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출신 최초로 PGA투어에 입성한 빈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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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출신 최초로 PGA투어에 입성한 빈센트
  • 인혜정 기자
  • 승인 2020.01.08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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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카바소가 아프리카 잠비아 출신 최초로 PGA투어에 입성한 사연을 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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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비아의 작은 마을 루안샤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구리 광산에서 일했는데 그 회사가 골프 코스를 보유하고 있었다. 누군가 아버지에게 클럽을 줬고 아버지는 나와 내 6형제에게 골프를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골프에 관심을 보인 것은 나 혼자였다. 아홉 살 때 론앤털로프클럽에 갔을 때 마치 다른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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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아이들은 놀 때 새총을 들고 쥐 사냥을 가거나 맨손으로 물고기를 낚으러 갔다. 하지만 나는 매일 수업을 마친 뒤 골프 코스에 가서 연습을 했다. 아버지는 퇴근 후에 나를 데리러 왔다. 우리는 차가 없었는데 어둠 속에서 숲을 지나 집까지 걸어가곤 했다. 이는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다. 습격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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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정식 레슨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스탠스가 이상했고 10대 시절 내내 1985년산 퍼시먼 슬레진저 우드로 플레이했다. 방황하면서 낙담하던 나날도 있었지만 연습을 쉬지 않았다. 곧 스크래치 골퍼가 됐고 15세에 주니어내셔널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고 16세에 국가 대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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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든 사람에게 프로가 될 거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고 아버지는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것이 잠비아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다. 매일 BBC 스포츠 중계를 봤고 리포터의 이름을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국제적인 골프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를 적은 편지를 써서 실제 주소를 쓰지 않은 봉투에 넣었다. 나는 우편물이 어떻게 전달되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기만 바랐다. 그렇게 500통이 넘는 편지를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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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후 놀랍게도 누군가가 내 편지에 답을 했다. 영국 PGA투어는 내게 R&A에 장학금을 신청해보라고 조언했다. 그 권유를 따른 나는 영국 브리지워터대학 입학 허가를 받았다. 3000파운드의 학비를 마련해야 했다. 가족이 이를 부담할 방법은 전혀 없었지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항공료를 마련하기 위해 융자를 받았고 어머니는 평생 모은 적금을 깨서 600달러를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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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골프 장갑 하나만 든 채 맨몸으로 영국으로 향했다. 학교는 임대용 클럽과 골프화를 제공했다. 3주가 지났을 때 나머지 학비를 내야 했지만 돈이 없었다. 골프팀장 조너선 맥도널드는 내게 살 집과 학교 카페테리아의 일자리를 알아봐줬다. 그는 또 R&A에 내 상황을 설명하는 편지를 썼다. 이번에도 그들은 너그럽게 내 장학금을 1000파운드 올려줬고 새 골프 클럽도 지원했다. 첫 학기가 끝났고 브리지워터에서 다음 학비를 낼 수 없었다. 대회에 출전하기를 원했고 스코틀랜드의 엘름우드칼리지가 나를 받아줬다. 내가 돈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조너선이 써준 2000파운드의 수표로 글래스고에 가는 비행기 표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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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돈이 문제가 됐다. 1학년을 마쳤지만 2학년 학비를 감당할 수 없어 결국 잠비아로 돌아왔다. 은창가골프클럽에서 일했고 총지배인이 됐다. 좋은 직장이었지만 내가 꿈꾸던 삶을 살지 못했다. 하루는 ‘미국에서 PGA프로가 되는 법’을 검색하고 있을 때 프로골프매니지먼트 프로그램 팝업이 떴다. 그중 몇 군데에 지원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페이엣빌의 감리신학대학교에서 나를 받아줬고 장학금도 나왔다. 나는 가진 게 거의 없었고 학비의 절반을 감당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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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점이 되자 그 어떤 것도 나를 막을 수는 없었다. 내 꿈이 내 삶을 잡아먹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다 내게 꿈을 포기하라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자동차, 가구, 옷 등 내가 가진 거의 모든 것을 팔아 5000달러(약 600만원)를 모았다. 프로그램에 드는 비용은 4만 달러(약 4800만원)였고 장학금과 지원비를 합해 8000달러(약 1000만원)를 받을 예정이었다. 삼촌 루번이 내게 5000달러를 주었고 은창가골프클럽의 소유주였던 우리 회사 CEO가 미국까지 가는 비행기 표를 구해줘 노스캐롤라이나로 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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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이 생활 역시 일찍 마칠 위기에 처했다. 학교에 들어간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삼촌의 사업이 불황을 맞았고 나는 6개월 치 학비를 낼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중퇴를 해야 했다. 빚쟁이들이 끊임없이 내 방문을 두드려댔다. 빨리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심각한 상황에 처할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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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게도 첫 달 교회 모임에서 해나라는 여성을 만났다. 그는 맞서 싸우라고 나를 격려했다. 나는 PGA 웹사이트에 있는 모든 일자리에 구직을 신청했고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컨트리클럽에서 연락을 받았다. 헤드 프로 빌 월리스는 어시스턴트 프로의 일자리를 제안했고 클럽하우스에서 머물 수 있도록 도와줬다. PGA 프로 자격증을 받기 위한 경비도 지원해줬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내 여정 중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지 자문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 전화를 받은 후 내가 옳은 결정을 내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지체하지 않고 뉴헤이븐행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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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 해나에게 청혼했고 이듬해인 2015년 결혼했다. 공군에 복무하던 해나는 뉴저지로 전출됐다. 나는 그와 가까이 있기 위해 뉴저지주 마운트로럴의 로럴크리크컨트리클럽에서 티칭 프로로 일했다. 2018년 나는 PGA 회원 자격을 획득한 후 첫아이 조애나 자와디가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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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가지가 내게 얼마나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지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나를 믿어주고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를 도와준 모든 사람에게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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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보답하기 위해 나는 ‘Raised by the World Foundation’이라는 후원 단체 일을 시작했다. 꿈이 있지만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됐다. 우리는 오즈월드라는 소년을 후원하고 있는데 우리의 지원금 덕분에 사립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그는 내가 은창가에서 일할 당시 그곳에 무단 침입했다. 그에게 뭔가 특별한 점을 발견했다. 마치 나처럼.

빈센트 카바소 : 뉴저지주 말턴 거주, 32세
 
글_스티븐 헤네시(Stephen Hennessey) / 정리_인혜정 골프다이제스트 기자(ihj@golfdig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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