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르히오 [People :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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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르히오 [People : 1707]
  • 김기찬
  • 승인 2017.07.12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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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르히오 [People : 1707]


서른일곱에 만난 인생과 골프의 변화.

세르히오 가르시아를 생각할 때 ‘진화’라는 말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별로 없지만, 올해의 마스터스 챔피언은 바로 그런 골퍼였다. 정규 라운드에서 접전을 펼친 끝에 서든데스에서 저스틴 로즈를 물리친 그는 이번 대회에서 입증된 캐릭터와 실제로 구사한 샷(그의 인생에서 최고로 손꼽힐 만한) 중에 어느 쪽이 더 자랑스럽냐는 질문을 받았다. “당연히 캐릭터다.” 가르시아는 주저 없이 단언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서야 전자가 후자를 유발할 수 있다는 걸 이해했고 그가 입고 있는 그린 재킷이 확실한 증거였다.

그리고 골프 시즌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지금까지 의문은 남아 있다. 오거스타는 탁월한 선수 인생에서 동떨어진 달콤한 추억이자 최고의 성취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그를 역사적인 선수로 만들 만큼 더 깊고 근본적인 의미가 있는 것일까?

만약 전자라면 가르시아는 놀라운 재능을 타고났으면서도 오류투성이 메이저 대회에 대한 조롱을 더 부추길 뿐인 흥미롭고 드문 부류에 편입될 것이다. 그렇게 난타를 당한 선수로는 톰 와이스코프가 있는데, 그가 트룬에서 막강한 실력을 발휘했던 1973년 대회는 다섯 번의 2위를 포함한 열한 번의 톱5와 잔인하게 비교되곤 했다. 현재 가르시아도 메이저 대회에서 네 번의 2위를 포함한 열두 번의 톱5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후자라면 가르시아는 처음으로 2위를 기록했던 1999년 PGA챔피언십에서 가위처럼 발 차기를 하면서 메디나의 16번홀 페어웨이를 뛰어오르기 전부터 이미 명백했던 운명을 실현하게 될 것이다. 스포츠 심리학자인 밥 로텔라는 이렇게 말했다. “세르히오가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플레이에만 집중하는 법을 터득하고 그게 한 주로 끝나지 않는다면, 그는 많은 대회에서 우승을 거둘 것이다.” 그런가 하면 데이비드 레드베터는 홀쭉한 열다섯 살짜리의 샷에서 나는 소리가 자신의 관심을 사로잡았던 때를 기억했다. “지금은 그가 메이저 대회에서 두세 번은 더 우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대에 활동한 선수들 가운데 서른일곱 살 이후에 첫 승을 하고도 여러 개의 메이저 타이틀을 차지한 선수는 단 두 명뿐이다. 앙헬 카브레라가 2승 가운데 첫 승을 그 나이에 거뒀고, 마크 오마라는 마흔한 살이던 1998년에 두 번 우승했다. 메이저 대회에서 아홉 번 우승한 벤 호건은 서른네 살 때 첫 타이틀을 차지했다. 5승을 기록 중인 필 미컬슨이 돌파구를 찾은 건 서른세 살 때였다. 3승의 비제이 싱과 닉 프라이스 그리고 파드리그 해링턴은 모두 서른다섯 살에 첫 승을 거뒀다.

그렇기는 하지만 20년 이상 프로 대회에 출전하는 걸 제외하면 거의 모든 면에서 가르시아는 젊은 서른일곱 살이다. 부상도 없고 수준 높은 테니스(친한 사이인 라파엘 나달과의 친선 경기를 포함해서)와 축구(그가 회장인 3부리그의 CF보리올 팀의 연습에 가끔 합류하기도 한다)를 즐길 만큼 건강하다.

“건강을 유지한다면 앞으로 10년은 상위권에서 플레이할 수 있을 걸로 생각한다.” 그는 말했다. 마스터스에서 보여준 한결 성숙해진 모습에도 불구하고 가르시아는 덩치 큰 어린아이의 면모를 간직하고 있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포메라니안 강아지인 베어를 키우며 친구들에게 장난도 잘 친다. 그의 약혼녀인 앤절라 에이킨스의 표현처럼 ‘괴짜’ 노릇을 즐긴다.

