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골프 천재의 귀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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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골프 천재의 귀환’ [인터뷰]
  • 한이정 기자
  • 승인 2023.01.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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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인 줄 알았지만 한때 아마추어 대회 트로피를 쓸어 담았던 유망주. 잊힌 천재가 기어코 왕좌에 올랐다.

“내가 다시 왔다.”

김영수는 2022시즌을 이 한마디로 정의했다. “귀환이라는 말은 저한테 너무 거창하고 완벽한 시즌? 이건 좀 뻔한 것 같아요. 골프만 따진다면 선수로서 이제야 깨어난 느낌이에요.”

지난 가을이 오기 전만 해도 김영수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선수 개인사까지 속속 꿰고 있는 소위 ‘업계 사람들’도 김영수에 대해서는 갸우뚱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김영수는 2022시즌에 존재감을 제대로 알렸다. 돌아온 골프 천재, 잊힌 천재, 무명의 반란 등 다양한 수식어도 뒤따랐다. 데뷔 11년 만에 제네시스챔피언십에서 첫 승을 차지한 김영수는 한 달 뒤 시즌 최종전 LG SIGNATURE 플레이어스챔피언십에서도 정상에 오르며 대상과 상금왕 동시 석권까지 해냈다.

그에게도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던 시절이 있었다. 2007년 국가대표 상비군 시절 송암배와 익성배, 허정구배 등 대한골프협회(KGA) 주관 아마추어 대회에서 모두 우승한 화려한 경력을 가졌다. 그렇게 촉망받는 유망주였는데 그동안 어디서 무얼 했을까, 10년이 넘도록 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걸까, 과거와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 행복해진 지금까지 곰곰이 돌아본 김영수는 “골프를 향한 열정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 열정

내 인생을 표현할 수 있는 키워드를 뽑아보자는 제안에 김영수는 큰 고민 없이 ‘열정’을 외쳤다. “하고 싶다는 마음, 노력하겠다는 마음으로는 그 힘든 순간을 다 이겨내기 어려웠을 거예요. 어떤 순간이 와도 다 이겨내겠다는 마음은 인생에서 치울 수 없는 것 같아요.”

뻔한 키워드지만 진심이 묻어난다.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골프 선수가 되겠다는 마음 하나뿐이었다.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프로에 데뷔했는데 허리 디스크에 시달렸다. 침대에서 내려올 수도, 양말을 혼자 신을 수도 없는 고통이었다.

“무너진 모습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어요. 끝이 어떻게 날지는 모르지만 끝까지 해보자. 그만둘까도 여러 번 생각했는데 사실 뭘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내가 잘하는 것도 골프고, 할 줄 아는 것도 골프밖에 없으니까. 끝까지 하다 보면 좋은 모습으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어요. 일단 골프가 너무 좋았어요.”

골프를 처음 시작했을 때도 열정 하나로 무작정 뛰어들었다. 한·일 월드컵으로 달아오른 열기가 막 가신 2002년 가을, 중학교 1학년이던 김영수는 운동선수가 너무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 반대에 어쩔 수 없이 학업을 이어갔다. 그러다 우연히 골프가 눈에 들어왔다.

“공부하는 것보다 직접 몸 쓰는 걸 좋아해서 운동선수가 하고 싶었어요. 그때만 해도 골프는 부모님이 하시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운동이 너무 하고 싶으니까 ‘그럼 골프라도 시켜달라’고 했어요. 부모님이 그날 기분 좋은 일이 있었는지 그러라고 하시더라고요. 골프 선수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뭐 그런 거는 전혀 몰랐어요. 그냥 운동이 하고 싶었어요.”

어렵사리 운동 배우는 걸 허락받은 김영수는 학교에 학원까지 다니며 저녁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1~2시간 레슨을 받았다. 3개월 정도 골프를 배웠을까. 2학년에 올라가면서 골프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 갔다. 그때부터 그토록 바라던 ‘운동선수의 길’에 들어섰다.

경쟁 선수들이 어느 정도 주니어로 자리를 잡아갈 때에야 김영수는 골프채를 잡았다. 구력으로 따지면 적어도 5년 이상 차이가 나는 셈이다. 하지만 김영수는 골프를 배운 지 3년 차에 국가대표 상비군이 됐고, 4년 차에 아마추어 대회를 휩쓸었으며 5년 차에 국가대표가 됐다.

