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와 브랜드, 으리으리한 관계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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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와 브랜드, 으리으리한 관계에 대해
  • 서민교 기자
  • 승인 2021.12.0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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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영. 사진=김시형
김세영. 사진=김시형

성적? 잠재력? 인성? 신뢰? 의리? 브랜드와 선수는 서로 이익을 주고받으며 공생하는 사이다. 브랜드와 선수의 심리에 대한, 이 애매한 커플의 진짜 관계에 대해 취재할 무렵 때마침 국내에 머물고 있는 김세영이 미즈노 아이언 신제품 피팅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강남에 위치한 피팅센터를 찾았다.

김세영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5승,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12승을 더했다. 무려 17승을 미즈노와 함께 ‘빨간 바지의 마법’을 부린 대표적인 의리파 선수다. 김세영이 미즈노와 후원 계약을 맺은 건 2013년이지만 주니어 시절부터 미즈노 아이언을 쓰기 시작한 걸 고려하면 그 세월만 십수 년이다. 그는 미즈노와 함께한 기억의 조각조각이 또렷했다. 2013년 한화클래식 우승 당시 미즈노 MP-53 모델 6번 아이언으로 156m 파3홀에서 홀인원을 했고….

그에게 도대체 왜 미즈노만 주야장천 써왔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클럽이 좋아서”였다. 우문현답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선수는 성적이 나야 선수의 가치가 빛을 발하고 클럽의 퍼포먼스는 결과로 증명이 되는 것이다. 오랜 기간 함께하려면 선수도 꾸준히 성적을 내야겠지만 브랜드도 발전하는 클럽을 개발해야 그 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 선수의 성적과 최고의 용품. 둘의 관계가 이렇게 냉정하기만 할까. 절대 아니다. 김세영은 “어려운 시절에도 한결같이 잘해주시고 커리어를 쌓아가면서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셔서 늘 감동”이라고 말했다.

의리파로 따지면 박인비를 빼놓을 수 없다. 박인비와 LPGA투어 통산 21승 중 20승을 합작하며 ‘여제의 품격’을 높인 브랜드는 젝시오다. 박인비와 젝시오의 관계 유지 비결은 ‘믿음’이다. “오랜 시간 함께하면서 브랜드가 주는 안정감이나 편안함이라고 해야 할까? 젝시오 클럽이 해마다 업그레이드할 때 나도 드라이버, 아이언, 웨지 그리고 골프 실력까지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매년 발전해나가면서 쌓인 믿음이 지금까지 함께할 수 있는 이유인 것 같다.” 박인비는 이미 젝시오의 상징적인 이미지다. “항상 젝시오를 써왔다. 다른 드라이버를 치는 내 모습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제 다른 브랜드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그의 말처럼 박인비 하면 젝시오가 떠오르고 젝시오 하면 박인비가 생각나는 그런 관계로 각인된 것이다.

자,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과 세계 최대 운동화 브랜드 나이키를 떠올려보자. 나이키는 1985년 에어 조던 시리즈로 마케팅의 혁신을 이끈 뒤 지금까지 최고 브랜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브랜드와 선수의 이상적인 관계이자 브랜드 마케팅의 교과서 같은 모범 사례다. 나이키는 조던을 통해 소비 심리를 자극하고 기존의 충성 고객층을 공고히 하면서 새로 유입되는 소비층을 확보했다. 심지어 나이키는 골프를 즐겼던 조던의 이미지를 골프화에도 입히는 등 조던 시리즈의 컬래버레이션 리미티드 에디션을 끊임없이 창출해내고 있다.

나이키가 리복에 밀려 스포츠용품 제조업계 1위 자리를 내줬을 때 조던과 스폰서십 계약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브랜드와 선수의 관계는 기업의 성패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 성적 우선주의일까

브랜드마다 선수와 계약할 때는 저마다 기준이 있다. 여기에는 글로벌 정책의 철학과 기조도 포함된다. 기본적으로 아마추어와 프로 선수 모두 기본적인 커리어 성적이 객관적인 기초 자료가 된다. 스타성과 잠재력, 인성 평가도 이뤄지고 경기나 평소 행동이나 언행에 대한 애티튜드, 멘탈도 중요한 잣대가 된다. 선수와 계약을 하고 유지하는 것은 브랜드마다 어떤 기준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테일러메이드의 경우에는 가장 객관적인 자료가 되는 성적을 매우 중요시한다. 테일러메이드 관계자의 말이다. “계약 조건의 가장 기본은 성적이다. 하지만 모든 선수가 항상 최고의 성적을 유지할 수는 없다. 우리는 선수의 잠재력을 본다. 슬럼프를 극복하고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는 브랜드의 상징적인 선수로 남게 되는 것이다. 성적이 좋지 않은데 인성이 정말 좋다고 해서 해당 선수와 계약을 유지하는 정책은 아니다. 다만 스타성이 풍부한 선수일 경우 예외를 두기도 한다.” 철저한 성적 우선주의인 셈이다.

2017년 LPGA투어 진출을 앞두고 테일러메이드와 클럽 계약을 맺은 박성현과 올해 클럽과 의류 후원 계약을 체결한 유현주가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테일러메이드 관계자는 박성현에 대해 “서로에 대한 믿음이 크다. 우리는 박성현이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고, 또 박성현은 테일러메이드의 기술력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다”고 밝혔다.    

