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하게 10승, 그리고…이정민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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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하게 10승, 그리고…이정민의 미소
  • 서민교 기자
  • 승인 2022.12.2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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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디를 잡은 뒤 인사하는 이정민. 사진=KLPGA 제공
버디를 잡은 뒤 인사하는 이정민. 사진=KLPGA 제공

시크하고 보이시한 매력, 이정민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는 늘 그 자리에서 14년을 뚜벅뚜벅 걸어 10승을 쌓았다. 화려하진 않지만, 멋 좀 나게. 

“제가 그동안 그렇게 진지했나요? 전 진지한지 잘 모르겠는데…. (최)예림이와 재밌게 치려고 얘기도 많이 했는데, 이런 건 중계가 안 됐나 봐요?” 

이정민에게는 이런 시답지 않은 농담도, 치아를 드러낸 웃음도 낯설고 어색하다. 늘 한결같은 무뚝뚝한 표정에 시크할 정도로 무심한 플레이 스타일을 고수한 탓일까. 그는 미디어 노출도 그다지 반기지 않고 인터뷰도 단답형 대답이 돌아오는 선수로 유명하다. 그렇다고 뒤에서 그를 두고 수군덕거리는 사람은 없다. 이런 그의 성향은 오히려 멋진 매력을 풍긴다. 그랬던 이정민이 제법 크게 웃었다. 참았던 속내를 드러내듯 서술형 답변이 술술 나오는 ‘수다쟁이’스럽기까지 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통산 10승이라는 금자탑에 오른 직후다. 

지난 18일 베트남 트윈도브스골프클럽에서 끝난 PLK퍼시픽링스코리아챔피언십. 총상금 7억원에 우승 상금 1억2600만원이 걸려있는 이 대회는 해외에서 열리는 KLPGA투어 2023시즌 두 번째 대회이자 2022년 마지막 대회로 선수들에게는 유종의 미를 거두는 자리다. 올해 내내 부진했던 이정민은 이 대회에서 역전 우승 드라마를 썼다.

대회 최종일 선두 최예림에게 1타 뒤진 채 출발해 한때 6타 차 단독 선두를 질주했고, 경기 막판 2타 차로 쫓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정민은 흔들림 없이 침착했고 챔피언 퍼트까지 냉정함을 유지했다. 지켜보는 사람은 애간장이 탔는데 정작 이정민은 평온했다. 그는 사흘 동안 9언더파를 기록하며 최예림을 3타 차로 따돌리고 생애 열 번째 챔피언에 올랐다. 거센 강풍과 추격자 따위는 개의치 않는 베테랑의 품격이 빛난 우승이었다. 그는 우승이 확정된 순간 비로소 짐을 내려놓듯 환하게 웃었다. “정말 힘든 하루였다. 티오프하기 전부터 바람이 강하게 불었고 핀 위치는 경기위원회에서 작정하고 어렵게 꽂은 것 같았다. 최대한 인내하면서 치려고 노력했고, 끝까지 침착하게 플레이해서 우승을 할 수 있었다.” 

2009년 프로에 데뷔해 2010년 첫 우승을 이룬 그는 2015년 시즌 3승을 거두는 등 7년 동안 8승을 챙겼다. 이후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하다 2021년 5년 만에 아홉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부활을 알렸다. 하지만 올해 거짓말처럼 찾아온 부상이 그를 괴롭혔고 시즌 내내 톱10은 단 한 차례밖에 들지 못했다. “부상이 있었는데 제대로 몸을 만들지 못하고 시즌을 시작했다. 티를 꽂기 힘들 정도로 허리가 안 좋을 때도 있었다. 안 아프게 치려고만 하는 나를 발견했다. 당연히 실력 발휘를 하지 못했고 좋은 성적도 나올 수 없었다. 몸 관리의 중요성을 더 강하게 느꼈던 한 해였다. 선수 생활이 끝나는 날까지 부상 없이 보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KLPGA투어 통산 10승을 달성한 뒤 캐디와 축하를 나누고 있는 이정민. 사진=KLPGA 제공
KLPGA투어 통산 10승을 달성한 뒤 캐디와 축하를 나누고 있는 이정민. 사진=KLPGA 제공

이 대회에서 그는 1년 2개월 만에 다시 우승을 이뤄내 KLPGA투어 역대 14번째, 현역 선수로는 8번째로 통산 10승을 거둔 선수가 됐다. “5년이나 1년이나 우승의 크기는 없으니까 똑같이 좋다. 하지만 이번 우승은 솔직히 쉽지 않다고 느껴졌다. 물론 예전 우승을 쉽게 했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웃음). 잘하는 어린 선수들이 많아지고 코스 세팅은 더 길어지고 어려워졌다. ‘또 우승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럴 때 염동훈 프로님이 도움을 주셨다. ‘넌 무조건 잘할 수 있다’고.” 

그의 우승 비결은 무얼까. 노력 없는 선수는 없겠지만, 그는 참 ‘이정민답게’ 우승을 사냥했다. “누구나 연습 때는 잘한다. 대회 때 긴장된 순간에 어떻게 안정적으로 플레이를 잘할 수 있는지 염두하고 연습했다. 시즌 내내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난 톱10에 들기 위해 경기에 나서는 선수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열 번 떨어져도 한 번 우승하는 선수, 그래서 긴장된 상황에도 편안하게 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를 뒤쫓던 선수들이 실수를 쏟아낼 때도 유독 그에게 평온한 기운이 느껴졌던 이유다.

우승의 크기가 없다고 말하는 이정민이었지만, 통산 10승은 그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9승을 하고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가졌던 걸 해내서 스스로 뿌듯하다. 정말 우승이 쉽지 않을 거라고 느껴졌고 최선을 다한 것만으로도, 좋은 경기를 펼친 것만으로도 만족했는데 10승을 해냈기 때문에 정말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그는 이번 우승으로 다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이젠 투어에 내 친구는 두 명밖에 안 남았더라. 언니들도 몇 명 없다. 하지만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지금처럼 차근차근 준비하면 또 이번 우승 같은 좋은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 나이 서른둘. 그는 후배들에게 무심한 진심을 전했다. “우승은 기계처럼 완벽해서 하는 게 아니다. 선수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겨울 스키 시즌을 맞이하러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한 마디를 던진 채. “지난 겨울 시즌은 연습하느라 좋아하는 스키를 못 탔어요. 연습만 한다고 잘 하는 건 아니더라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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