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수제 퍼터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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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수제 퍼터를 만나다
  • 류시환 기자
  • 승인 2019.04.0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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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의 손길을 더한 명품. 골프계에서도 오랜 전통과 특별함으로 주목받아온 명품이 있다. 이른바 세계 3대 수제 퍼터다. 말하는 사람마다 달라 명확하지 않지만 실체는 존재하는, 그래서 더 관심이 가는 세계 3대 수제 퍼터를 재조명한다.

누가 정했는지 알 수 없지만 골프계에는 ‘세계 3대 수제 퍼터’가 있다. 재미있다면 ‘3대’는 맞지만 그 대상이 갈린다는 점. 20여 년 전에는 T.P. 밀스와 베티나르디, 레이 쿡이었고 근래에는 레이 쿡 대신 스카티 카메론을 꼽는다.  그리고 세계로 눈을 돌리면 베티나르디를 빼고 일본의 야마다를 꼽기도 한다. 이견이 있지만 골프계는 현재 T.P. 밀스, 스카티 카메론, 베티나르디 또는 T.P. 밀스, 스카티 카메론, 야마다를 ‘세계 3대 수제 퍼터’로 지칭, 칭송하고 있다.

엇갈리는 세계 3대 수제 퍼터

세계 3대 수제 퍼터를 논하며 한 가지 짚고 간다면 ‘왜 퍼터에만 명품이라는 수식이 붙었냐’다. 이는 제작 공정에서 오는 특수성 때문인데 다른 클럽은 소재의 변화 속에서 급변을 겪었다. 무엇보다 대량 생산 체제를 구축하며 대중성에 중점을 뒀다. 반면 수제 퍼터는 ‘연철’과 ‘수작업’이라는 큰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아 소량 생산 체제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퍼터를 만드는 회사와 인물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그들 중 돋보인 브랜드(인물)가 명품(명장)으로 불리게 됐다.

돌아가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세계 3대 수제 퍼터가 어떤 경로를 따라 정해졌는지 알려진 바는 없다. 그저 수제 퍼터를 만드는 인물들이 있었고, 이들의 존재감이 두드러진 1990년대에 특별한 몇 곳이 주목받으며 세계 3대 수제 퍼터로 불렸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또 시간의 흐름 속에서 브랜드와 인물의 영향력이 약화되며 세계 3대 수제 퍼터 타이틀에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T.P. 밀스, 스카티 카메론, 베티나르디 그리고 야마다

1990년 무렵 눈에 띄던 수제 퍼터는 디자이너가 자신의 이름을 붙인 T.P. 밀스와 베티나르디, 스카티 카메론이었다(베티나르디의 풀 네임은 로버트 J. 베티나르디). 레이 쿡을 세계 3대 수제 퍼터로 꼽은 것은 T.P. 밀스와 함께 1970년대를 대표하는 수제 퍼터 브랜드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명맥을 잇지 못하고 1990년 무렵 신성처럼 등장한 스카티 카메론에 밀리고 말았다.  

야마다는 일본의 수제 퍼터 브랜드라는 점에서 미국 브랜드와 달리 세계적인 관심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2013년 2월 일본의 아베 총리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에게 정상회담 선물로 증정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후 수제 퍼터 수집가 사이에 인기를 얻었고 제품력을 높게 평가받으며 세계 3대 수제 퍼터 대열에 합류했다.

베티나르디보다 야마다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은 정통성을 얘기한다. 베티나르디는 아들 샘 베티나르디가 가업을 이은 후 아버지만큼 훌륭한 제품을 만들지 못한다는 평가가 있다. 반면 야마다는 미국 유학 중 T.P. 밀스의 퍼터 철학을 공부한 것에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을 더해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세계 3대 퍼터 명장의 화려한 경력

세계 3대 수제 퍼터를 만드는 명장들의 경력은 화려하다. 그들의 특별함을 살펴봤다. T.P. 밀스는 미국 최고의 수제 퍼터였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로널드 레이건, 조지 부시 등 다섯 명의 미국 대통령이 사용하며 일명 ‘대통령의 퍼터’로 꼽혔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대통령과 유명인이 수집할 정도였고, 고 이병철(삼성 창업주) 회장도 여기에 동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카티 카메론은 젊은 시절을 골프, 퍼터 디자인에 몰두했고 여러 공방을 오가며 기술을 익혔다. 그리고 1991년 레이 쿡에서 영업 사원으로 일하며 퍼터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 이듬해 이름을 걸고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그는 퍼터를 좀 더 예술적인 골프 클럽으로 승화시키며 순식간에 주목받는 디자이너가 됐다.

야마다는 일본인으로 1955년생. 재즈 음악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T.P. 밀스 퍼터의 아름다움에 심취해 퍼터 제작에 나섰다. 1986년 일본으로 돌아와 야마가타현 야마가타시에 퍼터 제작 회사를 설립하고 현재까지 수제 퍼터를 만들고 있다.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며 수제 퍼터를 만든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베티나르디는 레이 쿡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등락한 것과 달리 꾸준히 명성을 지켜낸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베티나르디는 1991년 본격적인 퍼터 제작의 길로 들어선 후 자신만의 독특한 원피스 밀링 공법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벤 호건과 제휴를 맺고 베티나르디 벤 호건 퍼터, 베티나르디 미즈노 퍼터 등을 만들었다. 지금은 독자 노선을 걸으며 자신만의 퍼터를 선보이고 있다.  

