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 김민규의 ‘행복한 갓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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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영혼 김민규의 ‘행복한 갓생’
  • 한이정 기자
  • 승인 2022.12.2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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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고 당당하다. 언젠가 다가올 우승도 좋지만 내일 당장 행복하고 싶다. 남자 골프를 이끌 Z세대 선두주자 김민규의 ‘갓생’에 대하여.

“상금왕을 하고 왔어야 하는데! 그렇죠?”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김민규가 씩 웃으며 말을 꺼냈다. “희한하게 본선에서 퍼팅이 안되더라고요. 우승 못 할 대회였나 봐요.” 이렇게 솔직하고 쿨할 수 있을까. 코리안투어를 대표하는 차세대 스타답다.

김민규의 2022시즌은 기쁨 반, 아쉬움 반이다. 6월 코오롱한국오픈에서 생애 첫 승을 차지했다. 우승 상금 4억5000만원에 디오픈 출전권까지 거머쥐었지만 8월 제주에서 대회장을 가던 도중 교통사고가 났다. 두 달여 동안 대회에 나서지 못했다.

 

누구보다 2022시즌에 기쁨과 아쉬움이 극명할 것 같다.

그토록 바라던 첫 승을 했으니 한 단계 발전한 느낌이다. 그동안 2등만 해서 ‘나는 우승을 못 할 운명인가, 멘탈이 약한가’ 많은 생각을 했는데 그런 걸 한 번에 깬 것 같다. 또 그동안 기복이 심했는데 올해는 처음으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낸 것도 만족스럽다. 그래서 사고 때문에 쉰 기간이 긴 게 너무 아쉽다. 아픈 것보다 점점 개인 타이틀 경쟁에서 차이가 좁혀지는데 대회에 나가지 못해 마음이 내내 안 좋았다.

그토록 바라던 첫 승이 코리안투어 제일 큰 대회에서 나왔다. 
다른 대회였어도 좋았겠지만 한국오픈이라 훨씬 더 좋았다. 정말 내가 우승할 줄 몰랐다. 타수 차도 꽤 났고 최종 라운드에서도 우승하려고 한 게 아니라 디오픈 출전권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었다. 한국오픈에서 우승하니 자부심도 있다.

한국오픈 때 공격적이고 과감한 플레이로 주목받았는데 긴장을 잘 안 하는 성격인가. 
절대 아니다. 우리금융챔피언십 때 최종 라운드를 앞두고 선두였는데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난 거다. 그때 친한 후배 송민혁이 캐디를 해줬는데 ‘형 할 수 있을까?’ 이 말만 계속할 정도로 긴장했다. 결국 그때는 우승을 못 했고, 한국오픈 때는 떨리는 건 똑같았지만 불안하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확실히 우승 기운이 있는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어쩜 그렇게 무덤덤했을까 싶다.

사진=코오롱한국오픈조직위원회.
사진=코오롱한국오픈조직위원회.

■ ESFP 자유로운 영혼의 연예인

개성 넘치는 MZ세대는 MBTI 성격유형 검사로 사람을 이해한다. 김민규의 MBTI는 ‘자유로운 영혼의 연예인’ ESFP. 낙천적이며 쾌활하고 타인과 관계를 중요시하는 유형이다.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싶냐는 질문에 “저는 관종이고요. 약간 착한 또라이예요” 하며 깔깔 웃었다. “어떤 행동까지 해봤냐고요? 그런 거 언론에 나가면 안 돼서 말씀 못 드려요!”

