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 데이, 모든 것을 걸었다 [People : 1607]
  • 정기구독
제이슨 데이, 모든 것을 걸었다 [People : 1607]
  • 김기찬
  • 승인 2016.07.29 09: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이슨 데이, 모든 것을 걸었다 [People : 1607]

사진_월터 아이우스 주니어(Walter Ioose Jr.)

ALL IN

모든 것을 걸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제이슨 데이는 이제 힘들게 얻은 깨달음을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다.

글_제이미 디아즈(Jaime Diaz)

“안녕, 친구!” 제이슨 데이가 스스럼없이 건네는 인사에서는 격의 없고 겸손한 태도가 엿보인다. 호주 출신으로 스물여덟 살인 그는 스스로를 ‘지루한 사람’이라며 “다른 20대 선수들이 학교에서 인기 높은 아이들이라면 나는 뒤에서 어슬렁거리는 얼간이였다”고 비유했다. 최근에 한 기자회견에서 파워와 감각을 겸비한 자신의 스타일을 설명하면서 그가 한 말(“조던 스피스와 로리 매킬로이가 아이를 낳는다면 바로 내가 그 아이”)은 매력적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조금 이상했다. 그가 아내에게 트위터를 대신 쓰게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휘슬링스트레이츠(PGA챔피언십 개최지)에서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을 거둔 직후 그가 세계 랭킹 1위에 등극했을 때 캐디와 장비업체, 토너먼트 관계자들, 무엇보다 데이처럼 럭셔리 RV 차를 타고 이동하며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려고 노력하는 선수들과 그 가족들이 그 사실에 환호한 이유는 데이의 인간미 때문이었다. “제이슨은 치열해야 할 순간에조차 상당히 느긋하고 다정한 천성을 지녔다.” 같은 호주 출신이자 친구인 제프 오길비는 말했다. “대부분의 선수들, 특히 실력이 정말 뛰어난 선수들은 그렇지 않다.”

