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 커미셔너 마이크 완이 그리는 큰 그림

LPGA 커미셔너 마이크 완이 그리는 큰 그림

2018-04-25     김기찬


2010년부터 9년째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의 커미셔너를 맡고 있는 마이크 완을 만났다. 그는 대회 스폰서의 누수 현상으로 휘청거리던 LPGA를 ‘투어의 글로벌화’를 선언하며 체질 개선에 성공한 일등 공신이다. 그의 경영 철학과 신념 그리고 그가 바라본 한국 여자 골프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마이크 완(Mike Whan) LPGA 커미셔너는 현재 세계 골프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늘 열정이 넘치고 친화력 있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며 겸손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과거 스포츠 용품사(윌슨)의 마케팅 부서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며 경력을 쌓은 그는 테일러메이드 마케팅 부문(북미 지역 총괄) 이사를 거쳐 미션아이테크하키(하키 장비 제조업체)의 CEO를 역임한 바 있다.

마이크 완이 LPGA의 커미셔너가 된 데는 그의 이런 진취적인 성격과 경력이 한몫했다. 취임하자마자 공언한 것이 바로 ‘투어의 글로벌화’다. 또 마케팅 전문가로서 가지고 있는 특유의 감각으로 취임 초기 ‘아시아 진출’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 완은 당시 “위기에 빠진 LPGA투어를 빠르게 회복시킬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바뀌는지 곧 보게 될 것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그 말에 대한 결과물을 얼마 지나지 않아 보여줬다.

취임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대회 수를 여섯 개가량 늘렸고 지금은 매년 서른네 개 안팎의 대회를 꾸준히 개최하며 투어의 볼륨을 확장하고 있다. 투어의 재건을 위해 눈을 돌린 곳이 바로 아시아 지역이다. 특히 한국을 중심으로 대회 주최사가 될 만한 기업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그건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가 과거 공언한 투어의 글로벌화가 왜 투어를 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 입증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가 그동안 관심과 애정을 갖고 공을 들인 아시아 지역에서 열리는 LPGA투어의 한 대회장에서 그를 만났다. 여전히 에너지 넘치는 걸음걸이와 자신 있는 표정으로 에디터를 반겼다. 어떤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술술 답변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LPGA투어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이 왜 그를 그토록 신뢰하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천생 마케터였다.

골프다이제스트 : 지난 20년간 한국 골프, 특히 한국 여자 골프는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이것은 어떤 힘이 작용했다고 생각하나?

마이크 완 : 그건 결국 박세리를 거론할 수밖에 없다. 내가 커미셔너로 일한 10년 동안 한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지켜본 바에 의하면 여자 운동선수들에게 골프는 최고이자 최선의 선택이었다. 10년 전, 아니 20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투어에 갓 올라온 열여덟 살짜리 선수는 그로부터 5년 후 또는 10년 후에나 프로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10대에 이미 프로 무대에서 우승컵을 들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일단 성공으로 가는 길이 누군가에 의해 생기면 그의 뒤를 따라서 똑같이 그 길을 가려는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얼마 전 평창에서 성화를 들고 달린 박인비는 어떤가. 주니어 선수들이 이를 지켜보며 “저게 바로 내가 원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한국 여자 골프가 현재 전 세계에서 강세를 보이는 것은 이런 연결 고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단지 한국만이 아니라 어느 나라든 비슷하다. 중국의 펑산산이나 태국의 에리야 쭈타누깐을 보며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지 않겠는가. 10년 전부터 우리가 그들을 주목하고 아시아 지역을 주목해온 이유다.

한국 선수들만의 독특한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참 놀라운 점은 미국에서 많은 이들이 나에게 한국 골퍼(특히 여자 골퍼)의 특징에 관해 설명해주기를 원한다. 이건 마치 한국 선수들을 단 한 가지 유형의 선수로 규정해서 말해주기를 원하는 것처럼 들릴 때가 있다. 이탈리아 남자에 대해 묘사해달라는 요청과도 같다. 유소연, 박성현, 박인비, 김인경 등은 스타일이 서로 전혀 다르다. 아주 놀라울 만큼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다른 나라 선수도 마찬가지겠지만 단 한 가지 타입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LPGA투어에는 그저 최고의 실력을 갖춘 선수들만 존재할 뿐이다. 내가 보기에 한국 선수들은 모두 훌륭한 자질을 갖췄고 그만큼 노력도 많이 한다. 이전에는 볼 수 없을 정도의 탁월한 재능과 감동을 자아낼 만큼 뛰어난 태도와 매너를 가진 선수들이 많아졌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선수들이 쏟아져 나왔는지가 경이로울 정도다. 단 한 가지 성격의 골퍼가 대회에서 우승하는 게 아니라 아주 다양한 특성의 골퍼들이 투어에서 선전하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나를 기쁘게 한다.

