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사랑에 빠진 파란 눈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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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사랑에 빠진 파란 눈의 사나이
  • 고형승 기자
  • 승인 2019.04.1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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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평양에서 최근까지 골프를 하다 온 욘 안데르센 감독

욘 안데르센 인천 유나이티드 FC 감독을 만났다. 축구 감독이지만 정작 그에게 축구가 궁금한 건 아니었다. 안데르센 감독은 현재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사람 중 북한 평양에서 최근까지 골프를 하다 온 주말 골퍼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무작정 수소문했고 결국 저녁 약속을 잡았다. 2시간 가까이 우리는 오로지 골프 이야기만 나눴다. 

“어디라고? 다시 한번 말해줄 수 있겠나?” 

노르웨이 축구 국가 대표 공격수 출신의 욘 안데르센(Joern Andersen)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감독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안데르센 감독이 이 질문을 자신의 에이전트에게 할 때는 팀과 계약이 끝나는 2016년 1월쯤이었다. 

감독의 눈치를 조심스럽게 살피던 에이전트는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북한입니다.” 안데르센 감독은 에이전트에게 아시아에서 감독 생활을 하고 싶다고 말해둔 상황이었다. 일주일 후 에이전트는 아시아 국가 중 한 곳으로부터 국가 대표 팀 감독 요청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곳이 바로 ‘북한’이었다. 

이 답변을 들은 안데르센 감독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충격이었다. 에이전트에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고 두세 달의 장고 끝에 감독직을 수락했다. 그의 말이다. 

“사실 태국이든 일본이든 상관없었어요. 이번에는 꼭 감독 생활을 아시아에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이라는 에이전트의 말에 조금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내가 가지 말라고 만류했다면 가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아내는 끝내 그런 의사를 내비치지 않았어요. 고민 끝에 그 ‘특별한 도전’을 해보기로 마음먹었어요.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위에서 하는 말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어요. 제 판단을 믿었습니다.” 

북한에 들어간 유럽 최고의 스타

욘 안데르센 감독은 현역 시절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득점상을 받은 최초의 외국인 선수였다. 강렬한 인상과 커다란 체구를 가진 그는 늘 상대를 압도했고 노르만족 특유의 금발과 파란 눈 그리고 붉은 기가 도는 피부색은 매력적이었다. 늘 공격적인 플레이를 선보였고 자신이 결정한 것을 쉽게 꺾지 않는 강직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저는 정치와 상관없이 오로지 북한 축구를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그곳에 간 것입니다. 목적은 그렇다 하더라도 정말 격변의 시기였고 그 중심에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처음 방문할 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미사일이 시험 발사되고 있었습니다. 평양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CNN에서 내보내는 미사일 관련 뉴스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어요. 반면 대표 팀 선수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미사일이 발사됐다고 하면 모두 깜짝 놀라곤 했어요. 그들은 그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했어요. 미사일을 개발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2016년 5월, 그는 북한 축구 국가 대표 팀 감독이 됐다. 아내 울라 안데르센(Ulla Andersen)과 동행했다. 

“처음 두세 달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었어요. 북한축구협회로부터 나온 직원이 늘 따라다녔죠. 표면상 가이드 겸 통역을 위해서라지만 아내와 제가 어떤 일을 하고 어디를 가는지 항상 체크하고 어디론가 보고하는 듯했습니다. 그것이 통제라고 하면 통제였을까요.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는 우리가 어디를 가든 신경 쓰지 않는 관계로까지 발전했습니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거나 쇼핑할 때 더는 따라다니지 않았어요.”

북한에서 가이드 역할을 하는 이는 대부분 고학력자이며 사상 교육을 제대로 받은 공산당원이다. 안데르센 감독은 자신의 가이드가 모든 언어에 능통한 사람이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영어는 물론이고 중국어와 스페인어, 심지어 독일어까지 가능해 어떤 언어로 대화를 하든 알아들었다고 말했다.  