“그는 소년 같은 기질을 지니고 있다.” 루크 도널드는 라이더컵에서 가르시아와 여러 번 파트너로 출격했다. 지금까지 가르시아의 라이더컵 전적은 18승 5무 9패인데 통산 1위와는 단 4포인트 차이다. “그는 늘 열두 살짜리가 할 만한 농담을 한다.” 도널드는 말했다. “라이더컵에서는 새벽 6시에 침대 위에서 펄쩍펄쩍 뛰면서 ‘라이더컵이다! 라이더컵!’이라고 외친다. 하지만 그런 점이 사람들이 그에게 끌리는 매력이기도 하다.” 유럽 팀의 단장을 여러 번 맡았던 처비 챈들러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세르히오에게는 뭔가 특별한 점이 있다. 이를테면 늘 열아홉 살에 머무르게 해주는 장난스러운 에너지 같은 것이다.”

하지만 열아홉 살 때 가르시아는 카누스티에서 열린 1999년 디오픈 첫 라운드에서 89타를 기록한 후 엄마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렸다. 같은 해에 웬트워스에서 열린 월드매치플레이에서는 화를 못 이겨 신발을 내던졌고 에이전트가 집어오자 발로 차버렸다. 2007년 도럴의 그린에서 가르시아가 컵에 침을 뱉었을 때는 숙적인 타이거 우즈에 대한 신 포도 발언으로 이미지가 망가진 상태였다. 스페인 언론은 이따금 엘니뇨라는 그의 별명을 ‘무이니뇨’라고 바꿔 쓰곤 했는데, 대충 번역하자면 ‘대단히 유치한 꼬마’라는 뜻이다.

“신동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모든 게 그냥 주어졌고 그런 상황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도널드는 2010년에 함께 했던 저녁 식사 자리에서 가르시아가 골프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던 걸 기억했다.

“그리고 상황이 자기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면 오히려 스스로 자신의 앞길을 막았다. 그는 피해 의식이 강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가끔은 조금 유아적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재능 때문에 더 늦게 철이 든 셈이다.”

이런 식의 얘기는 가르시아의 탁월한 재능을 모호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 클럽 프로였던 아버지 빅터르에게서 세 살 때 골프를 배운 세르히오는 열다섯 살 때 유러피언 아마추어 최연소 우승자가 됐다. 그리고 2년이 채 지나기 전에 프로 대회인 카탈로니언오픈에서 우승했다. 완벽한 샷을 연이어 구사하는 면에서는 오히려 가르시아가 우즈를 능가하는 신동이었다.

“우리는 1990년에 처음 만났다.” 곤살로 페르난데스-카스타뇨의 말이다. “스페인에서 열린 10세 이하의 나인 홀 대회였다. 그가 수영복 차림으로 플레이하러 나왔던 게 기억난다. 그리고 아홉 타 차로 그가 이겼던 것 같다. 그는 그때 이미 다른 차원의 플레이를 펼쳤다. 볼 스트라이킹에서는 그가 단연 최고다.”

유러피언투어에서 2승을 거둔 호세 마누엘 라라(Jose Manuel Lara)는 열다섯 살이던 가르시아가 세베 바예스테로스, 호세 마리아 올라사발 그리고 미겔 앙헬 히메네스와 함께 플레이한 한 행사를 언급했다. “그가 이미 다른 세 명보다 볼을 더 잘 맞힌다는 건 아주 명백했다.” 라라는 말했다. “그들도 그걸 알았고 세르히오도 마찬가지였다.”

재능은 계속 이어졌다. “세르히오의 다운스윙은 내가 본 그 어떤 선수보다 벤 호건과 비슷하다.” 한때 그를 지도했던 피트 카우언은 말했다. “어깨를 이용해서 볼에 압력을 가해 때리는 방식에는 ‘컴프레션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모든 게 담겨 있다.”

