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인터뷰] 신지애의 행복한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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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인터뷰] 신지애의 행복한 휴식
  • 고형승 기자
  • 승인 2017.09.15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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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선수 신지애.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났다. 그는 두 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모두 쏟아냈다. 한국과 미국을 거쳐 현재 일본에서 투어 생활을 하고 있는 신지애는 마치 모든 걸 통달한 듯 자신만의 생각을 담담히 풀어냈다.

 


20대 중반까지 주위에 정말 많은 사람이 있었다. 사람이 많은 게 마냥 좋았다. 프로 데뷔 이전에는 골프만 할 줄 아는 아이였다. 아버지는 내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또 다른 나였다. 우리는 하나였으니까. 숫기도 없고 말도 많지 않던 내가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건 골프로 얻은 자신감 때문이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게 좋았고 호텔 방에 머물 때를 제외하고 주변에는 늘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가끔 혼자 떨어져 있는 게 겁이 났다. 그때마다 나는 더 사람을 찾고 (인간)관계를 맺으려고 했다. ‘군중 속의 고독’이란 걸 직접 경험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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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정적’이라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정적을 견디지 못해 나가서 사람을 만나거나 방에 들어와도 TV부터 켰다. 무조건 어떤 소리라도 만들어내려고 했다. 바깥의 소음과 끈을 놓지 않으려는 나만의 몸부림이었다. 지금은 그 어색하게만 느껴지던 ‘정적’과의 관계가 아주 편해졌다. 일본에서 투어 생활을 시작하며 나는 그동안 겉돌기만 하던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들에게서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려는 모습을 읽었다(물론 일본인만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가까운 내 사람을 챙기는 일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인간관계가 정리됐다. 예전보다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다 보니 혼자만의 여유를 누릴 시간이 많아졌다. 그게 싫지 않았다. 과거에는 혼자 시간을 보낸다는 게 외로움이 동반되는 행위였다면 지금 혼자 있는다는 건 내 사람을 만나기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라는 걸 알았다. 지금은 물 흐르듯 사람과 같이 흘러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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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있을 때만 해도 마치 일중독에 걸린 사람처럼 쉬는 날이 있으면 불안했다. 어쩌면 투어 환경이 나를 그렇게 몰아붙였을지도 모르겠다. 대회가 끝나면 바로 짐을 싸서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에도 바빴으니까. 골프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조금 달라졌다. 대회가 끝나면 도쿄에 있는 집으로 가서 이틀 정도 휴식을 취한다. 집에 정을 붙인 탓에 항상 잠깐씩이라도 들른다. 집 앞에 자주 가는 카페가 하나 있다. 하루에 두세 시간씩 카페에 앉아 사람을 구경하거나 책을 읽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차를 마시다 올 때도 있는데 지금은 그 시간이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다른 선수들은 한창 연습하고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여유를 최대한 즐기고 싶다.

 

 

 

 

