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라 하루, 나를 완성해주는 골프 [People :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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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라 하루, 나를 완성해주는 골프 [People : 1610]
  • 김기찬
  • 승인 2016.10.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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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라 하루, 나를 완성해주는 골프 [People : 1610]

올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2승을 거두고 리우 올림픽에서 공동 4위에 오른 노무라 하루를 만났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모두 이해하고 양국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줄 아는 노무라에게 국적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골프 선수로서 소임만 다할 뿐이다. 글_고형승

내 이름은 ‘노무라 하루쿄(野村 敏京)’다. 한국 이름은 ‘문민경’. 모두 내 이름을 ‘노무라 하루’로 알고 있지만 실은 그건 ‘플레잉 네임’이다. 처음 미국에 건너갔을 때 ‘하루쿄’라고 정확히 발음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래서 그냥 ‘쿄’를 빼고 ‘하루’라고 쓰기 시작했다. ‘하루쿄’라는 이름은 한자로 ‘민경’이다. 일본에서는 흔히 남자 이름에 사용하는 한자인데 그건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 내가 아들인 줄 알고 지은 이름이라고 했다. 요즘도 이름만 보면 다들 남자인 줄 안다. 웃긴 건 내가 사내아이로 태어났어도 내 한국 이름은 ‘민경’이었을 거라는 거다. 굉장히 특이한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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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요코하마에서 다섯 살 때까지 살았다. 물론 그때는 일본어만 할 줄 알았다. 그러다가 한국에서 초등학교에 다니게 됐다. 한국이 어머니의 나라니까 당연히 한국어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명지중학교를 거쳐 명지고등학교까지 모두 한국에서 학교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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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에게 정체성의 혼란이 없었는지 물어오곤 한다. 아주 어릴 때는 살짝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지금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나는 국적을 선택하기 위해 골프를 하는 것이 아니다. 운동선수이기 때문에 그냥 골프에 집중하면 된다. 당시의 내 생각이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요즘 올림픽을 비롯한 국가대항전이 자주 열리고 있지만 나는 국가를 대표한다기보다 하나의 팀 대항전을 갖는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냥 골프 선수들이 팀을 나눠서 하는 또 하나의 대회에 참가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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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골프를 접했는데 그건 순전히 외할머니의 영향이었다. 하루는 외할머니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박)세리 언니가 광고에 출연한 영상이 흘러나왔다. 그동안 표면적으로는 할머니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한 것이라고 말해왔지만 사실 내 눈에도 골프가 재미있고 근사해 보였다. 친구들과 여름에는 잠자리 잡으러 돌아다니고 겨울에 눈 오면 옥상에서 눈싸움하며 뛰어놀던 아이가 골프에 대해 뭘 알았을까 싶다. 친구들이랑 놀 때도 축구를 할 정도로 에너지가 넘쳤다. 막상 할머니도 활발한 성격을 가진 손녀가 골프를 잘해낼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가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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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지 골프를 그만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나이까지 할머니는 지켜보기만 했다. 내가 선수를 해도 될 만큼 끈기를 갖추고 있는지 내내 관찰한 것이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이 됐을 때 스스로 골프 선수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평소에도 좋아하는 것만큼은 끈기 있게 밀고 나간다. 당시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에서는 미야자토 아이가 고등학생 신분으로 프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인기를 끌었다. 나도 그와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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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언제나 ‘네가 좋으면 괜찮다’라는 교육 철학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골프도 골프지만 공부를 하는 것도 좋아했다. 골프를 하기 전에 꿈이 과학자였을 만큼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다. 특히 지구과학을 통해 지구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는 게 재미있었다. 수학이나 과학은 뭐든지 딱 떨어지고 답이 있어서 좋다. 반대로 골프는 정답은 없지만, 원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새로운 스킬을 배울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평소 내 스윙을 보지 않는다. 동영상으로 내 스윙을 본 지 1년이 넘은 것 같다. 영상을 통해 분석하는 게 아니라 직접 스윙을 하면서 머리로 분석한다. 원리를 이해하면 언제나 그 안에 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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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는 정답이 없고 한계가 없다. 근사치까지는 갈 수 있지만 완벽한 골프를 선보인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스포츠다.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72라는 핸디캡을 가지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진짜 완벽하고 빈틈없는 골프를 하면 18언더파가 나와야겠지만 매일 그 스코어를 기록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항상 더 높은 확률을 찾는 게 중요하다.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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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는 아무리 분석해도 분석되는 게 아니다. 그날의 컨디션도 다르고 핀 위치도 바뀌고 바람도 매일 달라지는데 그걸 분석한다고 해서 정확하게 알 순 없는 노릇이다. 코스나 상황에 맞춰 샷을 구사하는 연습을 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이때는 치고 빠지는 요령이 필요하다. 라운드 도중에는 여러 유형의 기회나 위기가 찾아온다. 기회는 반드시 잡아야겠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과감하게 스코어를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무리하게 플레이하면 남은 홀은 물론 남은 라운드에도 지장을 초래한다. 