욘 안데르센 감독과 부인 울라 안데르센(오른쪽)

주말마다 골프를 즐긴 안데르센 감독

안데르센 부부의 취미는 ‘골프’다. 북한에서 처음으로 ‘골프장’에 관한 정보를 들었을 때 안데르센 감독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는 30년 넘게 골프를 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할 때 골프를 시작했지만 그때는 즐길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나중에 감독으로 독일을 다시 찾은 후 그는 틈만 나면 골프를 즐겼다. 그런 그에게 북한에서도 골프를 할 수 있다는 소식은 가뭄 끝의 단비와 같았다. 

“골프장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어요. 아니, 골프장이 있더라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는 게 더 맞는 표현 같아요. 당연히 골프백은 챙겨가지 않았죠. 감독을 맡은 지 3개월쯤 지나고 말레이시아에서 첫 경기가 있었어요. 그때 골프 클럽을 두 세트 장만해 북한으로 들고 들어갔습니다. 그때부터 아내와 저는 주말에 골프를 즐길 수 있었어요.” 

골프장에 가보고 싶다고 하자 안데르센 부부를 따라다니던 가이드는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이내 골프장 관계자와 연락을 취해 이용하는 방법을 알아봐줬다. 또 부부가 묵던 고려호텔부터 40분 거리에 있는 평양골프장(정식 명칭은 ‘평양골프코스’다)까지 교통편을 마련해줬다. 

“평양골프장은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있었어요. 평양을 벗어날 때는 언제나 사전 등록을 해야 합니다. 시도 경계를 통과하기 위해 약간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이런저런 검사하는 데만 30분이 걸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각 나라의 대사관 직원과 동행하면 바로 통과할 수 있었어요. 대사관 차량은 아무도 잡지 않습니다.” 

안데르센 부부는 주로 일요일을 이용해 평양골프장을 이용했다. 스위스, 불가리아, 독일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서 온 대사관 직원과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가끔 북한에서 열리는 국제 축구 대회에 참가한 전 세계의 국가 대표 팀 코치진과도 플레이했다. 심지어 눈이 내리는 날도 라운드를 했다.  

“2년간 감독 생활을 하며 해외로 전지훈련 갈 때를 제외하고 거의 매주 일요일은 골프장에 갔어요. 아무리 주말이라고 해도 코스 내에서는 앞뒤로 그 누구도 볼 수 없었습니다. 2시간 정도 지나야만 다른 플레이어와 눈인사를 나눌 수 있었어요. 물론 현지인이 아닌 외국인이 대부분이었지만요. 30달러(한화 약 3만4000원)만 내면 온종일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카트비와 캐디피가 포함된 가격입니다. 캐디에게는 5~10달러 정도의 팁을 주곤 했어요.” 

그의 표현에 따르면 평양골프장에선 뭐든 다 허용된다. 돈만 지급하면 여섯 명이 한 조로 플레이할 수도 있었고 카트는 언제나 코스 안으로 진입이 가능했다. 캐디는 모두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줄 알았다.  

“한국보다 소통하는 데 문제가 없었어요. 여성 캐디는 모두 친절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우리는 가끔 라운드를 마치고 캐디를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곤 했어요. 캐디 중 한 명은 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골프장을 찾았고 그때 라운드하며 여섯 번의 홀인원을 기록했다는 겁니다. 말로는 누가 홀인원을 못하겠어요.(웃음)” 

캐디는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다고 그를 회상했다. 많은 말을 주고받은 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현지 캐디와 허물없이 지내는 동반 플레이어가 부러웠다는 듯한 말투로 대화를 이어갔다.  

“스위스대사관 직원 중 한 명은 무려 4년간 라운드할 때마다 똑같은 캐디를 지목했어요. 그들은 굉장히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서로 사진도 교환하고 정말 친숙하게 행동하는 거예요. 하지만 저를 비롯한 다른 플레이어는 캐디가 매번 바뀌었습니다.” 

안데르센 감독은 평양 인근에 골프장이라곤 평양골프장 하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코스 상태가 여름에는 완벽하지만 다른 계절에는 썩 좋지 않았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매주 일요일마다 자석에 이끌리듯 골프장을 찾은 안데르센 감독은 그 누구보다 코스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평양골프장에서 그의 평균 스코어는 5~6오버파 정도였다.  

