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기누설 취재 에피소드 [Feature: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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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기누설 취재 에피소드 [Feature:1504]
  • 김기찬
  • 승인 2015.04.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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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기누설 취재 에피소드 [Feature:1504]

사진_브록 데이비스(Brock Davis)

 

 

지면은 그럴듯하게 나오더라도 실은 그것이 나오기까지 우리 에디터들은 간난신고를 겪는다. 17주년 창간호를 맞이해 기자들이 겪었던 천기누설 황당무계 취재 에피소드들을 공개한다. 누군가에겐 감사와 교훈의 말씀이고, 누군가에겐 하소연이고, 또 누군가에겐 가혹한 질타일 수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렇게라도 숨겨왔던 얘기 보따리를 풀고 가야겠다. 글_GD편집부

 



누드 골퍼 소피 산돌로

2009년10월에는 ‘금기탈출(禁忌脫出)’이란 기획을 진행했는데 반응이 참 열광적이었다. 터부(Taboo)로 여겨지던 여자 선수들의 섹시 논쟁을 다뤘기 때문이다. 호주의 모델 겸 선수인 안나 로손과 미국의 나탈리 걸비스 등 섹시 콘셉트를 가진 LPGA투어 선수들을 비키니 사진과 함께 소개했다. 마침 섹시 콘셉트로 선수들을 홍보하는 빌헬미나라는 마케팅 회사도 적극적으로 자료를 보내주었다. 그중에 대표는 유러피언여자투어(LET) 선수인 ‘누드 골퍼’ 소피 산돌로(Sophie Sandolo)였다. 프랑스 니스에서 태어난 그녀는 소피 마르소를 연상시키는 33세의 프로 골퍼로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에 능통한 재원이기도 했다. 여체와 골프를 응용한 다양한 예술 사진들을 찍었고 2005년부터 매년 누드 캘린더를 제작하고 있었다. 한국과 프랑스라는 거리상의 한계로 그녀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나는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녀는 친절하게도 다양한 사진들을 우리 잡지에 실을 수 있게 해주었다. 산돌로는 16세에 이탈리아 국가대표 팀 선수였고 2000년에 프로 데뷔해 2005년에 상금 5위에 올랐다. 08~09년 시즌은 부상으로 2년을 쉬었으나 다시 투어에 복귀해 지난해는 선샤인레이디스투어에서 4위, 5위를 했으며 이탈리안레이디스오픈에서 8위를 했다. 올해 만약, 프랑스에 가게 된다면 우연을 가장해 로맨틱하게 그녀와 조우하는 것이 위시리스트 1번이지 않을까 싶다. _남화영

 

 



흔히들 ‘큰집’, 혹은 ‘학교’. 사전적인 의미로는 구치소, 혹은 감옥이라는 곳에서 우리 편집부에 간혹 편지가 온다. 서두에는 흔히 ‘<골프다이제스트>를 즐겨보던 구독자’라는 인사와 소개말로 시작한다. 그리고는 ‘피치못할 사정으로 큰집에서 지내고 있지만 예전에 하던 운동인지라 여기서도 <골프다이제스트>만 읽게 된다’고 적는다. 본론으로 들어가면 책을 보내달라거나 혹은 어느 달 치의 잡지를 보내달라는 부탁이 이어진다. 그중 어떤 이는 ‘송금할 테니 계좌번호를 적어 달라’고 적기도 한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기죄로 들어와 있다’는 하소연을 늘어놓기도 한다. 옛말에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했다. 친지가 있어 그들에게 부탁해도 될 텐데, 그들로부터도 외면 받으면 그땐 참으로 외로울 것 같다. 그래서 한 해에 평균 서너 차례 감옥으로부터 배달되어 온 손으로 쓴 편지를 읽으면, 과월호 잡지의 여유가 있는 한 가급적 보내주는 편이다. 그건 갇힌 이들에 대한 위로의 차원이라기보다는, 우리 잡지가 주는 긍정적인 면이 많기 때문이다. 골프는 룰을 지키고 에티켓과 매너를 중시하는 운동이다. 매달 룰(Rule) 지면이 빠지지 않고,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상식과 지혜와 경험들이 담겨 있다. 그것이 수감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리라 보기 때문이다. 골프를 통한 교화(敎化)의 차원에서 우리는 잡지를 보내주곤 한다. 젊은이가 군대를 가면 남성지와 스포츠지를 구독한다. 나이든 이들이 큰집을 가면 <골프다이제스트>를 읽으며 수양을 한다. 우리 잡지에는 그들이 당장 가질 수는 없지만, 지향하고픈 삶이 그려진다. 감방에서 멘탈 라운드를 하는 건 시간을 경건하게 보내고 사회로 복귀하기 위한 좋은 교육일 것이다. _남화영

