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인터뷰] 골프장 경비원에서 PGA투어 프로가 된 장신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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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인터뷰] 골프장 경비원에서 PGA투어 프로가 된 장신쥔
  • 인혜정 기자
  • 승인 2019.12.0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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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쥔(중국, 32)이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 합류하기까지 험난했던 그의 골프 인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열일곱 살이 될 때까지는 세상에 골프라는 게임이 있는지도 몰랐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계곡의 아주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중국의 산시라는 곳이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농사를 짓는다. 우리는 고구마와 옥수수, 밀 같은 것을 키우는 중국 시골에 사는 평범한 농부였다. 모든 걸 그렇게 길러서 먹었다.

열일곱이 되던 해에 고향을 떠나 이런저런 일을 전전했다. 친구를 따라 경호 학원을 다니면서 그와 관련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시안인터내셔널골프클럽이라는 골프 코스의 경비원 자리를 얻었다. 보수가 좋았고 생활비를 쓰고 남은 돈은 부모님께 보냈다. 

가끔은 출입구나 클럽하우스의 경비를 섰지만 대체로 순찰을 돌았고 특히 아무도 없는 밤에 돌아다닐 때가 많았다. 그곳은 정말 시골이었다. 그때는 어릴 때라 가끔 한밤중에 동물들이 내는 소리나 그와 비슷한 소음이 들리면 정말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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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기에 얼른 지원했다. 그러면서 플레이를 하기 시작했다. 몇몇 동료가 클럽을 쥐는 법이며 스윙하는 법 같은 기본을 가르쳐줬다. 겨울이 가까워 회원이나 게스트는 거의 나오지 않았고 나만 혼자 연습장에서 샷을 할 때가 많았다. 샷을 하고 나면 볼을 직접 주워다가 다시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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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자들이 고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그들보다 실력이 낫다는 걸 깨달았다. 샷을 할수록 실력이 좋아졌다. 그리고 실력이 향상될수록 골프가 더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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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은 플레이가 허용되지 않았지만 연례 직원 토너먼트 때만은 예외였다. 나는 1년을 연습한 끝에 토너먼트에 참가했다. 연습을 워낙 많이 했기 때문에 동료들과 내기까지 걸었다. 코스에 나가는 건 처음이었지만 잘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우승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동료들의 스코어는 80타대였다. 나는 116타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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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을 쌓으려면 코스에 나가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캐디를 지원했다. 캐디가 되면 교습가들이 화완들을 지도하는 걸 볼 수 있다. 레슨을 직접 보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캐디를 고용하면 데리고 나가서 플레이하며 훈련을 시킨다. 이렇게 캐디가 된 것을 계기로 골프 교습을 처음 접하고 코스에 더 많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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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교습가가 되는 게 목표였다. 코스에서 보수가 가장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려면 실력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습가는 되지 못했다. 그 대신 플레이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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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쯤 연습을 하고 나서야 아마추어 토너먼트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실력이 상당히 좋은 캐디가 있었다. 그가 출전한다기에 나도 따라갔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잘 풀렸다. 사흘간의 일정이었다. 나는 72-74-84로 12위를 했다. 정말 뿌듯했다. 속으로는 컷 탈락할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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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토너먼트에 참가해서 플레이하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하지만 이동하는 문제 때문에 많은 토너먼트에 참가하는 건 힘들었다. 돈이 부족한 탓에 기차와 버스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어떤 코스는 정말 멀었다. 20~30시간씩 기차를 타고 내려서 5~8시간 버스로 이동한 후 다시 택시를 타고 들어가는 식이었다. 힘들었지만 플레이가 정말 좋았다. 클럽은 코스에서 대여해주는 걸 사용했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저축한 돈으로 클럽을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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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중국 국가 대표가 되었다.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는 건 그곳 사람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교습을 받았다. 이동과 훈련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2010년에 프로로 전향하고 중국에서 활동하다가 일본투어에 도전해서 두 번째 해에 진출했다. 그러다가 중국PGA투어가 발족한 후에는 중국으로 돌아와서 활동했다. 2014년에 중국PGA투어에서 1승을 거뒀고 2015년에도 또다시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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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우승 이후 콘페리투어에 합류할 수 있었다.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 중국PGA투어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거기서 좋은 플레이를 거둔 덕분에 콘페리투어 출전 자격을 얻었다. 두 번째는 훨씬 나았다. 포인트 랭킹에서 20위를 차지하면서 2017~2018시즌의 PGA투어 카드를 얻을 수 있었다. 고전 끝에 카드를 상실하고 다시 콘페리투어로 돌아가야 했다. 2019년에 2승을 거두면서 정규 시즌 포인트 랭킹 1위를 차지했다. 출전권을 다시 손에 넣었고 또다시 PGA투어에 도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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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힘든 여정이었다. 하지만 포기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내와 부모님 그리고 코치인 홀턴 프리먼(Holton Freeman)의 응원이 큰 힘이 되었다. 그들의 격려 덕분에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 부모님은 골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나를 무척 자랑스러워하신다. 우리 마을에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았다. 이제야 골프라는 게임을 알게 되었고 실시간으로 스코어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시차에도 개의치 않고 스트리밍 생중계가 진행되면 꼭 챙겨 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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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왔다는 게 정말 뿌듯하다. 그 모든 역경을 이겨냈다는 게 자랑스럽다.

글_장신쥔 / 정리_인혜정(ihj@golfdig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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