자유로운 영혼의 연예인. 공감하는가?
그런 것 같다. 골프가 잘 안될 때는 죽어라 연습해서 파고들긴 하지만 틀에 박힌 건 엄청나게 싫어한다. 잘될 때는 연습을 잘 안 한다. 즉흥적으로 뭔가 엄청 하고 싶은데 사실 귀찮아서 잘 안 한다. 착하고 열심히 하는 성실한 또라이? (웃음)

20대 초반 나이에 골프 선수들은 어떻게 스트레스를 푸나. 
똑같다. 친구 만나서 영화도 보고 노래방도 가고. 나는 동료 선수들이랑 자주 만난다. 대회 기간에 같이 밥도 먹고 라운드하면서 장난도 치고 놀고. 코리안투어 선수들은 다 두루두루 친하다. 나이 많은 형들도 그렇고.

대회 현장이나 SNS에서 보면 또래 선수들과도 잘 지내던데. 
(배)용준이 형, (이)재경이 형 CJ 소속 선수들은 모두 친하다. 용준이 형이 우승한 대회에서 ‘민규처럼 우승하고 싶다’고 했던데 그 기사를 보내면서 “자기야, 내 얘기 했어?” 하고 장난쳤다. 그러고 논다(웃음).

나이대 비슷한 선수들끼리만 노는 거 아닌가. 
아니다. 코리안투어에 나이 많은 형들이 많아도 군기 잡는 게 아니라 엄청 편한 분위기다. 다들 요즘 세대라 그런가? 요즘은 (정)한밀이 형과 친하다. 한밀이 형과 열 살 차이 나는데 내가 ‘한밀아~’ 하고 장난치면 한밀이 형이 욕하면서도 웃으면서 받아준다. 형들과 대회 끝나면 맥주도 한 잔씩 하고 시즌 끝나면 풋살도 하고 그런 게 재밌다.

남자 선수들끼리 끈끈한 것 같다. 
MZ세대 선수들이 은근히 재밌고 운동도 잘하고 골프도 잘한다. 딱 봐도 분위기가 정말 좋지 않나. 남들이 보면 어떨지 모르지만 우리끼리는 엄청 웃기다. 살짝 어린애들 소풍 나온 분위기? 연습하다가도 ‘야, 백스윙 왜 그 모양이냐?’ 하면서 놀린다. 기분 나쁘게 장난치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집중할 때는 딱 한다.

 

 

■ ‘차박’ 하며 나간 대회 

언제부터 골프를 하기 시작했나. 
아버지가 일곱 살 때 골프 선수가 되라고 하셨다. ‘골프 한번 해볼래? 재밌는지 아닌지 해보고 결정해’ 이런 게 아니라 처음부터 골프 선수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그렇게 갑자기 단호하게 골프 선수를 하라고 하시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당시 여행사를 하셨는데 제주도 골프 쪽 상품이 많았다. 여차여차해서 골프에 빠지셨는데 제주도에 잘하는 선수도 많고 아버지 주변 분 중에 자녀를 선수로 키운 분들이 계셔서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신 것 같다. 훌륭한 선수로 키워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하셨단다.

아버지에게 골프를 배운 건가. 
처음에는 그랬다. 엄청나게 혼났다. 지금은 완전히 힘이 없어지셨다. 내가 하는 거에 아예 터치를 안 하시는데 어릴 때는 정말 엄하셨다. 아빠랑 어떻게 연습했는지 그런 건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아빠가 내게 골프를 가르쳐줬다기보다는 내가 잘할 수 있게 옆에서 지켜보고 서포트해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이경훈 프로님을 만나서 지금까지 배우고 있다.

골프에 재미를 붙이며 시작한 게 아닌데 아버지한테 하기 싫다고 반항 한번 해봤을 법하다. 
어릴 때 골프를 쉽게 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어렵게 골프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게 아니면 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다’가 아니라 ‘해야 한다’였다. 하기 싫다는 감정이 들 새가 없었다.

언제가 가장 힘들었나.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2학년 때쯤. 그때가 가장 힘들었다. 지금 그때 나이인 친구들을 보니까 정말 어리더라. 쟤네들이 뭘 할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때 나는 집안 사정이 어려운 걸 알고 있었으니까.