 

 

 



골프광 시리즈는 계속된다

2004년 4월호에 봅 패건이란 골퍼가 골프광협회(Golfnuts Society)에 ‘올해의 골프광’으로 선정됐다는 기사가 실렸다. 협회는 론 갈란드라는 이가 1986년에 만든 단체로 여기에는 각종 기상천외한 골프광들이 모여 있었다. 마이클 조던이 ‘1989년의 골프광’으로 선정되어 명예회원이었고, 골프에 얼마나 치중하느냐에 따라 그해의 골프광을 뽑았다. 우리는 이에 착안해 다음달부터 골프광(Golf Mania) 시리즈를 연재했다. 중동에 살면서 교통 사고를 당해 수술을 받았어도 대변봉지를 차고 필드로 나간 골퍼가 있었고, 수백권의 골프서적을 모은 학구파 골퍼나 1000번이 넘는 골프 라운드를 일일이 기록으로 남겨 기록하는 골퍼도 있었다. 그렇게 진행된 한국의 골프광이 모두 17명. 해외 골퍼들도 취재했다. 미국의 골프 콜렉터였던 유진 발든(사진)은 35년동안 1만여개의 골프클럽을 모으기도 했으며, 데이비드 우드는 1년만에 전세계 특이한 골프장을 모두 돌아보기도 했다. 똘끼 가득한 골프광들이여 기다리시라. 앞으로도 우리의 골프광 시리즈는 계속된다. 조만간 골프광협회 한국지부를 설립할 수도 있다. _남화영

 

 

 

 



비키니 입은 용감한 프로 골퍼

매년 8월에 나는 수영복을 입은 아름다운 여성 골퍼들로 지면을 꾸미고 있다. 그 첫 시작은 2012년 여자프로골퍼 4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비키니 촬영에 허락한 용감한 선수는 (왼쪽부터)양수진, 이명환, 임성아, 박유나 4명이었다. 여름 휴식기를 맞아 ‘버디와 함께하는 리프레시’라는 콘셉트로 장소는 신라호텔 하바나 라운지에서 진행되었고, 그들은 색다른 매력을 발산했다. 양수진은 레드컬러의 비키니를 코디하며 화려한 매력을 발산했고, 이명환은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과시했다. 눈웃음이 예쁜 박유나는 촬영의 순간을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 표현했으며, 임성아는 친구들을 통해 다시 활력을 얻었던 자리였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듬해 여름 이보미가 여름 휴가지에서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보미 키즈 2명과 함께 강원도 여행을 떠난 그녀는 이른 아침부터 비키니를 착용하며 나타나 자신의 탄탄한 몸매를 자랑했다. 매사에 자신감 넘치는 이보미는 자신의 비키니 모습에도 부끄러운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프로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_인혜정

 

 

 

사진제공_<골프다이제스트> 중국판

 

5. 몇천만원 어치의 골프백

<골프다이제스트>는 매년 새로 출시된 캐디백과 보스턴백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캐디백과 보스턴백 특집이 4월호에 진행되었다. 브랜드별로 캐디백, 스탠드백, 캐리어형 캐디백 총 3가지 디자인으로 설계된 촬영 아이템을 업체들로부터 전달받았다. 10개의 브랜드에서 총 30개의 캐디백을, 거기에 보스턴백까지 포함하면 약 60여개의 골프백이 스튜디오 안에 가득 차 있었다. 사진으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스튜디오가 발 디딜 틈도 없이 캐디백과 보스턴백으로 빽빽했는데 가격만 몇천만원을 호가했다. 하루 종일 촬영을 했고 반납하는 데에만 하루 이상 걸렸다. 내 간도 그때 부쩍 커진 것 같다. 그 어마어마한 촬영분을 소화하고 난 뒤로는 웬만한 아이템 촬영이 잡혀도 전혀 두려움이 없다. _인혜정

 

