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도가 이보미와 사랑에 빠진 이유 [Feature :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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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도가 이보미와 사랑에 빠진 이유 [Feature : 1701]
  • 김기찬
  • 승인 2017.01.24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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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도가 이보미와 사랑에 빠진 이유 [Feature : 1701]


일본에서 이보미의 인기가 어느 정도이며 왜 그렇게 인기를 얻었는지 궁금하다면 재빨리 다음 페이지를 넘겨보자.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시간이 없다.

전세계적으로 남자보다 여자 프로 골프 투어가 더 인기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단 두 곳뿐이다. 대회 수만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여자가 남자의 세 배에 달한다. 일본도 심한 불균형은 아니지만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의 인기가 더 높다.

지난해 일본프로골프투어(JGTO)는 모두 스물네 경기가 열렸고 JLPGA투어는 서른일곱 경기를 치렀다. 남자 대회를 연간 갤러리는 34만9681명이었고 여자 대회는 53만894명이 관람한 것으로 집계됐다. 보통 남자 대회가 나흘, 여자 대회가 일부 메이저 대회를 제외하곤 사흘 만에 경기를 치르는 걸 고려하면 차이가 극명하다. 라운드당 평균 남자는 3680명, 여자는 4387명이 관람한 수치다. JLPGA투어 월드레이디스챔피언십살론파스컵은 3만4095명의 갤러리가 관람했으며 일본여자오픈골프선수권대회의 최고 시청률은 9.4%에 달했다.

이렇게 일본에서 JLPGA투어의 인기가 계속해서 상승세를 타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한국 선수들의 선전이다. 특히 이보미와 김하늘, 신지애 등의 인기는 자국 선수들을 훨씬 능가한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이 세 선수는 2016시즌 상금 랭킹 톱5(1위 이보미, 2위 신지애, 4위 김하늘)에 들었다. 여기에 전미정(7위), 이지희(8위), 안선주(9위)까지 보면 상금 랭킹 10위권에 한국 선수가 여섯 명이다. 그야말로 JLPGA투어를 융단 폭격한 셈이다.

자국의 투어를 외국 선수들이, 그것도 한국 선수들이 점령하면 오히려 인기가 떨어지거나 대회 수가 줄어드는 게 다소 자연스러워 보이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예전보다 투어의 인기가 더 높아지고 있다. 투어 통산 50승을 거둔 후도 유리가 투어를 지배했을 때나 일본의 신성이라 불리며 투어를 부흥시켰던 미아자토 아이와 요코미네 사쿠라가 활동하던 2000년대보다 더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게 일본 현지의 분석이다. 하지만 이 분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단서 조항이 붙는다. 단, 이보미가 투어에서 선전해야 한다는 것.

이보미는 2년 연속 상금 랭킹 1위(2015~2016년)에 올랐으며 2011년 일본 진출 이후 상금으로만 벌어들인 금액이 7억3481만7682엔(약 73억8900만원)으로 역대 9위에 해당한다. 지난해 5승을 거둔 이보미는 6시즌째 만에 통산 20승을 거뒀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는 그에게 투어 영구 시드권(각 투어에서 20승 이상 달성자에게 주어짐)을 부여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이보미의 인기는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스포츠신문 톱 기사로 다루고 골프 전문 매거진은 앞다퉈 표지 모델로 기용했다. 시즌이 끝나면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각종 초청 행사에 불려다니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 말려>에 일러스트로 등장하는 등 인기가 날로 치솟고 있다. 일본의 한 언론에서는 “골프를 하지 않더라도 이보미라는 이름을 모르는 일본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라고 언급했을 정도다.

지금까지 일본 언론은 한국 프로 골퍼가 우승해도 간단히 다룰 뿐이었다. 하지만 이보미만은 특별했다. 우승이 아니라 톱10에만 들더라도 그의 기사는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지난해에는 ‘리우 올림픽에 일본 대표로 나와달라’는 일본의 삼촌 팬들에 대한 요구를 비중 있게 다룬 적도 있었다. 이에 대해 이보미는 “왜 한국인인 저를 일본에서 이렇게 응원해주는 걸까요? 정말 제가 생각해도 신기하고 놀랍습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캔디를 사랑한다

이보미의 별명은 ‘스마일 캔디’.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말 기가 막힌 표현 중 하나다. 마치 ‘찬란한 슬픔의 봄’과 같이 역설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 ‘캔디=눈물’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져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캔디를 떠올려보자. 얼굴의 절반이 축 처진 커다란 눈이다. 그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맺힐 때는 어린 시절 에디터도 입을 삐죽거리며 따라 울곤 했다. 그러면 어머니가 달려와 꼭 안아주던 기억이 난다. 캔디를 떠올릴 때는 항상 눈물과 따뜻함이 오버랩 되어 묘한 감정이 든다.

