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한 존 브룩스, 골프가 주는 즐거움과 고통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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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한 존 브룩스, 골프가 주는 즐거움과 고통에 대해
  • 인혜정 기자
  • 승인 2020.04.03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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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브룩스가 감춰왔던 자신의 비밀을 밝히며 골퍼의 꿈을 접게 된 이유, 그리고 골프가 남긴 빈자리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 놓는다. 

어려서 성 정체성을 깨닫기 시작했을 때 최초의 ‘커밍아웃’ 남자 프로 골퍼가 되겠다는 꿈을 꿨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골프를 하면서도 한 번도 마음이 편한 적이 없었다. 내가 이 게임을 정말 사랑한다는 걸 생각하면 그건 이상한 노릇이다. 골프 덕분에 아버지와 관계가 돈독해졌고 사실상 그건 내 삶의 전부였다. 우리 집은 운동을 장려하는 분위기였다. 아버지는 켄터키주 프랭크퍼트라는 곳에서 공원 관리 이사로 38년을 근무했다. 

플레이를 처음 시작한 건 다섯 살인가, 여섯 살 무렵이었다. 아버지인 스티브와 할아버지인 RT가 플레이를 즐겼고 시립 코스였던 주니퍼힐에 가면서 나를 데려가곤 했다. 나는 워낙 소심한 성격이었는데 골프 같은 개인 스포츠에서는 그런 성격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은 것도 골프를 좋아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소심함은 내가 게이라는 사실과도 관계가 있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그런 걸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다른 남자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운동과 관련해서 아버지가 유일하게 내게 강권한 건 열 살 때 주니어 시티 토너먼트에 참가하게 한 것이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지만 결국 내 연령대 그룹에서 큰 타수 차로 우승을 거뒀다. 골프는 내 정체성이 되었다. 

6학년 때 고등학교 팀에 들어갔다. 여름이면 주니퍼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버지의 사무실이 그 코스에 있었기 때문에 차를 얻어 타고 가거나 집에서 1.6km쯤 되는 거리를 걸어갔다. 화장실 청소를 하고 카트를 정리한 다음 온종일 플레이를 했다. 골프 코스에서 살다시피 했고 그게 좋았다. 

10대 초반에는 어른들과 플레이를 많이 했다. 그것도 좋았다. 아이들은 잔인할 때가 있는데 어른들은 대체로 아이들에게는 못되게 굴지 않는다. 그즈음부터 애들이 나를 ‘호모’라고 놀리기 시작했다. 너무 어리던 터라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몰랐지만 다른 남자아이들은 내가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내게 상처를 주었다. 

학교에서 자주 울었다. 우울해졌고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했다.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골프 코스는 내가 도망칠 수 있는 곳이었다. 가끔 골프 코스에서도 나를 놀리는 사람이 있었지만 실력은 모든 걸 평등하게 만들었다. 

10대 후반으로 넘어갈 때쯤에는 정말 실력 있는 골퍼로 이름이 났다. 주니어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휩쓸었고 우리 시의 주니어 대회에서는 17타 차로 승리를 거둔 적도 있었다. 나는 게이 꼬마 대신 골프 실력자로 더 알려지게 되었다.

고등학교에서는 계속 괴롭힘을 당했지만 어느 날은 나를 늘 게이 아니면 호모라고 부르던 불량배한테 마침내 반격을 가했다. “그래, 맞아. 왜? 관심 있어?” 이렇게 말했고 그는 그때 이후로는 나를 두 번 다시 귀찮게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있는 찰스턴칼리지에 진학해서 골프팀에 들어갔다. 그때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은데 나쁜 일만 있었던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때의 경험은 비참했고 플레이도 비참했다. 

기회를 얻었다는 것 자체는 뿌듯했지만 내가 존중받거나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한두 명 정도는 내 편이 되어주었고 그들과 지금도 친구로 지내고 있다. 그때는 커밍아웃을 하기 전이었다. 대학에 진학한 건 공부를 하고 골프를 하기 위해서였다. 성 정체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팀원들과 감독은 그걸 문제로 삼았고 차별했다.

엘리트 수준에서는 모든 종목이 다 힘들지만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을 신경 써야 한다면 이미 어떤 면에서는 오버파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문화가 바뀌어서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는 다행한 일이지만 만약 내가 대학에 다닐 때도 그렇게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환경이었다면 상황이 얼마나 달라졌을지 궁금하다. 

1992년, 열다섯 살 때 아버지와 함께한 브룩스. 멋진 스윙을 구사하던 열네 살 때 모습.

