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바 왓슨이 평범한 아마추어 코스에서 플레이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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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바 왓슨이 평범한 아마추어 코스에서 플레이한다면?
  • 서민교 기자
  • 승인 2021.10.0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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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시 리저 
사진=제시 리저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무려 두 번이나 우승한 버바 왓슨에게 아마추어가 플레이하는 평범한 6100야드의 코스에서 평소대로 실력을 발휘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코스는 스코츠데일의 스타파이어골프클럽, 골퍼는 버바 왓슨이었다. 그는 마지막 홀에서 이글이 걸린 30야드 피치 샷을 앞두고 라인을 열심히 살피고 있었다. 왓슨이 이곳에 온 목적은 최대한 낮은 스코어의 기록 한 가지다. 물론 그건 라운드에 나서는 모든 골퍼의 목적이다. 다만 왓슨은 실험에 투입되었고, 17번홀까지는 테스트를 무난히 통과한 터였다. 이제 그는 느낌표를 찍으며 그 테스트를 끝내고 싶었다.  

“이건 촬영해야겠는데.” 왓슨이 소리쳤다. 목소리는 당당하기 그지없었고, 촬영 팀에게 하는 소리 같았지만 실제로는 친구들을 겨냥한 말이었다. 맨 위 단추까지 채우는 것으로 유명한 그였지만, 그때만큼은 조금 느슨해져도 좋겠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잘 찍는 게 좋을 거야.” 그가 말을 이었다. “왜냐하면 그대로 들어갈 테니까.”

사진=제시 리저 
사진=제시 리저 

◇ 투어 개최지 vs. 일반 코스

PGA투어 대회는 가장 까다롭고 길고 최상의 관리 상태를 유지하는 곳에서 개최한다. 아마추어 골퍼 대부분이 플레이하는 일반 코스와는 전혀 다른 곳이다. 일반 코스와 투어 개최지의 관리 상태를 비교하는 것은 주택 개조 프로그램의 리모델링 전후를 비교하는 사진과 비슷하다. 투어 선수는 순백의 모래에서 샷을 하지만 우리가 플레이하는 벙커에는 솔직히 모래라고 하니 모래 같아 보이는 게 담겼을 뿐이다. 그린의 공통점을 꼽자면 어쨌든 깃대가 꽂혀 있었다. 그래도 비거리가 긴 프로라면 절반 정도는 드라이버 샷을 그린에 올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로커 룸과 그릴, 티잉 에어리어에서는 이런 얘기가 심심치 않게 오간다. 투어 프로가 우리 코스에서 플레이한다면 어느 정도 스코어를 기록할까?

이 질문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다. 사람들 대부분은 “말도 안 되게 낮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투어 대회에 맞춰 셋업한 코스에서도 66타를 기록하는 프로들에게 평범한 코스가 가당키나 하겠어? 하지만 말도 안 되게 낮은 스코어라는 건 몇 타를 의미할까? 63, 60, 58? 물론 대단한 실력의 소유자들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모든 홀에서 버디를 할 수는 없을 텐데.

반면에 자신들의 코스가 충분히 방어해낼 거라 믿는 사람들도 있다. 자존심 때문에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맹목적인 자존심은 아니다. 평범한 코스에는 투어 개최지엔 없는 독특한 특징이 있고,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다 보니 퍼팅 면이 투어 그린보다 단단하다. 이게 사실이라는 걸 입증하는 최근의 사례가 있다. 짐 허먼(Jim Herman)은 2019년에 어려서 플레이하던 쇼니룩아웃(Shawnee Lookout)이라는 코스를 찾았고 64타로 그 클럽의 최저타 기록을 세웠다. 얼핏 들으면 말도 안 되게 낮은 스코어처럼 들리지만 (a) 쇼니는 전장이 6000야드에 파70에 불과하며, (b) 허먼은 7100야드, 파72의 킨트레이스에서 열린 바바솔챔피언십에서 62타 한 번과 65타 두 번을 기록하며 우승을 차지한 직후였다. 이런 점을 고려하고 들으면 평범한 코스도 나름대로 방어력이 막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허먼은 쇼니를 편한 마음으로 들른 것이지, 작정하고 플레이한 게 아니다. 코스가 문을 닫는다는 소리를 듣고 마지막으로 한번 가보고 싶었다. 스코어보다는 추억이 우선이었다. 동생이 말해주기 전까지는 스코어도 의식하지 않았다. 허먼의 사례는 과학적 증거라기보다는 재미있는 일화 수준이었다. 정식으로 실험해보자고 결심한 건 그 때문이었다. 

