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오픈 우승 재킷까지…골프를 ‘리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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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오픈 우승 재킷까지…골프를 ‘리을’하다
  • 한이정 기자
  • 승인 2022.06.2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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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을 디자이너. 사진 촬영=윤석우(49비주얼스튜디오)
김리을 디자이너. 사진 촬영=윤석우(49비주얼스튜디오)

디자이너? 사업가? 마케터? 문화 전파자? 많은 물음표를 던지게 하는 ‘핫’한 남자. 이제는 골프도 ‘리을’할 때.

단순한 생각이 혁명을 만든다. ‘새처럼 날아볼까?’ 하던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를 만들었고, 한자를 모르는 백성을 가엾게 여긴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했다. 스물아홉의 젊은 디자이너 김리을(본명 김종원)도 단순한 생각에서 탄생했다. “한복을 정장처럼 만들면 어떨까?”

강력한 ‘인플루언서’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방탄소년단(BTS), 배구선수 김연경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예인과 운동선수, 대통령 선거 후보자까지 그가 만든 한복 정장을 안 입은 사람이 없다. 이제 김리을은 골프계에 노크한다. 아니, 이미 골프는 ‘리을’에 스며들고 있다. 

김리을 디자이너는 한국의 최고 권위 대회이자, 내셔널 타이틀인 코오롱 제64회 한국오픈골프선수권대회 우승 재킷 제작을 맡았다. 단순 재킷 제작만이 아니다. 대회 곳곳에 리을의 손길이 닿았다. 

조선시대 갓을 본떠 진행 요원이 쓸 모자를 디자인했다. 한국오픈 진행 요원은 단순히 대회명이 박힌 볼캡을 쓰지 않는다. 관리의 신분을 표현하던 마패를 활용해 프로암에 참가하는 VIP 명패로 나눠준다. 현재는 강원도 춘천시에 있는 한옥 골프장 라비에벨골프클럽에 BTS 지민이 입었던 한복 정장을 전시 중이다. 또 골프백이 실리는 명품 스포츠카 맥라렌과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하고 있다. 

진행요원이 착용한 모자와 조끼 모두 김리을 디자이너가 디자인했다.
진행요원이 착용한 모자와 조끼 모두 김리을 디자이너가 디자인했다.

#골프와 리을
●○● 한국오픈 우승 재킷을 만들게 된 계기는 뭘까?
우리나라가 골프 강국이지 않나. 한복 원단으로 정장을 만드는 게 내 일인데 우승 재킷으로 한복 정장을 주면 어떨까 싶었다. 작년부터 골프 대회에서 우승 재킷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은 계속 있었는데 타이밍이 맞지 않아 못 했다. 운 좋게 올해 한국을 대표하는 한국오픈 우승 재킷 제작 요청을 받았다.

●○● 김리을의 우승 재킷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우승 재킷이니까 한국적인 느낌을 살렸다. 강원도 춘천에서만 나는 연옥을 사용해 수막새를 만들어 단추로 활용했다. 한복과 양장을 섞어 만들 계획이다. 우승 재킷 외에 조선시대 ‘갓’에서 따와 진행요원이 쓸 독특한 모자도 만들었다. 프로암 때는 VIP 명찰을 마패로 만들었다. 한국적으로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다.

●○● 라비에벨에 옷을 전시한 것도 독특하다.
한옥 골프장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곳에 한복을 전시하면 좋겠다 싶었다. 마침 BTS 지민 씨가 입은 옷으로 전시하게 됐다. 옷과 마주 보며 사진 찍으면 ‘ㄹ’이 보일 수 있게 포토존도 만들었다. BTS 노래 가사에는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내용이 매우 녹아있다. 한옥 골프장에서 한복을 보며 사람들이 자신에게 질문하길 바랐다. 나를 바라보는 시간. “나는 언제 한복을 입었지?” 리을과 BTS의 철학이 모두 담긴 전시다.

●○● 골프는 언제부터 했나. 
(그는 인터뷰 당일에도 새벽 라운드를 다녀왔다) 어릴 때 잠깐 해볼까 했는데 과격한 운동을 좋아해서 그때는 골프가 별로 재미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재밌더라.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다. 주변에 골프 치는 친구들이 ‘이것도 못 하냐?’고 놀리기에 무작정 골프채를 사서 치기 시작했다. 하루에 스크린 골프만 72홀을 돈 적도 있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치는 법을 알겠더라. 이후 최대한 라운드를 다녔다.

●○● 하루에 72홀씩 쳤으면 지금은 잘 할 것 같다.
사람들이 ‘골프를 랩 하듯이 한다’고 하더라. 자기 마음대로 한다고. 어렸을 때 검도를 배워서 그런가 팔로만 친다. 그래서 감이 좋을 때는 잘 맞는데 아닐 때는 아니다. 그래도 드라이버 비거리가 250m는 나간다. 한창 골프에 빠졌을 때는 새벽에 임성재 선수 경기도 챙겨 봤다. 2년 동안 거의 매일 했더니 지금은 싱글 핸디캐퍼다. 못 쳐도 80대 초반은 나온다.

# 리을과 김종원
●○● 원래 축구선수가 꿈이라고 들었다.
부모님이 학구열이 강하셨다. 검도도 차분해지라고 시켜주셨는데 도 대표도 했다. 하지만 나는 축구가 하고 싶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이거 하면 축구 시켜줄게’ ‘저거 하면 축구하게 해줄게’ 하면서 이것저것 시키셨다. 어떻게 보면 공부나 검도나 거문고나 그래서 한 것 같다. 축구하고 싶어서.

