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브랜드와 마니아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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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브랜드와 마니아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 서민교 기자
  • 승인 2020.09.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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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정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랑은 사람 사이의 감정으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동물과 식물, 심지어 무생물에도 사랑의 감정은 존재한다. 사랑은 흘러야만 더 큰 사랑이 된다고 한다. 사랑이 집착이 되고 변질되는 이유, 소유욕이다. 사랑이 ‘나의 것’이 되는 순간 욕심이 생기고 ‘죽은 사랑’이 된다. 웬 사랑 타령이냐고? 골프 브랜드와 마니아도 어쩌면 애증 관계이기 때문이다. 

팬데믹 시대에 ‘언택트’ 마케팅이 활발하다. 골프 브랜드는 비대면 서비스를 위해 이른바 ‘랜선’ 스킨십으로 소비자를 공략하고 있다. 각종 골프 대회와 브랜드 행사 등이 축소 혹은 취소되면서 홍보 마케팅의 수단이 막히자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를 통해 소비자에게 다가가고 있다. 하지만 골프업계에서 언택트 마케팅은 한계점이 있다. 클럽 브랜드가 대표적이다. 골프용품 소비자는 까다롭다. 구매하기까지 매우 신중한 과정을 거친다. 직접 보고 사용하고 느끼고 듣고 판단한다. 답답한 건 소비자도 마찬가지다. 브랜드 시타 행사가 줄면서 구매하고 싶은 상품을 판단할 수 있는 기회의 창구가 사라졌다. 

이럴 때 등장하는 솔루션이 ‘~하더라’라고 하는 입소문이다. 소비자는 귀를 열고 듣는 데 열중한다. 회사 동료나 친구, 동호회 등 자신보다 전문 지식을 갖고 있거나 구매 경험이 있는 지인을 통해 묻고 듣고 고민한다. 골프업계에서는 이런 기회를 제공하는 창구가 바로 클럽 동호회 커뮤니티다. 특정 브랜드의 마니아가 모여 있는 이곳에서 활발한 소통이 이뤄진다. 장비에 열정 있는 골퍼는 제각기 자신이 선호하는 브랜드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깊고 다양한 정보를 누구보다 빠르게 얻고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도 이런 커뮤니티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브랜드에서 직접 관리하며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소비자의 욕구를 반영하기 위한 창구로 활용한다. 긍정적인 효과는 분명하다. 단, 순수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일 때라는 가정이 붙는다. 브랜드와 마니아의 관계가 틀어지는 경우도 많다. 커뮤니티를 개인 혹은 집단의 이익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면서다. 일부 브랜드와 커뮤니티는 아예 ‘손절’을 선언하기도 한다. 사랑이 집착이 되고 결국 변질되면서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깨져버리는 것이다.  

◆ 좋거나

2005년의 일이다. A 브랜드의 홍보 마케팅 부서가 없을 때다. 당시 A 브랜드 신입 사원이었던 담당자는 고객들이 편안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취지로 포털 사이트에 동호회 카페를 개설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회사에서는 고객과 너무 가까우면 블랙 컨슈머로 돌아올 수 있다며 반대하기도 했다. 당시 A 브랜드의 국내 입지는 10위권 밖으로 좋지 않았다. 당시 메이저 브랜드도 동호회를 운영하고 활성화되던 시기다. A 브랜드 동호회 회원들은 한국에서 쓰지 않는 해외 클럽을 쓴다는 자부심으로 뭉쳤다. 동료애를 키우며 정보를 공유했다. 매니저 역할을 맡은 담당자는 홍보 업무의 일환이라고 생각하고 하루에도 30번 이상 카페에 들어가 소비자의 반응을 살폈다. 다른 동호회에서 해당 브랜드를 쓰고 있는 소비자에게는 초대장을 보내 카페 회원을 늘렸다. 이 담당자는 밤낮으로 회원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요구를 반영하고 잘못된 정보는 바로잡았다. 

그렇게 15년간 꼬박 열정을 쏟았더니 1000명 정도로 시작한 카페는 회원 1만5000명을 훌쩍 넘겼다. 회원들도 동호회 그 이상의 목적을 두지 않았다. 쌍방향 소통을 통해 브랜드의 정보를 빠르게 알고 커뮤니티 공간 안에서 마니아의 직위를 누렸다. 이들은 결국 ‘빅 마우스’로 돌아와 A 브랜드가 최근 국내 업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성과를 거두는 데 일조했다. “지금은 동호회 분들을 최고의 VIP 고객으로 모시고 있다. 힘들 때 우리 브랜드의 곁을 지켜주신 전도사들이다. 개인 이익을 노리는 진상 고객을 거르고 ‘찐’ 고객만 남아 있다. 이곳에서 정보 공유가 워낙 활발하게 이뤄져 카페 자체가 우리 브랜드의 백과사전으로 통한다. 카페 매니저를 오래 맡다 보니 다른 브랜드 이적 제안이 있어도 배신하는 기분이 들어 옮길 수가 없다.” 커뮤니티의 적극적인 운영자로 나선 이 담당자의 자부심이 곧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창구로 활용된 바른 사례다. 

