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강지선, 조금 천천히 가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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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지선, 조금 천천히 가면 어때
  • 고형승 기자
  • 승인 2019.03.0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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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대표를 거쳐 미국에서 프로 데뷔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들어온 선수가 있다. 골프를 시작한 나이도 늦은 데다 프로 데뷔까지 늦었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느림보 골프 인생을 살아온 강지선이 공개하는 다이어리를 살짝 들여다보자. 

난 육상에 꽤 소질이 있었다. 도 대표로 대회에 출전해 메달도 딸 만큼 제법 빨랐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머니를 따라 골프 연습장에 간 건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다. 내게 또 다른 문을 열어줬고 그 안으로 발을 내디딘 순간 돌이킬 수 없었다.

골프장 길이가 100m 정도인 규모가 작은 연습장이었다. 처음엔 볼을 톡톡 치다가 한번은 있는 힘껏 휘둘렀는데 그물망에 날아가 맞았다. 그 느낌은 정말 짜릿했고 지금까지 잊을 수 없다. 그 후로 집에서 TV로 스포츠 뉴스를 볼 때마다 타이거 우즈와 미셸 위는 어린 나를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골프는 또 다른 스포츠의 재미를 느끼게 해준 고마운 운동이다.

조금은 당돌하게도 부모님에게 골프를 시켜주면 안 되겠냐고 물어봤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언젠가는 나도 스포츠 뉴스에 나오고 싶어.’ 어릴 때부터 조금이라도 가만히 있으면 강지선이 아니었다. 늘 뛰어다녔다. 책상에만 앉으면 졸기 일쑤였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법원여자중학교에 진학했다. 골프부가 있는 중학교였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골프 연습을 하면서 대회에도 출전했다. 하지만 월등한 실력을 보이는 또래 친구들을 따라가는 데 무리가 있었다.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마침 친오빠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유학을 간다고 했다. 오빠는 공부하기 위해 갔지만 골프 환경도 괜찮다며 꼬드겼다. 하지만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 없이 지구 반대편까지 가서 골프를 한다는 게 두려웠다. 어머니는 “공부도 하고 골프도 하고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접할 수 있지 않겠느냐”면서 하나밖에 없는 딸의 등을 냅다 떠밀었다.

결국 중학교를 마친 나는 남아공을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오빠와 함께 홈스테이를 하며 단둘이 낯선 외국 생활을 시작했다. 케이프타운에 있는 밀너턴고등학교에 다녔다. (골프부가 있는) 외국인 학교였지만 영어를 잘하지 못하니까 친구들의 놀림 대상은 항상 한국에서 온 이방인이었다. 한창 사춘기를 겪던 내겐 최악이었다.

비록 학교에선 힘들게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골프장에선 즐거웠다. 무엇보다 골프 환경이 좋았다. 남아공의 골프장은 굳이 따로 부킹하지 않더라도 주니어 선수가 2시 넘어 찾아가 플레이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면 “언제든지”라고 답한다. 타국에서 유일하게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여전히 속내를 털어놓을 만큼 가까운 친구는 없었다. 학교와 연습장, 웨이트 트레이닝장 그리고 집(오빠는 영어를 더 배우겠다며 친구 집으로 들어가면서 혼자 남았다). 내 활동 범위는 제한적이었고 뜨겁게 머리 위로 내리쬐는 태양열이나 후줄근한 철판을 덧댄 집 그리고 까만 피부의 외국인이 없었다면 그곳이 한국이라고 해도 크게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생활이 단조로웠다.

그때 내 말 상대가 되어준 사람들은 남아공주니어골프협회 직원들이 전부였다. 그들은 항상 내 안부를 물었고 연습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곤 했다. 성적이 좋지 않아도 언제나 “오늘은 어떤 걸 느꼈어?”라고 물었다. 그럼 그때그때 느낀 바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들은 “그거면 충분해”라고 말하며 “사람이 어떻게 매일 잘할 수 있겠어. 네가 배우고 느낀 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라고 다독여줬다.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그 위로의 한마디로 버틸 수 있었고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일찍 골프를 시작한 친구들과 거리를 좁힐 수 있었던 시기였고 많은 경험을 했다. 성적도 눈에 띄게 좋아졌고 우승도 했다. 국적은 한국이었지만 남아공을 대표해 여러 대회에도 출전했다. 우리나라의 국가 대표 상비군으로 활동 했다고 보면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미국 대학교에서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장학금을 줄 테니 대학교에 진학할 계획이 없냐는 내용이었다. 그때 난 이렇게 생각했다. ‘미국에 다녀오는 것도 괜찮겠는걸?’

나는 미국 플로리다에 있는 데이토나주립대학(2년제)에 입학했다. LPGA투어 퀄리파잉스쿨 최종전이 열리는 LPGA인터내셔널이 이 대학교 재학생들의 연습 코스다.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인생을 바꾼 한마디

LPGA투어 퀄리파잉스쿨이 열릴 때 (김)세영 언니(LPGA투어 활동 중)를 처음 만났다. 내가 먼저 찾아가 인사를 건넸고 언니는 반갑게 응대했다. 언니도 미국은 처음이라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지냈다. 그러다 하루는 언니가 진지한 표정으로 이런 질문을 했다. “너는 골프를 어떻게 하고 싶어?” 그건 정말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골프 선수를 하고 싶은데요”라고 말했다.

