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에 중독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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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에 중독된 세상
  • 서민교 기자
  • 승인 2021.11.03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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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병규
사진=조병규

대한민국이 골프에 빠졌다. 혼돈의 코로나 시대에 골프업계는 유례없는 호황이다. 달콤한 골프의 매력에 중독된 세상이다. 

최근 1~2년 사이 골프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코로나 19 여파로 유통과 레저 산업이 큰 타격을 받았지만 골프 산업은 오히려 최대 수혜 업종으로 꼽힌다. 골프장은 부킹 대란을 겪으며 치솟은 그린피에도 입장객이 몰린다. 지난해 전년 대비 골프장 입장객은 약 1000만 명이 증가했고 골프 인구도 약 50만 명이 늘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골프웨어 브랜드가 하나씩 생긴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골프 의류 산업은 급성장이 두드러진다. 해외 명품 브랜드도 트렌디한 한국 골프 패션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골프용품 업체는 브랜드마다 재고가 없어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중고 마켓에서도 골프용품의 거래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프리미엄 골프용품 및 의류 브랜드 마케팅 담당자에 따르면 “골프업계에 10년 이상 근무하면서 이런 무드는 처음이다. 모든 사업부가 동시에 건강한 밸런스로 성장하고 있다. 코로나 영향에도 다른 산업에 비해 운이 좋은 케이스인 것은 분명하다. 새롭게 유입된 골프 인구가 빠져 나가지 않도록 새로운 마케팅에 대한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고, 이와 함께 골프가 비즈니스 매개체가 아닌 건강한 스포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책임감마저 느낀다”고 전했다.

때아닌 호황을 누리는 골프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시대의 흐름을 잘 탔다. 하늘길이 막히고 사회적 거리 두기로 여가 활동을 할 수 있는 실내 공간이 없어지자 실외 스포츠인 골프로 사람들이 몰렸다. 불특정 대인 접촉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실내외 골프 연습장과 야외에서 4인 이하 플레이가 가능한 골프의 특성은 절묘하게 사회적 거리 두기의 망을 빗겨갔다. 또 유흥업소를 비롯한 밤 문화가 강제 차단되면서 과거 쉬쉬하던 골프 모임이 비즈니스 관계 형성을 위한 대중적이고 합법화된 양지의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

골프의 대중화 바람을 타고 골프장 문화도 바뀌고 있다. 복장 규제 등 격식을 따지는 엄격한 분위기가 사라졌다. 재킷을 입고 클럽하우스를 출입하던 과거와 달리 여성 골퍼와 젊은 입장객이 늘면서 격식 없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문화가 스며들고 있다.

한때 모호해지던 회원제와 대중제 골프장의 경계도 다시 두드러지고 있다. 회원제 골프장이 대부분 대중제로 전환하면서 지난해 기준 501곳 골프장 가운데 회원제 골프장은 160곳으로 줄었다. 코로나 특수를 누리고 있는 대중제 골프장은 하늘길이 열려 해외로 나가는 골퍼가 늘어날 경우 다른 환경에 놓일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반면 회원제 골프장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박원훈 더스타휴골프앤리조트 고객서비스팀장은 “회원제 골프장도 가격 경쟁을 했는데 이젠 퀄리티 경쟁을 하는 단계로 넘어가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가는 분위기다. 회원제 골프장의 경우 기존과 같은 회원제 그린피를 받으며 내장객 수도 철저히 지키고 있다. 회원제 골프장은 더 명문화를 추구하면서 가격 경쟁을 하는 대중제 골프장과 양분화되는 새로운 경계가 생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박 팀장은 “회원권 가격도 시장 논리에 의해 저절로 상승했지만 코로나 사태가 끝나더라도 큰 이슈는 없을 것”이라며 “다만 가격 경쟁을 하는 대중제 골프장은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행지에서 모든 관광객이 누구나 그 지역 숙박 시설을 이용할 수 있지만 최고급 호텔을 이용하는 고객과 가성비 좋은 숙박업소를 찾는 고객으로 나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골프에 접근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와 TV, 디지털 채널을 막론하고 온통 골프를 내세우고 있다. 유튜브에서는 골프 관련 다양한 콘텐츠가 무수히 쏟아지고 인스타그램에서는 스타일리시한 골프 패션이 여성 골퍼를 중심으로 트렌드를 주도한다. TV 채널에서는 지상파와 종편이 모두 달려들어 유명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를 앞세운 골프 예능 프로그램을 방송하며 경쟁을 펼치고 있다. 젊은 MZ세대의 유입으로 타깃 연령대의 폭도 넓어졌다. 골프 광고업계에서도 A급 연예인이 광고 모델로 나서고 있다. 골프 산업에 이른바 ‘돈이 돌고 있다’는 방증이다.