“재능이 있었냐고요? 사실 반반이었어요. 성적이 나오니까 재능은 있구나 싶었죠. 다른 선수들보다 성적은 잘 나오니까. 근데 저는 다른 선수에 비해 부족하다고 참 많이 느꼈어요. 기술도 한참 모자라고. 지금 생각하면 부족한 실력으로 코스에서 잘 풀어갔으니 재능이 있었네 싶지만 그때는 부족하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열정도 과하면 탈이 난다. 어린 김영수가 그러지 않았을까. 잘하고 싶어서 연습도 열심히 했는데 너무 열심히 한 게 화근이었다. “변명일 수 있는데 당시에 연습을 정말 많이 했어요. 다른 건 생각도 안 했어요. 운동도 안 하고. 골프가 한쪽만 쓰는 운동이잖아요. 그러면 안 쓰는 쪽도 운동을 해줘야 하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습만 했으니까요.”

“연습을 많이 해도 관리를 잘했다면 안 아팠을 거예요. 일단 제가 관리를 못한 거예요. 그렇게 연습을 했으니까 아마추어 때 빨리 성장할 수 있던 것 같아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죽어라 연습만 하니 남들보다 빨리 올라올 수밖에 없죠. 근데 그게 화를 불렀어요. 아마추어 때는 괜찮았지만 그게 누적되면서 탈이 난 거죠.” 

 

“골프는 어제 잘됐는데 오늘 안되고, 오늘 잘되던 게 내일 안되는 스포츠잖아요. 불과 1, 2분 전까지 분명 잘되던 게 안되고. 방금 알 것 같았는데 눈 깜빡하면 모를 것 같은 게 매력 있어요.”
“골프는 어제 잘됐는데 오늘 안되고, 오늘 잘되던 게 내일 안되는 스포츠잖아요. 불과 1, 2분 전까지 분명 잘되던 게 안되고. 방금 알 것 같았는데 눈 깜빡하면 모를 것 같은 게 매력 있어요.”

 

●○● 끈기

그렇게 진심이었던 골프를 못 할지 모른다는 위기에 김영수는 아픈 몸을 일으켰다. 재활도 꾸준히 했고, 조심스럽게 운동도 다시 시작했다. 진심은 통하는 것일까. 주변에서 도와준 사람도 많다. 지금보다 더 힘들 수 없다는 마음으로 자원입대한 곳에서 만난 후임이자 캐디인 김재민은 이제 어디든 함께하는 동반자다. 김재민은 미국 유학 시절 취미로만 골프를 배우다 군대에서 김영수를 만나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했고, 2년 전 KPGA 프로 테스트도 통과했다.

김재민에게 김영수가 스승이라면, 김영수에게 김재민은 ‘은인’이다. “재활하면 스트레칭을 해야 해요. 허리가 아픈데 무슨 스트레칭을 하겠어요.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했는데. 나는 못 한다고 했어요. 그때 재민이가 그러더라고요. ‘형, 내가 1~2년은 매일 스트레칭시켜 줄게.’ 반년 동안 정말 꾸준하게 도와줬어요. 둘이 있으니까 혼자 하는 것보다 훨씬 낫더라고요. 꾸준히 하다 보니 제가 필요성을 스스로 느낀 거예요. 덕분에 지난 6년 동안 운동은 못해도 스트레칭은 하루도 안 한 적이 없어요. 어딜 가도 무조건 해요. 그게 몸이 좋아진 가장 큰 이유 같아요.”

그렇게 다시 일어날 수 있었고, 다시 골프채도 잡았다. 꾸준하게 재활하고, 운동하고 연습하며 스스로를 다졌다.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안주하지도 않았다. 아픈 몸을 이끌고 앞만 보고 달렸다. 마음을 다하니 결과도 나왔다. 코리안투어에 복귀한 2019년부터 꾸준히 성적이 올랐다. 상금 순위 62위였던 김영수는 2020년에 27위, 2021년에는 18위를 기록했다. 페어웨이 안착률, 그린 적중률 등 기술 지표도 해가 갈수록 좋아졌다.

“누군가는 제가 시즌 마지막 3개 대회에서만 잘해서 타이틀을 땄다고 생각하실 거예요. 큰 대회였고, 짧게 보면 그럴 수 있죠. 하지만 운 좋게 반짝한 것은 아니에요. 지금까지 하나하나 준비하고 노력해왔던 게 계단식으로 성장해서 이룬 거라고 생각해요. 잠깐 반짝한다고 상금왕과 대상을 다 가져갈 수는 없지 않나요?”

 

●○● 도전

인터뷰로 어릴 때부터 쭉 돌아본 김영수는 “도전이었다”는 말을 자주 했다. 골프를 처음 시작한 것도 김영수 인생에서는 도전이었고, 골프 선수를 다시 해보겠다고 침대를 박차고 나온 것도 도전이었다. 첫 번째 터닝 포인트(2018년 KPGA 챌린지투어 상금왕) 역시 도전한 덕분에 일궈낸 결과다.