캔디는 1976년 만들어진 일본 애니메이션 <캔디 캔디>의 주인공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77년 9월부터 3년간, 1983년 4월부터 3년간 MBC를 통해 방영됐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한국과 일본에서 캔디를 모르면 간첩이었다. 그 당시 캔디를 보던 세대가 어느덧 40~50대의 중년이 됐다. 그들(남성들)에게 캔디는 어쩌면 첫사랑과도 같은 존재일지 모르겠다. 비슷한 세대의 여성들이 앤서니냐 테리우스냐를 놓고 티격태격하던 것과 다름없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이보미를 ‘스마일 캔디’라고 부른다. 특히 아이부터 어른까지 만화를 즐겨 보는 애니메이션 강국 일본에서 캔디라고 불리는 작고 귀여운 골퍼가 나타났으니 어찌 관심을 갖지 않겠는가. 어디 외모뿐인가. 어린 시절 어렵게 골프를 배우고 프로 데뷔 후 1부투어로 올라가지 못한 채 2부투어에서 2년이나 활동했던 것, KLPGA투어 정상에 오른 후 일본에 진출했지만 그가 상금 랭킹 1위에 오르는 걸 끝내 보지 못하고 세상을 뜬 아버지 그리고 결국 모든 어려움을 겪어내고 2년 연속 상금 랭킹 1위에 오른 것 등은 일본인들이 딱 좋아할 감동의 스토리 라인이다.

일본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이 가는 내용이겠지만 일본인들은 ‘감동’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리고 정말 어이가 없게도 아주 이상한 타이밍에 누군가가 감동적인 말을 쏟아내곤 한다. 그럼 세상 진지하고 비장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이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거나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우리는 가끔 이해할 수 없는 감동의 포인트가 그들에게는 있다.

캔디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해보자. 캔디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역경을 헤쳐나가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단순히 눈물 많고 약하고 여린 것만은 결코 아니라는 뜻이다. 이렇게 표현하면 어린이의 동심을 파괴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캔디는 악바리 근성에 오기가 있는 인물이다. 이보미가 단순히 눈물샘만 자극하는 비련의 여주인공 코스프레를 했다면 대중은 금방 싫증 내고 말았을 것이다. 그는 누구도 넘보지 못할 만큼의 퍼포먼스를 팬들에게 보여주며 실력까지 인정받았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이보미는 지난해 8월, 홋카이도에서 열린 메이지컵에서 우승하며 부상으로 메이지가 제공한 10년 치에 해당하는 간식을 받았다. 그중 5년 치에 해당하는 2000개의 과자와 다양한 간식을 삿포로 시내에 위치한 보육원에 선물했다. 이보미는 아이들과 과자를 먹으며 “모두 밝고 건강해 보여 마음이 놓여요. 2017년에 또 우승해서 다시 오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전에는 구마모토 현에서 열리기로 한 대회가 규모 6.5의 지진으로 취소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이보미는 자신의 SNS를 통해 지진 사망자들에 대한 애도의 글을 올리고 기부까지 했다.

귀여운 외모에 감동적인 비하인드 스토리,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골프 실력 그리고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착한 심성까지 갖춘 이보미는 이제 일본에서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캔디 세대라 불리는 40~50대의 골프 팬들은 그를 투영해 옛 추억을 떠올리고 미소를 짓곤한다. 마치 캔디의 스마일(미소)에 전염된 것처럼 말이다.



이보미는 한국이 선물한 최고의 선물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일본에서 이보미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왜 인기를 얻게 됐는지에 대해 짐작만 했을 뿐이지 직접 체감할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일본 현지의 골프 업계 종사자들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관계자 다섯 명이 인터뷰에 응했고 그들은 전화와 서면을 통해 답변을 해왔다.

구보타 야스시 (마이니치방송 스포츠 사업부)

이보미는 실력과 외모는 물론이고 팬서비스가 훌륭해 일본에서 인기가 무척 높다. 지난해 11월에 열린 토토재팬클래식에 리디아 고를 비롯해 전인지, 에리야 쭈타누깐, 미아자토 아이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모였지만 그중에서도 이보미의 인기가 가장 높았다.