데이는 동료 선수들과 다른 정도가 아니라 거의 정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열 살부터 열세 살까지 골드코스트를 따라 브리즈번 북쪽에 있는 록햄프턴 이라는 거친 동네에서 자랐다. 툭하면 주먹다짐을 벌였다. 학교 운동장에서 싸우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래도 한쪽이 기권하거나 다쳐야 끝나는 필사적인 싸움이었다. 머잖아 재대결을 하게 될 거라는 스트레스도 적잖았다. 대부분의 프로 골퍼들이 자란 환경과는 거리가 멀다. 댈러스와 엘패소의 퍼블릭코스를 드나들던 시절에 언쟁을 자주 벌였다는 리 트레비노는 골프다이제스트 에디터인 가이 요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첫 번째 주먹을 날리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주먹이 날아가는 순간 모든 걸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바이런 넬슨이 벤 호건을 처음 봤을 때 열세 살이었던 그가 포트워스의 조 보이라는 또 다른 캐디와 치고받으며 싸우고 있었다는 건 사실이다. 치치 로드리게스는 산후안의 거리에서 음료수 때문에 싸움을 벌였고, 이언 우즈넘과 프레드 펑크도 어려서 권투를 했으며, 에스테반 톨레도는 한때 촉망받던 프로 권투 선수였다. 하지만 요즘은 골프계 안팎에서 주먹다짐은 거의 퇴출됐다. 어린 데이가 싸운 이유는 무엇보다 가정 폭력 때문이었다. 올 초에 그는 데이비드 페허티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아버지 앨빈이 알코올중독자였으며 자신과 어머니를 신체적으로 학대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여섯 살짜리 아들이 쓰레기 하치장에서 주워온 3번 우드로 볼을 맞히는 데 재주가 있고 열의를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즉시 제이슨을 지역 주니어 토너먼트에 데리고 나가기 시작했고 좋은 성적을 내라고 엄청난 압박을 가했다. 열한 살 때는 “내가 플레이를 잘 못하면 아버지한테 두드려 맞았다.”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거나 유일한 아시아인이라고 놀림을 당할 때도(어머니 데닝은 필리핀 사람이다)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게 되는 게 더 두려웠다. “내일 그 아이하고 싸우지 않으면 집에 왔을 때 나한테 얻어터질 줄 알아.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러니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앨빈은 제이슨이 열두 살 때 위암으로 사망했다. 혼란과 분노가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권위를 행사하던 사람이 사라지자 그가 한동안 삶의 목표를 갖지 못한 채 술을 마시며 더 많은 싸움을 벌였다는 건 그리 놀랍지 않다. 데이는 당시의 일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쩌면 일부러 그때의 기억을 차단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내 인생과 선수로서의 생활에 미친 영향을 되돌아보면서 가장 좋은 점만 취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페허티의 프로그램에서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이따금 아버지를 생각하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증오를 느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가끔 그렇게 주먹다짐을 벌이고 다닐 때의 기분을 떠올리며 느껴보려고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행동을 절제하며 강인함을 유지해야 한다.” 그는 말했다. “상대방은 나에게 상처를 입히려고 하고, 나도 그에게 상처를 주려 하기 때문에, 실수하는 순간 곤경에 처하게 된다.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기는 했지만, 내게 좌우명을 남겼는데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계속해서 공격하고 또 공격하면서 끝까지 싸우는 것이다. 아버지는 사는 건 싸움의 연속이고 계속해서 그들을 때려눕혀야 한다는 생각을 내 머릿속에 심어주었다. 그와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인 우리 엄마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게 나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만약 남들에게 없는 강점이 내게 있다면, 그 힘은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열세 살 이후로는 싸움을 벌인 적이 없지만(“이제는 아주 질색이다”) 데이는 그 시절에 단련된 강인함이 자신의 내면 깊숙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다. 2014년과 2016년에 WGC-매치플레이에서 우승했을 때나 그렇게 일대일 승부를 벌일 때 대개 기브로 처리하는 짧은 퍼팅을 끝까지 허용하지 않는 모습에서도 그런 면이 드러난다. 선수로서 성장할수록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태도는 토너먼트를 심리적인 싸움으로 이해하는 표현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그는 “공격 또는 도피”, “순간의 만족과 지연된 만족”, “불편함을 편하게 받아들이는 것”, “자기 파괴” 행위를 피하는 것 같은 표현을 즐겨 사용하며, 대회에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두려움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라고 묘사한다.

 

데이의 전적

PGA투어에 합류한 후 처음 여덟 시즌 동안 2승에 그쳤던 제이슨 데이는 지난해 5승을 거두며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더니 올해는 플레이어스를 치른 지금까지 벌써 3승를 더했다. 그의 통산 전적은 다음과 같다.



연도 

 출전대회

컷 통과 

우승 

톱10 

2006  7  5  0  0
2008  28  13  0  2
2009  18  14  0  2
2010  24  18  1  5
2011  21  18  0  10
2012  17  13  0  4
2013  21  21  0  7
2014  15  14  1  6
2015  20  18  5  11
2016  12  9  3  7
 183  143  10  54

(2016년 6월20일 현재)

데이는 네이션와이드투어에서 활동한 2007년에 모두 19개 대회에 출전해서 1승과 함께 일곱 번의 톱10, 열네 번의 컷 통과를 기록했다.