6. 슬리퍼 신은 멋쟁이 노승열

2015년 2월호의 표지를 장식한 노승열. 그는 촬영 내내 엉뚱한 매력을 발산하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주도했다. 지난해 그는 취리히클래식 우승으로 PGA투어 첫승을 기록했고 올초 미국 CBS스포츠에서도 PGA투어 기대주로 선정됐다. 우리는 그런 그를 표지로 내세웠다. 그는 레드 컬러의 수트를 차려 입고 시종일관 음악의 리듬에 맞춰 어깨를 흔들어 댔다. 2013년 인터뷰 때와는 완전 다른 모습이었다. “노래는 부르지 못하지만 댄스는 자신 있다”며 뛰어난 몸놀림을 선보여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멋있게 수트를 차려 입은 그의 패션 스타일에 함정이 있었다. 맨발에 슬리퍼! 독자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현장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 스태프들은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그는 ‘소장용으로 사진을 찍어달라’며 제안했다. 섹시한 자신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다며 단추를 4개나 풀어헤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장난삼아 찍었던 사진의 결과물이 더 나음을 인지했고 그것을 지면에 그대로 담았다. _인혜정

 

7. 억만장자 줄리앙 로버트슨

지난해 2월 설을 지나 코스 설계가 송호, <당신도 라운드할 수 있는 세계 100대 코스> 저자인 백상현 씨와 팀을 이뤄 뉴질랜드 남북섬의 8개 코스를 돌았다. 그중 뉴질랜드 최고의 코스로 유명한 네이피어의 케이프키드내퍼스를 방문했을 때였다. 파3인 3번 홀에서 막 홀아웃을 했을 무렵, 뒤에서 헤드프로가 다가오더니 ‘뒷조가 패스해도 되겠느냐’고 정중하게 양해를 구해왔다. 우리야 시간에 쫓기지 않는 방랑 여행객들이니 아무려면 뭔 상관인가. 그런데 잠시 후에 티잉그라운드에 오른 이는 80이 넘은 노인 한 명이었다. 그가 한 샷은 멋지게 온그린 되었고 그는 파를 잡았다. 우리는 그와 함께 하이파이브를 하고 인사를 나눴는데, 맙소사, 바로 그 코스의 설립자이자 억만장자 줄리앙 로버트슨(Julian Robertson)이었다. 90년대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와 쌍벽을 이루던 타이거펀드의 설립자이자 헤지펀드계의 거물이었다. 그는 2000년에 은퇴하고 뉴질랜드의 그림 같은 절경에 세 개의 골프리조트를 지어 운영하고 있었다. 83세의 나이에도 골프를 즐기는 그와 함께 어깨동무하고 사진(왼쪽 두 번째 인물)을 찍은 며칠 뒤에는 뉴질랜드 북섬의 카우리클리프스 리조트에서 또다시 만나는 우연도 겪었다. 월간지 <포브스>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34억달러로 추정되며 세계 512위 부자에 올라 있다. 그의 골프 리조트 세 곳은 현재 아들인 제이 로버트슨이 경영하고 있다. 내 기자 인생에 취재 중에 그만큼 활기찬 노익장에다, 그만큼 엄청난 부자를 만날 일은 영영 없을 것 같다. 부자의 기운을 얻게 악수나 한 번 더 할 걸 그랬다. _남화영

 

