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인터뷰] 조정민, 그 변화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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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인터뷰] 조정민, 그 변화의 시작
  • 고형승 기자
  • 승인 2019.10.1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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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비우고 버리는 데 인색하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비우고 버려야만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있다. 더 나은 것으로 말이다. 프로 골퍼 조정민은 새로운 변화를 위해 비우는 법을 천천히 배우고 있다.  

어떤 무속인이 그런 말을 한 게 기억난다. 관상을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심상(心相)’이라고 했다. 심상이 곧고 올바른 사람은 그것이 표정으로 드러나고 결국 자신의 관상까지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또 노년의 얼굴은 젊은 시절의 삶을 반영한다고 하지 않던가. 얼굴을 찌푸리면 그만큼 주름이 늘고 괴팍한 인상으로 변해 심지어 관상(운명)까지 바뀌게 된다. 물론 이것을 허무맹랑한 말이라 치부할 수도 있지만 아주 터무니없는 말이 아니라는 것 역시 어느 정도 수긍할 것이다.

요즘 국내 투어에서 가장 많은 이슈가 된 선수 중 한 명이 조정민이다.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올해 벌써 2승째를 거두며 상금 랭킹 2위(인터뷰 당시)를 달리고 있는 실력 때문만이 아니다. 그의 바뀐 인상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저 우승하고 기분이 좋으니까 자주 웃게 되고 그것이 예쁘게 보이는 거라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찬찬히 보면 정말 그는 달라졌다.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주변에서 예뻐졌다는 말을 많이 듣는지 물었더니 그는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느 정도 외모에 신경을 쓰고 있어요.”

사실 뜻밖의 답이 나오자 멈칫거렸다. 요즘 같은 시기에 여자에게 직접적으로 ‘얼굴에 손을 댔느냐’고 묻는다는 건 그냥 손을 내밀고 수갑을 채워달라는 것과 다름없는 행동 아니겠는가. 불편한 기류가 잠깐 흐르자 그는 상관없다는 듯 시원시원하게 말을 이어갔다. 

“2년 2개월 정도 하던 교정기를 풀었고요. 안경이 불편해서 라섹(시력 교정) 수술을 받았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피부과를 다니면서 화장도 조금씩 하고 있어요. 그거 아세요? 치과와 피부과는 ‘마법의 공간’입니다. 다녀올 때마다 느껴요. 주변에서는 수술한 게 아니냐고 물어보는데 전혀 그런 건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몇 달을 쉬어야 하니까 꾸준히 운동을 못했을 거예요.”

그의 솔직하면서도 담백한 답변을 듣고 있자니 궁금했다. ‘그런데 왜 갑작스럽게 외모에 신경을 쓰게 된 걸까? 혹시 심경의 변화를 일으킬 만한 사연이라도 있었나?’ 고민 끝에 툭 한마디 내뱉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그러자 조정민은 “아”라고 짧게 말한 뒤 잠깐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축구 관련 동영상을 보던 중이었어요. 선수들이 말끔한 슈트를 입고 버스에서 내리더니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늘 땀에 젖은 유니폼만 떠올리다가 아주 멋있는 모습으로 미디어나 팬을 응대하며 경기장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어요. 뭔가 정리 정돈된 느낌이었고 운동선수로서 정말 괜찮은 이미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프로 선수라면 외모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약간 뜬금없는 계기이긴 했지만 그가 말하는 정리 정돈된 느낌이 뭔지 감이 왔다.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예뻐졌다는 말을 들으면 아무래도 저도 사람인지라 기분이 좋아요. 그런데 얼굴이 변한 건 단지 치과와 피부과 때문만은 아니에요. 일단 제 체형이 바뀌었습니다. 몸무게만 비교하면 가장 많이 무게가 나갈 때보다 2kg 줄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지방을 없애고 그곳을 근육으로 채워 넣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체형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조정민은 겨울 전지훈련으로 전남 해남의 트레이닝 센터에서 혹독한 훈련을 소화하곤 한다. 밥 먹는 시간만 제외하곤 거의 트레이닝 센터에서 시간을 보낸다. 