테일러메이드에서 투어를 담당하는 키스 스바바로(Keith Sbarbaro)는 “가르시아의 모든 샷이 무척이나 뛰어나고 아주 자연스러우며 내가 일을 해본 가운데 장비를 피팅하기가 가장 수월한 선수였다”고 말했다. “매년 드라이버와 우드, 아이언, 심지어 퍼터와 볼까지 새로 나온 제품을 스페인으로 보내는데 그러면 그는 모든 제품을 거의 즉시 사용한다.”

더스틴 존슨과 제이슨 데이, 로리 매킬로이 그리고 존 람(우즈는 말할 것도 없고)을 포함한 여러 선수 중에서도 스바바로는 “볼을 정확하게 강타하는 데는 가르시아가 최고”라고 말했다. “늘 클럽 정중앙에 맞힌다. 여기 연습장에 있는 누구라도, 특히 젊은 선수들은 그와 처음 플레이를 함께 했을 때의 소감이 똑같다. ‘그보다 더 정확하게 맞힐 수는 없다.’” 벤 크렌쇼는 올해 마스터스를 한 주 앞두고 가르시아와 그의 아버지를 오스틴골프클럽에 초대했는데, 그때 가르시아가 그린 재킷을 입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고 한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지금껏 본 최고의 볼 스트라이킹이었다.” 플레이의 평가나 관찰력에서 크렌쇼를 능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샷이 이어질수록 타격과 궤도, 컨트롤, 정확성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완벽한 골프에 가까웠다.”

가르시아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것이야말로 이번 마스터스를 통렬하고 만족스럽게 만든 요인이었다. 많은 동료 선수가 우승을 차지한 가르시아를 꼭 끌어안았다. 매킬로이와 대니 윌릿은 가르시아의 마지막 퍼팅을 보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고 털어놓았다. 가르시아와 같은 동료일 뿐 가까운 사이는 아니라는 쇠렌 키엘센(Søren Kjeldsen)은 이렇게 말했다. “감정의 동요가 느껴져서 나도 놀랐다. 하지만 골프를 하는 사람은 그 여정이 얼마나 길어질 수 있는지 알고 있다. 그런데 세르히오는 그 길 위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정말로 자격이 충분했다.”



향후의 메이저 대회 성적은?

이제 가르시아는 달라진 모습을 보일까? 이미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만한 PGA투어 10승과 유러피언투어 13승에 승수를 더 보탠다면 그건 명백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의 평가 기준은(그가 73전 무승에 이르도록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한 최고의 선수 자리를 지켰을 때처럼) 앞으로도 네 번의 그랜드슬램 대회가 될 것이다.

그가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을 때조차 가르시아의 수준에 부합하는 건 메이저 대회였다. 그가 가장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는 클럽은 드라이버이며 길이와 정확성의 결합 덕분에 타수 획득 부문에서 선두권을 벗어나는 일이 없다. “세르히오는 드라이버 샷이 대단히 곧은 선수만이 가능한 플레이를 보여준다. 샤프트 각도를 어드레스 때와 똑같이 되돌리는 것이다.” 스바바로는 말했다. “대부분의 투어 프로들은 그 판보다 살짝 높다. 필이 절대로 드라이버 샷을 곧게 날리지 못한 이유도 이것이다. 그런데 세르히오는 낮게 유지하면서 볼의 윗부분을 맞힐 수 있는 재능과 힘을 지녔다.”

가르시아는 10년 넘게 퍼팅이 최대의 약점이었지만, 파의 가치가 더 높아지는 메이저 대회에서는 그나마 그로 인한 타격이 가장 덜할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의 세르히오는 내가 본 최고의 퍼팅 실력자였다.” 페르난데스-카스타뇨는 말했다. “그런데 열일곱 살이 되더니 어느 인터뷰에선가 가장 약한 클럽이 퍼터라고 말한 걸 봤다. 자신이 그런 말을 하면서 오히려 퍼팅 실력이 저하되고 자신감을 잃어버린 것 같다. 가끔은 볼을 홀에 바짝 붙이면서도 그에 따른 보상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부정적인 결과를 얻는 경우도 있다.”

2010년에 가르시아의 쇼트 게임을 지도했던 카우언은 그가 그린과 그 주변에서 ‘조금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한 5년 전에 그에게 집게 그립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그는 ‘절대 그렇게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게 자신의 생각이라고 스스로 믿을 수 있게 되니까 혼자서 그립을 바꿨다. 그는 고집이 세지만 오른손을 덜 움직이는 건 분명하다.”