●○● 꿈이 축구 선수라니, 주변에서 뭐라 하던가?
다 말렸다. 고등학생 때 선생님이 ‘너 무슨 과에 갈래?’ 하셔서 축구학과에 간다고 했다. ‘ 미친놈’이라고 하시더라. 축구학과가 있는 학교에 가고 싶었다. 부모님께는 대학에 다 떨어졌으니 어쩔 수 없이 내가 가고 싶은 학교에 가야겠다고 거짓말했다. 과는 아무 데나 가고 전과를 하면 되겠지 싶었다. 물론 마음처럼 되진 않았다.

●○● 나중에 사업한다고 했을 때도 주변 반대가 심했을 것 같다.
맞다. 백이면 백 다 말렸다. 오죽하면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한복 정장을 들으시고는 ‘그게 뭐냐?’고 하시더라. 오죽하면 지원도 안 해주셨다. 수중에 있던 30만원을 들고 시작했다. 상표 등록만 5년이 걸렸다. 고유명사라서 상표 등록이 안 된다고 했는데 내 철학을 갖고 활동하니 결국 됐다.

●○● 축구선수를 못 한 이유는 뭘까?
축구를 하고 싶었는데 한국에서 하기는 늦었다. 고등학생 때 막연히 돈을 많이 벌어 해외에 가야겠다고 싶었다. 해외를 가면 축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연히 특허를 내면 돈을 많이 번다고 들었다. 운 좋게 특허를 등록한 게 있는데 잘 팔리지 않았다. 여차여차 대학은 갔는데 축구를 하다 십자인대가 끊어졌다. 결국 축구는 못하게 됐다.

●○● 원하는 걸 꼭 해내는 성격인 것 같다.
그런 것 같다. 그리고 긍정적이다. 스트레스는 아예 안 받는다. 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하고 싶으면 또 안 하고. 근데 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 예컨대, 내가 일본 애니메이션을 본다고 바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근데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를 만들면서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게 옷에 녹아들더라. 그래서 한국에 살면서 내가 느끼는 걸 잘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김리을 디자이너. 사진 촬영=윤석우(49비주얼스튜디오)
김리을 디자이너. 사진 촬영=윤석우(49비주얼스튜디오)

# 리을 탄생비화
●○● 디자이너? 사업가? 뭐라고 불러야 할까?

디자이너가 맞는 것 같다. 디자인이라는 말이 내 눈으로 바라보고, 내 방식대로 표현한다는 뜻이다. 리을이 한복 정장만 하지 않는다. 대한항공 기내지 그리고 맥라렌까지 다양한 기업과 협업 중이다. 나는 한국적인 걸 힙하게 표현하고 싶다. 골프 역시 ‘리을’의 예술성을 골프 안에 녹아내고 싶었다.

●○● 한복으로 정장을 만들게 된 이유는?
내가 전주에 살았다. 전주에 한옥마을이 생기면서 한복 대여점도 늘어났다. 한복을 빌려 입던 외국인이 원단이 예쁘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한국인은 불편해서 안 입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때 ‘한복으로 정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장은 19세기부터 지금까지 동서양 모두가 입는 옷이다. 한복 원단으로 정장을 만들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겠다는 단순한 생각에 했던 거다. 원래는 외국인을 타깃으로 제작했다. 지금은 한국인이 더 많이 찾는다.

●○●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패션 디자인을 할 생각을 했나? (그는 환경보건학 전공자다)
고등학생 때 특허를 내봤으니까. 특허보다는 옷 만드는 게 쉬울 것으로 생각했다. 특허는 2년이 걸리는데 옷은 그 정돈 아니지 않나. 옷은 내가 원하는 원단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공장만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동대문에서 원단을 들고 돌아다녔다. 한복을 만드는 유명한 선생님도 많이 만났다.

●○● 한복 정장을 만드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여기저기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유명한 한복 선생님들도 자신들이 예전에 시도했지만, 타이밍이 안 맞았다면서 도와주셨다. 내가 한복 정장을 안 파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전공자도 아닌 내가 만든 걸 돈 받고 팔아야 하나. 내게 한복을 가르쳐 준 선생님들에 대한 예우이기도 하다.

●○● 그 외에도 정장을 안 파는 이유가 있을까?
내가 정말 돈만 생각했다면 대여를 했을 것이다. 근데 그만큼 욕도 먹었을 것 같다. ‘네가 만드는 게 무슨 한복이냐.’ 하지만 우리가 평소에 한복을 언제 입나? 옷은 입고 다녀야 옷이다. 나는 한복 정장을 만들고 인지도 있는 사람에게 입혔다. 그걸 본 대중은 한복을 생각했다. 나는 한복 원단으로 옷을 만들어 이슈를 만드는 사람일 뿐이다. 지금은 어딜 가도 한복으로 얘기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전통 한복에도 관심을 갖더라.

●○● 외국인이 ‘리을(ㄹ)’을 들으면 어떤 반응인가?
외국인 눈에는 아라비아숫자 ‘2’다. ‘이 글자가 우리나라 고유문자인 한글의 ㄹ이다’고 얘기해주면 그 자체로도 대화 소재가 된다. 자연스럽게 한글을 알려주면서 한국적인 대화 소재로 이어진다. 삼성에서 한글로, 현대에서 한복으로…대화 소재를 이끌어가기 위해 기획했다.

●○● 어느덧 우리나이 30대다. 30대 김리을은 어떤 삶을 살까?
나는 20대를 모두 바쳐 디자이너 김리을을 만들었다. 운 좋게 대통령 선거까지 겹쳐 20대 마지막 작업으로 대선 후보자 옷을 만들었다. 지금은 디자이너 김리을에서 벗어나 ‘리을’의 대표가 되고 싶다. 한복 정장에만 국한하지 않고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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