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귀환’ 골프 클럽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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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귀환’ 골프 클럽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서민교 기자
  • 승인 2020.09.1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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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과학의 집합체인 골프 클럽은 항상 새로움을 추구한다. 세계 굴지의 골프업체는 더 멀리 똑바로 나가는 클럽 개발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마케팅 전쟁을 벌인다. 패션 아이템도 아닌 클럽이 과거로 돌아가는 복고풍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브랜드 마케팅에는 레트로(Retro)에 대한 향수가 숨어 있다. 그 짙은 향기를 좇다 보면 옛것의 감성을 간직한 골퍼의 갈증이 묻어 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벗겨진 페인트에 스크래치 투성이 퍼터. 타이거 우즈는 가장 중요한 순간 20년 묵은 스카티 카메론 뉴포트2 GSS를 꺼내 들었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메이저 대회 15승 가운데 14승을 이 퍼터와 함께했다. 마스터스에서 다섯 번째 그린 재킷을 입을 때도, PGA투어 최다승 동률인 82승 역사의 순간에도 그의 손에는 이 퍼터가 들려 있었다. 결전의 날 새 클럽을 골프백에서 빼며 과거의 찬란했던 영광을 꺼내 든 셈이다. 최근 우즈는 새 퍼터를 잡았다. 그를 위해 길이와 무게의 변화를 주는 등 새롭게 디자인한 모델이지만 스카티 카메론 뉴포트2 GSS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어쩌면 우즈가 선사한 클럽 레트로의 진수가 아닐까.  

1 타이틀리스트 620MB 아이언, 2019년2 테일러메이드 SIM MAX V스틸 페어웨이 우드, 2020년3 캘러웨이 그레이트 빅버사(GBB), 2015년
① 테일러메이드 SIM MAX V스틸 페어웨이 우드, 2020년 ② 캘러웨이 그레이트 빅버사(GBB), 2015년 ③ 타이틀리스트 620MB 아이언, 2019년

타이틀리스트가 지난해 출시한 한정판 모델 스카티 카메론 테릴리움 T22 퍼터도 대표적인 레트로 클럽이다. 우즈가 1997년 마스터스에서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을 이뤄낸 이 퍼터를 22년 만에 같은 소재와 핵심 공법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재탄생시켰다. 상징적인 페이스의 테릴리움 인서트와 헤드 뒷면의 도미노 패턴을 담아 과거의 영광을 재현했다. 최근 타이틀리스트 역대 최고의 머슬백 아이언으로 불리던 680을 탄생 15주년을 기념해 전 세계 400세트 한정판 680MB로 출시한 것도 레트로 감성을 불러일으킨 마케팅이다.     

타이틀리스트는 투어 프로의 피드백을 최우선으로 클럽을 개발한다. 아마추어 골퍼는 더 쉽게 칠 수 있는 클럽에 대한 갈망이 있지만 투어 프로의 피드백은 결이 조금 다르다. 멀리 똑바로 칠 수 있는 투어 프로는 방향성보다 샷 컨트롤이 가능한 테크닉의 중요성을 따진다. 방향성을 잡기 위해 텅스텐 신소재를 결합한 718CB 아이언은 오히려 드로나 페이드 구질의 기술적인 샷을 구사하는 데 방해 요소가 됐다.

그렇게 탄생한 모델이 바로 620MB 아이언이다. 레트로를 지향하는 투어 프로의 피드백이 반영됐다. 작은 헤드를 선호하는 타이틀리스트의 전통적인 디자인을 계승했다. 2000년대 초반 타이틀리스트 클럽 마니아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클래식한 단조 블레이드 아이언인 600 시리즈의 오마주다. 620MB의 탄생 배경은 타이틀리스트 클럽 마케팅 부문 부사장인 조시 탈지의 말처럼 ‘클래식으로 회귀’인 것이다.  

① 미즈노 MX-70 포지드 아이언, 2020년② 미즈노 MX-50 포지드 아이언, 2018년③ 미즈노 뉴 MX-30 포지드 아이언, 2016년
① 미즈노 MX-70 포지드 아이언, 2020년 ② 미즈노 MX-50 포지드 아이언, 2018년 ③ 미즈노 뉴 MX-30 포지드 아이언, 2016년

클럽에 숨어 있는 레트로 향수를 느끼려면 빠질 수 없는 브랜드가 핑골프다. 최근 핑은 골프업계를 장악한 G 시리즈의 테크놀로지 집약체인 G400, G410 드라이버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퍼터 브랜드의 대명사로 유명하다. 1959년 창립자 카스텐 솔하임이 자택 차고에서 발명한 1A 퍼터가 핑의 시초다. 이 퍼터는 임팩트 때 청명한 타구음인 ‘핑~’ 하는 종소리가 울려 멜로디 퍼터로도 불렸다.

이후 1966년 출시한 앤서(Anser) 퍼터가 잭 니클라우스, 아널드 파머의 손을 거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앤서 퍼터가 우승을 이끈 대회만 750회가 넘는다. 당시 핑은 퍼터 헤드의 양 끝에 많은 무게를 배치해 임팩트 때 비틀림을 줄여주는 특허 기술 토-힐 밸런스가 혁신을 주도했다. 