부모님에게는 열아홉 번째 생일 직후 커밍아웃을 했다. 봄방학을 맞아 집에 가서 부모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두 분은 놀랐지만 내가 골프를 그만두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했다. 골프를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기 위해 두 분은 많은 것을 희생했다.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부모님은 늘 다정하고 항상 나를 응원했다.

하지만 2학년을 끝으로 팀에서 나왔고 2년 동안은 플레이 자체를 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 후 올랜도로 가서 골프 관련 일을 하면서 다시 플레이를 시작했다. 회원제 클럽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스물두 살이었고 이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감추고 싶지 않았지만 컨트리클럽이라는 환경에서 나를 드러내기가 여전히 부담스러웠다.

스물세 살 때 다시 켄터키의 부모님 집으로 돌아와 플레이에 전념했다. 이후 3년 동안 내 실력은 정점에 도달했다. US미드아마추어에 두 번, US아마추어퍼블릭링크스에 한 번 참가했다. 하지만 내 골프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국제 아마추어 대회인 세인트앤드루스링크스트로피에서 플레이한 것이다. 정말 환상적이었다. 

캐디를 맡은 아버지와 함께 골프의 탄생지인 세인트앤드루스에 서 있었고 출발 요원은 1번홀 티잉 구역에서 내 이름과 함께 주니퍼힐을 홈 코스로 소개했다. 그 순간 정말 행복했다. 내가 어느 수준에 도달했는지를 말해주는 순간이었다.

파트너인 에릭을 만난 것도 그 무렵이었고 내 인생은 여러 면에서 완성되어갔다. 마침내 커밍아웃을 했고 플레이도 아주 순탄했다. 게임을 완전히 컨트롤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 

2005년에 에릭의 직장 때문에 우리는 런던으로 이주해 4년간 그곳에서 살았다. 어떤 클럽에 입회했지만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밝히지는 않았다. 입회를 거절당할까 봐 겁이 났다. 그곳의 골프 문화는 완전히 우호적이지는 않았다. 

런던 생활을 마친 후 에릭과 함께 시카고로 갔다. 게이 스포츠 리그에 합류했다. 물론 그곳에는 골프도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 접하는 환경이었고, 골프 코스에서 게이라는 사실을 서로 알고 만나거나 심지어 그런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게이 골퍼는 아직도 골프 문화에서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PGA투어 대회가 끝나면 보통 아내나 여자 친구가 18번홀 그린에 있다가 달려 나가곤 한다. 라이더컵 때는 아예 부인과 여자 친구들이 행진을 한다. 물론 좋은 일이지만 게이 운동선수들도 그런 일상을 원한다. 

에릭과 나는 2013년에 루이빌로 이사했고 멋진 클럽에 입회해서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3년간 활동하면서 회원들도 알게 되었다. 다들 나를 정중하게 대했지만 그중 많은 사람이 교회에 다녔다. 교회에서는 최근까지도 전환 치료를 실천하고 권유했다. 

라운드를 마치고 차로 돌아오면 안도의 한숨이 나오곤 했다. 새삼스러울 건 없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사회생활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는데 골프를 할 때 여전히 그런 느낌을 받아야 한다는 게 갈수록 피곤해졌다. 

이제 나는 마흔두 살이고 골프는 많이 하지 않는다. 평생 그림을 그려왔는데 갤러리를 운영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그 작품을 판매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일은 자리를 잡았지만 골프를 아주 멀리 밀어내지는 못했다. 

2018년에는 시네콕힐스에서 열리는 US오픈을 보러 갔다. 메디나에서 열린 2012년 라이더컵도 관람했다. 지난가을에는 시니어LPGA챔피언십을 보러 인디애나에 있는 프렌치릭까지 차를 몰고 갔다. 1980년대에 활동하던 탁월한 LPGA 선수들의 몇몇 기록은 지금도 외울 수 있다. 

골프는 내게 한없는 즐거움과 고통의 원천이었다. 게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나면 나를 묵인해준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그것도 내 실력과 정중한 태도 때문인 것 같았지만 그저 묵인한다는 느낌을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요즘의 성 소수자들은 자신답게 사는 것 외에 다른 것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사회가 진보한 덕분이고 이런 분위기는 그들의 잠재력 발휘로 이어질 것이다. 어쩌면 머잖아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게이 골퍼가 PGA투어에서 정기적으로 플레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골프가 남긴 빈자리를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골프는 내 삶에 자리를 잡았고 나는 아직 골프를 완전히 단념하지 못했다. 

글_존 브룩스(John Brooks) / 정리_인혜정 골프다이제스트 기자(ihj@golfdig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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