PGA투어

마스터스 T-2(2011), 3(2013), T-10(2016) US오픈 2(2011), T-2(2013), T-4(2014), T-9(2015), T-8(2016) 디오픈챔피언십T-4(2015) PGA챔피언십 1(2015), T-8(2013), T-10(2010)



 

끝까지 버틴 끝에 쇼트 게임의 힘으로 결국 역전승을 거둔 베이힐에서(그는 한 주 후에 치열한 준결승에서 매킬로이를 물리친 매치플레이에서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데이는 부족한 볼 스트라이킹을 만회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시련을 안겨주며, 대체로 그 시련을 견뎌내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너무 불편해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면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도망치면서 초점을 유지할 수는 없어. 정면으로 맞서야만 해. 싸워서 승리를 쟁취해야 해.’” 틀을 깨고 나오자 자유로움과 힘이 생겼다. 가능성을 파악한 그는 모든 분야에서 노력을 배가했다. 트레이너인 코넬 드리슨의 도움을 받아 180cm에 86kg인 그는 속도를 높이고 더 이상 허리 부상을 입지 않도록 코어 근육을 강화하는 데 집중했다. 캐디이자 코치이며 아버지 같은 존재인 콜린 스와턴은 열두 살 때부터 데이에게 플레이의 기술과 더불어 정신적인 면에서도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데이는 어린 시절의 우상이자 친구인 타이거 우즈와 주고받는 문자의 횟수도 늘렸다. 우즈는 말했다. “누군가의 지혜를 빌려야 한다면 그의 머리일 것이다.” 그리고 최고의 파워 플레이어를 꼽는다면 단연 데이일 것이다. 드라이버 샷의 클럽 헤드 속도가 시속 193m를 초과하는 그는 휘슬링스트레이츠에서 메이저 대회 사상 20언더파를 기록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지난 18개월 동안 그가 가장 큰 발전을 보인 분야는 이제는 익숙한 최첨단 말렛 퍼터다. 통계학자인 피터 샌더스에 따르면 작년 7월에 RBC캐나디안오픈에서 우승하기 전에는 1.2~3m의 결정적인 거리에서 데이가 기록한 퍼팅 성공률은 투어 평균인 60%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그 이후 플레이어스챔피언십까지는 성공률이 70%를 넘기면서 대회당 약 2.5타를 절약한 셈이 됐다. 그렇다면 그의 목표는 뭘까? 최대한 많은 우승을 거두고 메이저 대회에서도 통산 그랜드슬램을 포함해서 여러 번의 우승을 거두며 그레그 노먼의 세계 랭킹 1위 331주 기록을 넘어서는 것이다(우즈의 683주는 난공불락인 것처럼 보이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데이는 모든 것을 다 걸었다. “이렇게 몰두한 건 처음이다.” 그는 플레이어스에서 자신의 투어 10승째를 거두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2위와의 격차를 벌리고 싶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며 어떤 결과가 펼쳐질지 두고 볼 예정이다.” 어머니가 집을 저당 잡히고 남편의 생명보험금은 물론 오빠에게 돈까지 빌려서 록햄프턴에서 말썽을 피우던 자신을 멀리 떨어진 쿠랄빈 기숙학교(최고의 골프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으며 애덤 스콧도 이 학교를 나왔다)에 보냈을 때 제이슨의 인생관은 완전히 달라졌다. 데이는 그곳에서 스와턴을 만났다. 문제아였던 그는 “머리가 맑아지는 순간”을 경험하며 권위에 저항하던 반항심을 누르고 선생님을 존경하게 되었다. 데이는 인정과 칭찬에 목마른 청소년처럼 집착적으로 연습에 몰두했다. 우즈의 교습서인 <나는 어떻게 골프를 치는가>에서 동기부여를 받은 데이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연습과 플레이를 거듭했다. 스와턴의 지도를 받으면서 데이는 안정적이고 다부진 동작, 스윙의 속도, 볼의 높이, 그리고 쇼트 게임과 퍼팅 등에서 노먼을 떠올리게 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다. 데이는 호주에서 또래 연령대를 압도했고, 2004년에는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캘러웨이주니어월드챔피언십의 우승을 차지했다. 열여덟 살에 프로로 전향했고, 2007년에 네이션와이드투어에 합류했다. 첫해에 상금 랭킹 5위에 오르면서 PGA투어 출전권을 얻었다. 그가 “타이거를 잡을 수 있다”고 했던 건 유명하다. (지금은 뭐라고 할까. “그렇게 어리고 자신만만할 때는 어쭙잖은 말을 하게 되는 법이다.”)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도망치면서 초점을 유지할 수는 없어.
정면으로 맞서야만 해.’ _제이슨 데이
 