올해 혼다클래식에서 스바바로는 가르시아에게 데이와 존슨, 람 등이 사용해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맬릿 퍼터로 바꿔볼 것을 제안했다. 가르시아는 거부했지만 몇 주 뒤에 마음이 변했고, 오거스타 이전에 마지막으로 참가한 대회이자 3라운드에서 람에게 패했던 WGC-매치플레이에서 그걸 사용했다. 마스터스에서 그의 퍼팅은 화려하진 않았지만 짧은 거리에서 효과적으로 퍼팅을 성공시켰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오거스타의 그린과 상황을 고려했을 때 마스터스는 나쁜 단계에서 중간을 거쳐 괜찮은 퍼팅으로 이어진 3년 동안의 변화에서 큰 도약대가 됐다.

마음의 변화

이 모든 강점에도 불구하고 메이저 대회의 우승과 가르시아가 묘하게 어울리지 않았던 이유는 그의 태도 때문이었다. “신은 누구에게도 모든 걸 주시지 않는다”는 리 트레비노의 명언은 여전히 유효했다. 세르히오에게 부족한 부분은 마음인 것처럼 보였다. 우즈의 오랜 독주의 프로펠러를 향해 무모하게 돌진한 것도 실망의 원인이 되었지만, 그건 야심을 지녔던 그 세대의 모든 선수에게 공통된 심정이었다. “타이거가 오랫동안 모든 선수의 능력을 훨씬 능가했던 탓에 내 어린 시절의 꿈이 짓이겨진 셈이었다.” 하지만 능력과 기질과 기대를 고려했을 때 가르시아만큼 그걸 뼈아프게 느낀 선수는 없었다. “그게 내 발목을 조금 잡았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는 말했다. “타이거는 그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그가 없었더라면 내가 우승을 더 많이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볼 수는 있지만, 아마 아널드와 게리 그리고 톰 왓슨도 잭 니클라우스에 대해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즈가 무대에서 내려갔으니 문제 대부분이 자신의 탓이라는 사실을 가르시아가 깨닫는 것이 더 가능해진 건지도 모른다. 투어에 합류한 초반에 가르시아와 숙소를 함께 쓰곤 했던 카밀로 비예가스는 좌절의 시기를 겪는 친구에게 이렇게 일깨워주었다고 한다. “넌 실력이 뛰어나. 재능이 있다고. 그러니까 이런저런 상황을 대하는 태도를 개선하고 거기서 벗어나.” 비예가스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세르히오가 내가 지적하는 것을 다 인정하고 ‘그래, 그런 건 다 집어치워. 사람들의 생각이나 언론에서 하는 말에 개의치 않고 지금에 감사하면서 행복하게 살 거야.’ 이렇게 말한 후로 그는 진전을 보이기 시작했다.”

마스터스의 일요일 밤을 떠올리던 가르시아는 퍼팅의 성공으로 우승이 확정된 후 1995년의 크렌쇼처럼 잠시 웅크린 채로 눈을 감고 앉아 있었던 몇 초 동안 그의 뇌리를 스친 생각 중 한 가지를 털어놓았다. “여기 오거스타에 와서 별로 즐겁지 않았던 순간도 있었는데, 맞설 수  없는 것과 싸우려고 노력했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나 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가족의 영향

이렇게 중요한 깨달음의 기폭제 역할을 한 사람은 앤절라 에이킨스(31)였다. 두 사람은 에이킨스가 골프채널에서 일했던 2015년 가을에 만났다. 고등학교 때는 농구 선수로 활약했고 TCU와 고향인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 대학에 골프 장학생으로 진학했던 그녀는 경쟁의 부담감을 잘 알았고, 오거스타의 72번째 홀에서 우승을 확정 지을 수 있는 3m 버디 퍼팅을 실패한 가르시아와 아래로 손을 마주쳤던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늘 그를 격려하고 응원했다.