사진=제시 리저
사진=제시 리저

테스트 장소는 스타파이어로 결정되었다. 그곳 길이는 6106야드, PGA투어 평균 코스에 비해 1000야드 정도 짧았다. 하지만 플레이 통계 전문 업체 게임골프라이브에 따르면 일반적인 미국 남자 골퍼의 드라이버 샷 거리는 220야드이다. USGA에서 권장하는 코스 길이가 5800~6000야드라는 점을 참고하면 그렇게 짧은 코스는 아니다.

그런 데다 스타파이어는 특이한 개성을 지닌 흥미로운 코스이다. 파3홀은 긴 편이고 파5홀은 짧은 편이며, 의외의 곳에서 압박감을 안긴다. 관리 상태는 좋지만 탁월한 수준은 아니다. 그린은 대체로 녹색이지만 군데군데 갈색이 눈에 띄며 울퉁불퉁하다. 넓은 연습장에는 치료가 시급해 보이는 볼이 가득하다. 그린피는 36달러이다. 폴로 셔츠에 단정한 반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나온 사람들도 있다. 간단히 말해 평범한 퍼블릭 코스이다. 

왓슨을 단순히 프로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 사람은 수천 명이 넘는다. 마스터스 2승 챔피언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사람은 왓슨까지 세계에 단 17명뿐이다. 그는 PGA투어에서 12승을 올렸고 라이더컵과 프레지던츠컵에 총 여섯 번 출전했다. 한마디로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의 격차를 제대로 보여주는 적임자이다. 파워와 감각,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공격 라인을 감지하는 안목과 그걸 구사하는 배짱, 샷 컨트롤 능력까지 갖춘 왓슨의 실력은 독보적이다. 코스와 선수가 정해졌으니 가늠해볼 차례였다.

아코스골프(Arccos Golf)의 공동 설립자이자 CEO 살 사이드(Sal Syed)는 통계 추적 프로그램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스타파이어에서 투어 프로가 플레이할 경우 평균 66.5타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왓슨의 경우에는 66타로 추정했다. 하지만 사이드는 그린의 속도를 투어 수준으로 설정한 수치라는 점을 지적했다. “그가 그린의 속도에 적응한다면 스코어는 더 낮아질 것이다.” 사이드는 말했다. 비교를 위해 그는 일반적인 남성 스크래치 골퍼는 동일한 티에서 72.3타, 핸디캡 10의 골퍼는 83타로 예상했다. 왓슨에겐 목표 스코어가 생겼고, 이제 그 목표에 도전할 일만 남았다.  

◇ “투어 대회인 것처럼 코스를 공략하겠다” 

왓슨에게 이런 얘기를 하자, 그는 적극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그가 세 명의 은퇴자(어떻게 하면 이 단어를 기분 상하지 않게 말할 수 있을까)와 함께 스타파이어 1번홀에 나타났을 때 잠시 그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처음에는 출발 요원이 아무 생각 없이 세 명의 팀에 왓슨을 넣어서 내보낸 게 아닌가 싶었지만(그랬으면 나름 흥미로운 얘기가 됐을 테지만), 왓슨은 그들을 동행이라고 소개했다.  

