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과 루틴의 상관관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GD 인터뷰]
  • 정기구독
이소영과 루틴의 상관관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GD 인터뷰]
  • 한이정 기자
  • 승인 2023.06.0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샷 하나에도 철저하게 이뤄지는 프리샷 루틴. 분 단위로 움직이는 꼼꼼한 스케줄. 매사에 완벽을 기하지만 가끔은 일탈도 누린다. ‘인생, 까짓것 안될 수도 있지’ 쿨하게 내려놓을 줄도 아는 이소영의 이중생활.


어드레스 후 오른손을 턱 하고 그립 위에 올린다. 신중하게 테이크어웨이까지 들어본 뒤, 연습 스윙을 한 번 휘두른다. 이제 스윙을 하는 듯싶지만 이내 빠져나와 에이밍을 또 본다. 다시 어드레스. 그 다음 테이크어웨이까지 들었다가 진짜 스윙. “샷하기 전에 연습 스윙도 원래 두 번 했는데 한 번으로 줄였어요. 확실히 루틴이 빨라지니 편하긴 하더라고요. 근데 느낌이 좀 찜찜하면 두 번 할 때도 있고 한 번 만에 끝낼 때도 있어요.”

복잡하다. 하지만 이소영의 경기 장면을 조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금세 알 수 있을 정도로 프리샷 루틴이 명료하다. 긴박한 경쟁 속에서 왜 이렇게까지 복잡한 루틴을 하는 걸까. “루틴에 집착하는 건 아니에요. 저는 루틴이 제 샷에 집중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저는 샷을 할 때 얼라인먼트와 어드레스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게 잘 안되면 당연히 샷도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을 테니까요. 루틴을 따르면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상기하고 샷에 집중해요. 남들 두세 번 샷할 때 저는 샷 하나를 정성껏 하는 셈이죠.”

루틴에 신경 쓰게 된 건 어릴 때부터다. 테이크어웨이까지 들어 올리는 건 어린 시절부터 해왔던 아주 오래된 루틴이다. “주니어 대회에 출전했을 때부터 연습도 루틴을 따랐어요. 대회에 나간 것처럼. 저는 작은 것 하나도 다 경기와 연결된다고 봐요. 연습이라고 대충 하면 대회 때도 대충 하는 것과 다를 게 없어요.”

단순히 프리샷 루틴만 복잡한 게 아니다. 심지어 퍼팅 루틴도 있다. 대회 전 루틴도 누구보다 타이트하다. 대회 전에는 어떻게 준비하냐고 물으니 이소영은 머뭇거리다 “어, 되게 복잡한데 들을 수 있으시겠어요?” 하고 웃었다.

“이동 시간에 따라 달라지긴 하는데 저는 언제 뭘 할지 시간이 딱 정해져 있어요. 티오프까지 약 2시간 30분 전부터 일정을 시작해요. 보통 몸 푸는데 15분, 샷 연습은 30분, 이동한 뒤에 밥 먹는 건 40분 정도 잡고 퍼팅 연습에 50분 가량 할애해요. 오늘 퍼팅이 잘된다 싶으면 40분 정도만 하기도 하고, 안될 때는 1시간도 한 적 있어요.”

루틴이 일정하고 확실한 건 그만큼 철저하고 완벽을 기울인다는 의미다. 이소영에게 자신을 한 단어로 소개해보라고 제안하자 ‘완벽주의’라고 답했다. 그래서 루틴에 예민하고 작은 것 하나에도 신경 쓴다. 물론 데뷔 때보다 덜 쓰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하나 철저하게 지켜나간다. 

“저는 뭔가 하려면 무조건 정확하고 완벽하게 하려고 해요. 완벽하게 못할 것 같으면 아예 하질 않죠. 정확하게 해야지 애매한 걸 별로 안 좋아해요. 골프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샷 연구도 많이 한다. 계속 레슨도 받지만, 자신의 스윙을 직접 보고 고치고 싶은 게 있으면 이것저것 시도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어드레스할 때 오른팔이 리드하도록 신경 쓰고 있다. “스스로 ‘어떻게 하면 잘될까’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 잘할 때 스윙도 많이 보고 고민하던 것들을 접목하면서 연습해요. 예를 들어 ‘어, 옛날에 이거 했을 때 잘됐는데?’ 이러면 해보는 거죠.”

하지만 연구 성과가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또 성과가 오래 지속되지도 않는다. “좋은 느낌이 이틀 갈 때도 있고, 일주일 갈 때도 있는데 길어야 일주일 같아요. 정말 사소한 부분을 고쳐서 좋은 느낌을 찾는 거예요.”

최근에는 무수한 연구 속에 백스윙을 크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근데 누군가 ‘왜 크게 하려고 해? 좀 부자연스러워 보여’ 하고 피드백을 줬다. 곰곰이 살펴보니 직접 보기에도 부자연스러운 것 같았다. 그래도 그 느낌이 좋아 일단 그대로 가기로 했다.

“연구한다고 해봤자 사실 별거 없어요. 어느 날은 머리를 잡고 친다거나, 그립을 조금 바꿔본다거나. 누군가는 ‘저걸 왜 하지?’ 싶을 수도 있어요. 피드백도 많이 새겨들어요. 누군가에 의해 바꾸는 건 아니고 제 감에 따르는 거긴 하지만요. 느낌이 좋으면 일단 밀고 나가요. 그 감이 결과를 만들어주니까요. 골프는 결과 위주로 해요.”