과감히 버릴 줄도 알아야 다음에 기회가 왔을 때 마음을 다잡은 상태에서 맞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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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같은 마음가짐으로 임하려고 한다. 골프는 사람을 감정적으로 만들 때가 많다. 감정적인 부분을 개입시켜서는 안 되는 스포츠가 바로 골프다. 예를 들어 스코어를 잘 줄이고 있다가 트리플 보기를 범했다고 해보자. 그때는 정말 화가 많이 난다. 하지만 그걸로 골프가 끝나는 게 아니다. 나는 18홀까지 계속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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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일본LPGA투어에서 프로 데뷔 무대를 가졌다. 프로 자격으로 첫 출전한 브리지스톤레이디스오픈에서 우승했다. 작년에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한화금융클래식에 처음 출전했는데 덜컥 우승을 차지했다. 그때 나는 우승은 하늘에서 정해주는 것이라는 걸 확신하게 됐다. 상대 선수가 정말 잘하고 있었고 마지막 홀에서 이미 2타 차였기 때문에 뒤집기는 어려워 보였다. 어느 순간 내가 트로피를 안고 촬영에 임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정말이지 얼떨떨했다. 올해 미국에서도 2승을 거뒀으니 한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에서 모두 우승을 거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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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대회 기간이었는데 그때 날짜가 11일이었다. 나는 그날 11번홀에서 생애 두 번째 홀인원을 기록했다. 내 캐디가 오랫동안 키우던 애완견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날 세상을 떠났다. 캐디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개가 죽기 전에 나에게 잠깐 왔다 간 것 같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홀인원 선물을 안겨주고 떠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 아이러니하게도 그날 대회장에서는 그 개가 낳은 강아지들을 분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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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는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또 동반 플레이어 역시 같은 홀에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다. 골프가 비록 개인 운동이지만 선수들은 모두 하나의 조직에 속해 있는 구성원들이다. 서로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이 바로 옆에 있는 동료 선수들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인간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상대가 성적이 좋으면 시기하는 사람도 있다. 상대가 우승하면 샘도 난다. 하지만 그 샘을 상대에게 내서는 안 된다. 그건 자신이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둔 것에 대한 핑계에 불과하다.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고 모자랐기 때문에 우승을 못한 것이다. 상대를 시기하고 질투한다고 해서 자신이 우승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축하할 때는 기꺼이 축하하는 게 운동선수고 스포츠인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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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골프를 설렁설렁하려고 했다면 골프 자체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른 일을 할 때도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다. 골프 인생의 목표는 (박)인비 언니가 이룬 것을 나도 한번 이뤄보는 것이다. 같은 사람인데 못할 건 없다고 본다. 안타깝게도 인비 언니와 골프장에서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다. 함께 라운드한 것도 딱 한 번뿐이었다. 궁금한 건 가감 없이 물어보는 스타일이라서 그때도 라운드하면서 이런저런 질문 공세를 퍼부었던 걸로 기억한다. 귀찮을 법도 했을 텐데 성의껏 답변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언니의 골프 커리어를 정말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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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투어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든 건 아무래도 언어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세세한 부분까지 말하기엔 부족한 면이 있다. 올해 두 번 우승했을 때는 통역을 쓰지 않고 영어로 인터뷰에 임했다. 그게 주최 측과 팬들에 대한 예의인 것 같아서 짧게라도 영어로 했다. 나는 미국에서 끝을 볼 것이다. 처음 골프를 시작했을 때부터 미국 무대가 목표였기 때문에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아니,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옳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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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리우 올림픽에서 공동 4위에 오른 기억은 아마 오래갈 것 같다. 좋은 경험을 했다. 일본 언론에서도 일본 대표로 나가는 기분이 어떤지 물어오곤 했다. 올림픽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었다. 또 한국을 대표해서 나가느냐 일본을 대표해서 나가느냐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냥 나는 골프에만 집중했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도쿄 올림픽에 또 한 번 출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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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는 나를 완성해준다. 평소 알지 못했던 것을 보고 느끼면서 배운다. 성격도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짜증이 났지만, 지금은 둥글둥글해졌다. 골프로 인해 내 성격이 긍정적으로 계속 바뀌고 있다. 내 일상도 그렇다. 평소 생활이 골프에 다 나타난다는 말을 믿는다. 일상에서의 행동 하나도 조심스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골프가 나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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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골프를 할 때도 좋은 골퍼가 되려고 노력하고 인간적으로도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것이 프로페셔널의 기본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게 프로가 아니라 할 때와 하지 않아야 할 때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 프로다. 나는 예민한 골퍼가 아니다. 아마추어 골퍼들도 골프를 대할 때 예민하지 않았으면 한다. 골프는 즐거운 스포츠다.

 

 

Nomura Haru 노무라 하루 나이 24세 국적 일본 후원 한화 신장 165cm 우승 4승. JLPGA투어 브리지스톤레이디스오픈(2011), KLPGA투어 한화금융클래식(2015), LPGA투어 ISPS한다호주여자오픈, 스윙잉스커츠LPGA클래식(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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