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인터뷰] 김재희, 솔직하게 그리고 자신감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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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인터뷰] 김재희, 솔직하게 그리고 자신감 있게
  • 고형승 기자
  • 승인 2020.10.06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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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대표 상비군과 국가 대표를 거쳐 현재 KLPGA 2부투어 상금 랭킹 1위를 달리는 김재희는 자신을 밑바닥부터 올라온 선수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뷰를 통해 들여다본 김재희의 솔직한 속마음을 일기 형태로 풀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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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관종(관심 종자의 준말)이냐고? 음, 그 물음에 특별히 아니라고 부정은 못하겠다. 왜냐면 난 관심 받는 게 좋으니까. 하지만 정말 아이러니한 건 평소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는 점이다. 관심을 받기 위해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거냐고? 결코 그런 게 아니다. 정말 낯을 많이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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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주 내성적이고 숫기 없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면 그건 아직 두 번째 만남이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드림투어(2부투어)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만약 1부투어에 진출해 어느 정도 적응하다 보면 언젠가는 장하나 선수 못지않은 통통 튀는 선수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카메라 앞에서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스포트라이트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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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종기’는 아주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 같다. 나는 국가 대표 출신이다. 이것만 놓고 본다면 엘리트 코스를 밟고 순탄하게 프로에 입문한 골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주니어 선수 시절 실력이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골프를 시작한 후 2018년 국가 대표 상비군이 되기 전까지 난 밑바닥에 있던 선수 중 한 명이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그 누구도 김재희라는 선수가 있다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미미한 존재감이었다. 국가 대표 상비군을 거쳐 지난해 국가 대표 태극 마크를 달고 나니 왜 그토록 많은 선수가 그 자리를 원하는지 어렴풋이 알게 됐다. 태극 마크의 무게감도 있었지만 막상 그 위치에 가보니 인정을 받고 그 자리와 어울리는 대우를 받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그리고 다시 예전처럼 밑으로 내려가기 싫었다. 더 열심히 했고 그러면서 ‘아,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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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대표로서 해외에서 경기를 치르다 보면 외국인 선수의 심리 상태가 고스란히 전해질 때가 있다. 일단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눈빛부터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다. 다른 나라 선수보다 더 경계하고 상대하기 버거워하는 것 같다. 한국 선수를 만나면 그들은 늘 전투 모드로 돌아선다. 그들이 그렇게 반응하는 건 그만큼 한국 선수들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럴 땐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상대적 우위에 설 때 강한 자신감을 뿜어내며 오라가 온몸을 감싸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럴수록 상대 선수는 주눅 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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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늘 배짱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생활에서도 그렇고 골프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최종 라운드 마지막 조에 들어가더라도 기죽지 않고 떨지 않고 자신 있게 플레이하고 싶다. 아버지는 내가 골프 클럽을 처음 잡을 때부터 “실수해도 상관없으니 무조건 자신 있게만 플레이하라”고 강조했다. 그건 지금까지 골프를 하는 내내 반복해서 들어온 말이다. 이 말은 마력이 있다. 마음을 아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안정제가 된다. 그리고 필드 위에서 공격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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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래에 비해 골프를 늦게 시작했지만 매해 성장하고 있다. 처음엔 컷 탈락을 수없이 했다. 그러다가 모두 메이크 컷에 성공하고 상위권에 들고 국가 대표 상비군과 국가 대표를 거쳤다. 물론 정체 시기도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나보다 한발 앞에 있었고 그 간격을 좁히지 못할 때가 있었다. 어느 순간 나란히 뛰게 되자 그들 중 일부는 무척 당황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일부는 그 상황을 인정하지 못했다. 그런 행동은 오히려 자신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다. 상대가 자신보다 나은 성과를 낸다고 시기와 질투를 하는 건 그만큼 그들도 간절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저 선수보다 실력이 월등해’라는 생각이 이미 그들의 뇌를 지배하고 있다. 결과가 조금이라도 어긋나기 시작하면 결국 스스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럴수록 나는 그들보다 더 멀리 달려나갈 수 있다. 물론 내가 다시 그들보다 뒤처질 수 있다. 그럴 땐 내가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면 된다. 그리고 진심을 다해 축하의 말을 전할 것이다.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연구해서 다시 앞서나가기 위해 뛸 준비를 할 것이다. 아주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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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운동신경이 좋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학교에서 배드민턴이나 수영, 달리기를 하면 눈에 띄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그건 재미로만 했을 뿐 선수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어느 날 골프를 처음 접한 후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아버지를 따라간 골프 연습장에서 퍼트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라인을 읽거나 거리를 가늠하는 사전 루틴과 볼이 떨어질 때 나는 ‘땡그랑’ 소리에 마음을 홀딱 빼앗겼다. 그 모습을 본 연습장 코치님이 골프 선수를 해보라고 권했다. 그때부터 골프는 내 운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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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버 샷 거리가 평균 250야드 정도다. 그리고 아이언 샷도 그린을 많이 놓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짧은 거리에서 샷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결국 그린 주변 벙커 샷이나 어프로치 샷은 내가 풀어야 할 숙제로 여전히 남아 있다. 