결과가 좋지 않아도 쿨하게 넘어간다. 곧바로 다음 걸 연구하면 되니까. “안 되면 어쩔 수 없죠. ‘아, 이건 하면 안 되는구나’ 하고 넘어가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이게 아닌 걸 알았으니까 괜찮아요.” 최근 우승이었던 2022년 8월 대유위니아·MBN여자오픈 때도 그랬다. 시간이 흐른 탓에 어떤 걸 연구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연습 라운드 때부터 연구하던 게 잘 맞아들었다. 연습할 때부터 느낌이 괜찮았다. 2주 휴식 후 출전했던 터라 컨디션도 좋아 더할 나위 없었다. 박현경 등 경쟁자가 쟁쟁한데도 웃으면서 대결했던 이유다.

완벽하지 않아도 돼 이소영이 골프에 완벽주의 성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부모님 영향이 컸다. 특히 골프를 사랑하는 아버지가 주니어 시절부터 이것저것 제안한 게 차곡차곡 루틴으로 쌓였고, 지금의 이소영을 만들었다. “부모님이 좀 열정적이셨어요. 골프도 부모님 권유로 배웠죠. 아버지가 좀 엄격하셨어요. 어릴 때부터 골프 아니면 안 된다는 느낌을 받았을 정도였어요.”

열정적이고 엄격한 아버지의 성향을 물려받아 프로 생활을 하지만 원래 이소영은 자유분방한 성격에 가깝다. 쿨하고 털털하고 시원시원하다. 골프 때문에 고민이 많고 철저하다고 하면서도 “안 되면 별수 없죠” 말한다. “루키 시즌 때도 부모님이 저보다 더 아쉬워하셨어요. 저는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요. 제게 매번 욕심이 없어 보인다고 하셨어요. 나 같으면 더 열심히 할 것 같다고. 제가 열심히 안 하는 것처럼 보였나 봐요. 하긴 근데 욕심이 없긴 해요. 사실 욕심 부리고 싶지 않아요. 잘되면 잘되나 보다, 안되면 안되나 보다, 이런 마음으로 쭉 생활하고 싶어요. 감정 기복 심하다고 좋은 거 아니잖아요?”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프로 선수 인생을 살며 깨달은 진리(?)이기도 하다. 한때는 철저하게, 부모님 성향처럼 열심히 산 적도 있다. “이렇게 해봤자 되는 건 아니구나, 많이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아서 그런 것 같아요. 전날 준비가 다 끝났다면 사실 라운드 전 연습은 10분만 하고 가도 상관없어요.(웃음)”

그래서일까. 비시즌 기간도 이소영답다. 전지훈련도 쿨하게 다녀오지 않았다. 물론 학업 때문에 계절학기를 들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굳이 전지훈련을 가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에서다. 완벽한 걸 좋아하는 이소영의 아이러니다. “한국에서 할 게 많았어요. 학교도 다녀야 했고, 또 그래도 비시즌에는 시즌 때 못했던 것들을 해야 하니까요. 근데 만족해요. 괜찮아요. 전지훈련을 다녀온 거랑 별반 차이가 없어요. 국내에서도 충분히 훈련할 수 있었고 나름 바쁘게 살았거든요.”

연습도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놀기도 열심히 놀았다. 동료 선수들과 한라산 등반도 했고 SNS에 공개하진 않았어도 관악산 등반도 했다. “등산만 한 것 같은데 그건 아니에요. 취미 생활을 되게 많이 했어요. 이것저것 다 했어요.”

완벽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연습도 그렇다. 느낌이 좋지 않을 때는 만족할 때까지 클럽을 쥐고 있지만, 느낌이 좋으면 클럽마다 한 번씩 쳐보고 끝낼 때도 있다. 지난해 우승할 때도 샷 감이 썩 좋진 않았다. 안개 때문에 경기가 1시간 넘게 지연되자, 이소영은 핸드폰을 붙잡고 잠깐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 뒤 게임을 했다. 완벽을 좋아하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소영을 따라다니는 지독한 ‘짝수해 징크스’는 올해 떨어지길 바라본다. 하지만 징크스라고 해서 너무 안 좋게 보진 않는다. 징크스든 뭐든 어쨌든 ‘6승’ 선수 아닌가. “징크스? 정말 싫어해요. 하지만 짝수해 징크스는 상관없어요. 그래도 우승한 거니까. 우승한 것에는 정말 감사하죠. 짝수 해에라도 우승한 게 어디예요?” 목표도 없다. 선수들이 말하는 흔한 인생 계획도 없다. “올해 상반기에는 학교를 다녀야 하니까 투어 생활은 편하게 하고 싶어요. 하반기에는 좀 완벽하고 싶어요. 인생 계획은 진짜 없어요. 제가 잘하면 짧고 굵게, 그렇지 않다면 길게 하고 싶어요. 그게 다예요.” 


이소영_나이 만 25세 / 프로 데뷔 2015년 / 소속 팀 롯데 / 성적 KLPGA투어 6승

사진_김시형(49비주얼스튜디오) / 헤어&메이크업_칼라빈 by 서일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잡지사명 : (주)스포티비골프다이제스트    제호명 : 스포티비골프다이제스트
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2, 6층 ㈜스포티비골프다이제스트    사업자등록번호: 516-86-00829    대표전화 : 02-6096-2999
잡지등록번호 : 마포 라 00528    등록일 : 2007-12-22    발행일 : 전월 25일     발행인 : 홍원의    편집인 : 전민선   개인정보보호책임자 : 전민선    청소년보호책임자 : 전민선
Copyright © 2024 스포티비골프다이제스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ms@golfdigest.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