“몸이 탄력적으로 변했고 몸의 감각이 달라졌어요. 미스 샷을 할 때 순간적으로 회복하려는 반응이 일단 달라요. 모든 감각이 이전보다 살아 있다는 걸 느낍니다.”

그는 올해부터 치마를 입기 시작했다. 지난해까지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계속해서 그의 말이다. 

“그동안 치마는 저와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단정 지은 이유가 가장 크죠. 운동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치마를 입었을 때 피트가 바지와 비교해 그리 나쁘지 않았어요. 또 의류 회사(레노마골프)가 신경 써서 옷을 협찬해주는데 바지만 고집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어요. 다양한 의류를 소화하는 것도 선수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평소 보이시한 느낌이 강하던 조정민은 이렇게 여성스러움이라는 신무기를 온몸에 장착했다. 여기에 올해 귀를 뚫은 건 그가 비밀스럽게 말해준 비장의 무기다. 

“여자가 귀걸이를 하고 있으면 1.5배 더 예뻐 보이는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골프는 모두에게 공평하다

조정민이 골프를 시작한 건 뉴질랜드 유학 시절부터 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유학을 가서 처음 접한 골프는 그에게 ‘놀이’였다. 수업을 마치고 특별히 할 일이 없던 그에게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조정민의 말이다. 

“원래 2년 계획으로 유학을 갔죠. 뉴질랜드라는 나라가 좋았어요. 그래서 부모님을 설득할 ‘돌아가지 않을 이유’를 만들어야 했어요. 그게 바로 골프였죠. 놀이가 제 운명이 된 순간입니다. 10년을 뉴질랜드에서 살고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주니어 선수 시절 조정민은 뉴질랜드 어디를 가더라도 알아보고 인정받는 유망주였다. 뉴질랜드 국가 대표를 지내면서 그는 어마어마한 연습량을 제대로 소화했다. 

“그냥 주위에서 잘한다고 하니까 그때는 제가 1등인 줄 알았어요. 사실 제가 생각해도 정말 잘했거든요. 힘든 거 모르고 신나게 골프를 했습니다. 좋은 성적도 많이 냈어요. 그러다가 한국에서 프로 선수가 된 이후에 충격을 다섯 번 정도 받았던 것 같아요.”

프로 무대에서 그는 마치 이방인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아니, 사실 이방인이었다.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한 부분은 신경을 써야 할 게 많다는 점이었다. 

“항상 접해오던 골프는 그런 게 아니었어요. 전에는 그냥 스코어만 줄이면 되는 게 골프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프로 무대는 달랐어요. 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떤 패턴(분위기, 환경, 의견 등)을 따라가지 않으면 제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고 또 그걸 따라가면 해오던 루틴(방식)이 아니니까 고전하기 일쑤였습니다. 해외 생활 경험이 있는 선배 선수들에게 질문하면 ‘넌 잘하잖아’라는 짧은 답변만 돌아왔어요.”

어느덧 조정민은 투어 통산 5승, 2019년 시즌 상금 랭킹 2위(9월 15일 현재)에 오른 베테랑 골퍼로 성장했다. 골프를 시작한 지 16년째다. 그의 말이다. 

“골프는 정말 알 수 없는 운동이죠. 하루하루가 다르니까요. 인내가 필요합니다. 사실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어떤 핑계도 댈 게 없습니다. 제가 못한 거니까요. 더스틴 존슨이 한 말 중에 ‘골프가 누구에게나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공평하다(Golf is hard but fair)’라는 말을 항상 기억하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떠올리곤 합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던 조정민은 한 템포 쉬면서 잠깐 생각을 정리하는 듯 보였다.