선수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채리티 포토’라는 이벤트가 진행됐는데 이보미와 사진을 찍겠다고 요청한 사람이 147명으로 가장 많았다. 전인지와 리디아 고는 135명, 일본에서 인기가 많은 미아자토 아이는 127명, 지난해 상금 랭킹 3위였던 류 리츠코는 33명, 일본의 정상권 선수 중 한 명인 우에다 모모코가 63명이었다는 결과만 봐도 이보미의 인기를 알 수 있다. 이보미가 일본 투어의 인기를 끌어올리고 있음은 틀림없다.

김명욱 (일본 파골프 기자)

강하고 귀엽다. 이 두 마디면 이보미에 대한 설명이 끝난다. 그는 실력으로 보여줬고 귀여운 외모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현재 일본에서는 이보미를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한국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가 우승하면 스포츠신문 1면에 게재할 정도다. 지금껏 한국인 선수가 우승하더라도 그런 일은 드물었다는 걸 생각하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는 이미 유명한 스포츠 스타가 됐다.

이보미를 일본인이 좋아하는 이유는 플레이 중에도 항상 웃고 경기 후 팬서비스도 잘하기 때문이다. 한 대회에서 300여 명의 팬에게 모두 사인을 해줬다는 일화가 공개된 적이 있다. 또 시즌 중에도 팬클럽과 정기적으로 식사를 함께 하는 등 팬들에게 정말 잘해준다. 일본에는 팬 서비스를 하지 않는 일본 선수가 많은데 이보미는 팬들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항상 그들과 비교가 된다. 일본인 팬들에게는 그 모습이 굉장히 신선하게 보였을 것이다. 또 하나는 언어다. 미디어와의 인터뷰는 모두 일본어로 하고 일본 문화에 빨리 익숙해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일본 팬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신무광 (<이보미는 왜 강한가>의 저자)

일본 야후 재팬에 한국 여자 골프에 대한 기사를 일주일에 한 번씩 기고하고 있다. 골프 팬들이라면, 특히 30대 이상의 남성들이라면 ‘이보미’라는 이름은 모두 알고 있다. 골프 잡지는 물론 일반 잡지에서도 골프를 떠나 사적인 이야기나 화보가 실리기도 한다. 과거에는 그런 한국인 선수(외국인 선수 포함)가 없었다.

마치 수년 전 일본 여자 프로 골프의 붐을 일으킨 미아자토 아이와 비슷한 느낌이다. 아직은 미아자토처럼 기업 광고를 찍지는 않았지만,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최지우나 배용준, 소녀시대와 비슷한 전 국민적인 인지도를 갖게 될 것이다.

호도타 히데유키 (일본 골프 대회 운영사 <스포니치프라임>)

이보미의 인기 비결은 실력은 물론이고 귀여운 웃는 얼굴과 애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선수의 경우는 때론 짜증을 내며 팬들이 차마 다가갈 수 없는 분위기를 내뿜기도 한다. 특히 우승 경쟁을 하고 있을 때는 여유가 없어 엄격한 표정이 된다. 하지만 이보미는 결코 그런 표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다. 마치 그런 분위기를 즐기는 것처럼 항상 웃는 표정을 짓고 있다. 팬들의 응원에 언제나 웃는 얼굴로 답하고, 대회가 끝난 후 사인을 요구해도 싫은 기색 없이 웃는 얼굴로 해준다. 미디어의 인터뷰 요구에도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고 흔쾌히 승낙한다.

또 대회 관계자들에게는 깍듯하게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을 건네곤 한다. 그런 서비스 정신이 일본인의 팬심을 사로잡은 것 같다.

오타니 히데아키 (일본여자프로골프협회)

이보미가 인기 있는 이유로는 ‘성의 있는 팬 서비스’와 ‘붙임성’을 들 수 있겠다. 프로암 대회에서의 게스트 응대나 기자들에게 대하는 행동만 봐도 그는 확실히 다르다. 상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대화를 나누며 인기 선수임에도 마치 친구와 대화하듯 꾸밈없는 모습을 선보이곤 한다. 그런 모습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

갤러리를 위해서도 시간을 아끼지 않고 할애한다. 프로로서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건 좀처럼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를 위해 진심을 다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왜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훌륭한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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