타이틀리스트도 선수의 커리어 성적을 객관적인 자료로 두고 계약 여부를 판단한다. 다만 타이틀리스트는 구체적인 리크루팅 기준을 적용한다. 단순히 우승을 많이 한 선수가 아니라 경기에서 나타난 꾸준한 데이터가 기반이 된다. 또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선수가 가진 전반적인 애티튜드도 매우 세부적으로 살핀다. 여기에는 경기에 임하는 자세와 운영 능력, 자기 관리, 긍정적인 마인드와 책임감, 성실성, 브랜드 충성도 등 다양한 기준이 포함된다. 성적을 기반으로 선수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얼마나 열정적이고 진지하게 투어에 임하는 지 판단하는 것이다.

타이틀리스트 관계자의 말이다. “선수와 후원 계약을 하고 유지하는 것은 성적으로만 판단하지 않는다. 무조건 잘하는 선수를 뽑지 않는다. 어느 정도 기준을 넘으면 우리와 얼마나 오래갈 수 있는 선수인가, 성장 가능성을 고민한다. 성적만 좋은 선수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우리 브랜드와 2년 이상 경험을 통해 합을 맞추고 신뢰를 쌓으며 우리의 투어 서비스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살핀다. 신뢰 관계가 쌓인 선수와는 오래간다.” 절대평가와 수행평가가 동시에 이뤄지는 셈이다.

현재 타이틀리스트는 아쿠쉬네트코리아 설립 당시부터 시작해 10년 이상 후원 계약을 유지하는 선수가 많다. KPGA 코리안투어 시드가 없는 김도훈과 인연을 이어가고, 김경태와 박상현도 타이틀리스트와 의리를 지키는 선수들이다. 또 지난해 화려하게 부활한 김태훈도 8년의 기다림이 만든 결과다. 이 관계자는 “수많은 국내 선수들은 물론이고 애덤 스콧이나 조던 스피스처럼 투어에서 진지하고 열정적인 자세로 임하는 선수들이 꾸준히 브랜드 로열티를 키워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계약은 성적순이 아니다?

“성적이 계속 좋지 않은 상태로 지속되더라도 미즈노 클럽을 계속 사용할 건가?” 골프를 하는 한 미즈노와 함께하겠다는 김세영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때 돌아온 대답이 “그건 미즈노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다. 아마도 먼저 선수를 바꾸지 않을까?” 물론 농이 섞인 대화였지만 여기에서 브랜드와 선수의 미묘한 관계에 대한 또 다른 궁금증이 생긴다.

‘주도권’에 대한 이슈다. 한국미즈노 관계자는 “브랜드와 선수의 주도권이 50 대 50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도권은 선수에게 있다”고 밝혔다. 이어 “선수가 특정 용품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고 퍼포먼스를 내는지 확인한다. 우리 클럽에 대한 피드백에서 신뢰에 대한 확고한 안정감이 느껴지면 그다음 스텝이 브랜드다. 선수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어떻게 지원할지 고민하며 함께 가는 것이다. 우리는 선수를 기다려주며 서로를 위하는 것이 관계를 오래 끌고 갈 수 있는 것이다.”

미즈노가 선수와 계약을 유지하는 핵심 기준은 그 선수의 캐릭터다. 성적이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의미다. 부정적인 이슈를 많이 몰고 다니는 선수가 아니라 브랜드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 줄 수 있는 선수를 중요한 포인트로 삼는다. 이 관계자는 “선수들이 우리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한 우리가 먼저 계약을 파기하거나 버리지 않는다. 물론 계약 조건이 달라질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을 두고 기다린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인연을 이어가는 선수가 많다”고 강조했다. 미즈노는 이정민과 오랜 계약을 유지하고 정슬기, 인주연을 비롯해 1부 투어 시드를 잃은 백규정과도 의리를 지키고 있다.

선수 리크루팅 기준이 완전히 다른 브랜드도 있다. 핑이 대표적이다. 톱 랭커의 완성형 선수가 아닌 신인 발굴과 발전 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선수를 후원한다. 핑골프 관계자의 말이다. “미국 본사에서도 몸값이 비싼 스타플레이어와 계약하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 아마추어나 루키 때부터 계약해 선수 기량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2부 투어 때부터 클럽을 지원한 뒤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핑은 ‘늦깎이 스타’로 주목받은 황인춘과 2008년부터 오랜 기간 인연을 이어가고 국가 대표 시절부터 후원한 장승보도 핑과 의리를 지키고 있다. 이다연과 박민지, 이소영, 전영인 등도 핑과 함께 커리어를 쌓고 있는 선수들. 어쩌면 핑은 의리로 계약을 유지하는 브랜드에 해당한다. 그러다 보니 잘 키운 선수가 커리어를 쌓고 떠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핑 관계자는 “우리는 스타플레이어 영입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외모나 스타성도 크게 따지지 않는다. 잠재력을 보고 꾸준한 선수를 지원한다. 다만 인성이 아무리 좋은 선수도 결국 뜨면 나가더라. 사실 그럴 땐 시원섭섭하다”고 푸념했다. 20년 이상 핑 클럽을 사용하는 버바 왓슨은 진정한 의리파가 아닐까.  

브랜드와 선수의 관계가 꼭 냉정한 것은 아니다. 캘러웨이는 협찬사와 선수의 관계가 아닌 가족 같은 분위기를 강조한다. 캘러웨이는 함정우와 오지현, 김지현 등과 10년 이상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캘러웨이 관계자는 말한다. “선수는 로봇이 아니다. 사람이니까 성적이 안 나올 때도 있다. 우리가 이들과 함께 오랜 시간 유지하는 이유는 선수에 대한 믿음이다.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닌 가족 같은 관계다. 성적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보다는 정과 의리가 영향을 많이 끼치는 것 같다. 그런 마음을 선수들도 알기 때문에 서로를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김대현이 군 제대 후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계속 함께 가면서 혹시라도 클럽이 잘못된 게 아닐까 고민하며 선수가 잘할 수 있도록 힘을 북돋아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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