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인터뷰] C.T. 판, 타이완에서 PGA투어까지 이르는 험난한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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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인터뷰] C.T. 판, 타이완에서 PGA투어까지 이르는 험난한 여정
  • 인혜정 기자
  • 승인 2019.10.02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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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7세로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활동하고 있는 타이완 골퍼 C.T. 판에 대해.

어릴 때 집안이 그리 풍족하지 않았다. 나는 6남매 중 하나였고 사촌들까지 함께 살아야 했다. 집이 너무나 좁아서 10대가 될 때까지 다른 형제들과 함께 부모님과 한 방을 썼다. 내가 골프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동네 골프장에 몰래 숨어드는 것뿐이었다. 새벽 4시가 되기 전에 일어나서 클럽하우스가 문을 열기 전 9홀을 돌고 클럽하우스가 닫힌 후 또 9홀을 돌곤 했다. 그런데 골프숍에서는 이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하지만 내가 꽤 잘 한다는 것을 알고는 묵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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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때 어머니께서 골프를 가르쳐줬다. 어머니는 캐디였는데 타이완에서는 그다지 많은 돈을 버는 직업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골프를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더니 1996년 타이거 우즈가 선풍을 일으켰고 내 잠재력을 본 아버지는 내게 “너도 저렇게 될 거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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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엄한 편이었다. 아침이면 집에서 2km 떨어진 언덕 아래에 나를 데려다놓으면 나는 아침 식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이 거리를 달려와야 했다. 골프를 좋아했지만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버지가 매일 골프 연습을 하도록 시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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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기억이 많지만 아버지는 내가 잘되기를 원한 것이다. 그리고 돌아보면 이런 경험이 내게 추진력과 자기 수양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겸손을 배울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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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오기 전 아내 미셸을 만났다. 영어를 잘하던 그는 내가 학교에 입학 신청하는 것을 도와줬고 프로 랭크에 올랐을 때 타이완 출신이 운영하는 민박가정을 구해주었다. 골프 코스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는 언제나 모든 것이 잘 관리되고 있는지 확인해 내가 골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는 나의 반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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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때 IMG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위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1년 반은 정말 힘들었다. 영어를 할 줄 몰랐고 처음 한 문장을 완성하는 데 3개월 정도 걸렸다. 글쓰기 숙제에서 한 문장을 쓰는 데 2시간이 걸렸다. 그렇다고 통역의 도움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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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메이트와 사건에서 감정이 폭발했다. 그는 지저분했고 냄새가 심했다. 격한 감정이 쌓여갔지만 표현하지 못했다. 그러다 흥분해서 주먹으로 벽을 쳤는데 큰 구멍이 났다. 너무나 당황했을 뿐 아니라 피해를 복구하는 데 많은 돈이 들었다. 이때가 내 평생 가장 외로웠던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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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웠던 시절을 돌아보면 나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진다. 영어를 익히기 위해 매일매일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꿈을 좇기 위해 어린 나이에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은 정말 용감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결정이 내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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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대학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타이완에서 18세가 됐을 때 대학 재학 중임을 입증하지 못하면 군대에 가야 한다. 가족은 내가 타이완으로 돌아가는 것이 너무 위험한 일이라 생각했다. 이 일은 여전히 내게 큰 아픔으로 남아 있어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는다. 내가 가장 후회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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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4학년이 됐을 때 아마추어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그리고 이때 스윙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당시 나는 두 번의 US오픈에 출전했는데 투어에서 플레이하려면 정확도를 높이고 비거리를 늘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주 간단한 일 아닌가? 사람들은 내가 이 시점에서 스윙을 바꾼다니 정신 나간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4학년 때 역시 이로 인해 조금은 실망스러운 한 해가 되었다. 그러나 밝은 미래를 위해 기꺼이 현재의 어려움을 감내하겠다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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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정은 옳았다. 매켄지투어에서 일곱 경기에 출전해 두 번 우승하고 3위에 올라 웹닷컴에 진출할 수 있었고 웹닷컴투어(현재는 콘페리투어이다) 7개 대회에서 10위권에 진입해 투어 카드를 확보했다. 매슈 울프와 콜린 모리카와는 이를 아주 손쉽게 이루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서른이 되기 전에 대학에서 프로 무대로 진출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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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2년 동안 두 번 우승을 놓쳤지만 2018년 윈덤챔피언십만큼 아까웠던 적은 없다. 마지막 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드라이브 샷한 볼이 OB 지역에 들어가 우승을 놓쳤다. 볼이 카트용 도로에 맞고 선을 넘어가버린 것이었다. 운이 없었던 것이지만 티에 섰을 때 부정적인 생각과 의심을 품었다. 그때 나는 한발 뒤로 물러나야 했다. 심한 심리적 압박감을 느낀다는 것은 막연했지만 그때 일로 실제로 어떤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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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의 교훈이 결국 2019년 RBC헤리티지에서 1타 차의 승리를 거두는  데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 몇 홀을 남겨둔 상태에서 그다지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많이 지쳐 있었다. 하지만 나는 윈덤챔피언십을 떠올렸고 다시 집중했다. 가족을 실망시킬 수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분발했다. 첫 우승이 아주 특별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승리를 거둔다는 것은 무엇보다 나의 의지력을 입증할 수 있는 기회였고 평생 기억할 만한 경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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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사실은 힐턴헤드에서 플레이할 계획이 없었다는 점이다. 원래 대회 기간 중 휴스턴에서 열리는 미국주니어골프협회(AJGA) 대회를 후원하고 있었다. 내가 후원하는 첫 번째 대회였고 타이완에서 12명의 아이들을 초청해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었다. 이 아이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아내는 대회에 출전하라고 나를 설득했다. 그와 내 에이전트가 고국의 일을 맡아서 진행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일을 통해 나는 언제나 아내 말에 따르는 것이 좋다는 교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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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람들은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 골프는 세계 곳곳에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를 실제로 보았고 또 그러한 삶을 살았다. 내가 진행하는 AJGA 프로그램이 내게 큰 의미를 지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타이완에는 골프를 할 수 있는 아이들이 많다. 그저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이들에게 가교 역할을 해 아이들의 꿈을 현실로 이루어줄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멋지지 않은가?

글_조엘 빌(Joel Beall) / 정리_인혜정 골프다이제스트 기자(ihj@golfdig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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