“그녀는 너무 속상하다거나 운이 따르지 않았다고 말하는 대신, ‘괜찮아, 할 수 있어, 지금처럼만 계속해, 성공할 거야’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렇게 긍정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가르시아는 말했다.

앤절라에게 그런 기질을 물려준 사람은 1970년대 초 텍사스 대학에서 대표 쿼터백으로 활약하다가 지금은 변호사로 활동하는 아버지 마티 에이킨스였다. 마티는 최고가 되기 위해서 노력이 필요하다는 흔들림 없는 믿음이 있었고 수다스럽기까지 해서 대학 시절에는 ‘조스’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는 예비 사위에게 미국 스포츠 윤리에 대한 패러디로 볼 수 있는 얘기를 꾸준히 들려줬다.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패배를 운명과 이런저런 불운의 탓으로 돌려서 악명을 떨쳤던 가르시아에게는 그것이 치료제가 됐다.

“앤절라를 비롯한 우리 애들에게 내가 하는 말은 만약 스스로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최고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뛰어나다고 믿고 스스로 최고라고 믿는다면 최고가 되리라는 것이다.” 마티는 말했다.

“나도 우리 아버지(전설적인 텍사스 고등학교 감독이었던 레이 에이킨스, NFL의 쿼터백인 드루 브리스의 할아버지)에게서 배웠다. 세르히오에게도 똑같은 걸 가르쳐주려고 노력했다. 하루도 그에게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지 않는 날이 없다. 그리고 그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골퍼라고 말한다. 아무도 그를 이길 수 없다고. 그가 최고 중의 최고라고. 그를 볼 때마다 그와 얘기할 때마다 계속해서 그렇게 말해준다.”

그래도 앤절라가 가르시아를 부모에게 소개하려고 처음 집에 데려왔던 2016년 3월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내 딸이 내게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아빠, 평소처럼 행동하시면 안 돼요. 그는 아직 아버지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어요. 평생 우리에게 해준 그런 얘기를 그에게 하면 안 돼요. 그러면 겁을 먹고 도망칠지도 몰라요.’ 그래서 두 달 정도 기다렸다.”

가르시아는 마티에게 매료되고 존경하게 되었으며 1500에이커에 달하는 에이킨스의 농장에서 양궁을 배우기도 했다.

“마티는 멋진 사람이다. 나는 그의 방식을 내 식으로 받아들였다. 멘탈과 관련해서 나는 늘 혼자 해결했다. 스포츠 심리학자에게 도움을 구한 적은 없지만 아무 문제도 없었다. 하지만 이따금 아쉬움이 남는 한두 가지 상황이 있었고 가족과 친구들은 내 고집스러운 머리가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가끔은 평소보다 더 차분하고 바람직한 마음이 되는데 이 게임의 좋고 나쁜 점을 이제 다 알기 때문이다.”

그는 2012년 마스터스 3라운드에서 75타를 기록한 후 절망감에 이렇게 말했던 걸 기억했다. “나는 실력이 충분히 뛰어나지 않다. 나는 지녀야 하는 걸 지니지 못했다.”

앤절라를 만나면서 가르시아는 기존의 혼잣말을 에이킨스 스타일의 낙관주의와 선적인 수긍의 결합으로 조정했는데, 두 가지 모두 긍정적인 면을 강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의 이런 변화는 오크몬트에서 열렸던 지난해 US오픈에서 드러났다. 다섯 홀을 남겨두고 선두와 격차를 한 타까지 좁혔다가 세 번의 보기를 범하는 바람에 공동 5위로 내려앉았는데도 가르시아는 놀랍도록 낙관적이었다.

“당연히 긴장했지만 플레이를 진심으로 즐겼다.” 그는 말했다. “상당히 잘 대처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조금 못 미친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이번 대회에 만족한다.”

헤이즐틴에서 열렸던 라이더컵의 일요일 싱글에서 만난 가르시아와 미컬슨은 열아홉 개의 버디가 쏟아진 놀라운 매치를 펼쳤다. 마지막 홀에서 미컬슨은 7.5m 버디 퍼팅에 성공했고 3m 퍼팅에 성공하면 우승을 차지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가르시아는 잠시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평소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태도로 그는 그 절체절명의 퍼팅에 성공했다.