“노인네들하고 함께 플레이해야 드라이버 샷이 훨씬 더 길어 보일 것 아닌가.” 왓슨은 농담을 했다. 하지만 호락호락 넘기지 않고 진짜 이유를 캐물었다. 그 사람들에게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투어 프로 주변에는 에이전트와 매니저, 코치, 장비 회사의 담당 직원, 형제자매, 예전 대학 동료, 새로 사귄 지인이 득실거린다. (그러다 보니 소프트볼 팀을 꾸릴 정도의 수행원을 대동하고 다니는 선수도 있다.) 알고 보니 그중 한 사람은 왓슨의 사업 파트너 샌디 샌싱(Sandy Sansing)이었고 나머지 두 명(찰스 데이비스와 케네스 다룰라)은 왓슨의 홈 코스 가운데 하나인 스코츠데일 소재 데저트마운틴클럽의 회원이었다. 

사진=제시 리저
사진=제시 리저

“그냥 여러분이나 나 같은 골퍼들이다.” 왓슨은 말했다. “투어에서 워낙 선수들과 플레이를 많이 하니 홈 코스에서는 평범한 골퍼들과 플레이한다. 그들의 골프 실력이나 직업, 신분 같은 건 전혀 상관없다. 그저 좋은 사람들과 플레이하고 싶을 뿐이다.” 이 말에는 반박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실력도 좋았다. 왓슨이 앞에 있는 호수를 가리키며 부담을 줬는데도 다들 1번홀에서 드라이버 샷을 270야드 이상 기록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곳에 그 사람들의 플레이를 보러 간 게 아니었다. 목적은 왓슨이었다. 그가 투어에서 기록한 최저타는 62타였지만, 스코츠데일에 있는 에스탄시아에서 58타를 친 적이 있다. 왓슨은 예상 스코어를 물었고, 우리는 사이드가 예측한 점수를 말했다. 왓슨은 66타라는 말에 먼 곳을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깰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투어 대회에 나갈 때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폰서 의상을 차려입고 나왔다. “투어 대회인 것처럼 코스를 공략할 생각이다.” 

하지만 투어 대회에서만큼 워밍업을 오래 하지는 않았다. 연습장에서 미들 아이언 샷을 스무 번 남짓 한 다음 퍼팅 그린에서 스트로크를 몇 번 한 게 고작이었다. 왓슨은 그날 아침 7시 58분 첫 티 타임을 받았다. 눈앞에 펼쳐진 텅 빈 코스를 보며 플레이할 의욕을 느끼지 않는 골퍼가 어디 있겠는가?

스타파이어의 첫 홀은 559야드의 파5홀로 왼쪽에는 도로가 지나고, 오른쪽에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으며 270에서 300야드 지점에 페어웨이 벙커가 포진했다. 열렬히 환대하는 느낌은 들지 않지만350야드의 티 샷(왓슨은 그걸 “적당하고 쉬운 컷 샷”이라고 표현했다)은 분위기를 한결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왼쪽으로 200야드 남짓만 남겨놓은 왓슨은 볼을 그린에 올린 후 9m 거리에서 이글 기회를 잡았다. 아무래도 이 시점이 마스터스를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라는 걸 밝힐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워밍업을 했다고는 하지만, 오거스타내셔널의 그린에서 퍼블릭 그린으로 이동할 경우 아무래도 재조정이 불가피하다. 처음에는 퍼트가 홀에 못 미칠 가능성이 높은데 왓슨의 이글 시도가 그랬다. 그는 버디 퍼트에 성공하면서 한 홀 만에 1언더파를 기록했다.

