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스, 잊을 수 없는 그때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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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스, 잊을 수 없는 그때 그 순간
  • 전민선 기자
  • 승인 2019.04.1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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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스는 명장면이 속출하는 지구 상 최고의 대회다. 아마 수많은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것이다.

최고의 장면이 나오기까지 또는 극적인 샷을 마치고 환호의 순간이 나올 때까지의 순간을 다시 한 번 재조명해봤다.

잭 니클라우스
만 46세의 나이로 마스터스 최고령 우승자가 된 잭 니클라우스. 아들 재키가 캐디로 나선 1986년 대회는 니클라우스 부자에겐 잊지 못할 순간 중 하나다. 지난 2년간 우승이 없었고 6년 동안 메이저 대회에서의 우승도 없던 터였다. 첫날과 둘째 날 각각 71타와 74타를 치며 간신히 본설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3라운드에서 69타를 기록하더니 대회 마지막 날 65타를 기록하며 열여덟 번째 메이저 대회 트로피와 마스터스에서만 여섯 번째 그린 재킷의 주인공이 됐다. 파5인 15번홀에서 그가 멋지게 성공시킨 3.5m짜리 이글 퍼트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주위의 소음 때문에 집중이 잘 안 되는 듯 신중하게 라인을 살피던 니클라우스는 어드레스에 들어갔고 과감한 퍼팅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볼이 들어갈 때 천천히 퍼터를 하늘로 들어 올리는 장면은 다시 봐도 끝내준다.

샌디 라일
1985년 디오픈 우승자인 영국의 샌디 라일이 1988년 대회 마지막 날 18번홀에서 시도한 벙커 샷은 그야말로 최고의 회심타라 할 만하다. 흔하디흔한 벙커 샷이 왜 최고의 샷 중 하나인지는 다음 내용을 보면 짐작이 갈 것이다. 샌디 라일은 줄곧 3타 차 선두를 지켜오다가 이른바 아멘 코너라 불리는 11번과 12번홀에서만 3타를 잃었다. 미국의 마크 캘커베키아와 동타를 이룬 채 18번홀에 들어섰다. 1번 아이언으로 티 샷을 한 라일의 볼은 그만 벙커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린까지 남은 거리는 150야드 정도. 그 위치에서 그린에 볼을 올리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7번 아이언으로 친 볼이 2단 그린의 위쪽 가장자리에 잠깐 머물더니 핀 약 3.5m 거리까지 흘러 내려왔다. 벙커에서 뛰어나오면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라일은 오른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그린을 향해 걸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침착하게 버디를 잡아내며 1타 차 우승을 차지했다. 그건 영국 출신 선수의 마스터스 첫 우승이었다.

필 미컬슨
‘레프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왼손잡이 골퍼 필 미컬슨이 2004년에 선보인 과감한 버디 퍼팅은 그야말로 최고의 순간 중 하나다. 대회 마지막 날 16번홀까지 어니 엘스에게 1타 뒤지고 있었다. 17번홀에서 버디를 추가하며 동타를 이룬 미컬슨이 세컨드 샷을 남겨놓았을 때 이미 어니 엘스는 경기를 마치고 플레이오프를 준비하고 있었다. 미컬슨이 약 5.5m 거리에 볼을 떨궜을 때만 해도 연장으로 들어가는 듯했다. 내리막 버디 퍼트를 한 후 무릎을 살짝 굽히며 볼을 지켜보는 그의 모습에서 간절함이 묻어난다. 당시 서른네 살의 미컬슨은 그 전까지의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12년 동안 메이저 대회와는 인연이 없었다). 또 늘 ‘2인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누구보다 우승이 간절했다. 아마도 홀을 향하는 볼에 주문을 걸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들어가기만 하면 내 너에게 친히 키스를 해주마.’ 볼은 홀 뒤 턱을 맞고 그대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미컬슨은 하늘로 두 팔을 벌리며 번쩍 뛰어올랐다. 마치 커다란 몸집의 곰이 포효하며 날뛰는 듯했다. 이를 지켜본 갤러리나 시청자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 짜릿함을 경험한 순간이었다.

찰 슈워젤
대회 마지막 날 우리의 눈과 귀는 모두 최경주에게로 쏠려 있었다. 하지만 정작 이 대회의 주인공은 같은 조에서 플레이한 20대 중반의 남아공 출신 찰 슈워젤이었다. 생애 두 번째 마스터스 출전이었던 슈워젤은 첫 홀부터 심상치 않았다. 그린 우측으로 벗어난 볼을 어프로치 샷으로 홀에 집어넣으며 버디를 낚더니 파4, 3번홀에서는 120야드짜리 이글을 기록했다. 정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의 기세였다. 이글을 기록한 볼을 홀에서 끄집어낸 후 밝게 미소를 지으며 최경주와 주먹을 맞부딪칠 때는 20대스러웠다. 그는 나이에 비해 좀 겉늙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아마 그가 우리말을 할 줄 알았다면 최경주에게 “형, 힘내요”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슈워젤은 초반의 무시무시한 기세와는 달리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10개 홀 연속 파를 기록하는 등 조용한 행보를 거듭했다. 그러다 17번과 18번홀에서 연속 버디를 낚으며 남아공 출신으로는 게리 플레이어, 트레버 이멜먼에 이어 세 번째로 그린 재킷의 주인공이 됐다. 안타깝게도 최경주는 공동 8위로 경기를 마쳤다.