데이는 구원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과거는 여전히 미래를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좋은 평가를 받을 때마다 그런 게 익숙하지 않은 나머지 그런 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스와턴은 말했다. “그는 지금도 칭찬을 힘들어한다.” 늘 비판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자신의 실력이 충분하다는 확신을 갖지 못했다. PGA투어에 합류한 후로는 최고의 선수들과 더없이 까다로운 셋업 속에서 데이는 스스로에 대해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정신적인 허약함을 드러냈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데이는 PGA투어에서 129개 대회에 나가 딱 한 번 우승했다. 유일한 우승을 거둔 대회는 바이런넬슨이었는데, 한 타 차로 선두를 달리던 그는 72번째 홀에서 미들 아이언 샷을 물에 빠뜨리며 보기를 했지만, 블레이크 애덤스도 똑같은 실수를 한 덕에 승리를 굳혔다. 2013년 마스터스에서도 일요일에 16번홀의 티잉 그라운드에 올랐을 때 한 타 차의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그는 “몸이 얼어붙은 것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연이은 두 번의 보기로 그는 스콧에게 뒤진 3위로 내려앉았다. 우승을 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르는 동안 데이는 자기만족과 탈진, 빈번한 부상과 싸웠다. 2011년에 처음으로 마스터스에 출전해서 공동 2위를 하기 전까지 데이는 선수 생활을 그만두는 걸 진지하게 고민했다. “재미를 느끼지 못한 채 의미를 찾고 있었다.” 스와턴의 말이다. “연습장이나 골프 코스에서 이런 대화를 셀 수 없이 많이 나눴다. ‘왜 내가 더 이상 우승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이렇게 묻곤 했다. 그러면 나는 늘 이렇게 말했다. ‘제이슨, 네가 더 이기고 싶을 때 더 이기게 될 거야.’ 아마 그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뭐래, 저게 대체 무슨 뜻이야?” 간단히 말해서 그는 여전히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이번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실패가 뭔지, 처절하게 실패하는 게 뭔지 경험하기 위해 그런 과정을 거쳐야 했다. 정말 싫었지만, 선수 생활에서 필요한 시간이었다.” 데이는 말했다. “우리는 둘 다 너무 어렸고, 모든 걸 깨달아가는 중이었다.” 엘리는 지난해 PGA투어 홈페이지(pgatour.com)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그가 대단히 성숙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당시에 그는 정말 미성숙했다. 늘 비디오 게임을 했다. 여전히 골프 클럽을 내던져댔고, 코스에서 욕을 하는 모습도 자주 봤다. 거의 포기하고 싶은 시기를 많이 거쳤다.” 이제 엘리는 “그는 기계같다”고 말한다. 아들 대시가 태어나면서 데이의 생활에도 조정이 필요했고(딸 루시는 지난해 11월에 태어났다) 페덱스컵 포인트 순위에서도 최악의 성적을 거뒀던 2012년 말에 스와턴과 엘리 그리고 오랜 매니저인 버드 마틴까지 한목소리로 데이에게 노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제이슨은 본래 성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지적을 받자 화를 냈다.” 마틴은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야만 했고, 그는 그걸 옳게 받아들였다. 그걸 도전으로 여긴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제이슨은 자신이 왜 플레이를 하는지 그 진짜 이유를 알지 못했다. _콜린 스와턴
 

 