특히 방송계는 골프가 주류가 되어가는 추세다. TV 채널만 돌리면 골프 예능 프로그램이 넘쳐 난다. 골프 예능 프로그램 성공 사례가 줄을 잇자 시청률 경쟁을 벌이며 제작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다. 유튜브에서도 100만 조회 수를 넘는 콘텐츠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골프가 대중화되고 참여형 스포츠로 변화하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자 지인들과 취미로 은밀히 즐기던 연예인 방송 출연의 포문이 열린 것이다.

다양한 채널에서 골프 대중화를 선도하는 임진한 에이지슈터골프스쿨 대표는 달라진 골프 인기를 몸소 느끼고 있다. “요즘은 정말 피부로 느낀다. 길 가다가도 유튜브를 보며 많이 배우고 있다며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지상파에서 골프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는 것은 과거에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다. 골프 인구가 어마어마하게 늘었다는 방증이 아닌가. 골프는 대중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스포츠였다. 손예진, 지진희 씨 등 스타들의 골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쉽게 접근하고, 더 하고 싶은 스포츠로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 숨어서 골프를 즐기던 스타들도 이젠 오픈 마인드를 갖기 시작했다. 골프는 어려워서 재밌는 스포츠다. 매력에 한번 빠졌기 때문에 당분간 골프 인기는 계속될 것 같다.”  

개그맨 김준호, 홍인규 등이 소속된 제이디비엔터테인먼트의 이강희 대표도 골프 인기와 맞물려 방송가에서 예능 프로그램이 붐업되고 있는 현상을 적극 반기면서도 아직은 인기에 편승한 출발점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예전부터 있던 ‘개골개골’이라는 골프 모임의 단장이 김준호, 총무가 홍인규였다. 참여형 예능 카테고리가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연예인의 경우에는 어필할 수 있는 무기 하나가 더 느는 것이다. 다만 전 국민을 타깃으로 하는 TV 예능과 OTT 예능은 분명 차이가 있다. 제작 포맷 자체가 각각 따로 있다. 골프는 축구나 농구처럼 누구나 해본 스포츠가 아니다. 대중 예능으로서는 아직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이동경 스포티비골프앤헬스 제작팀장은 “기존 골프 채널의 포맷에 코로나 사태로 인한 지상파의 여유 자금과 연예인이 참여하며 진입 장벽이 높았던 골프가 예능 소재로 쓰이고 있다”며 “골프 산업이 급성장하고 골프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에 미디어의 이런 현상은 포맷을 다양하게 바꿔가며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단순 예능에서 전문성 있는 프로그램으로 발전, 확대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골프 산업 호황과 인기와는 달리 국내 최대 포털 사이트의 트래픽 유입이나 스포츠 중계 서비스에서는 큰 재미를 못 보고 있다. 주건범 네이버 스포츠 리더는 골프의 인기로 인한 미디어 노출의 증가가 선수의 플레이를 조명하는 중계 서비스로 연결되는 직접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했다. “지상파를 포함해 TV를 틀면 나올 정도로 골프의 미디어 노출이 많아지고 골프 인구도 늘고 있지만 포털 사이트에서는 이런 분위기가 폭발적으로 연결되거나 데이터로 늘고 있는가는 의문이 있다. 골프는 여전히 대중화에 한계가 있고 생활 스포츠 관점에서 볼 때 허들이 존재한다.”

골프를 보는 사람이 10명이라고 하면 8~9명은 직접 플레이를 하는 사람이다. 스포츠 여가로 매력은 있지만 값비싼 골프장에 가야 하고 장비와 의류를 구매하고 레슨도 받아야 한다. 골프 중계 등 트래픽이 많지 않은 이유는 골프는 어려운 종목이고 진입 장벽이 높다는 것이다. 주 리더는 “네이버에서도 골프의 대중화와 생활 스포츠의 가치를 인지하고 있지만 골퍼의 플레이를 돕는 뉴미디어 애플리케이션 서비스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면서도 아직 첫 삽을 뜨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바라보고 있다”고 경계했다.  

유례없는 골프 호황에 다양한 시선으로 이 현상을 바라보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골프홀릭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교 동기들이 골프를 시작하고 라운드 나가자고 연락이 오는 걸 보면 확실히 젊은 세대도 골프를 많이 즐긴다는 것을 느낀다.” 프로 10년 차를 맞은 스물여섯 김효주가 느낀 신선한 충격이다. 그는 “골프를 진지하게 경기하는 입장에서 예능 프로그램에서 재밌게 골프를 즐기는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드릴 수 있는 것은 여러 방면에서 신선하고 좋다”며 “골프가 대중들에게 더 관심을 많이 받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은 골프 중독에 흠뻑 빠져 마음껏 누려도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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