8. 남성의 리비도 아오이 소라

<골프다이제스트>는 월드와이드 잡지인만큼 미국 뿐만 아니라 각 나라의 콘텐츠를 참고하거나 응용할 때도 있다. 그런데 지난해 2월 중국판에 실렸던 기사는 다소 의외지만, 남성 독자들의 리비도(Libido)를 한껏 자극할 만했다. 일본 성인비디오계의 수퍼스타라고 할 아오이 소라의 화보 인터뷰 때문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아오이 소라는 중국의 SNS서비스인 웨이보의 가장 높은 단계에 올라 있고, 팔로워만 1463만명에 이른다고 했다. 1일 방문자 수만도 40만명이 넘었다. 인기가 오르자 그녀는 중국에서 콘서트를 열기도 했고, 노래그룹 잼(JAM)의 구성원으로 신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녀가 마치 중국의 뜨는 신문화의 상징처럼 여겨졌다는 것이 인터뷰를 하게 된 이유였다. 물론 아직 100타를 깨지는 못했지만, 구력 8년의 골퍼라는 사실도 흥미로운 취재 테마였다. 우리는 이 지면을 중국판으로부터 받고는 고민에 빠졌다. 과연 기사를 싣는 것이 좋을까? 점잖은 우리 독자층을 고려할 때 이것이 필요하고 유익한 기사일까? 중국에서의 인터뷰와 화보를 마냥 썩힐 것인가? 지면을 내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것이 가져올 의미를 생각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싣지 못했다. 이처럼 우리 편집부에는 만들어졌다가 결국 실리지 못하는 기사들이 수두룩하다. 엄격한 자체 검열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진과 번역된 내용이 아까웠던 건 사실이다. 마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얘기를 못하다가 속병이 든 동화 속 어느 장인의 심정이었다. 창간 기념호를 맞아, 기자들의 취재 에피소드를 털어놓는 마당에 털고 가기로 했다. 겨울에 인터뷰가 이뤄진지라 몇몇 소라넷 애호가들이 흔히 봐오던 살색 완연한 한여름 풍경이 아닌, 겨울 느낌이 물씬 풍긴다. 하지만 남심을 들었다놨다하는 매혹적인 미소는 변함없다. 1년 넘게 꾹꾹 눌러 묵혀두었다가 마침내 지면에 소개하고 보니, 아~ 막혔던 것이 한 번에 분출되는 듯한 이 야릇한 쾌감. 이런 것이 혹시 카타르시스련가. _남화영

 

 

 

 



자동차와 프로골퍼의 콜라보레이션

자동차 전문 기자가 아닌 골프 전문 기자가 자동차 시승기를 매달 연재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동차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도 없이 시승을 하고 평가한다는 점이 어찌 보면 골프를 모르면서 용품에 대해 평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자동차 시승을 맡으면서 고민에 휩싸였다. 전문적으로 풀어내기에는 자신이 없었고, 그렇다고 보도자료를 받아서 짜집기를 하자니 기자로서 체면이 말이 아니고. 결국 그 어떤 매거진에서도 시도하지 않았던 포맷을 고안해 냈다. <골프다이제스트>의 독자라면 골프에 관심이 많다는 전제 하에 이미 잘 알려진 프로골퍼를 등장시켜 보자는 생각이었다. 프로골퍼들 역시 자동차에 전문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동차와 프로골퍼가 어떤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는지 파고들었고, 항상 그것을 도출해내기 위해 머리를 짜냈다. 그들만의 이야기를 차에 빗대어 풀어내 보자는 생각이었다. 2012년 4월호부터 14년 12월까지 3년에 걸쳐 진행을 했으니 꽤 오랫동안 공들인 연재였다. 스스로 공을 들였다고 표현하기에는 좀 민망하지만, 2페이지에 자동차와 프로골퍼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시간을 많이 들였던 건 사실이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자동차와 프로골퍼, 그리고 사진 기자와 일정을 조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혹여 선수가 대회 기간과 맞물리게 되면 직접 차를 몰고 대회장까지 찾아가야 했다. 또 고려해야 할 사항은 자동차와 잘 어울릴만한 촬영 장소를 물색하는 것이었다. 어떤 곳은 허가를 받아야 했고, 또 몰래 찍다가 쫓겨나기도 했다. 지난 12년 10월호에 실린 볼보 시승 촬영은 정말 잊고 싶은 순간 중 하나다. 서해에 한적하고 경치가 좋은 바닷가를 물색한 뒤 골프대회를 앞둔 정재은을 불러 촬영을 진행하려 했다. 차를 적당한 위치에 세우기 위해 들어가다가 모래에 바퀴가 빠지고 말았다. 경운기까지 동원해 차를 빼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렵게 시간을 내준 선수에 대한 미안함이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결국 선수와 차, 배경을 각각 따로 찍어서 합성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변수는 날씨다. 더운 여름에 뜨거운 자동차 보닛 위에 올라가 인어공주 자세를 취해줬던 박희영, 한겨울 추위에도 치마를 입고 촬영에 열심히 임해줬던 허윤경, 비가 오는데도 밝고 쾌활한 성격으로 여러 포즈를 취하며 스태프들을 안심시켜줬던 임지나에게는 특별히 고맙다. 지난해 12월까지 시승기 코너에 참여해준 이들은 모두 32명이다. 여자 프로 골퍼 24명, 남자 프로 골퍼 4명, 골프 해설 위원 2명, 골프 교습가 1명, 심지어는 일본에서 온 전문 카 레이서이자 레이싱 모델인 이토 리나까지 등장했다. 비록 과정은 어려웠을지 몰라도 32명의 시승자들과 함께 했던 촬영과 인터뷰는 정말 잊지 못할 것 같다. _고형승