“이런 묘미 때문에 플레이를 한다.” 가르시아는 말했다. “이런 순간이 정말 좋다.” 스페인의 집에서 중계를 지켜봤던 라라는 그 퍼팅이 컵에 떨어졌을 때 가르시아가 이전과는 다른 골퍼가 됐음을 알았다고 말했다. “2년 전이었으면 그 퍼팅에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라라는 말했다. “아주 중대한 순간이었다.”

4개월 후, 가르시아는 두바이에서 볼 스트라이킹 클리닉을 개최했고 마지막 그룹에서 헨리크 스텐손이 압박을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순조롭게 우승을 차지했다. 가르시아의 뭔가가 달라졌다. 그는 갑자기 강해졌고 허약한 멘탈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마스터스 마지막 날에는 이런 것이 모두 작용했다. 비록 처음에는 감정에 겨웠지만 그는 겸손하게 우승을 받아들였다.

가르시아가 새로 채택한 방법이었다. 얼마 전에 우즈가 테일러메이드와 계약을 맺었을 때는 비난 일색이었던 과거의 태도를 벗어나 트위터에 환영의 글을 올렸다. 마스터스가 끝나자 우즈도 축하의 트윗으로 화답했다.

며칠 뒤, 해링턴은 한 인터뷰에서 해링턴이 2007년 디오픈과 2008년 PGA챔피언십에서 가르시아를 아슬아슬하게 따돌렸을 때 그가 ‘옹졸한 패자’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말하면서 둘 사이의 냉랭한 관계를 언급했다. 하지만 4월 말에 매킬로이의 결혼식장에서 가르시아를 만난 해링턴은 상승세를 탄 것에 대해 치하하며 어색할 수도 있었던 상황을 ‘대단히 순순하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하려는 것 같았다.” 가르시아는 말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식으로 대꾸했다. ‘괜찮아요. 상관없어요. 전혀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아요. 나는 당신을 존중하고 당신도 나를 존중하고 우리 사이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는 좋은 사람이다. 내 생각에는 나도 좋은 사람 같다. 그러니까 우리는 잘 지낼 수 있다.” 나중에 매킬로이는 가르시아가 해링턴 옆에 서서 입을 삐죽이는 사진을 공개했다.

가르시아는 미국의 골프 팬들과도 데뷔 이래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다. 그는 플레이어스챔피언십 17번홀에서 홀인원을 했는데 라운드가 끝나자 사인을 받으려는 사람들(대부분 젊은 팬들)이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플레이어스가 야유를 하거나 부적절한 말을 외치는 팬들을 현장에서 쫓아내는 엄격한 정책을 도입하게 된 데는 2015년에 리키 파울러와 플레이오프에 나섰던 가르시아를 타깃으로 삼았던 팬들의 부적절한 행동도 작용했다는 점에서 이는 주목할 만한 장면이었다.

그 이면에는 2013년 대회 3라운드 도중 가르시아와 우즈가 벌인 언쟁이 있었는데 언론에서는 그걸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때 우즈는 우승을 차지했다. 가르시아는 이런저런 말이 귀에 들어오는 와중에 마지막 라운드 17번과 18번홀에서 볼을 물에 빠트렸다. 그 후로 엄격해진 관람객 정책을 비공식적으로는 ‘세르히오 룰’이라고 부르는 상황에서 갤러리의 달라진 반응은 많은 것을 시사했다.

이제 이렇게 차분한 내면을 갖게 되었으니 가르시아는 마스터스의 기세를 이어갈 조건이 무르익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올해 남은 로열버크데일 그리고 퀘일할로에서 또 한 번(심지어 두 번)의 타이틀을 거머쥐며 오마라의 과업을 재현할지도 모른다. “또다시 그런 상황을 맞아 오거스타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데 도움을 준 요인이 다시 한번 내게 우승을 안겨줄 수 있을지 확인하고 싶다.” 그는 말했다. “삶이라는 게 배우는 과정이라는 걸 지금은 알게 됐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최대한 많이 배우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가르시아는 인격적으로도 그리고 골퍼로서도 진화 하는 중이다.

글_제이미 디아즈(Jaime Di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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