“모든 운동선수가 다 그렇겠지만 목표가 뚜렷하지 않을 때가 있어요. 어느 정도 해야 내가 성공한 건지 모를 때가 있죠. 각자 성취감의 기준이 다르니까요.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그렇지 않을 때는 ‘내가 지금까지 뭘 한 거지?’라는 의문이 들어요. 골프가 가장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입니다. 요즘에는 저만의 기준을 잡으려고 합니다. 연습할 때 조금의 성취감이 더해지고 합해지면 그것이 코스에서 자신감으로 표출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골프를 놀이로만 알던 조정민이 요즘 바라보는 골프다. 

“골프는 제 비즈니스죠. 자신의 비즈니스에 대해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건 열정이 너무 없는 것이죠.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아야 자극이 되고 그로 인해 노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정을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프로 골퍼는 결과로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이제는 비워야 할 때

투어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간에 조정민은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한국 골프는 현재 어떤 시스템으로 운영되든 간에 이제 누가 뭐래도 골프 강대국이 됐어요. 선배들이 먼저 세계로 진출했고 큰 활약을 펼쳤어요. 우리는 또 그런 선배들을 보고 큰 자극을 받고 해외로 진출하고 있죠. 매년 반복해서 들리는 건 LPGA투어의 신인상은 한국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죠. 그것이 심한 압박감이 될 수 있지만 그런 압박감이 있어서 선수는 더 노력하고 골프 최강국이라는 타이틀을 이어가는 게 아닐까요.”

조정민은 올해 8월에 열린 브리티시여자오픈의 출전 자격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포기 의사를 밝혔다. 

“4월에 하와이에서 열린 롯데챔피언십을 다녀온 후 2주 동안 몸이 먼지가 된 기분이었어요. 그때 어머니와 올해는 KLPGA투어에 전념하기로 약속했어요. 브리티시여자오픈 출전 자격이 있다고 했을 때 솔직히 흔들렸지만 원래 계획대로 출전을 포기했습니다. 마음을 비웠어요. 여백의 미가 있는 게 좋지 않겠어요? 다 잡으려다 모두 놓치는 경우가 생기잖아요.”

그는 해외에서 투어 생활을 하는 (모든 나라의) 선수들에게 존경심을 표하기도 했다. 

“마치 도인처럼 느껴졌어요. 특히 중하위권에 있는 선수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매번 성취감이나 결과에 대한 기쁨을 오래 느끼지 못하는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노력하고 투자하는 걸 보면서 ‘그동안 내가 골프를 너무 가벼운 마음으로 대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라는 반성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됐어요.”

2019년 시즌 상반기를 마치고 그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그는 문제점에 대한 분석에 들어갔다. 

“휴식이 시작되니까 문제점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규칙적인 생활이 이뤄지지 않으니 모든 일이 지지부진하고 진척이 없었어요. 느슨해지고 나태해지는 게 보였죠. 그런데 문제는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과 골프 코스에서 일어나는 일이 굉장히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일상생활의 행동 습관이나 패턴이 그대로 필드에서 나타나 영향을 미칠 때가 있습니다. 제 문제가 코스까지 이어지는 게 싫었어요. 모든 면에서 아주 심플하고 단호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려 합니다. 그런 사람이 결국 성공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조정민은 최대한 머리와 마음을 비우고 골프에 임하려고 노력 중이다. 효율적인 연습을 통해 실제 경기에서 잡념을 없애고 나태하고 느슨한 마음가짐을 다잡아 늘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경기에 나서겠다는 생각이다. 달라진 예쁜 외모만큼이나 정신도 재무장하겠다는 각오다. 그리고 이제부터 비우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되짚어보려 한다. 

조정민  
나이 : 25세
신장 : 164cm 
후원 : 문영그룹 
우승 : 5승, BC카드·한경레이디스컵, 셀트리온퀸즈마스터즈(2019), 롯데칸타타여자오픈(2018), 카이도MBC플러스여자오픈, 더달랏앳1200레이디스챔피언십(2016)

[고형승 골프다이제스트 기자 tom@golfdig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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