 

 

 

 

 



미셸 위가 등장하던 해

우리는 미국판 <골프다이제스트>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있다. 따라서 대체적으로 표지는 미국에서 만든 것을 그대로 쓴다. 그런데 2005년12월에 온 표지는 상당히 난감했다. ‘할리우드 연예인 골프 랭킹 100’을 커버스토리로 실었고, 사무엘 잭슨이 표지 모델로 잡혀있는 것이었다. 사무엘 잭슨과 골프를 연결시킬 한국 골퍼가 얼마나 있을까? 우리의 고민은 깊었다. 그때 마침 골프계에서 가장 뜨는 선수가 미셸 위였다. 하와이에서 태어난 16세 한국계 미국인 소녀가 거침없이 남자 대회에 도전장을 내면서 프로 데뷔를 한 것이었으니까. 2005년 아마추어로 초청받은 7번의 LPGA대회 중에서 3번이나 2위, 3위를 한 번 했으니 프로가 되면 마치 여자투어를 완전히 휩쓸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과감히 12월호 표지를 자매지인 <골프월드>에서 쓴 표지로 교체했다. 강하게 정면을 노려보는 소녀가 메인이었고 제목은 ‘지금 보고 있는 미셸 위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1000만달러 소녀’라고 잡았다. <골프월드>의 다른 기사를 모으고 별도의 취재를 통해 미셸 위 특집을 만들었다. 물론 반응은 최고였다. 이후로는 우리의 표지 선택은 보다 자유로워졌다. 양용은이 PGA챔피언십을 우승하던 09년9월에 표지갈이를 하고 특집 기사를 채워넣었다. 최경주가 플레이어스챔피언십에서 우승한 11년6월, 13년8월호에 여자 메이저 대회 3연승을 한 박인비 특집이 그런 사례다. 그건 투어전문 주간지인 <골프월드>가 <골프다이제스트>와 함께 나오기 때문이었다. 잡지 한 권에 두 권의 내용을 싣는 것. 그게 우리의 숨겨진 여러 저력 중의 하나다. 어떤 한국 선수가 메이저에서 우승한다면 우리는 또 그럴 것이다. _남화영

 

 



CEO 기분은 며느리도 몰라

기업을 이끄는 대표이사와의 인터뷰는 항상 긴장의 연속이다. 대부분 집무실에서 인터뷰와 촬영을 진행하는데 가끔씩 이런저런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모 업체 대표와의 인터뷰를 위해 집무실에서 준비를 하고 있었을 때였다. 그런데 바로 옆 회의실에서 고성이 들리는 것 아닌가. 인터뷰를 진행했던 전무가 갑자기 우리에게 후다닥 뛰어오더니 ‘대표님이 회의를 하시다가 언짢은 일이 있었으니 양해해달라’는 말을 전하는 것 아닌가. 그 대표가 들어오고 녹음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자 ‘그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기에 ‘사진 촬영도 하지 않겠다’고 하니, 그야말로 내 머릿속은 테이프 엉키듯 엉켜버렸다. 결국 ‘알겠다’고 하면서 녹음기를 주머니에 넣으면서 플레이 버튼을 슬쩍 눌렀다. 그리고 주어진 미션. 어떻게든 인터뷰 시간 안에 그의 마음을 돌려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터뷰 내내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리액션과 과도한 몸짓을 통해 유쾌한 시간으로 만들어나갔다. 또 기억에 남는 건 ADT캡스의 브래들리 벅월터 대표(사진)와의 인터뷰였다. 취임한 지 1년째가 되는 날 인터뷰를 진행하게 된다는 것을 미리 알게 됐다. 주문 제작한 케이크를 들고 방문해 대표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대표의 브래드라는 이름 때문에 ‘빵 사장’이라는 닉네임이 붙여졌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거기에 감동을 했는지 더 많은 정보를 주기 위해 노력을 했다. CEO 인터뷰는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소중한 코너다. 선배 사회인으로서 어떻게 회사를 경영해나가고 있는지, 어떤 인생 철학을 갖고 삶을 살고 있는지, 후배 세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CEO 인터뷰를 하면서 느꼈던 몇 가지 공통적인 느낌은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열정적으로 일하고, 계속해서 더 높은 목표를 설정한다’는 것이었다. _고형승

 

 



