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는 캐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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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캐디들
  • 고형승 기자
  • 승인 2020.05.2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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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게 라운드를 나갔다. 18홀을 끝내고 그 기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짓궂은 동반 플레이어 때문도 아니고 세 자리를 기록한 참혹한 스코어 때문도 아니었다. 5시간 내내 쓰린 속을 더 후벼 파는 캐디의 언행 때문이었다. 

그동안 ‘진상 골퍼’에 관해 다룬 적은 많았지만 반대로 ‘최악의 캐디’에 관해 다뤄본 적은 없었다. 골프장에서 캐디는 상대적인 약자로 분류되므로 매너와 에티켓은 아마추어 골퍼에게만 일방적으로 강요된 것은 아니었을까. 

제아무리 ‘케바케(케이스 바이 케이스의 준말)’라고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캐디를 만나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라운드 중간이라도 바꾸고 싶은 캐디가 분명 존재하며 그들로부터 정신적 피해(?)를 입은 골퍼가 생각보다 많았다.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캐디라면 차라리 낫겠어요. 베테랑처럼 보이는 캐디가 선을 훅훅 넘을 때는 정말 난감합니다. 그건 결코 노련한 게 아니라 무례한 거예요. 그런데 그걸 정작 자신은 모르더라고요.”

마음의 상처를 심하게 입은 골퍼들에게 사례를 수집하고 유형별로 분류해봤다. 만약 골프장에서 이런 유형의 캐디를 만나게 되면 “최근 골프다이제스트에서 다룬 최악의 캐디를 아직 읽어보지 않으셨군요. 꼭 읽어보세요”라고 조언해주길 바란다.

거만한 여왕형

마치 영국 여왕이 기사 작위를 내릴 때처럼 도도하게 건네는 유형의 캐디. 손님은 두 손으로 공손히 받으며 항상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데 한 손으로 휙 건네는 캐디가 있다. 심지어 거리에 맞춰 알아서 치라는 듯 클럽 두 개를 한꺼번에 품에 안겨주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황송할 데가. 

체조 선수형

필드에 체조 선수 손연재가 나타난 줄 알았다. 클럽을 곤봉 다루듯 자유자재로 돌리며 뛰어다닌다. 그 옛날 쥐불놀이하듯 뱅글뱅글 돌리는 모습이 향수를 자극할 때도 있다. 그러다가 카트 도로에서 떨어뜨리기라도 하는 날엔 그 캐디는 조용히 옷을 벗고 골프장을 나와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월급으로 해결이 안 될 고가의 클럽일지도 모르니.

맥아더 장군형

역광에 비친 그의 모습은 아주 늠름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이었다. 손님의 클럽을 마치 전장의 지휘봉처럼 사용하는 모습은 그럴싸해 보였다. 클럽을 교체해주고 넘겨받은 다른 클럽으로 공략 지점을 가리키며 “저기 보이는 벙커를 넘기셔야 해요”라고 말한다. 그건 캐디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 중 하나다. 

코스 해설가형

플레이어는 볼이 잘못 맞아서 속상한데 굳이 “뽕 샷(하늘로 높게 솟구쳐 오른 볼)”을 외치며 신경을 긁는다. 또 볼이 그린에 올라가지 않자 “왜 다들 안 올리시나요?”라고 비아냥거린다. 티 샷 하기도 전에 “여기 가장 어려운 홀 중 하나예요”라고 말해 슬라이스 샷을 유도한다. 스포티비골프&헬스 채널(5월 1일 새롭게 론칭한 국내 골프 전문 채널)의 해설가로 모셔야 할 판이다. 

설화 속 망부석형

‘귀차니즘’의 결정판이 바로 이 유형의 캐디다. 정말 돈 쉽게 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클럽을 달라고 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으며 볼 날아가는 방향은 열심히 보지만 절대 볼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볼이 언덕이나 러프로 가도 건성으로 찾다가 “이상하네. 분명히 이쪽으로 날아왔는데”라는 말만 반복한다. 심지어 플레이어가 자주 쓰지 않는 클럽은 커버를 벗기지도 않는다. 

입 짧은 어린이형

그늘집에서 열심히 음료수를 골라 캐디에게 줬는데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신 걸 잘 못 마셔서”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그래서 어쩌라고. 지금 바꿔오라는 뜻이야? 손님이 정식으로 컴플레인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베스트 교습가형

프로 지망생도 아니면서 “거기서 손목을 쓰면 안 돼요”, “머리를 너무 빨리 들어요”, “더 힘껏 휘둘러보세요”라고 훈수란 훈수는 다 두는 캐디는 부담스럽다. 또 자신이 전문 피터도 아니면서 “힘에 비해 너무 약한 샤프트를 쓰시네요”라고 말하는 캐디도 있다. 캐디도 초보 시절이 있듯 플레이어도 초보 시절이 있다는 걸 제발 잊지 말자고.

기숙사 사감형

단호한 것과 불통은 전혀 다른 문제다. 손님이 원하는데 굳이 엄격하게 룰을 적용하려는 캐디가 있다. 매섭게 째려보며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는 캐디에게 반항할 골퍼가 어디 있겠는가. 뒤에 카트가 지나가려고 하니까 바쁜 캐디를 도와 잠깐 빼주려고 한 것뿐인데 규정상 손님은 운전할 수 없다면서 진노할 때는 등골이 오싹해진다.

초면 가족형

다른 동반 플레이어는 가만히 있는데 캐디가 나서서 멀리건을 준단다. 그것도 아주 선심 쓰듯이. 또 손님은 허락하지 않았는데 클럽을 들고 뒤에서 연습 스윙을 하는 캐디도 있다. 콧노래를 부르면서 말이다. 선을 넘어도 과하게 넘었다.

골프장 마셜형

티오프 시간도 안 됐는데 앞 조가 그린에 올라갔다고 보채는 캐디. 동반 플레이어는 화장실에서 채 옷도 추스르지 못하고 헐레벌떡 뛰어와야 했다. 막상 파3홀에 가보면 앞에 세 팀이 대기 중이다. 그렇게 빨리 가라며 채찍을 휘둘러대더니 정작 자신은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면서 먼저 치고 있으란다. 그냥 그늘집에 두고 가고 싶은 심정이다.

FBI 요원형

우리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골프장에 간 것인데 이런저런 질문 세례가 끊이질 않는다. 계속 받아주다가는 주민등록번호까지 물어볼 것 같다. 프라이빗하고 즐거운 라운드를 기대하고 갔다가 온종일 캐디에게 신상을 털리다가 온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저 캐디 앞에서는 바람도 함부로 못 피우겠군. 어쩌면 그 캐디는 배우자가 심어놓은 스파이일지도 모르니 늘 조심하자. 

[고형승 골프다이제스트 기자 tom@golfdig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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