프로 골퍼가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핸디캡 5인 아마추어 골퍼가 프로 골퍼의 덕목에 관해 논하는 게 맞나 싶긴 하다. 하지만 가끔 선수들이 내게 “할 줄 아는 건 골프밖에 없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푸념을 늘어놓을 때마다 해주는 말이 하나 있다. “그건 완전히 틀린 말이다. 당신은 내가 만난 어떤 사람보다도 자기 절제가 뛰어나다. 그리고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데는 끈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 중요한 순간에 집중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당신에게 무엇이 더 필요한가.” 사실 그들은 오랜 시간 이런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프로 골퍼가 됐다. 만약 내게 백만 가지의 일이 한꺼번에 덮쳐오면 나는 백만 가지 일에 집중한다. 하지만 프로 선수는 동시에 백만 가지의 일이 벌어져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휘어지는 퍼팅 라인에 집중한다.

LPGA 역시 지난 20년간 많은 발전을 이뤄냈다. 그 배경은 무엇이고 어떤 원동력이 있었나?

세 가지 요소가 유기적으로 작용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세계를 품었다는 점이다. 글로벌 투어로 발돋움하기 위해 세계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가장 먼저 옮긴 단체가 바로 LPGA다. 글로벌이라는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항공권을 구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두 번째로는 시의적절하게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최고의 어린 골퍼들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시메트라투어(2부투어)를 예로 들어보자. 거기에는 현재 마흔여섯 개 나라에서 온 선수들이 참가하고 있다.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 수는 일곱 개에 불과했다. 세 번째는 전 세계를 아우르는 TV 중계 덕이라고 할 수 있다. 20년 전만 해도 미국에서 열리는 LPGA 대회를 아시아 지역에서 생방송으로 접하기란 여간 어렵고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170개국에서 매주 우리 대회를 동시에 시청하고 있다. 이런 요소가 합쳐져 폭풍 성장을 만들어냈다.

LPGA가 생각하는 올바른 방향의 골프 발전이란 무엇인가?

2010년 LPGA에서 업무를 시작할 때만 해도 2009년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시 나는 ‘굳이 올림픽에 골프가 정식 종목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졌다. LPGA투어 입장에서는 현재 전 세계에서 자국을 대표하는 여자 프로 선수들이 이미 매주 올림픽 경기를 치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합리적인 결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올림픽을 관전하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단순히 올림픽 무대에서 플레이하는 게 목적이 아닌 그 뒤에 숨겨진 다른 의미를 읽을 수 있었다. 골프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여러 나라에서 골프에 투자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골프가 부유한 사람만 즐기는 스포츠가 아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스포츠라는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준 좋은 기회였다. 박인비가 금메달을 따는 장면은 굳이 골퍼가 아니더라도 봤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골프를 해보고 싶다는 의지를 심어준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2009년의 나라면 어느 쪽에 투표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 자리에 없었던 게 아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LPGA의 향후 10년, 우리는 무엇을 주목해서 지켜봐야 하는가?

10년 전에도 나는 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리고 나는 “국경의 제한이 없는 투어를 만드는 것”이라고 답했다. 아마 그전에 이런 답변을 내놓았다면 모두가 나를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2009년만 하더라도 고작 열 개 나라에서 온 선수들이 투어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30개국에서 우리 대회를 시청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10년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향후 10년의 목표는 골프를 즐기지 않는 나라 스무 곳에 골프가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정확히 어떤 나라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빨리 광범위한 세계시장으로 그 영역을 넓혀갈 것이다. 또 남녀 프로 선수들이 함께 플레이하는 데 문제가 없는 장소를 몇 군데 찾고 있다. 아직은 어떤 포맷인지 구체화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것을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는 지금보다 더 큰 규모의 국가 대항전을 만드는 것이다. UL인터내셔널크라운이 그렇게 될 수 있다. 앞으로 10년 후 UL인터내셔널크라운은 솔하임컵, 라이더컵, 올림픽과 같은 최고 수준의 대회가 될 것이다.

UL인터내셔널크라운이 올해 한국에서 열린다. 어떤 대회인가?

프레지던츠컵은 미국과 다른 모든 나라의 대결이라는 지극히 미국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대회다. UL인터내셔널크라운을 처음 기획했을 때 우리에게는 세 가지 룰이 있었다. 첫째는 모든 선수가 나라의 이름을 걸고 플레이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것이고 두 번째는 어떠한 선발 위원회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 대회에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았다. 선수는 코치도 없고 주장도 없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플레이하면 된다. 이는 골프 역사상 전례가 없는 방식의 대회다. 올해 한국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에서 열리는 UL인터내셔널크라운을 보면 국가주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처럼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이것이 미국 중심이 아닌 자신의 나라를 대표해서 출전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가 대항전이라고 할 수 있다.



LPGA 커미셔너로서 어떤 경영 철학을 가지고 있나?