힘든 시기였는데도 고등학생 때 유로프로투어(DP월드투어 3부)에서 어떻게 뛸 수 있었나. 
국가대표 하고 있을 때였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유럽에 가자고 하시더라. 유럽에서도 힘든 생활을 했다. 호텔을 못 잡아서 차에서 잔 적도 있다. 씻는 건 라커룸에서 하고. 그때 차가 승합차 같은 거였는데 뒷자리를 다 젖히고 매트리스를 얇게 깔면 그래도 평평해서 잘 만하다.

지금에나 웃으며 얘기하는 일이지만 아버지와 정말 많이 고생한 것 같다. 
맞다. 그래도 티 없이 밝게 자랐다. 아버지는 내게 신경 쓰지 말라고 하시며 어떻게 해서든, 돈을 빌려서라도 대회에 출전할 수 있게 해주셨다. 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아들이 모를 리 없지 않나. 그래서 아빠를 생각하면 아직도 울컥한다.

김민규에게 아버지는 어떤 분인가. 
평소에는 다정하고 유연하신 분이다. 먼저 ‘여자친구 좀 만나라. 남자는 여자에게 인기 없는 게 제일 모지리 같은 거다’고 장난도 하신다. 그러나 골프에 있어서는 굉장히 엄격하시다. 어릴 때부터 잘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내가 하는 건 당연히 해야 한다고 하신다. 잘했다는 한마디도 들어보고 싶다.

 

■ 행복하게 ‘갓생’ 살기

어릴 때부터 정말 열심히 살아온 것 같다. 지금도 강박관념이 있나. 
지금도 연습하는 게 몸에 박혔다. 지금까지 이룬 것들을 잘 유지하고 나아가려면 내가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잠시 멈추면 다시 원상 복귀가 될 것 같아 연습은 매일 한다.

연습하고 대회 나가고 바쁜 삶이 힘들지는 않나. 
대회에서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긴장감을 느끼며 골프를 하는 게 재밌다. 또 잘 되든 안 되든 노력하는 과정이 재밌다. 정말 스트레스받지만 짜증 나면서도 재밌다. 지금도 볼이 안 맞으면 엄청 연습한다. 열받는데 연습에 몰두하는 나를 보면 뭔가 또 재밌다. 집요하게 연습하면 뭔가 뿌듯하기도 하고.

어떤 골프 선수가 되고 싶나. 
1년에 한 번은 우승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편안한 것에 익숙해지면 또 해이해지니까 더 크게 되려면 해외에 도전해야 하지 않을까.

존경하는 최경주 프로처럼 이름을 건 대회를 연다거나 주니어를 위한 재단을 설립하거나 하는 목표는 없나. 
그런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아직 그런 게 없다. 성격 때문인가. 한 치 앞만 보고 산다. 돈을 좇는 건 아닌데 돈을 많이 벌고 싶고 당장 행복해지고 싶다. 또 주위 사람을 잘 챙기는 인간적인 프로가 되고 싶다. 잘나가서 변했다는 소리는 듣기 싫다. 아직 우승 경쟁 중에도 형들과 장난치고 싶다. 사실 난 우승 못 해도 ‘이 등수도 괜찮아~’ 하고 넘긴다. 

내년 시즌은 어떻게 보낼 예정인가. 
아시안투어에도 많이 출전하려고 한다. (김)주형이가 아시안투어에서 하다가 PGA투어에 진출했으니까 나도 아시안투어에서 뛰다가 PGA투어로 넘어갈 기회를 만들어보려고 한다. 해외 투어를 노릴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일 것 같다. 

 

김민규
나이 : 만 21세(2001년생)
데뷔 : 2019년 4월
소속팀 : CJ대한통운
소속사 : UMA
성적 : (2022년) 코오롱 제64회한국오픈 우승 / 코리안투어 상금 2위, 평균타수 3위

 

사진_김시형(49비주얼스튜디오) / 헤어·메이크업_칼라빈 by 서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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