데이는 뇌의 활동과 인지 기능을 측정하는 포커스밴드의 원리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데이가 볼 앞으로 다가와서 깜빡이는 눈으로 타깃 라인에 서면 ‘우뇌’를 사용해서 ‘경지’에 오르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려주며, 그걸 재현하는 방법을 익히게 해주는 장치다. 데이는 체임버스베이에서 열린 2015년 US오픈 2라운드 때 현기증을 느끼고 마지막 홀에서 쓰러졌지만, 여파가 가라앉지 않은 와중에도 주말에 68-74타를 기록하며 공동 9위로 대회를 마쳤다. 데이는 이걸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덕분에 “잠재력을 어디까지 발휘할 수 있는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다음 메이저 대회 디오픈에서 데이는 72번째 홀에서 6m 버디 퍼팅을 성공하면 플레이오프에 나갈 수 있었지만 컵에 못미처 실패하고 말았다. RBC캐나디안오픈에 참가하기 위해 토론토로 가는 비행기에서 데이는 자신이 상당히 일관된 플레이를 펼쳤으며(단 세 번에 그친 보기는 바람이 휘몰아친 2라운드에서 나왔다) 전에 없던 차분함을 갖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달라졌으며, 나 스스로를 보는 눈이 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말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리무진에 올라탈 때 데이는 마틴에게 “이번 주에는 내가 우승할 거야”라고 했다. 토너먼트가 열리기 전날 데이는 영화감독인 케빈 폴리(교습가인 숀 폴리의 동생)와 마주 앉아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오느라 피로가 풀리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의 시선은 나를 꿰뚫고 카메라에 구멍을 낼 정도였다.” <포기하지 마(Never Say Die)>라는 그 다큐멘터리는 에미상 후보에 올랐다. “불을 켠 듯한 치열함이 있었고, 그는 얼른 플레이를 하고 싶어 조바심을 쳤다.” 일요일에 데이는 16번홀과 17번홀에서 버디를 했으며, 72번째홀에서는 세인트앤드루스에서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6m의 내리막 퍼팅에 우승이 걸린 상황이 됐다. 스트로크를 하기 전에 그는 스와턴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짧지 않을 거예요.” 퍼팅이 컵에 들어가기도 전에 데이는 자축의 함성을 내질렀다. “순식간에 흐름을 되돌려서 내가 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사람들에게 그걸 보여주면서 발을 구르며 이렇게 말한 셈이죠. ‘아니, 이걸로는 충분하지 않아. 나는 할 수 있어.’” 3주 후에 PGA에서는 두 타 차의 선두로 마지막 라운드를 시작했다. 메이저 대회에서 세 번 연속 54홀 선두를 구가한 것이다. 파5인 11번홀에서는 한 관람객이 “초크!”라고 외치는 바람에 어드레스 자세를 다시 갖춰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녹아내릴 듯 부드러운” 드라이버 샷을 거의 400야드 가까이 날렸다. 자신보다 75야드 이상 앞서간 데이에게 스피스는 양손의 엄지를 들어 보였다. 데이는 67타를 하며 3타 차의 승리를 확정 지었을 때 스피스가 축하를 건네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해준 게 너무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한 달 후 BMW챔피언십에서 6타 차의 승리를 거둔 데이는 랭킹 1위로 올라섰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가장 큰 도약은 승리에 쐐기를 박는 차분한 자세를 기른 것이다. 데이는 PGA투어에서 3라운드까지 선두였던 처음 일곱 대회에서는 단 1승을 거두는 데 그쳤지만, 플레이어스에서 우승한 후로는 다섯 번 연속 승리를 놓치지 않았다. 대부분의 선수와 달리 데이는 중압감의 영향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작년에 투어챔피언십에서 페덱스컵의 1000만 달러  보너스를 염두에 두고 있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다. 당연히 머릿속에 그 생각이 떠오른다. 2011년에도 그랬는데, 그래서 초크를 했다.” 데이는 처음으로 그런 실패를 겪던 때를 회상했다. “2007년에 네이션와이드투어(2부 투어)의 한 대회에서 3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리다가 80타를 했다. 상당히 괜찮은 80타였다. 첫 홀의 티 박스에서 훅 샷이 나왔는데 어린 소녀가 그 볼에 맞았다. 그러고 났더니 몸이 후들거렸지만 그날 중압감에 대처하는 법에 대해 제대로 배우긴 했다. 그리고 전날 밤에 여자 친구와 헤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그건 정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스와턴은 이렇게 말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제이슨은 자신이 왜 플레이를 하는지 그 진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어쩌면 처음엔 아버지 때문에 플레이를 했고, 어쩌면 나를 위해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플레이를 했을지도 모른다. 