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인터뷰] 박인비의 랩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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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인터뷰] 박인비의 랩소디
  • 고형승 기자
  • 승인 2019.01.1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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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여제를 오랜만에 알현했다. 그는 자신이 써온 왕관의 무게를 충분히 경험했고 이제 그것을 한쪽에 슬며시 내려놓으려고 한다. 그 어느 때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영국의 전설적인 록 그룹 ‘퀸’의 리드 보컬인 프레디 머큐리의 음악 인생을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국내 누적 관객 960만 명(1월 10일 기준)을 넘어섰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이는 많아도 한 번만 본 이는 드물 정도로 인기다. 

에이즈에 의한 합병증으로 비교적 젊은 나이(45세)에 세상을 떠난 프레디 머큐리의 인생은 비극이었을까?

유명인으로 산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것 그리고 영원한 사랑을 찾아 함께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최고의 삶을 영위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어쩌면 그것이 비극만은 아니었던 이유는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고 늘 음악에 관한 열정으로 가득했고 자신이 그렇게나 사랑하던 두 남녀(그는 양성애자였다)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난 박인비의 입에서 “골프장에 있을 때만큼은 두려움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왔을 때 에디터는 무대 위에서 강력한 퍼포먼스로 관중을 압도하는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오버랩됐다. 

박인비의 별명이 ‘퀸비(Queen Bee)’이기도 하지 않던가. 지금부터 그가 들려주는 랩소디에 귀를 기울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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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은 무척 바빴다. 해외(미국, 일본)와 국내 투어에서 활동하는 몇몇 골프 선수와 모임을 했다. 단 한 달간의 달콤한 휴식이기에 우리는 틈만 나면 약속을 잡았고 수다 떠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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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에 술이 빠지면 섭섭하다. 나는 그룹에서 술로는 톱 3 정도라고 생각했다. 며칠 전 술자리를 가져본 결과 어린 친구들에게 밀린다는 걸 알게 됐다. 그들은 체력이 워낙 좋으니까. 그래도 중간 정도다. 주사라. 일단 주사라고 할 건 딱히 없다. 술이 들어가면 말이 많아진다. 그건 누구나 그러지 않나. 말이 많아지기 시작하면 남편에게 연행되어 집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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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드라마보다 영화 보는 걸 더 즐긴다.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아서 가끔 가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안시성>이다. 워낙 배우 조인성의 팬이기도 하다. 최근에 아버지가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오시더니 나와 다시 한번 보러 가야 한다며 벼르고 계신다. 드라마는 그렇게 잘 보는 편이 아니다. 한국에 있을 때 심심하면 하루에 몰아서 본다. 개인적으로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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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는 스피드를 즐겼다. 차를 몰고 한참을 달리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렸다. 지금은? 내가 운전할 일이 거의 없다. 운전과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얻어 타는 게 가장 편하다. 하지만 가끔 누군가 어디를 가야 한다고 하면 일부러 자처해 운전을 해주기도 한다. 머리를 비워내기엔 최고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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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에서는 주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요새는 ‘맞고(고스톱 게임)’를 즐긴다.(웃음) 남편과는 자기 전에 항상 15분씩 서로 맞고 대결을 한다. 승률은 50%다. 짜릿한 순간? 맞고에 대해 이렇게 진지하게 말하는 것도 웃기다. 조커(쌍피)가 많이 들어오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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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참 골프에 지쳐 있을 때(2016년부터) 남편과 시간을 보내며 집에서 육아하는 게 편하리라 생각했다. 아, 오해는 하지 마시라. 육아가 편한 일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다만 막연하게 그런 삶을 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는 말이다. 나는 그렇게 살기로 마음먹었고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봤다. 처음엔 좋았다. 연습이나 퍼포먼스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됐다. 또 굳이 미디어 앞에 나서지 않아도 됐다. 다른 것에 신경 쓸 필요가 없고 오로지 가족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좋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무료했다. 2주를 채 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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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행착오를 통해 골프를 하는 게 더 행복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에게 항상 주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의식 없이 해왔고 그것이 행복이라는 걸 모른 채 그 행복을 누렸다. 보통의 삶 속에서 내가 골프할 때만큼 수많은 감정을 오가며 살 수 있을까? 골프가 아니면 나에게는 그런 일이 없다. 그동안 고마워해야 할 일에 관해 고마움을 모르고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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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문득 ‘어떠한 솔루션을 내지 않으면 골프 클럽을 영원히 손에서 놓게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골프와 안녕을 고하기엔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고 결국 투어 스케줄을 조정하기로 마음먹었다. 2018년에는 참가 대회 수를 줄이면서 나만의 시스템을 구축했다. 조금 더 오랫동안 행복하게 선수 생활을 하는 방법에 관해 고민했고 나름의 해법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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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대회 수가 다른 선수보다 적기 때문에 경기 감각을 어떻게 살려낼지 고민이다. 경기 감각을 유지하는 건 대회에 많이 참가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때다. 사실 퍼포먼스가 뒷받침되지 않은 채 골프를 즐긴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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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에 관한 목표를 세운다는 것은 나로서는 ‘투머치’인 것 같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에는 다른 후배 선수들이 뛰는 속도에 비해 내 속도가 현저히 느리다. 이제부터는 다른 길로 뛰어야 한다. 지금부터 내가 추구하는 골프는 기존과는 매우 다를 것이다. 골프 선수로서 경쟁 세계에서 빠져나온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중간을 유지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 나는 그 중간을 찾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퍼포먼스에서도 만족하면서 생활의 여유도 찾았다. 밸런스를 잘 이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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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성적이 내가 기대한 것만큼 나오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어떤 해는 더 나을 수도 있다. 어떤 결과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상금 랭킹 1위가 아니면 또 어떤가. 나만 괜찮으면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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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에 있는 시간 동안 ‘두려움’이 없었으면 좋겠다. 제대로 된 퍼포먼스를 선보이지 못하고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 느끼는 두려움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이런저런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자신이 하고자 하는 골프를 마음껏 할 수 있다. 두려움 없는 경기를 통해 ‘결과가 좋지 않으면 좀 어때’라는 배짱도 생긴다. 물론 아직도 잘 안 되는 부분이다. 

[고형승 골프다이제스트 기자 tom@golfdig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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