나는 세 가지를 강조한다. 첫 번째는 ‘역할의 전환’이다. 협회는 우리에게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에 관해 고민해야 한다. 다시 말해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주최사에 대해 먼저 생각하고 그다음 LPGA를 생각한다. 이것이 10년에 걸쳐 갖출 수 있었던 정신 자세다. 일례로 우리는 선수들에게 ‘파트너 프로필 카드’라는 것을 통해 해당 대회의 취지와 주요 인물들을 공지한다. 거기엔 감사 편지나 엽서를 보낼 주소가 쓰여 있고 또 주최사가 SNS에 어떤 내용을 올리기를 원하는가, 해시태그에 어떤 내용을 넣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예시까지 명기되어 있다. 두 번째는 ‘실수를 축하하는 것’이다. 우리는 실수를 통해 성장한다. 프로 선수는 동계 훈련 기간에 비거리를 5~6m 늘리기 위해 스윙을 완전히 뜯어고친다. 그리고 아주 힘든 고통의 시간을 거친 후 더 나은 스윙을 얻게 된다. 협회 입장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기존의 잘못된 시스템을 뜯어고친 후 비슷한 과정을 겪을 것이다. 힘들더라도 더 나은 시스템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UL인터내셔널크라운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LPGA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런 유형의 대회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면 이 대회는 투어를 대표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실수를 해야 하고 또 이 실수를 축하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은 어쩌면 논리에 맞지 않는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목줄을 매지 않는 것’이다. 개와 외출할 때는 반드시 목줄을 채워야 하지만 우리 팀은 목줄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젊은 세대의 직장인들은 전기 철망을 두른 우리에 스스로를 가두는 경향이 있다. 자유를 줘야 현재 회사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이 어느 방향을 향해 흘러가는지 파악할 수 있다. 나는 10년 전에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할 만큼 현명하지 못했다. 만약 내가 직원들에게 비전을 말하고 그것을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면 아마 우리는 지금의 위치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목줄을 매지 않음으로써 그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동안 LPGA 커미셔너로서 한 일 중 가장 소신껏 밀어붙인 일이 있다면 어떤 일이었는지 소개해줄 수 있나?

딱히 하나를 꼽기는 어렵지만 아무래도 파운더스컵이 아닐까 한다. 내가 처음 LPGA에 왔을 때 역사를 기념할 만한 무언가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버지는 항상 “우리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모른다면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 수 없다”고 말하곤 했다. 2011년 파운더스컵을 만들었을 때 상금이 없는 대회로 시작했다. 선수들이 모여 플레이하고 돈을 모아 다음 세대의 어린 여자 선수들을 육성하는 대회였다. LPGA를 만든 창립자들의 믿음처럼 말이다. 당시 사람들은 모두 우리를 비웃었다. 상금도 없는 대회에 누가 와서 플레이하겠냐며 의구심을 가졌다. 파운더스컵은 올해 투어에서 손꼽히는 상금(150만 달러)이 걸린 대회로 성장했다. 매년 선수들이 18번홀에서 마지막 퍼트를 한 후 그린 주변에 앉아 있는 LPGA 창립 멤버들과 인사를 나누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장면은 내게 더없이 특별한 순간이다.

만약 당신이 여자 프로 골프 대회가 열리는 대회장을 둘러보고 있는데 어떤 골프 선수가 친 볼이 바로 옆에 서 있는 갤러리를 향해 날아온다면 당신은 가장 먼저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아마 그 사람을 잡아서 밀어낼 것이다. 그 볼이 내게 맞는 것은 괜찮다. 커미셔너 입장에서 다른 사람이 다치는 것을 두고만 볼 수는 없다. 나는 어느 프로암 대회에서 사람을 볼로 맞힌 적이 있었다. 9년이 지난 후 이런 질문을 받게 되니 내가 친 볼에 맞았던 사람이 떠오른다. 그는 우리 가족 중 한 명이었다.

마지막으로 지난 20년간 골프다이제스트코리아를 사랑하고 지켜봐온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LPGA투어는 아주 큰 글로벌 투어지만 막상 대회장 안에서 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한없이 작은 규모다. 코스에는 갤러리와 선수의 경계를 나타내는 노란색 로프가 있다. 물론 골프 팬들은 그 안으로 한 발이라도 가까이 들어가고 싶겠지만 그럴 수는 없다. 언론은 그 선 너머의 궁금증을 팬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LPGA 커미셔너로서 지난 9년간 느낀 점은 선수들도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자신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저 일반인보다 골프에서만큼은 뛰어나고 놀라운 재능을 지녔을 뿐이다. 선수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될수록 팬들은 더 인간적인 유대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는 골프다이제스트 독자들이 계속해서 선수들의 퍼포먼스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읽어줬으면 좋겠다. 이것이 바로 LPGA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LPGA에 이르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모든 여정이 다 강력한 힘을 가진다.



사진=전성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