그때 차를 몰고 지나가던 어떤 사람이 왓슨을 알아보고 차를 세우더니 휴대전화를 들이밀며 사진을 찍었다. 왓슨은 친절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다음 카트에 올라 2번홀로 향했다. “어딜 가나 매일 있는 일이다.” 그는 작은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사진=제시 리저
사진=제시 리저

188야드의 파3인 2번홀에서는 티 샷이 한 번 튀어 오른 후 컵 90cm 앞에 멈췄다. 2번홀까지 2언더파. 이쯤 되니 66타가 계산 착오처럼 보였다. 3번홀에서 대기를 가르며 날아간 310야드의 ‘스팅어’ 샷에 의구심은 더 짙어졌다. 3번홀은 스타파이어에서 첫손 꼽히는 핸디캡 홀인데 왓슨은 앞쪽에 꽂힌 깃대까지 110야드만 남겨놓았다. 60타를 깨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이렇게 쉬우면 곤란한데.” 찰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골프의 신들이 이런 생각을 읽었는지, 우리의 오만함에 왓슨을 벌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의 어프로치 샷은 깃대를 살짝 지나쳤지만 그린 밖으로 나가버렸다. 프린지에서 시도한 버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도 결국 인간이었다. 파3의 아일랜드 그린인 4번홀에서는 샌디가 맨 먼저 플레이했다. 그의 티 샷은 홀 3m 앞까지 날아갔다. “거기 바람이 어때요?” 왓슨이 물었다. “1야드 정도.” 샌디가 대답했다. “1야드?” 왓슨은 그럴 리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닌 것 같은데.” 실제로는 풍속이 10야드에 가까웠고 왓슨의 샷은 9m가 모자랐다. 두 홀 연속 파였다. 350야드의 5번홀에서도 세 번째 파가 나왔다. 왓슨의 드라이버 샷은 320야드를 날아갔지만 모래가 거의 없는 벙커에 빠졌다. (어서 와, 퍼블릭 골프장은 오랜만이지?) 그린에 올리긴 했지만 퍼트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쯤 되니 왓슨이 힘을 발휘해야 할 때가 됐다. 세 홀 내리 플레잉 파트너들의 어프로치 샷이 왓슨보다 더 홀에 가까웠다. 그들은 그걸 보란 듯이 왓슨에게 알려주었다. 왓슨은 기분 좋게 맞받아쳤지만, 세 클럽 정도의 맞바람에도 페어웨이를 살짝 벗어난 300야드의 드라이버 샷을 구사하는 데 동기부여가 된 것만은 틀림없다. 파5 6번홀에서는 나무가 투온을 방해했다. 아무튼 그럴 것처럼 보였다. 왓슨이 198야드 거리에서 힘을 빼고 구사한 6번 아이언 샷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30야드가량 휘면서 홀 4.5m 거리에 떨어졌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인상적인 플레이였는지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그린에서의 감각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이글 퍼트가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파4인 7번홀(강력한 드라이버 샷, 탁월한 어프로치, 6m 퍼트 실패)과 파3인 8번홀(깃대 오른쪽으로 9m 거리, 훌륭한 래그 퍼트)에서도 매우 흡사한 상황이 벌어졌다. “거의 다 왔어.” 왓슨은 8번홀에서 내려가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조금만 기다려.”

9번홀은 504야드의 교과서 같은 파5홀이었다. 하지만 백 티를 보수 중인 탓에 실제로 플레이한 거리는 480야드 정도였다. “저기, 저 물이 플레이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 그는 380야드 밖에 있는 연못을 가리키며 허세를 부렸다. 아무리 세계 최고의 선수라고 해도 그건 어처구니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드라이버 샷은 연못 10야드 앞까지 날아갔다. 우리에겐 어처구니없는 것이 그에게는 일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해야 했다. 그는 드라이버 샷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았다. 3/4 웨지 샷을 90cm 앞으로 보낸 후 이글로 홀을 마무리했다.  