표면적으로는 돈이 목표였고,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기 위해 물건을 구입하기도 했다. 타이거가 얼마나 뛰어난지에 대해 얘기를 나눌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는 왜 그렇게 할까? 그는 왜 그걸 좋아하는 걸까?’ 내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가 내면의 동기를 찾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건 아무도 대신 찾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스와턴은 말을 이었다. “그는 마침내 가슴 깊은 곳에서 이렇게 깨달은 것 같다. 나는 정말, 진심으로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어. 전에 없이 여러 번의 우승을 거두게 된 데에서 그걸 확인할 수 있다. 그건 그가 이기는 걸 사랑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건 제이슨이 연습과 준비를 사랑한다는 뜻인데, 그게 이기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제 그의 여정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오길비는 또 이렇게 말했다. “집중하는 모습에서 제이슨이 끝까지 가볼 준비가 됐다는 게 느껴진다. 그럴 경우 그는 최고의 재능 가운데 하나인 실력을 쌓는 기술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그는 그런 면에서 호건과 비슷하다. 그는 모든 정보를 수집한 후 자신에게 맞는 것을 취하고 대단히 성실한 노력으로 그걸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걸 좋아한다. 모든 클럽으로 구사하는 그의 기술이 대단히 탄탄하고 효율적이며 교과서적인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노먼은 1위 자리를 유지하는 법을 알았고, 그래서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데이가 아이언 플레이의 다양성에 집중하기를 바란다. “그건 결국 노력의 방정식인데, 그건 제이슨도 잘 알고 있다.” 노먼은 말했다. “그러면 허리에 가하는 부담감을 지나치게 조심하게 될 것이다. 파워 플레이어치고 언젠가는 허리에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선수는 한 명도 없다.” 데이는 아마도 우즈에게 계속 자문을 구할 것이고, 두 사람은 그걸 “지혜의 전달”로 인식할지도 모른다. 비록 우즈의 문자는 그다지 인상적으로 보이지 않지만(“그냥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하고 자신의 세계를 고수해”) 데이가 가장 존경하는 선수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그 문자는 황금의 가치를 지닌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똑같은 내용도 그가 보내면 마침내 집중할 수 있다.” 데이는 베이힐에서 우승을 거둔 후에 이렇게 말했다. “그냥 훨씬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우즈가 깨달음을 안겨준 또 한 번의 순간은 플레이어스를 앞뒀을 때인데, 단순하지만 데이에게는 더없이 심오했다. “타이거에게 ‘최고라는 위치 때문에 괴로웠던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그는 ‘없어’라고 대답했다. 그는 그 과정을 즐기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은 선수가 되려고 노력했다. 이미 너무나 뛰어난 선수라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티오프를 할 때마다 그 과정에서 뭔가를 배우고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제이슨 데이는 지금 이기는 싸움을 하고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잡지사명 : (주)스포티비골프다이제스트    제호명 : 스포티비골프다이제스트
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2, 6층 ㈜스포티비골프다이제스트    사업자등록번호: 516-86-00829    대표전화 : 02-6096-2999
잡지등록번호 : 마포 라 00528    등록일 : 2007-12-22    발행일 : 전월 25일     발행인 : 홍원의    편집인 : 전민선   개인정보보호책임자 : 전민선    청소년보호책임자 : 전민선
Copyright © 2024 스포티비골프다이제스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ms@golfdigest.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