명성은 예전 같지 않지만 레이 쿡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수제 퍼터가 시장에 알려지며 브랜드가 만개하기에 앞서 활동한 탓에 그의 이름이 퇴색했지만 존재감만큼은 확실하다. 레이 쿡은 정교한 가공력을 자랑하며 수많은 퍼터 디자이너를 배출한 양성소로 명성을 얻었다.  

수제퍼터 제작에 사용되는 다양한 장비들.
수제퍼터 제작에 사용되는 다양한 장비들.

얽히고설킨 수제 퍼터 디자이너

우리는 세계 3대 수제 퍼터에 주목하지만 이들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입을 통해 전해지는 몇 가지 설이 있고, 지금도 전해질 뿐이다.

먼저 T.P. 밀스와 베티나르디, 스카티 카메론이 사제지간이라는 설이 있는데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이들 스스로 그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던 탓에 설이 설을 부른 형국이다. 다만 베티나르디에 따르면 스카티 카메론과 어느 공방에선가 함께 일한 적이 있지만 T.P. 밀스에게 사사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어찌 됐건 명장 두 명이 함께한 시간이 있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스카티 카메론이 레이 쿡에서 사사했다는 이야기, 함께 일하는 동안 불화가 있었고 덕분에 스카티 카메론이 브랜드를 론칭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카메론은 “레이 쿡에서 영업 사원으로 일했을 뿐 사사하지는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티피 밀스의 아들 데이비드 밀스가 아버지와의 추억을 소개하고 있다.
티피 밀스의 아들 데이비드 밀스가 아버지와의 추억을 소개하고 있다.

수제 퍼터의 명맥을 잇는다

세계 3대 수제 퍼터는 디자이너가 없다면 명맥을 잇지 못한다. 야마다는 창업 후 홀로 작업을 이어가지만 T.P. 밀스와 베티나르디는 아들이 가업을 이어 받아 전통을 지켜나가고 있다.

반면 스카티 카메론은 많은 제자를 양성하며 또 다른 스카티 카메론의 탄생을 이끌고 있다.  스카티 카메론의 대표적인 제자는 테일러메이드에서 일했던 키아 마와 나이키골프 R&D팀 디자이너 데이비드 프랭클린이다.

키아 마는 스카티 카메론의 수제자 중 한 명으로 2009년 테일러메이드로 이직했다. 그리고 로사 시리즈 퍼터를 선보이며 테일러메이드의 퍼터 라인 성장 동력으로 활약했다. 현재는 계약 종료 후 독자 노선을 걷지만 한때 이들의 제휴는 큰 반향을 이끌어냈다.  

데이비드 프랭클린도 마찬가지다. 그는 나이키가 타이거 우즈를 위해 특별히 스카우트한 인물. 타이거가 스카티 카메론 퍼터만 고집하자 그에 상응하는 퍼터를 만들기 위해 스카티 카메론의 수제자를 데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탄생한 퍼터가 메소드다. 타이거의 선택은? 스카티 카메론의 기술을 전수한 데이비드를 인정하고, 메소드를 사용했다. 결과적으로 나이키의 전략은 성공한 셈이다.  

 

스카티 카메론 그리고 타이거 우즈

수제 퍼터 명장으로 명성을 얻은 스카티 카메론은 실력만큼 운도 좋았다. 개인 스튜디오에서 소량 생산하던 것에서 아쿠쉬네트컴퍼니와 제휴를 맺으며 대량 생산 체제를 구축한 것이 첫 번째 운.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와 만남이 두 번째 운이라고 할 수 있다.

인과관계에 놓인 운이지만 핵심은 타이거와 만남이다. 스카티 카메론은 아쿠쉬네트컴퍼니와 제휴 후 투어 선수들에게 퍼터를 만들어줬고, 타이거도 그중 한 명이었다. 타이거는 머잖아 골프계를 장악했고, 골프 황제에 등극했다. 이후 그를 둘러싼 여러 브랜드(스폰서)의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고, 최후의 승자는 나이키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스카티 카메론이 크게 주목을 받았다. 타이거는 모든 것을 나이키로 바꾸되 두 가지에 대해서만큼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중 하나가 스카티 카메론 퍼터였다(다른 하나는 타이틀리스트 볼). 익히 알려진 퍼터 브랜드였지만 타이거의 충성은 그 위상을 크게 끌어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후 스카티 카메론은 투어를 지배하기 시작했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세계 3대 수제 퍼터 반열에 올랐다. 

[류시환 골프다이제스트 기자 soonsoo8790@golfdig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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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수 2019-04-04 17:26:20
퍼터에 애착이 많은데 정말 좋은 기사네요!!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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