다. 차분함과 평온함의 ‘이븐(Even)’과 골짜기를 뜻하는 ‘데일(Dale)’의 합성어로, ‘숲이 우거진 평온한 골짜기’라는 의미다. 이곳은 산 중턱을 가로질러 지형의 특성을 잘 살린, 난도 있는 코스일 것이 분명했다. 다만 불안감도 있었다. 이븐데일은 몇 해 전만 해도 양잔디를 식재하고도 페어웨이 잔디와 그린 상태가 좋지 않아 악명 높았던 골프장이다. 이븐데일은 2010년 18홀 규모 회원제 코스로 오픈해 2016년 대중제로 전환했다. 대중제 코스로 전환한 뒤 3부 운영을 했다. 그 탓에 코스 컨디션이 악화됐을 게 뻔하다는 선입견에 기대치도 낮았다.

회원제 출생답게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품격을 갖춘 클럽하우스를 거쳐 이븐 코스 1번홀에 들어서면서 깨달았다. 선입견은 편견에 불과하다는 걸. 순간 ‘3부 운영을 하고 있는 곳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잘 정돈된 티잉 에어리어와 균일하고 짧은 예고에 두 번 놀랐고, 페어웨이 잔디도 짧게 관리되어 있어 볼 구름에 문제가 없었다. 디봇 자국도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그린 상태도 기우였다. 그린 스피드는 빠른 편이 아니었으나 고르고 단단해 볼 구름은 더 빠르고 라인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코스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이재근 테크노그린 기술이사의 설명에 답이 있었다. “코스 레이아웃은 다이 디자인 그룹이 설계를 맡았기 때문에 국내 코스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좋다. 문제는 코스 설계에 부족한 내용물이었다. 신시아 다이가 처음 코스를 설계할 때는 연간 이용객 수를 4만~5만 명 정도 예상했을 텐데, 3부 운영을 하면서 11만~12만 명을 받다 보니 코스 컨디션이 나빠지고 악순환을 거듭했다. 잡초로 분류되는 포아풀도 많아졌다. 

우선적으로 잔디를 최대한 짧게 깎았다. 그동안 선입견을 갖고 있던 골퍼들에게 코스에 대한 기분 좋은 이미지, 좋은 첫인상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했다.” 지난해 이븐데일에 불려온 이 기술이사는 코스 상태를 파악한 뒤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계획을 세우고 관리에 들어갔다. 데이터 관리 시스템이다. “잔디를 강하게 키울 수 있는 체력을 길러주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지상부 관리가 아닌 지하부 관리가 더 중요하다. 핵심은 토양이다. 여기 와서 토양 관리 기본 패턴을 전부 바꿨다. 토양을 분석하고, 데이터 관리를 하고 있다. 지하부의 기초 체력을 키워주면 지상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우리도 1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받듯 물과 토양을 채취해 미국 분석 기관에 보내 데이터 결과 수치에 따라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렇게 축적된 데이터값을 토대로 계획을 세우고, 관리를 지속하는 패턴을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코스 관리에 있어 여전히 아쉬운 점은 있다. 잔디 생육에 치명적인 휴식 시간의 부족이다. 야간 골프에 사용되는 강렬한 LED 라이트 빛은 생육을 방해하는 요소다. 이 기술이사는 “잔디가 잠을 잘 시간이 없기 때문에 매주 월요일은 3부 휴장을 하면서 3부가 마감되면 최대한 빨리 라이트를 끄고 잔디가 휴식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이 패밀리의 설계 철학은 이븐데일에 녹아 있다. 그동안 감춰졌던 코스 레이아웃이 녹색 잔디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신시아는 피트 다이의 설계 철학에서 엇나가지 않는다. 여성 코스 설계가라서 여성 친화적일 것이라는 편견도 버려야 한다. 여성 특유의 예술적 아름다움 정도가 엿보인다고 하는 편이 옳다. 그는 까다롭고 난도 높은 토너먼트 코스 설계를 지향한다. 페어웨이는 물결로 요동치고, 좌우로 끊임없이 흐른다. 평평한 라이에서 샷을 할 기회는 매우 적다는 의미다. 그린 언듈레이션도 결코 무난하지 않은데, 그린 콤플렉스도 상당해 그린을 벗어나면 난감한 상황에 처한다. 홀별로 개성이 강하면서도 도전적이고 전략적이어서 샷 옵션이 다양하다. 도전을 즐기는 자는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코스다. 야간 골프로 신시아 코스를 누릴 기회를 갖는 것조차 행운이다. 

이븐데일은 골퍼를 위해 마련한 소소한 이벤트도 이채롭다. 데일 코스 파5 5번홀 티잉 에어리어에서 내리막 경사를 따라 오른쪽 세컨드 샷 지점에 자리한 핑크 하트 벙커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연인이나 여성 골퍼를 위한 이벤트 포토 존으로 그만이다. 하지만 핑크 하트에 반해 이곳을 향해 티 샷을 하면 페널티 구역의 위험과 함께 세컨드 샷이 까다로우니 눈으로만 감상하자. 선착순 두 팀에게 제공하는 6인승 프리미엄 리무진 카트에서 즐기는 스파클링 와인은 무더위를 날릴 수 있는 최상의 서비스다.  

[사진=윤석우, 김시형(49비주얼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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