정말 다행인 것은 골프장에 들어가면 나는 골프 선수 신지애로 바로 바뀐다는 것. 그 안에서 내 기량을 마음껏 뽐내기 위해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쉬는 것도 실력이고 몸 관리를 하는 것도 실력이라고 하지 않던가. 자신에 대한 그런 믿음이 부족하다면 아마 여유를 가질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노련한 드라이버는 마냥 속도만 내는 것이 아니라 브레이크를 잘 쓴다고 한다. 적절한 코너링을 할 수 있을 만큼 속도도 늦출 수 있어야 하고 위급할 때는 멈출 수도 있어야 한다. 액셀러레이터보다 중요한 게 브레이크다. 나도 스무 살 때의 체력은 아니다. 달려야 할 때와 쉬어야 할 때를 알아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그런 여유를 가질 때 무척 행복하다. 다시 달릴 힘을 비축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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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투어에서 활동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아는가. 주 무대로 활동한 기간만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가 가장 짧다. 2006년부터 3년간 우리나라에서 활동했고 이후 미국에서 5년(2009~2013), 일본에서 4년째(2014~현재)다. 물론 일본투어는 2008년부터 꾸준히 다섯 개 대회 이상씩 참가했다. 가끔 한국투어로의 복귀 가능성에 관해 물어오곤 한다. 그건 나에게 간단한 문제만은 아니다. 이유는 이렇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나는 현재 일본에서는 ‘골프 선수 신지애’로 살고 있다. 나에게 한국은 휴식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한국=휴가’라는 공식이 성립할 만큼 특별한 곳이다. 골프 선수로서의 삶이 워낙 길었기 때문에 한동안 ‘사람 신지애’로서의 삶이 편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가기 위해 짐을 싸는 순간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그때는 ‘골프 선수 신지애’의 스위치를 켜는 순간이다. 반대로 일본에서 한국에 오기 위해 짐을 챙길 때는 휴가를 떠나는 기분이 든다. 만약 한국투어로 돌아오게 된다면 공간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골프 선수 신지애’와 ‘사람 신지애’가 같은 공간에 공존하면서 큰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만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투어에서 상금 랭킹 1위를 해보겠다는 숙제를 아직 남겨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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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가서 눈물이 싹 사라졌다. 약해질까 봐 거울을 통해 내 눈을 바라볼 수 없었다. 늘 강하고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짓눌렀고 거기에 아등바등하는 모습이 측은하기도 했다. 운다는 게 약해진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동안 뒷바라지해준 부모님과 내가 더 돌봐야 하는 동생들에 대한 책임감이 더 컸다. 울기가 싫었다. 꾸역꾸역 참으며 생활했다. 예전과 비교하면 지금은 눈물이 많아졌다. 대화를 나누거나 감성적인 영화를 볼 때 가끔 울컥한다. 하지만 필드에서 내 눈물을 보기란 여전히 힘들 수도 있다. 왠지 아직까진 익숙하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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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서 대놓고 “넌 변했어”라고 말하는 이는 드물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은 적은 있다. 프로 데뷔 이후 서로 안부만 묻고 지내던 사람과 너무 바빠서 만날 수 없었다. 그는 그걸 이유로 서운함을 내비쳤다. 서로의 관계가 아주 끈끈하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내가 바빴을 뿐이다. 상대는 나에게 “변했다”고 했다. 그때는 그 말을 들었더라도 그것을 수습할 수 있는 시간조차 없었다.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나를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 또한 많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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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우승이 드물 때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과거에는 내가 어떻게 그렇게 우승을 많이 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나는 미래를 위해 계속 변화를 주고 있다. 오랜만에 성적이 좋으면 “예전의 샷이 돌아왔다”거나 “예전의 실력으로 돌아왔다”고 말한다. 그 말이 썩 듣기 좋지는 않다. 나는 지금의 신지애가 더 나아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는지 알고 있으니까. 지금도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왜 예전의 신지애로 돌아갔다고 말하는지 답답할 때가 있다. 물론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들이 어떤 의미로 ‘예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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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에 인색하던 아버지는 과거에 내가 골프를 잘하고 싶은 이유였다. 아버지로부터 칭찬을 듣고 싶었다. 항상 아버지가 만족해야 나도 만족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파5홀에서 보기를 범하면 몸이 덜덜 떨렸다. 그런 아버지가 요즘은 칭찬을 너무 자주 한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대회의 2라운드가 끝나고 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예선에 떨어질 줄 알았는데 통과한 것만도 잘한 거야”라고 하는 게 아닌가. 아버지가 인정해준다는 느낌이 들어 기분은 좋다. 하지만 동시에 심리적으로 해이해지는 느낌도 갖는다. 분명 그건 내가 앞으로 극복해나가야 할 부분이다.
 

 

 

 

