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부재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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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부재의 시대
  • 고형승 기자
  • 승인 2020.08.04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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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자이언티가 2014년 세상에 내놓은 노래 ‘양화대교’의 노랫말이 요즘처럼 머릿속에 콕콕 박히는 시기도 없는 듯하다.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양화대교를 오가는 자동차 불빛을 바라보며 이 고통의 시간이 언제쯤 끝날지 상상하다 보면 한 땀 한 땀 꿰어가는 바늘 놀림처럼 가슴 끝이 간질거리며 저릿하다. 

프로 스포츠 경기가 어느 순간 비인기 종목처럼 조용히 진행되는 걸 바라보고 있자니 인간의 존재가 한없이 약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작은 건 지름이 80nm(나노미터: 1미터의 10억분의 1인 단위)에 불과한 바이러스에 인간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점령당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전시와 다름없는 환경에 처하자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는 답답함에 몸부림치고 심지어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제멋대로 행동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최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대도시에 사는 미국인 대부분이 우울증과 절망을 동시에 느끼는 등 심한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평소 좋아하던 프로 스포츠를 볼 수 없다는 것에 심한 좌절을 느끼는 젊은 세대도 많다. 최근까지 현장이 아닌 TV 중계로도 볼 수 없었으니 그 허탈감과 상실감은 대단했다. 미국의 스포츠 전문 케이블 채널인 ESPN이 극적인 협상을 통해 한국프로야구(KBO) 리그를 중계하기로 한 것이 그리 놀랍지 않은 일이 됐다. 그리고 야구 선수가 배트를 던지는 행동(일명 ‘빠던’)에 열광하는 해설진을 보는 것도 이제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영어의 접미사 중 ‘~이 없는’이란 뜻을 가진 ‘~less’가 뒤에 붙는 단어는 여럿 있다. ‘노숙자’를 뜻하는 ‘홈리스(Homeless)’라든가 ‘소용없다’는 의미로 쓰이는 ‘유스리스(Useless)’ 그리고 ‘섹스를 하지 않는’ 커플을 표현할 때 쓰는 ‘섹스리스(Sexless)’ 등. 그 외에도 수많은 단어가 뒤에 이 접미사만 붙이면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변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단 한 번이라도 ‘스포츠리스(Sportless)’에 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사전에 등재되어 있지는 않지만 ‘골프리스(Golfless)’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운동이라곤 숨쉬기운동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관전하는 것까지 싫어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축구를 몰라도 월드컵 시즌만 되면 태극기를 리폼해서 옷처럼 둘러 입고 광장으로 뛰어나가지 않았던가. 올림픽을 보며 눈물 흘리고 함께 목이 터져라 응원하지 않았느냐 말이다. 

어떤 영화에서는 음악과 예술을 금하지만 인간의 본능이 그것을 거부할 수 없게 만들어 결국 그 사회 전체를 무너뜨리는 촉매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달리고 경쟁하고 싸우려는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억제할 수 있을까. 그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전 세계로 확산된 3월 중순(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날짜가 3월 11일이다)으로부터 어느덧 4개월이 흘렀다. 아직도 미국을 비롯해 남미와 중동의 여러 국가 그리고 아시아 일부 국가에서는 확산세가 수그러들지 않는 상황이다. 현재(7월 19일) 확진 환자가 1400만 명이 넘었고 사망자만 60만 명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렇게 진정세를 보이지 않으니 제아무리 스포츠 덕후라고 해도 어찌할 방법이 없다. 애꿎은 리모컨만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재방송만 시청하거나 방 안에 앉아 스포츠 관련 게임으로 아쉬움을 달래는 수밖에. 그나마 아시아 지역의 스포츠 팬들은 숨통이 트이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 지 두 달이 조금 넘었다. 

대만 프로야구를 시작으로 국내도 야구와 골프 그리고 축구 리그가 개막하며 그동안 느낀 갈증을 조금이나마 날릴 수 있게 됐다. 스포츠를 둘러싼 시장도 벼랑 끝으로 내몰리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TV 중계가 이뤄지면서 광고가 붙기 시작하고 야외 활동을 시작한 사람들이 이를 참고해 관련 용품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오프라인 매장보다 온라인을 이용하는 비중이 훨씬 늘었지만 그것만 해도 어딘가. 

색다른 응원전

전 세계 골프 투어에서 가장 먼저 시작을 알린 것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였다. 5월에 열린 KLPGA챔피언십은 코로나 사태로 대회가 취소된 것에 대한 보전 차원으로 총상금 30억원(운영비까지 포함하면 40억원 정도 될 것으로 예상한다)을 협회 발전 기금에서 충당해 개최했다. KLPGA투어는 WHO의 팬데믹 선언 이후 여덟 개 대회를 끝냈고 이 수치는 전 세계 골프 투어에서 가장 많은 대회를 소화한 것이다.

이를 지켜본 미국LPGA 관계자는 “전 세계 스포츠를 흔들어 깨운 역사적인 일이다”면서 “전 라운드를 모니터했으며 그를 기반으로 우리도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LPGA투어는 7월 중순부터 투어 재개를 위해 준비 중이었지만 더 늦춰졌다.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 역시 KLPGA투어의 방역 시스템(현장 대응 매뉴얼)을 벤치마킹하고 시스템을 갖추는 데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하지만 6월 말에 열린 어스몬다민컵 이후 다시 개점 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일본은 감염자가 점점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 

미국프로골프(PGA)투어는 3월 12일 개최 예정이던 플레이어스챔피언십을 취소하며 일정이 꼬일 대로 꼬였다. 7월 개최 예정이던 디오픈은 이미 취소한다고 발표했고 US오픈과 마스터스 그리고 라이더컵 등은 시즌을 넘겨 각각 9월과 11월에 개최할 예정(2020~2021시즌)이다. PGA투어는 6월 중순에 열린 찰스슈와브챌린지를 시작으로 시즌이 재개됐지만 남은 대회의 개최 여부가 불투명하다. 