“그때 제가 원아시아투어 시드가 있었어요. 그 투어와 챌린지투어를 병행했는데 챌린지투어 대회 수가 적다 보니까 코리안투어에 가려면 몇 개 대회 출전해서는 안 되겠더라고요. 제가 추위를 많이 타서 시드전에 가는 건 너무 싫었어요. ‘해외 대회는 포기하고 챌린지투어만 1년 동안 열심히 해서 시드전만은 피하자’ 어떻게 보면 도전이고 모험이었어요. 해외에서 열리는 큰 대회를 안 나가고 챌린지투어에만 집중한 거니까. 근데 운이 좋게도 제가 계획한 대로 됐고, 상금왕까지 하면서 코리안투어에 돌아올 수 있었죠.”

앞으로 김영수에게 새로운 도전이 펼쳐질 예정이다. 김영수는 지난해 우승과 대상을 차지하면서 코리안투어 5년 시드는 물론 PGA투어 제네시스인비테이셔널과 PGA투어와 DP월드투어가 공동 주관하는 제네시스스코티시오픈, DP월드투어 1년 시드를 얻었다. 어릴 적 막연히 PGA투어에서 뛰고 싶다, 해외 투어에 도전하고 싶다는 꿈을 비로소 이룰 기회를 얻었다.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 골프 선수로서 편하게 좋은 대우를 받으며 할 수 있겠죠. DP월드투어에 가면 어쨌든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한 번이라도 이겨내보고 싶어요.” 김영수는 이르면 1월, 늦어도 2월에 시즌을 다시 맞이한다. 2월 아시안투어 인터내셔널시리즈 출전도 앞두고 있고,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을 위해 미국도 다녀와야 한다. “사실상 한 달 안에 시즌을 다시 시작하는 거다. 시즌 후에 시상식도 다니고 일이 많아져서 여기저기 다니느라 바쁘지만 운동은 안 빠지고 하려 한다”고 전했다. 지금도 샷 연습을 위해 매일같이 연습장에 가고, 웨이트트레이닝도 빼놓지 않는다.

 

●○● 골프가 좋다

“쉽게 얻지 않았어요.” 골프를 시작하기도 어려웠고 재기하기도 힘들었다. 2승과 대상, 상금왕도 쉽지 않았다. 시즌 최종전만 하더라도 우승에 타이틀 경쟁이 마지막 날까지 피 말렸다. 그래도 좋다. 골프를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골프는 어제 잘됐는데 오늘 안되고, 오늘 잘되던 게 내일 안되는 스포츠잖아요. 또 섬세하게 들어가면 불과 1, 2분 전까지 분명 잘되던 게 안되고. 방금 알 것 같았는데 눈 깜빡하면 모를 것 같은 게 매력 있어요. 또 상황이 다 다르잖아요. 자연에서 하는 거니까. 심판도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내가 스스로 해결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게 되게 좋아요.”

힘든 시간을 떠올리면 투어를 뛰고 있는 지금이 감사하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혼자 평온하게, 때로는 경쟁자에게 박수를 보내며 경기할 정도로 침착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힘들고 안됐던 시간을 다 보내고 나니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그때 내가 왜 자신 있게 하지 못했을까’ 또 후회하기는 싫어요. 나중에 골프를 그만두고 인생을 되돌아볼 때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샷을 실수했으면 어려운 샷을 해야 하는 거고, 잘했으면 좀 편한 곳에서 샷 하면 되는 거고 그냥 받아들여요. 어차피 해야 할 일인데 스트레스받는다고 결과가 좋은 건 아니잖아요. 그럼 즐겁게 하자는 생각이에요.”

쉽게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과거 자신에게 고맙다는 김영수에게 20대로 돌아간다면 똑같이 버틸 수 있겠냐고 물었다. “했던 거니까 더 쉽지 않을까. 더 어려울 수는 없다. 힘들겠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더 잘 아니까 수월할 것 같다”고 웃었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요? 당장 눈앞에 꽃을 피우는 것에 급급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해야 할 것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다 보면 기회는 누구에게나 찾아와요. 기회가 왔을 때 잘 잡으려면 무조건 준비가 돼 있어야 해요. 기회는 올 수 있지만 준비된 사람만 쟁취할 수 있으니까요. 포기하지 않고 잘 준비하면 다 잘될 거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목표는 없다. “어릴 때나 ‘PGA투어에 가겠다’ 이런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묵묵하게 이제까지 해왔던 것처럼, 순간순간을 다 즐기고 싶어요. 꾸준히 하면 팬 분들도 알아주시지 않을까요. 믿고 보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김영수 | 나이 만 33세 / 프로 데뷔 2009년 10월 / 성적 2승 2022년 코리안투어 대상, 상금왕

사진_김시형(49비주얼스튜디오) / 헤어&메이크업_칼라빈 by 서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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