버바 왓슨
역대 마스터스 중 아마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장면이 2012년 연장 승부에서 나왔다. 버바 왓슨은 대회 마지막 날 10언더파 278타를 기록하며 남아공의 루이 우스트히즌과 함께 플레이오프에 들어갔다. 파4, 10번홀에서 치러진 연장 두 번째(연장 첫 번째는 18번홀에서 치러졌는데 두 명 모두 파를 기록했다)에서 왓슨은 파를 기록했다. 이때 기록한 파로 우승을 확정 지었는데 이것이 바로 문제(?)의 파다. 연장 두 번째에 들어간 두 선수는 모두 티 샷 미스를 범했다. 우선 우스트히즌은 볼이 오른쪽 러프로 들어갔고 결국 세컨드 샷을 그린에 올리지 못했다. 왓슨은 페어웨이 왼쪽 숲으로 볼이 사라졌다. 볼을 발견하기는 했지만 남은 거리는 150야드에 제대로 볼을 걷어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들 만큼 낙엽과 잔가지투성이의 지역에 놓여 있었다. 좌우에 서 있는 나무들까지 가지를 늘어뜨린 채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다. 볼을 유심히 바라보는 왓슨의 모습은 대체로 담담했다. 볼을 향해 걸어갈 때부터 그는 투우사처럼 호전적인 모습이었다. 캐디와 상의 끝에 웨지로 강력하게 걷어낸 볼은 그린 왼쪽으로 떨어져 핀을 향해 굴러갔고 결국 파 세이브에 성공하며 자신의 첫 번째 메이저 타이틀을 획득했다.

타이거 우즈
타이거 우즈가 2005년 대회에서 환상적인 칩 샷을 선보인 건 골프 팬들에게는 잊지 못할 순간이다. 2005년 대회의 마지막 날 우즈는 크리스 디마코와 연장 승부 끝에 4.5m 버디 퍼팅을 성공시키며 통산 네 번째 그린 재킷을 수집했다. 승부는 그렇게 끝났지만 이 대회의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파3, 16번홀(179야드)에서의 칩 샷이다. 우즈의 티 샷은 그린 왼쪽의 퍼스트 컷과 세컨드 컷 사이에 떨어졌다. 약 12m 거리의 칩 샷을 남겨놓은 상황. 우즈는 그린 상단을 이용해 볼을 홀 쪽으로 90도 꺾이게끔 미끄럼틀을 태웠다. 볼은 천천히 굴러 홀 바로 앞에 멈춰 섰고 나이키에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광고 효과를 안기면서 홀로 떨어졌다. 샷을 하기 전 그린 좌우를 살피는 그의 매서운 눈매와 버디를 성공시키면서 ‘그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어’라고 말하는 듯 포효하던 모습은 잊을 수 없다.

애덤 스콧
마스터스 사상 처음으로 호주 출신의 챔피언이 탄생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대회 마지막 날, 그립 끝을 오른쪽 가슴에 붙이는 롱 퍼터를 사용해 퍼팅하는 애덤 스콧이 아르헨티나의 앙헬 카브레라와 연장 승부에 들어갔다. 첫 번째 연장을 파로 비긴 두 사람은 10번홀에서 두 번째 연장전을 치렀다. 둘 다 세컨드 샷으로 친 볼을 핀 3m 부근에 떨궜다. 카브레라가 먼저 시도한 퍼팅이 홀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버디를 놓친 카브레라는 안타까운 듯 자신의 퍼터를 하늘로 던졌다. 이를 지켜보던 애덤 스콧이 롱 퍼터를 몸에 밀착시키며 천천히 호흡을 조절했다. 만약 성공시키면 지구 반대쪽 남반구에서는 난리가 날 일이었다.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던 그는 볼을 떠나보냈고 ‘땡그랑’ 소리와 함께 경기를 끝낼 수 있었다. 볼이 들어가자 스콧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포즈를 선보이며 환호했는데 왼쪽 가슴에 붙은 의류 브랜드의 로고가 그렇게 고급스러워 보이긴 처음이었다.

정리_전민선 골프다이제스트 기자 jms@golfdig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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