한국프로골프(KPGA)코리안투어 역시 7월에 첫 대회인 부산경남오픈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현재 세 개 대회를 끝마친 상황이다. 남은 일곱 개 대회를 모두 치른다고 해도 올해 KPGA코리안투어는 단 열 개 대회만 열리게 된다. 

대회는 각 투어에서 조금씩 진행되고 있지만 분위기는 예전과 사뭇 다르다. 일단 대회장 안으로 진입하는 것이 무척 까다롭다. 공항 검색 절차도 이보다 까다롭진 않을 것 같다. KLPGA투어 대회장을 기준으로 살펴보자면 플레이어와 캐디도 검역 절차에 따라 매번 체온 검사를 진행하고 리스트를 작성해야 클럽하우스 출입이 가능하다. 또 코스 안으로 중계 제작 인력이나 스코어 집계 스태프 그리고 경기 위원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무관중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먼발치에서라도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를 보고 싶다며 경기장을 찾아와봐야 소용없다. 경기장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국여자오픈이 열린 베어즈베스트청라골프클럽은 코스 내에 있는 빌라 테라스에서 응원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건 아주 특별한 상황이다. 

갤러리 통제로 인해 국내 골프 팬의 아쉬운 마음은 커져만 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여자 골프의 인기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만큼 뜨겁다. 그런데 직접 얼굴을 마주할 수 없고 TV 화면으로만 봐야 한다는 사실에 몇몇 ‘찐’ 팬들은 대회장 입구를 배회하곤 한다. 더운 여름에 그렇게 기다리는 모습이 안타까워 지나가던 다른 선수가 대신 물을 건네는 장면도 본 적이 있다. 

대부분의 팬은 골프 중계를 시청하며 응원한다. 젊은 층은 느긋하게 집에서 TV를 시청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포털 사이트를 통해 중계 영상을 시청한다. 야구나 축구 경기가 열리지 않는 시간대에는 ‘스포츠라면 뭐든 본다’는 스포츠 팬들의 접속이 몰리면서 이상 현상이 발생하곤 한다. 골프 대회를 중계하는 시간이면 포털 사이트에 ‘여자 골프’, ‘KLPGA’, ‘미녀 골퍼’ 등이 실시간 인기 검색어 상위권을 점령하다시피 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뛰어난 선수는 일약 스타로 집중 조명되는 기현상이 발생한다. 

팬층이 두꺼운 선수의 팬덤은 그 화력 또한 대단하다. 온라인상에서 혹여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에 관한 비난 글이 올라오면 그 글을 쓴 사람의 멘탈이 탈탈 털릴 때까지 공격을 가한다. 온라인 싸움이 오프라인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다만 현재 갤러리 통제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니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대회장에서 멱살잡이도 가능할 정도로 팬들 간의 신경전이 대단하다. 

일본에서 활약하던 선수의 팬클럽 회장은 “코로나 사태 이후에 온라인상에서 TV 중계를 보다가 서로 싸우거나 기사를 보고 댓글을 달면서 싸우는 걸 요새 자주 보게 된다”면서 “골프장에서 그렇게 점잖던 사람들이 키보드 워리어로 변모하고 있어 무서워진다”라고 말했다. 

최근 모 여자 선수의 섹시한 이미지만 부각하는 기사를 올린 기자에게 항의 메일을 보냈다면서 흥분하는 한 골프 팬은 이렇게 말했다. 

“정말 요즘 더 심해진 것 같다. 골프 선수가 예쁜 건 좋은데 실력도 없는 선수를 굳이 부각해서 이슈 몰이를 하려는 행태가 정말 꼴 보기 싫어서 항의성 메일을 보냈다. 그 기자는 그와 관련해 아무런 변명이나 대꾸도 없었다. 만약 계속해서 그런 식의 기사를 쓴다면 나도 계속 메일을 보낼 것이다.”

포스트 팬데믹

언제 이 사태가 종식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사회가, 스포츠계가 그리고 골프계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극명하게 나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제 팬데믹 이후 어떻게 골프계가 바뀔 것인지 예측하고 거기에 맞춰나가야 할 것이다. 

투어의 형태도 마찬가지. 이번 사태로 그동안 투어 환경이 탄탄하지 못한 일부 투어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경기 침체로 인한 대회 후원 기업의 이탈과 부실한 대회 기획·운영사의 폐업이 줄을 이을 것이고 중계 제작을 하지 못하는 골프 채널의 적자 폭은 계속 늘어날 게 뻔하다. 

국내 골프 환경은 그나마 긍정적이라고 말한다. 골프장은 북새통이고 골프용품과 의류 회사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회복의 기미를 보인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다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업계의 어느 한 부분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면 연쇄적으로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골프다이제스트가 8월호 특집으로 ‘팬덤의 시대’를 주제로 잡은 이유는 과거와 다른 팬덤의 형태가 나타났지만 이를 통해 새로운 골프 문화를 열어야 한다는 데 방점을 찍고자 함이다. 지금은 비록 키보드 워리어로 변모하고 있는 일부 안티 골프 팬과 특정 여자 선수들을 부각해 눈길을 사로잡으려는 일부 언론 때문에 어수선한 장터 분위기지만 어느 정도 사태가 완화된 이후에는 더 건강한 팬덤 문화가 조성될 것이라고 믿는다. 

늘 그래왔듯 어려운 시기가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긍정적인 물줄기가 쏟아지며 힘차게 흐른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주류 문화를 만들어간다. 

[고형승 골프다이제스트 기자 tom@golfdigest.co.kr]

일러스트_김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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