왓슨은 전반 나인 내내 친구들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퍼트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그런데도 5언더파 31타를 기록했다. 왓슨은 스타파이어에서도 투어 대회에서 보던 것처럼 놀라운 플레이를 펼쳤다. 투어 대회에서는 일정 수준을 기대하고 중계에 집중하다 보면 300야드의 드라이버 샷과 3m 앞에 멈추는 어프로치 샷도 거의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주니어 클리닉이 열리던 코스에서 왓슨이 아마추어(실력이 뛰어나긴 해도 어쨌든 아마추어)를 상대로 그런 플레이를 펼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우리네 게임과 프로의 게임이 같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파3인 10번홀에서는 이 믿음이 잠시 흔들렸다. 그곳은 벙커가 그린 왼쪽 앞을 엄호하고 오른쪽에는 나뭇가지가 드리워 아주 까다로운 홀이었다. 게다가 맞바람까지 불고 있었다. 왓슨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의 볼이 날아오르는 순간 바람이 잦아들었다. 볼은 그린을 넘어 30야드를 더 날아갔다. “너무 긴 클럽을 선택했나.” 샌디가 시치미를 떼고 왓슨에게 말했다. “관찰력이 아주 예리하시네요.” 왓슨은 이렇게 응수했다. 큰 숫자는 피했지만, 그래도 그날 첫 보기를 기록하며 4언더파로 내려앉았다. 그런 데다 그늘집에 들러 핫도그 먹는 걸 깜빡했다. 

원래 실수하고 나면 다음 샷에서 오버 스윙을 하게 되고, 볼이 솟구쳐서 알 수 없는 곳으로 가는 바람에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왓슨도 400야드인 11번홀에서 티 샷을 하면서 바로 그런 모습을 보였다. 최소한 오버 스윙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볼은? 뭐, 주일학교 교사처럼 올곧게 330야드를 날아갔다. 하지만 버디 퍼트는 또다시 거리가 짧았다. 왓슨에게 좀 더 시간을 가지고 라인을 살펴보라고 강권하지 않은 채 플레이를 시작한 우리를 탓했다.  

왓슨은 그 좌절감을 파4인 12번홀의 드라이버 샷에 쏟아냈다. 볼은 깃대를 지나쳐 340야드를 날아갔다. 내리막 13.5m 퍼팅에서 이글을 노리는 건 무리였지만, 적절한 래그 퍼트에 이어 탭인 버디에 성공했다. 13번홀은 스코어카드에 적힌 479야드만 보면 짧은 파5처럼 생각된다. 그날은 클럽 두 개를 높여서 사용해야 하는 수준의 바람이 분 탓에 체감 거리는 훨씬 길었다. 그래도 왓슨은 강한 맞바람을 뚫고 칼날처럼 예리한 310야드의 드라이버 샷을 선보였다. 그의 어프로치 샷은 오른쪽 뒤로 살짝 벗어났다. 무심한 칩 샷은 1.2m 앞에 멈췄지만 차분하게 성공해 6언더파가 되었다. 파3인 14번홀에서는 바람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강하게 부는 가운데 그날 최악이라고 할 만한 샷이 나왔다. 물론 그에게 나쁜 샷도 우리 기준에서는 좋은 것이라서 볼은 여전히 그린에 올랐지만 위치 선정을 잘못해 9m 퍼트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제야 퍼터도 재미에 동참하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왓슨은 퍼트에 성공한 후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그래, 그럴 때도 됐지.”  

그때 15번홀 옆에 접한 집에서 웃통을 벗어젖힌 남자가 그와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벌써 소문이 돌아서 구경꾼이 하나둘씩 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응원하면서도 대체로 큰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런데 웃통을 벗어젖힌 이 남자는 흥분을 자제할 수 없었나 보다. “왓슨 화이팅! 힘내라, 왓슨! 와아아아!” 그는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저 친구를 실망시키면 안 되겠네.” 샌디가 말했다. 왓슨은 오른쪽 도그레그인 파4의 15번홀에서 아름다운 300야드 샷으로 환호에 답했다. 홀까지는 약 70야드만 남겨놓았다. 어프로치 샷은 조금 미흡했고 볼은 홀까지 약 4.5m 거리에 멈췄다. 하지만 이제 퍼터에 불이 붙었고 왓슨은 퍼트를 너끈히 성공했다. 네 홀 연속 버디를 기록하며 8언더파가 되었다. “내가 뭐랬어!” 왓슨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말했잖아!” 왓슨은 제대로 상승세를 탄 것 같았다. 세 홀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59타는 여전히 가능했다.  