연습할 때 많은 시간을 여기에 할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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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은메달리스트 김병관 코치님에게 4년째 배우고 있다. 코치님은 진지한 스타일이 아니다. 아, 오해는 하지 않길 바란다. 골프 교습에서 그렇다는 뜻이 아니다. 볼이 잘 맞지 않아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그것에 관해 엄격하게 지적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내 성격도 비슷하다. 이미 나온 결과에 진지하게 반응하는 편이 아니라서 그런 부분이 코치님과 잘 맞는 것 같다. 마음이 무척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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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까진 아니었지만 몇 달 동안 볼이 맞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건 정신적인 부분도 맞닿아 있었다. 지난해 KLPGA투어 시드 순위전을 앞두고 나를 둘러싼 공기가 이상하게 변하고 있음을 감지했다. 국가 대표 출신이기 때문에 주위에서는 무조건 1부투어로 바로 가야 한다는 말을 많이 했다. 그것이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오히려 시드 순위전을 마치고 나자 부담은 말끔히 사라졌다. 2부투어에서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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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부담에서 벗어난 줄 알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100%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시드 순위전부터 흔들리던 샷이 올해 초까지 이어졌다. 시드 순위전을 준비하며 코치님에게 한 달 이상 샷 점검을 받을 수 없었던 원인이 컸다. 샷을 교정할 시간이 필요했다. 궁지에 몰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다. 코로나19 때문에 대회 일정이 미뤄졌다. 그 사이 충분히 샷을 가다듬었고 2부투어 첫 대회부터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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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나는 목표를 수치화해서 그대로 하려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냥 최선을 다해서 하다 보니 매해 그 안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올해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현재 2부투어 상금 랭킹 1위에 올라 있다. 과거에도 가장 높은 위치에 있을 때가 있었다. 앞으로도 내가 있는 환경에서 정상의 자리에 앉아 있을 날도 오겠지. 그럼 사람들은 언제나 내 스코어와 행동에 주목할 것이다. 나는 골프를 할 때마다 ‘사람들이 보니까 부끄럽게만 플레이하지 말자’는 생각을 한다. 그건 꽤 괜찮은 자극제가 된다. 성적이 좋지 않을 때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싹 사라진다. 한 타라도 더 줄여서 올라가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바뀐다. 더 신중하게 플레이하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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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판과 인성이 뛰어난 선수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 그리고 팬이 많은 선수가 되고 싶다. 나는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정말 다 퍼주는 스타일이다. 그들의 성공을 바라고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들도 나에게 잘한다는 소리를 해주면 그 한마디에 힘을 낸다. 다른 백 마디의 말보다 그것이 동기부여가 된다. 반대로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이나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앞에서 티를 내지 않지만 더는 관계를 지속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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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 선수가 내 롤모델이다. 매치플레이에서 상대 선수에게 보인 행동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상대가 자신보다 후배 선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컨시드도 후하게 주면서 경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며 그런 점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분명 자신감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을 것이다. 아직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같이 플레이하게 된다면 ‘모든 걸 다 이룬 후에도 더 이루고 싶은 게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그 자리까지 가면 마음가짐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한 번씩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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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을 잘못 쳤다고 생각했는데 홀인원이 된 경우가 있다. 2년 전 겨울이었다. 국가 대표 상비군 선발전 연습 라운드 때였다. 골든베이컨트리클럽 17번홀(파3)에서 180m를 보고 샷을 했는데 볼이 왼쪽으로 감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볼이 라인을 타고 홀로 쏙 들어갔다. 그때가 첫 홀인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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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에 1부터 4까지 적으면 무조건 순서대로 그 볼을 사용해야 한다. 각각의 박스 안에 든 볼에 번호를 매기면 첫 번째 박스는 1라운드, 다음 박스는 2라운드에 사용하는 식이다. 또 대회 전날 저녁에 요구르트 종류는 절대 먹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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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과는 무척 단순하다. 모든 프로 골퍼가 비슷하겠지만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연습장에서 샷 연습을 하고 그 후에는 웨이트트레이닝과 필라테스를 한다. 주말엔 오전에만 클럽을 잡는다. 주말 오후에는 강아지와 산책하고 동네 친구를 만나 카페에서 수다를 떤다. 그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생크림 케이크다. 그건 내 ‘최애’ 푸드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 국내 보이 그룹 세븐틴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그것이 최고의 휴식이다. 일주일간 쉬지 못한 걸 몰아서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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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 시절은 인생에 단 한 번이니까. 내년 목표는 무조건 신인상이다. 한국 투어에서 톱의 위치까지 올라가는 것이 다음 목표다.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1년에 메이저 대회를 포함해 3승을 거둬야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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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초반까지는 골프만 생각하며 플레이하다가 그 후에는 쉬는 시간을 가지면서 카페를 운영하다 나중에 시니어투어에 참가하고 싶다. 카페? 그건 너무 골프만 바라보고 골프에 몰입된 삶만 살고 싶지 않다는 바람에서 나온 계획이기도 하다. 삶은 즐겨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김재희
나이 19세
소속 스포티즌
후원 우리금융그룹 
경력 국가 대표 상비군(2018) 국가 대표(2019) 
우승 KLPGA 드림(2부)투어 3승(2020) 
상금 KLPGA 드림투어 상금 랭킹 1위(10월 6일 현재) 

[고형승 골프다이제스트 기자 tom@golfdig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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