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메카, 원산부의 골프장 [Feature : 1710]
스포츠 메카, 원산부의 골프장 [Feature : 1710]
2017-10-16 김기찬
원산이 한국 골프의 발상지로 불린 까닭을 시대적 배경을 통해 살펴봤다. 글_조상우 / 정리_인혜정
원산에 이방인들이 거주하면서 그들의 생활양식이 전해졌다. 1883년 조선 최초의 근대식 사립학교인 원산학사가 만들어진 것도 그 예다. 지역 유지들과 선교사들에 의해 많은 사립학교가 원산에 설립되었다. 1903년 외국인 여자 선교사에 의해 세워진 원산루씨고등여학교에서는 농구, 배구, 테니스뿐만 아니라 야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포츠를 교육했다. 여름에는 오전 수업을 마치고 전교생이 송도원에 가서 수영을 했다. 겨울에는 교내 운동장에 스케이트장을 만들어 스케이트를 탈 정도로 많은 스포츠가 보급되었다. 또 원산공립상업학교에서도 야구를 비롯한 정구, 농구, 축구, 마라톤, 유도, 검도 등의 스포츠를 교육해 다른 지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학교 체육이 활성화돼 있었다.
1883년 원산항이 개항하자 이곳에는 해관이 세워지고 청나라 해관으로부터 고빙되어온 외국인 해관원들이 상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1897~1900년 사이 원산해관의 영국인 해관원들이 골프 코스를 만들어 즐겼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으로 말하면 이 지역은 보세구역이었기 때문에 관계자들을 제외한 이들의 출입이 제한돼 있어 구전으로만 그 존재가 전해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원산해관이 개청되면서부터 영국인 해관원 노트(J. Knott, 한국명 노외추)를 비롯한 영국 출신 해관원들이 지속적으로 근무했다. 당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에서 영국인들이 거주하며 골프 코스를 만들어 즐겼다는 사실에 비춰봤을 때 원산해관의 골프 코스 존재는 높은 개연성을 갖는다.
송도원골프장은 9홀 코스였지만 총길이는 겨우 2200야드로 짧은 코스였다. 초창기 그린은 모래로 된 모래 그린이어서 공을 그린에 올리면 그린 옆에 놓아둔 고무래로 공 자국과 발자국을 지우면서 라운드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송도원골프장의 회원들은 주로 일본인들이었지만 이상옥, 임영식, 홍승식, 신태금, 이응률, 김만수 같은 조선인 골퍼도 있었다. 특히 임영식 씨는 클럽 대항 경기에 원산 대표로 출전한 원산 유일의 한국인 싱글 골퍼였다.
1898년 그리어슨을 비롯한 캐나다 선교사들이 원산을 중심으로 선교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들은 명사십리 해수욕장 주변에 외인촌을 형성했다. 외인촌의 외국인들과 원산의 조선인들은 명사십리에서 야구와 축구 경기를 자주 하며 스포츠를 통해 친선 관계를 유지했다. 외인촌에는 1915년 8월 당시 88필지의 부지가 있었다. 부대시설로는 야구장을 비롯한 해수욕장, 테니스장, 골프장을 갖춰 지금의 해양 리조트를 연상케 한다. 당시로부터 100여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조선 땅에 이러한 레저 복합 시설이 있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원산 갈마반도 외인촌 골프장은 한국 골프사에서도 그 진위를 밝히지 못한 구전 속의 골프장이었다. 몇 해 전 필자의 조사를 통해 당시 신문(<매일신보> 1925년 7월31일 자)과 선교사들의 일지를 통해 갈마반도 외인촌의 골프장 존재를 확인하며 그 실체를 확인했다. 다음 호에는 ‘조선에 온 선교사들이 만든 골프 리조트’에 대해 전하겠다.
Cho Sang-Woo
조상우 호서대스포츠과학부 골프 전공 교수이며, 한국 골프사 연구와 함께 골프 골동품을 수집하고 있다. 슈페리어에서 운영하는 세계골프역사박물관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