16번홀은 물을 넘어가는 왼쪽 도그레그이다. 왓슨의 드라이버 샷은 제대로였던 반면에 어프로치 샷은 그렇지 못했다. 그린 바로 앞에서 8번 아이언으로 시도한 칩샷은 들어갈 뻔했지만 불발로 그쳤다. 그대로 유지된 8언더파는 파3인 17번홀에서 7로 줄었다. 그곳 길이는 150야드에 불과했지만 바람을 잘못 판단하는 바람이 뒤쪽 벙커에 볼이 반쯤 파묻히고 말았다. 강력한 파워로 그린에 올린 볼은 퍼트에 실패해 왓슨은 그날의 두 번째 보기를 기록했다. 샌디와 푼돈내기 매치에서조차 한 홀 뒤지고 있다는 사실도 왓슨의 신경을 긁었다. 플러스-5.9가 핸디캡을 접어주고 6.6과 매치를 벌이는데, 그 6.6 골퍼가 스크래치처럼 플레이해버리면 당할 도리가 없다. 물론 그렇다고 샌디가 핸디캡을 부풀렸다고 비난하는 건 아니다. 

사진=제시 리저
사진=제시 리저

18번홀에서 버바의 드라이버 샷은 330야드를 날아갔고, 그린까지는 30야드만 남겨놓았다. 앞에 벙커가 도사리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린의 여유 공간이 넓지 않았다. 깃대를 살짝 지나치게 한 다음 2m 정도에서 버디 퍼트를 노리는 게 안전한 플레이였다. 왓슨의 눈엔 다른 전략이 보였다. 그는 연습 스윙을 몇 번 하더니 휴대전화와 카메라를 꺼내라는 손짓을 했다. 

“그대로 들어갈 거야.” 그는 이 말을 반복했고, 그제야 우리는 어떤 상황인지 깨달았다. 샷을 예고하는 건가? 로프트를 제대로 활용한 왓슨의 볼은 스코츠데일 하늘로 솟구쳤다. 두 차례 튄 후 깃대를 맞혔다가 다시 튀어 올라서 홀 7.5cm 거리에 멈췄다. 

버바는 손으로 무릎을 짚은 채 볼을 쳐다봤다가 고개를 떨어뜨렸다가 다시 볼을 쳐다봤다. 마치 엉뚱한 방향으로 달려간 와이드 리시버에게 배신당한 쿼터백의 표정이었다. 그린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에게 몇몇 구경꾼이 박수를 보냈다. 그는 62타에 만족하지 못했다. 실제로 퍼터가 좀 더 협조적이었다면 62타보다 낮은 스코어를 낼 수도 있었다. (버바가 컨시드를 한두 번 받았기 때문에 공식 기록도 아니었지만, 코스 최저타 동률 기록을 세울 수도 있었다.)

“더 낮은 스코어를 기록할 수도 있었지만 코스를 너무 무시하면 안 되니까.” 왓슨이 말했다. “도전적인 코스였다. 누구나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지만 그린은 상당히 까다로울 수 있다. 보기보다 선이 더 크게 휜다.” 

칩 샷을 예고한 것에 대해 왓슨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 이 라운드는 얼마까지 낮은 스코어를 낼 수 있는지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관중 수천 명 앞에서 플레이하든, 나 혼자 하든 상관없이 즐겁게 플레이하려고 한다. 플레이에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때는 골프를 그만둬야겠지.”  

왓슨은 이렇게 말하고는 18번 그린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주러 갔다. 버바 왓슨의 스코어카드는 클럽하우스를 장식할 예정이지만 그의 마지막 말은 낮은 스코어도 좋지만 궁극적으로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우리에게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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