“18홀 중 가장 좋아하는 홀은 11번홀입니다. 380m의 파4홀이지만 왼쪽으로 휘어지는 도그레그 홀입니다. 왼쪽에 무리 지어 서 있는 나무를 가로지르면 250m 정도로 그린을 한 번에 노려볼 수도 있습니다. 그날 컨디션이나 바람의 방향에 따라 공략 패턴을 정할 수 있는 아주 전략적인 홀입니다.” 

북한의 골프 연습장과 스크린 골프 

평양골프장의 내장객은 중국인이 많았다. 물론 골프를 즐기는 평양 시민도 있지만 주말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건 골프장에서 여자 골퍼라곤 안데르센 감독의 부인인 울라 안데르센뿐이었다는 것이다. 울라의 말이다.  

“골프장에서 저는 유일한 여자였어요. 평일에는 가이드 ‘키미(김 씨 성을 가진 여자 가이드의 애칭)’와 개를 데리고 산책하거나 실내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즐겼어요. 그리고 호텔 근처에 있는 골프 연습장에 가곤 했습니다. 골프 연습을 하는 평양 시민도 몇몇 목격할 수 있었어요. 키미는 저와 함께 1시간씩 골프 연습을 했습니다. 키미는 (20대 중반의) 우리 아이들과 비슷한 또래였어요. 그를 딸처럼 생각하며 2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옆에서 조용히 아내의 말을 듣고 있던 안데르센 감독이 입을 열었다.  

“처음 골프 연습장에 갔을 때는 잔디가 무릎까지 올라올 정도로 무성했어요. 관리인에게 불편함을 토로하자 그가 바로 잔디에 불을 놓더라고요. 새롭게 잔디가 자랄 것이라면서 말이죠. 주중에는 미팅을 끝내고 짬을 내 스크린 골프를 즐기기도 했어요. 고려호텔을 비롯한 평양 시내의 여러 호텔에는 스크린 골프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어요. 브랜드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요. 정말 오래된 스크린 골프 장비였지만 플레이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어요.” 

북한에 스크린 골프가? 에디터가 잘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안데르센 감독은 자신의 휴대폰을 들이밀며 스크린 골프장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그는 ‘이래도 믿지 않을 거야?’라는 표정으로 에디터를 빤히 쳐다보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건 마치 자신만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희귀한 아이템 카드를 동네방네 자랑하는 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과 흡사했다. 

각 나라의 대사관 직원들과 주말마다 평양골프장에서 골프를 즐긴 욘 안데르센(왼쪽)

북에서 남으로 

안데르센 감독은 8개월 계약을 끝내고 다시 15개월 연장 계약을 하며 북한에 머물렀다. 그리고 그는 최고의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나쁜 기억은 없었어요. 당신이 같은 ‘코리안’이니까 이해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른 점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곳에서 머무는 동안 꿈을 꾸듯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꼭 골프만이 아니더라도 몇몇 좋은 식당에서 북한 음식도 즐겨 먹었고 60도짜리 소주와 마른 볼락의 환상 궁합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사실 북한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다 이뤘어요. 팀이 동아시안컵에 출전했고 아시안컵 본선도 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북한을 떠나 다음 행선지로 홍콩도 한때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지난해 그는 주저하지 않고 인천 유나이티드 FC 감독직을 수락했다.  

“무엇보다 한국을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2016년부터 남북은 물론 세계의 눈이 이 한반도를 향하고 있을 때 저는 두 곳을 모두 경험했습니다. 더 많은 대화가 오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얼른 통일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어요.” 

그는 북한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기 생각을 전달했다.  

“북한에 관해 한국 사람들은 정말 모르고 있는 것이 많아요. 그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모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순간 그들은 어쩌면 여러분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휴전선이 열린다면 저는 가장 먼저 자동차를 몰고 평양을 찾을 겁니다. 그리고 평양골프장에서 라운드를 해보고 싶습니다. 거리상으로 그렇게 멀지 않아요.” 

남한과 북한의 축구를 모두 경험한 욘 안데르센 감독. 만약 남북 단일 축구 팀이 만들어진다면 감독으로 그 만한 적임자가 있을까 싶다.

[고형승 골프다이제스트 기자 tom@golfdig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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