기인 교습가 맥 오그래디

미국 골프계에서 선수 출신의 교습가이자 괴팍한 성격 탓에 외톨이로 여겨지는 이가 바로 맥 오그래디(Mac O’grady)다. PGA 투어에서 2승을 거둔 오그래디는 오른손잡이 선수였지만, 왼발을 다쳐 골프를 못하게 되자 7년간의 재활을 거쳐 왼손잡이 골퍼로 변신했다. 완벽한 스윙을 찾는다며 왼손 스윙을 연구하고, 왼손으로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지난 2000년에 <골프다이제스트>에서 ‘미국의 50대 교습가’를 뽑을 때 40위, 2007년에는 34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스윙머신처럼 기계적인 스윙을 구현하려 한 연구자였다. 상체를 적당한 기울기로 고정시키고 기계처럼 팔을 회전하는 스윙에서 일관된 결과가 나온다고 주장했다. 호머 켈리의 <골핑머신>이란 책이 그의 교과서였다. 하지만 공교롭게 지난 07년 6월호에 교습가인 앤디 플러머와 마이클 베냇이 전파시켜 PGA투어 선수들에게 급격하게 유행했던 스윙인 스택앤틸트(Stack & Tilt)가 오그래디가 주장하는 스윙 이론과 흡사했다. 잡지에 소개된 무렵인 그해 6월에 오그래디는 한국을 찾았다. 국내의 명주성 프로가 그의 수제자여서 우리는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었다.  약속 장소인 영종도의 드림골프레인지로 가니 이미 국내 몇몇 프로들도 와서 그의 강의를 듣고 있었다. 맥 오그래디는 우리를 만나 명함을 받고 잠시 얘기하다 태도가 돌변했다. ‘<골프다이제스트>는 왜 내 이론을 가로챈 사람들의 기사를 실었냐?’고 따져물었다. 나는 ‘그건 미국판에서 만든 내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게 거슬렸나 보다. 돌연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더니 돌아가란다. ‘그렇다면 본인의 이론이라는 걸 밝히는 인터뷰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고 설득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우리는 헛걸음을 한 것이다. 당시 오그래디를 소개시켜 한국에 그의 스쿨을 열고 소개하려던 명주성 프로(사진 왼쪽)도 무척 난감해했다. _남화영

 

 



100타 깨는 게 뭐가 어려워

골프 기자에게 항상 물어오는 질문은 ‘골프 정말 잘하시겠어요’이다. 정말 개인적으로 부담스러운 질문이다. 골프를 접한 것이야 오래된 일이지만 그렇다고 잘한다고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실력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선배들은 ‘골프를 아는 만큼 글도 나온다’며 항상 ‘골프를 배우라’고 압박을 가한다. 나도 전혀 모르는 건 아니지만 마음처럼 쉬운 일도 아니다. 결국 골프도 배우고 기사 콘텐츠도 만들어낼 수 있는 일석이조의 꼼수를 고안해냈다. 프로골퍼를 섭외해 직접 배워보는 코너를 만든 것이다. 당시 미국LPGA 클래스A 수업을 받고 있던 박시현을 인터뷰하다가 슬쩍 ‘아마추어 100타 깨기’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의향을 물었다. 그 아마추어가 나라는 말을 덧붙이자 갑자기 선생님 모드로 돌변해 ‘가르쳐주는 대로 잘할 수 있겠느냐’며 채근했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자신에게 교습을 받은 골퍼가 100타를 깨지 못한다면 그것도 체면이 서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마’고 약속을 하고 100타 깨기 레슨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맞는 클럽을 고르는 법부터 그립을 잡는 법, 트러블 샷까지 모두 배우고 8개월만에 라운드를 하며 테스트를 진행했다. 항상 나는 첫 홀만 드라이버 샷이 똑바로 나가는 경향이 있었다. 그날도 여전했다. 박 프로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이래서 100타를 깨겠냐’며 면박을 줬고,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결국은 100타를 깨는 데 실패했고, 그 연재는 막을 내렸다. 레슨 연재를 마치면서 누구에게 레슨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얼마나 노력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저런 핑계(주로 시간이 없다)를 대면서 연습을 게을리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다만 나를 믿고 열심히 레슨에 임해준 박 프로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_고형승

 

 