젊은 마니아층이 두꺼운 B 브랜드의 활성화된 커뮤니티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비슷하다. 소비자의 니즈를 적절히 반영하면서 부당한 요구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선을 긋는다. 신제품에 대한 정보 공유와 사전 구매 혜택, 다양한 이벤트를 통한 기념품이나 사은품으로 감사의 뜻을 표시하는 선이다. 

B 브랜드의 동호회를 10년간 운영하고 있는 한 매니저의 인터뷰는 커뮤니티가 걸어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다. “브랜드와 관계를 맺는 목적이 아니라 제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골프를 즐기기 위해 만든 동호회다. 카페를 운영하면서 브랜드에 무언가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보기도 한다. 그 순간 끝이다. 이 공간에서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같은 제품을 쓰는 사람들이 만나서 소통하고, 기업에서는 그런 소비자를 위해 마케팅 전략이 아닌 인간적으로 세심하게 신경 써주는 것만으로 감동을 받는다. 브랜드와 마니아가 탄탄한 관계를 유지하는 길이 아닐까.”  

◆ 나쁘거나

최근 국내 최대 온라인 골프 동호회 C 밴드 운영자가 제주도에서 경찰에 입건된 사례가 있었다. 2017년 11월에 개설한 이 밴드는 3년도 채 되지 않아 1만7000명이 넘는 회원을 확보하며 급성장했다. 그러자 거래하는 골프장에서 받은 ‘콤프(COMP)’라는 그린피 무료 이용권을 현금화하는 방법으로 억대의 부당 이득을 챙겨 무등록 여행업으로 문제가 됐다. 골프장과 동호회 운영자가 부킹을 매개로 잘못된 유착 관계를 맺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골프업계에서 특정 브랜드와 동호회가 등을 돌리는 사례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잘못된 관계로 발전하는 과정은 대동소이하다. 특정 브랜드의 동호회가 활성화되면 운영자의 입김이 세지고 브랜드에 광고와 협찬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자칭 ‘마니아’라는 옷을 입고 개인의 이익을 노리는 수법이다. 순수한 마니아의 탈을 벗어던지고 소비자가 왕이라는 권력의 횡포를 부리는 것이다. 자신의 동호회에 다른 브랜드 홍보 글을 올리려면 억대의 협찬을 해야 한다거나 동호회와 손을 잡고 브랜드를 사업화하자는 무리한 제안을 하기도 한다. 일이 틀어지면 악성 리뷰로 브랜드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식이다. 일부 진상 회원은 VIP 고객이라는 명목으로 회사에 찾아가 임원실에 무작정 들이닥치기도 하고, 자신에게 불친절했다는 이유로 회사의 인사에 개입하려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특정 브랜드 동호회를 운영하다가 개인 이익을 얻지 못하면 다른 브랜드 제품을 사 모아 또 다른 동호회를 개설한 뒤 수장 노릇을 하기도 한다. 마니아의 비뚤어진 행태다. 

부당한 요구에 시달리는 브랜드는 커뮤니티의 필요성을 인지하면서도 인연을 끊을 수밖에 없다. 브랜드는 다른 방법을 모색한다. 커뮤니티가 아닌 1 대 1 VIP 고객 관리로 나서 개개인의 애프터서비스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혹은 자체 브랜드 멤버십 시스템의 체계적인 활성화를 통해 고객을 위한 서비스를 하며 결속력을 다진다. D 브랜드 고위 관계자는 “개인 이익을 뽑아내기 위해 지속적으로 부당한 요구를 하는 운영자로 인해 커뮤니티와 아예 관계를 끊을 수밖에 없어 안타까웠다”며 “지금은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돼 폐쇄적인 마케팅을 할 수밖에 없다”고 탄식했다. 

브랜드와 마니아의 관계도 사랑하는 연인과 같다. 주는 사랑이나 받는 사랑이 집착이나 소유로 변질되지 않을 때 좋은 관계를 누릴 수 있는 법이다. 

[서민교 골프다이제스트 기자 min@golfdig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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