(왼쪽부터) 핑 1A 퍼터(1959년), 핑 EYE 아이언(1979년), 핑 앤서 퍼터(1966년)

핑의 베스트셀러 퍼터인 앤서는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명맥을 계승하고 있다. 핑은 최근 3년간 출시한 볼트2.0(Vault2.0), 시그마2(Sigma2), 헤플러(Heppler) 퍼터 라인에 전통적인 앤서2와 동일한 디자인의 앤서 모델을 빼놓지 않고 선보이고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핑의 레트로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는 방식이다. 핑은 2009년 1A 퍼터의 탄생 50주년을 기념해 리미티드 에디션을 출시해 레트로 감성을 자극했고, 2016년에는 앤서 퍼터 출시 50년 만에 3D 스캔을 통해 옛 모델을 복원한 TR 1966 앤서와 TR 1966 앤서2를 재출시했다. 앤서2의 솔 사운드 슬롯을 그대로 구현하는 한편 무게는 340g으로 늘리고 페이스에 첨단 기술을 접목하는 디테일까지 신경 썼다.

또 1982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아이언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핑 EYE2에 대해 그리워하는 골퍼의 요구도 충족시킬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2010년 새 그루브 규정에 대한 비판론자였던 필 미컬슨이 20년 전 웨지를 들고 나와서 화제가 된 핑 EYE2 웨지도 별도 주문이 가능하도록 했다. “지금도 예전 모양 그대로의 클럽을 찾는 골퍼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핑 관계자가 설명한 간결한 이유다.    

① 미즈노 MX-70 포지드 아이언, 2020년② 미즈노 MX-50 포지드 아이언, 2018년③ 미즈노 뉴 MX-30 포지드 아이언, 2016년
① 미즈노 MX-70 포지드 아이언, 2020년 ② 미즈노 MX-50 포지드 아이언, 2018년 ③ 미즈노 뉴 MX-30 포지드 아이언, 2016년

마니아에 의한, 특히 한국 골퍼에 의해 부활한 레트로 클럽은 ‘아이언의 명가’ 미즈노의 MX 시리즈다. ‘너의 아이언을 믿어라’라는 미즈노의 광고 문구를 기억할 것이다. MX 시리즈는 2004년 첫 모델 MX-23을 출시한 이후 엄청난 인기를 끌며 마니아층을 형성한 아이언이다. MX 시리즈의 역사는 10년도 채우지 못한 채 맥이 끊길 위기가 있었다. 미즈노 본사의 글로벌 라인 통폐합 전략에 의해 2010년 MX-300을 끝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정통 연철 단조 아이언에 대한 한국 골퍼의 갈증이 MX 시리즈를 부활시켰다. 국내 골퍼는 MX 시리즈 특유의 손맛과 잊을 수 없는 퍼포먼스에 대한 만족감을 무기로 미즈노 본사에 지속적으로 요청했고, 2016년 결국 한국 전용 모델로 뉴 MX-30 포지드 아이언이 재탄생했다. 이후 2018년 MX-50에 이어 올해 MX-70까지 선보였다. 미즈노 관계자는 “소비자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했고 브랜드는 소비자의 니즈를 캐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즈노가 MX 시리즈의 화려한 귀환을 내세우며 꺼내 든 광고 카피는 ‘다시, 아이언! 다시, MX!’였다. 

(왼쪽부터) 스카티 카메론 테릴리움 T22 퍼터(2019년), 캘러웨이 그레이트 빅버사(GBB, 1995년), 미즈노 MX-300 아이언(2010년), MX-23 아이언(2004년)
(왼쪽부터) 스카티 카메론 테릴리움 T22 퍼터(2019년), 캘러웨이 그레이트 빅버사(GBB, 1995년), 미즈노 MX-300 아이언(2010년), MX-23 아이언(2004년)

네이밍 마케팅을 통해 레트로 느낌을 살린 브랜드도 있다. 캘러웨이골프가 대표적이다. 1991년 당시 250cc 대형 헤드로 거센 돌풍을 일으킨 캘러웨이는 빅버사(Big Bertha)로 성공 가도에 올랐고, 4년 뒤 1995년 골프업계 최초로 초경량 티타늄 소재를 사용한 GBB(Great Big Bertha) 드라이버로 골프업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캘러웨이는 20년 전 공전의 히트작에 최신기술을 입혀 다시 한번 그 영광을 되살리고자 2015년판 GBB 드라이버를 재출시했다. 그리고 2017년 등장한 에픽(Epic) 드라이버에도 GBB라는 네이밍 마케팅을 활용해 인기를 끌었다. GBB 에픽 드라이버는 과거의 GBB와는 헤드 디자인부터 기술력까지 완전히 새로운 제품이었다. GBB 에픽은 볼로 전달하는 에너지 손실을 줄인 제일브레이크 기술로 혁신을 일으킨 것이 주효했으나 GBB의 레트로 감성도 한몫 거들었다.   

2000년대 중반 페어웨이 우드 시장을 평정한 V스틸(Steel)은 테일러메이드의 역작 중 하나다. 2000년대 초반 테일러메이드의 200 시리즈 업그레이드 모델인 V스틸 페어웨이 우드는 지면과 접촉면을 줄인 V자형 솔 디자인으로 혁신을 일으켰다. 잔디의 저항을 억제하고 임팩트 때 클럽 헤드를 스퀘어로 유지하는 성능이 핵심이다. 당시 최경주, 박세리 등이 사용해 흥행을 주도했다.

테일러메이드는 올해 새롭게 선보인 심(SIM) 페어웨이 우드에도 상징적인 V스틸 디자인을 채용하고 경량 카본 구조에 티타늄 페이스, 스틸 솔 웨이트를 결합해 낮은 무게중심의 제품으로 발전시켰다.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획기적인 디자인을 과시한 테일러메이드도 페어웨이 우드만큼은 전성기를 누린 레트로 감성을 놓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서민교 골프다이제스트 기자]

[사진=윤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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