일본에서 함께 플레이하고 있는 동갑내기 (이)보미나 (김)하늘이와는 친하게 지내고 있다. 일본투어에서 활동 중인 한국 선수들끼리는 밥도 함께 자주 먹고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도 나눈다. 우리의 주요 관심사는 매주 열리는 대회 프로암 전야제에서 입을 의상이다. 여자들의 대화다. 연말에는 (강)수연 언니를 중심으로 모여 송년회를 한다. 후배 선수들을 챙기고 그런 자리를 만든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만약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최)나연이와 라운드를 한번 해보고 싶다. 우리는 주니어 선수 시절부터 쭉 골프를 함께 해왔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나연이는 나보다 1년 먼저 국가대표 태극마크를 달았고 1년 먼저 한국투어에 데뷔했다. 그리고 1년 먼저 미국에 진출했다. 항상 한발 앞서 있던 친구였다. 언론이 우리를 라이벌 구도로 만들면서 서로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나연이와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제는 속 깊은 이야기를 하면서 더 친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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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올 때마다 나는 절을 찾는다. 교회에 다니는 내가 절에 간다고 하면 다들 의아하게 생각한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태어난 해(1988년)에 LPGA투어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우승을 거둔 선수다. 프로 골퍼 구옥희.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영안실을 찾았을 때가 아직 생생하다. 정말 많이도 울었다. 거기서 만난 일본투어의 선배 선수들은 나에게 그때의 이야기를 가끔 하곤 한다. 그가 있었기에 지금의 나도 있다는 걸 한시도 잊지 않으려고 절에 가서 인사를 한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요즘처럼 살아생전의 그가 그리울 때가 없다. 나는 한국과 일본에서 내 이름을 걸고 주니어 대회(신지애&스리본드주니어토너먼트)를 연다. 2년 전 한국에서 처음 개최했고 지난해는 일본에서 양국 챔피언들끼리 맞대결을 펼쳤다. 초등부부터 고등부까지 남녀 우승자 여섯 명씩 맞붙었다. 양국 우승자들은 나와 4박 5일간 합숙 훈련을 한다. 함께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눈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과거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과거의 그도 나를 볼 때 지금 내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런 느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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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나에게 큰 깨달음을 준 이가 한 명 있다. 그는 다름 아닌 코미디언 조혜련 언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때로 기억한다. 잠깐 한국에 들어와서 언니와 라운드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나름 골프장에 가면 모두 알아보고 사인을 요청하던 때였다. 사람들이 더 알아보면 피곤해질까 봐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나를 알아본 사람이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약간 굳은 표정으로 악수를 하고 지나쳤는데 그 모습을 (조)혜련 언니가 본 것이다. 언니는 “지애야, 네가 저 사람과 인사를 나눈 몇 초 안 되는 순간이 저 사람에게는 평생 기억에 남는 순간이야”라고 했다. 정말 커다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듯했다. 솔직히 사인하고 악수하고 인사하고 사진을 찍는 건 채 1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건 상대에게 행복한 기억을 선물하는 것이다. 그 후로는 팬들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 시간이 정말 소중하고 나 역시 기쁜 일이란 걸 나중에 깨달았다.

 

 

 

 

요즘은 골프가 더 좋아졌다. 다른 걸 하면서 이런 떨림을 느낄 수 있을까 싶다. 10시간 이상 집중하면서 할 수 있는 게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골프 말고 다른 무언가에 열정을 쏟을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수백, 수천 명이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느낄 수 있는 떨림은 내가 <복면가왕>에 출연해서 노래를 불렀을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스트레스라도 분명 좋은 스트레스가 있다. 원동력을 만들어주는 스트레스다. 골프를 통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고맙게 느껴진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니까. 내 능력 바깥에 있는, 컨트롤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지 않는다. 친동생이 해준 말이 있다. “공부가 잘되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공부를 해야 해.” 골프도 마찬가지다. 골프가 안 되면 골프를 계속해야 한다. 그게 원인이었으니까. 나는 과거에 급작스럽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10년 동안 이루고자 한 목표를 단 4년 만에 모두 이뤄냈다. 스트레스가 발목을 잡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리고 그 떨림도 지금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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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특별히 부러운 이도 없다. 주위에서는 표정이 많이 밝아지고 부드러워졌다는 말을 많이 한다. 심리 상태가 얼굴로 드러나는 것 같다. 한번은 미국에서 활동 중인 선수가 “부럽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는 “골프를 좋아하는 게 얼굴에 보인다”고 했다. 그렇다. 아직은 신지애가 골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람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는 없다. 언젠가 은퇴한 이후에 누군가 그런 질문을 한다면 “선 하나는 제대로 그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렇기에 지금부터 내가 좋아하는 골프를 마음껏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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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선수로서 마지막 목표? 이걸 말하는 순간 목표 달성 실패이긴 한다.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최대한 조용히 투어를 떠나고 싶다. 은퇴식 없이 조용하게 사라지고 싶다. 요즘도 어떻게 하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한다. 나는 이미 가장 빛나는 순간에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은퇴할 때까지 주목을 받는다면 그 이후의 삶이 무척 버거울 것 같다. 최대한 조용히 빠져나와서 사람들 틈바구니로 스며들고 싶다. 사람들과 어울려서 사람 냄새 나는 삶을 사는 지금이 행복한 것처럼 그때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신지애

나이 29세

신장 156cm

프로 입회 2005년 11월

우승 KLPGA투어 20승 / LPGA투어 11승 / JLPGA투어 13승

수상 KLPGA투어 대상(2006~2008), LPGA투어 신인상, 상금 랭킹 1위(2009), 세계 랭킹 1위(2010~2011, 25주)

[고형승 골프다이제스트 기자 tom@golfdig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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