드라이버로 수박 박살낸 김대현

김대현이 2012년 미국PGA 웹닷컴투어에 진출하고 2013년 컴백했을 때 일이다. 미국 1부투어 진출에 실패한 그가 귀환했고 나는 그의 미국 생활이 어떠했는지 궁금했다. 그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지금은 어렵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그의 따끈따끈한 이야기를 독자에게도 발빠르게 전달하고 싶었던 욕심에 메인 스폰서, 매니지먼트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는데 완강히 거절당하고 말았다. 곰곰이 생각하다 비장의 카드가 떠올랐다. 그와 과거에 같은 골프단에서 활동했던 선배는 나와 친분이 두터웠는데, 선배가 그를 설득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확답을 받을 수 있었다. 인터뷰 당일, 그는 매우 의기소침한 모습이었다. 힘들었던 미국 생활이 얼굴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나는 인터뷰 전날, 그의 장기를 살려줄 만한 콘셉트를 생각하던 중 ‘(드라이버 샷이 아닌)드라이버로 수박 깨기’가 떠올랐고 이것이 가능한지 스태프와 테스트 시간을 가졌다. 일반 아마추어골퍼가 드라이버로 수박을 깰 수 있을지 실험을 했는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350야드까지 보낼 수 있고 드라이버 샷 비거리 300야드를 기록하는 그에게 드라이버로 수박을 깨는 건 ‘식은 죽 먹기’라 생각했고 주문했다. 하지만 그는 난색을 표했다. 선수에게 몸은 생명인데 손목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스태프는 수박 깨는 것을 직접 선보였고 그때 그는 승부욕을 느끼며 도전했다. 그는 임팩트 순간 눈을 질근 감고서 수박을 산산조각 냈고, 사진으로 그 놀라움이 고스란히 표현되었다. 감은 눈은 포토샵으로 뜨게 만들었다. 산산 조각난 수박의 잔해물은 스튜디오 군데군데 튀었고 한달 뒤까지 그 잔해물이 나왔다고 한다. 우리의 도전에 함께 해준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_인혜정

 

 

 



2013년 2월호 표지를 장식한 김 씨 4인방의 촬영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상금랭킹 1위를 기록한 김하늘과 김비오, 신인상을 수상한 김민휘, 김지희는 2012년 코리안투어를 평정한 주인공들이었다. 하지만 이슈를 끌었던 그들은 스케줄이 너무 빡빡해 같은 시간에 한자리에 모으기가 매우 어려웠다. 방법을 찾던 중 포토샵의 능력을 빌리기로 했다. 4명 모두 한 명씩 촬영해 한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합성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지인들은 ‘네 명 모두들 어떻게 동시간에 모아 촬영할 수 있었냐’고 물어보던데 이제 그 궁금증이 풀렸을 것이다. 또한 지난해 8월호에서는 김우현과 해변에서 촬영한 것처럼 합성의 힘을 빌렸다. 하지만 이건 예외적인 경우였다. 우리는 항상 현장으로 당사자들을 데리고 가서 날 것 그대로 촬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_인혜정

 

 



 

16. 전설의호주 골퍼 투굿

해외 취재를 나가면 두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거리며 모든 것을 흡수하려는 편이다. 12년6월, 호주의 맨 밑에 위치한 섬 태즈매니아에 취재갔을 때의 경험 때문이다. 전통 깊은 로열호바트 골프장에서 라운드를 나가려는데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다가오더니 반갑게 인사를 거는 것이었다. 자신을 피터 투굿(Peter Toogood)이라고 소개했다. ‘참 오지랖도 넓은 할배다’싶었지만 내 티오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코스 촬영도 해야 할 것 같아 대충 인사하고 허겁지겁 1번 홀로 나갔다. 몇 홀 지나다 보니 그 할배가 건너편 홀에서 라운드를 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나는 손을 흔들어 답례했고, 숲으로 들어간 내 볼을 찾기에 바빴다. 그의 친절함이 마음에 남아 ‘라운드 끝나고 얘기 좀 해야지’ 생각했으나 라운드가 끝나자마자 떠나기 바빴다. 다음날 아침, 남반구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라토(Latho) 골프장과 보스웰 골프박물관을  취재가기로 약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보스웰 박물관은 공들여 세운 곳이었고, 큐레이터인 도로시 할머니는 멀리 한국에서 취재 온 내게 설립자의 책을 한 권 선물했다. <심플리 투굿 Simply Toogood>. 호주 아마추어 골프 역사의 보비 존스같은 인물이었다. 일생에 홀인원을 11번, 부친이 브리티시오픈에 나가 리더보드에 오르고, 그도 40여년 동안 호주의 최고수였던 전설적인 아마추어 골퍼였다. 그가 바로 어제 골프장에서 만났던 친절한 투굿 할배였다. ‘기념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하는 후회가 마구 밀려왔다.  _남화영