언니는 단호한 어조로 내게 “한국에선 말이야”라고 입을 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훈련만 해. 학교를 병행하면서 골프를 하는 게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때까지만 해도 혼자 연습을 해온 터라 실력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던 순간이었다. 뭔가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벌겋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듬해 탬파에서 연습하고 있을 때 세영 언니는 자신의 코치(이경훈)가 한국에서 왔는데 레슨을 받아볼 것을 권유했다. 나는 그동안 안니카 소렌스탐이나 필 미컬슨이 쓴 교습서를 읽거나 동영상을 보고 혼자 연습했다. 그러다가 한두 번씩 원 포인트 레슨을 받은 게 고작이었다. 그것도 외국 코치에게 말이다. 그런데 한국 교습가에게 레슨을 받아보니 이건 신세계였다.

‘기본’에 대해 생각한 계기였다. 책으로만 공부해 얻어지는 건 한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더 배우고 싶었다. 그때 LPGA투어는 우리나라 선수가 상위권을 모두 휩쓸고 있었다. 그렇다면 확실한 기본기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아닌 한국으로 가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1년 전 세영 언니가 내게 한 말이 그제야 이해가 갔다.

골프 선수로 당연히 이름을 알리고 싶지, 어영부영 시간만 보내다 선수 생활을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그건 정말 엄청난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내 홈 코스라고 할 수 있는 골프장에서 LPGA투어 퀄리파잉스쿨이 열리는데 굳이 그걸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맞는 결정일까?’ 4년제 대학 편입도 고려하던 상황이었다. 나는 또 세영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는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물었다. “지선아,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자. 운동이라는 걸 넌 언제 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바로 답할 수 있었다.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러자 언니는 바로 이렇게 내게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공부는 언제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 최고의 타이밍에 적절한 조언을 해준 것이었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다시 남아공으로

남아공에서 미국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의 각종 테스트와 시드전에 고개를 떨궜다. ‘왜 이렇게 테스트를 보는 게 많아.’ 미국에선 프로 선언만 하면 프로 타이틀을 획득할 수 있지만 한국은 달랐다. 선수 등록부터 룰 교육도 받아야 하고 거쳐야 할 테스트가 여러 가지로 많았다.

2016년 9월에 한국에 들어와 2017년을 목표로 연습했다. 일산(집)에서 용인까지 새벽 5시에 첫차를 타고 연습장을 찾았다. 2017년에 KLPGA 준회원 선발전을 통과하고 3부투어에서 우승하고 정회원까지 딸 수 있었다.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는 한 해였다.

2018년에는 2부투어에 참가했지만 성적이 생각만큼 따라주지 않았다. 나이 어린 선수들이 치고 올라오는 걸 보면서 ‘나는 필드의 주인공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잠을 못 이뤘다. KLPGA 대회 분위기에 잘 스며들지 못하고 오히려 튕겨 나가고 있는 건 아닐까 의구심이 들었다.

주위에서는 “마음을 좀 더 편하게 가져라. 아무리 어려도 그들은 이미 너보다 많은 경험을 한 선수들이다”라고 말하며 나를 위로했다. 그렇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선수들은 이미 3년 이상 투어 경험을 한 선수도 있었다. 하지만 뒤처지기 싫었고 결국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버렸다. 정말 그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8월까지의 성적은 무척 좋지 않았다. 레슨보다 마음부터 잡는 게 시급했다. 코치 선생님에게 “혼자 한 달간 전지훈련 좀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국내 골프장 한 곳에 콕 처박혔다. 그러던 중 하루 날을 잡아 코치 선생님을 찾아갔고 레슨을 받았다. 그런데 그때 감이 왔다. 정말 이상한 기분이 온몸을 감쌌다.

몸과 마음을 추스른 후 도전한 시드 순위전에서 46위에 올랐다. 조건부 시드를 받았지만 그 성적표에 만족한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와서 지난 2년간 많은 걸 배웠다.

나는 다시 남아공으로 간다. 두 달 정도 다녀올 계획이다. 고등학생 때 지낸 홈스테이 가정에서 시간을 보내며 훈련에 매진할 것이다. 외로움과 싸우며 오로지 골프만 생각하던 그때의 감정을 다시 끌어낼 것이다. 조급함이나 부담감을 내려놓고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되찾기 위해 간다.

세영 언니는 가끔 “너 한국에 온 걸 후회하지 않아?”라고 물어본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언니, 후회하지 않아요. 오히려 정말 많은 걸 배우고 있어서 좋아요. 힘들지만 고생한 만큼 성공하면 더 기쁘지 않을까요?” 

강지선 
나이 23세 
신장 172cm 
소속 리코스포츠에이전시
학력 화정초-법원여중-밀너턴고등학교(남아공)-데이토나주립대학(미국)
우승 KLPGA 아바쿠스·유림골프클럽점프투어 with 현대솔라고 11차전(2017년)
 

[고형승 골프다이제스트 기자 tom@golfdig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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