 

17. 날아라 오리

매거진 기자가 한 가지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은 바로 촬영에 필요한 소품을 준비하고 공수하는 일이다. 가끔씩 촬영 소품을 구하기 위해 동대문을 누비고 있을 때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오면 ‘기자가 그런 것까지 하느냐’며 의아해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구상한 그림을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은 기자의 몫임에 틀림없다. 지난해 2월호에는 박인비가 표지 모델이 됐다. 여러 콘셉트 중에 오리가 등장해야만 풀어낼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세리 키즈’였던 박인비가 이제는 그녀를 바라보고 자라는 ‘인비 키즈’의 롤 모델로 성장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인비 키즈를 형상화하는 데 새끼오리들을 활용하고 싶었다. 그런데 한 가지 걸림돌이 생겼다. 한겨울에 서울에서 오리를 그것도 새끼오리를 파는 곳은 아무리 뒤져봐도 없었다. 발품을 팔아서 제법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결국 경기권까지 범위를 확대해 수소문을 했고, 새끼오리를 구입할 수 있는 곳을 발견해냈다. 새끼오리를 촬영하는 것도 문제였다. 원하는 동작을 잡아내기 위해 녀석을 유인도 했다가 날리기도 해봤다. 스태프 모두가 아기를 달래고 어르듯 박수를 치며 소리를 질러댔고, 새끼오리는 스튜디오를 제집마냥 이리저리 움직이며 애를 태웠다. 사진 한 컷을 만들어내기 위해 2~3시간 넘게 투자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새끼오리는 촬영을 무사히 마치고 한 스태프의 시골집으로 내려갔다. 이후 조류인플루엔자가 전국으로 확산됐고 아직까지 녀석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_고형승

 

 

 

EPOLOGUE

―――――――――――――아직 꺼내지 못한 이야기들――――――――――――

 

장고를 거쳐 세상에 나오는 기사도 있지만 시기적으로 맞지 않거나,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이거나, 정확한 사실 체크가 이뤄지지 않아 묻히는 기사들도 많다. 기자 입장에서는 기사가 자식과 같아 잘 태어나 이 세상에 빛을 보기를 원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는 정말 힘이 빠진다. 하나의 기사를 만들기 위해 취재 기간만 수개월씩 걸리는 경우도 있고, 이런저런 협박을 받는 경우도 있다. 가끔씩 사무실로 찾아와 사정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기자라면 사실을 대중에게 그대로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다. 누군가의 간섭도 외압도 없어야 하며 그 어떤 경우라도 당당하게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얼마 전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항의성 전화였다. ‘반박 기사를 내도 좋겠냐’면서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기사의 내용은 정확하게 취재를 해서 내보낸 내용이었고, 특별히 문제가 되는 것은 없다고 판단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최대한 예의를 갖춰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시고 연락을 달라’고 했다. 한참이 지나서 다시 연락을 해와 ‘미안했다’면서 ‘없던 일로 하겠다’고 했다. 그럴 때는 정말 뜨끔뜨끔하다. 나도 사람인지라 ‘혹시나 실수를 했나’ 싶어서 말이다. 몇 년 전 한국PGA협회가 회장 선출 문제로 시끄러웠을 때 나는 수개월에 걸쳐 취재를 했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문서를 입수하기도 했고, 녹취를 해서 양쪽의 입장을 정리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선수 출신 회장을 선출해야 한다’는 측과 ‘아직은 이르니 외부 회장을 영입해야 한다’는 측이 첨예하게 대립을 하고 있었을 때였다. 사무국 직원들도 정리해고가 되는 상황이었다. 어느 한쪽이 옳다거나 그르다는 내용이 아닌, 사실을 근거로 기사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기사는 빛을 보지 못했다. 그 안에는 대기업 총수 일가를 비롯해 골프업계 원로들이 언급되어 부담이었고 터뜨리기에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아직도 그 기사를 내보내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또 이와 비슷한 일이 발생한다면 나는 다시 그 원고를 슬그머니 끄집어낼 것이다. 아직 못다한 이야기는 언젠가는 꼭 해야 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_고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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