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설계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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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 설계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 유연욱
  • 승인 2018.10.25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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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가 재미있는 코스를 만드는 일이 재미있다는 길 핸스는 손에 흙 묻히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나는 어려서부터 지금 같은 원시인이었다. 열한 살 때 형제들과 함께 롱아일랜드 바빌론의 집 뒷마당에 골프 홀을 만들었다. 그냥 골프 홀을 그리기만 한 게 아니라 정원용 호스를 이용해 정교한 댐과 제방까지 만들었다. 나는 나중에 코넬대학에서 조경학을 전공했고 재학 중에 코스 설계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시작된 곳은 우리 집 뒷마당이었다.

맨발로 음악을 들으면서 플레이하는 여덟 명. 걸음마를 떼는 손주와 함께 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초보자에 가까운 골퍼는 처음으로 정규 타수 내에 어프로치 샷을 성공하고는 좋아서 펄쩍펄쩍 뛴다. 노련한 골퍼는 클럽을 한두 개만 챙겨서 다른 손에 음료를 든 채 웃으며 플레이하고 스코어 카드에는 연필을 대지도 않는다. 지난 해 개장한 파인허스트의 9홀, 파3 코스인 크레이들에서 펼쳐지는 모습이다. 이건 우리가 설계한 작업 중 가장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골프의 저변을 넓히고 재미를 추구한다는 원래 목표를 고스란히 달성했기 때문이다. 2024년에 US오픈이 파인허스트 No. 2에서 다시 열리면 크레이들은 연습장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하지만 그 연습장을 몇 시간 정도 폐쇄하고 그곳에 있던 선수들이 자녀들이나 그 지역 어린이들과 어울리게 하면 좋을 것 같다. 마스터스의 파3 콘테스트와 비슷하게. 그러면 정말 근사하지 않을까?

다음에 머릿속으로 골프 홀을 설계하거나 홈 코스의 몇몇 홀을 손보는 상상을 하게 되거든 물이 아래로 흐른다는 개념에서 시작해보라. 배수는 언제나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다. 물의 원리를 생각하면 설계가 훨씬 좋아진다. 문제를 해결하는 맥락에서 작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신 나간 설계가가 왜 그렇게 했는지 이해할 실마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어쩌면 그가 그렇게 정신나간 사람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골퍼들은 파3홀을 사랑하고 설계가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파3홀을 전후반 나인의 끝부분에 배치하는 경향이 있다. 플레이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린다는 사실도 그 홀을 끝부분에 배치하는 이유다. 파3인 2번홀부터 정체가 시작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번도 파3홀이 초반에 나오는 코스를 설계한 적이 없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부지가 그걸 요구할 경우 달라질 수도 있다.

흙을 파서 옮기기 전에 기존의 자연스러운 지형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게 우리의 원칙이다. 중장비로 틀을 잡는 건 너무나 쉽다. 하지만 불도저를 너무 좋아하면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때문에 좋아하던 부지가 순식간에 성형 수술에 실패한 것 같은 모습으로 변할 수도 있다.

핸디캡이 13이지만 그 실력대로 플레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제일 좋았을 때는 7이었다. 골프계에 만연한 아이러니의 희생자였다. 그건 골프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은 실제로 플레이를 거의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을 열심히 하고 가정에도 충분한 시간을 할애한다면 골프 실력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처음에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코스는 대단히 광활하게 설계했다. 관개시설 이랄 게 없었기 때문이다. 오크몬트와 윙드풋, 오크힐을 비롯한 여러 코스가 여기에 해당한다. 나무에 대해서는 아예 고려도 하지 않았다. 단열 관개 시스템이 개발되면서 페어웨이가 더 좁아진 이유는 전체 부지에 물을 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페어웨이의 녹색 부분이 갈색보다 턱없이 적어 보인다. 그린 위원회는 당연히 그런 부분에 나무를 채워 넣었다. 나무는 표준이 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단점이 부각됐다. 나무는 자라기 때문에 결국 전략을 제한하고 리커버리 샷의 기회를 차단한다. 잔디에 좋지 않은 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나무 제거 프로젝트가 ‘가열차게’ 시작 됐다. 나도 누구 못지않게 나무를 사랑하지만 나무를 제거하는 데는 실질적이고 감상적이지 않은 접근법을 취해야 한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애러니 밍크와 슬리피홀로 그리고 윙드풋에서 복원 작업을 할 때마다 상당수의 나무를 제거했다. 회원은 나무가 사라지면 아쉬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무를 제거한 후 불평을 토로하는 회원은 단 한 명도 만난 적이 없다.

땅은 설계가의 의지대로 할 수 있다. 호수를 만들 수도 있고 습지를 메울 수도 있고 섬과 벙커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날씨는 어쩌지 못한다. 범람원에 만든 코스에는 물이 범람한다. 건곡 근처에 만든 모래언덕은 조만간 덤프트럭에 실리는 신세를 면치 못한다. 자연에 저항해봐야 결국은 싸움에서 지게 되어 있다.

남은 평생 두 설계가의 코스에서만 플레이해야 한다면 앨리스터 매켄지와 C. B. 맥도널드를 선택하겠다. 페블비치와 사이프러스포인트 그리고 오거스타내셔널 등을 설계한 매켄지는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활용해 기존 부지에 유려한 설계를 펼쳐 냈다. 맥도널드(예일대학교의 코스와 시카고골프클럽을 생각해보라)는 예리하고 각진 디자인이 특징이다. 하지만 이렇게 극단적으로 다른 설계가들도 고집스럽게 자신의 작품과 지형의 조화를 추구한다는 것만은 공통점이었다. 맥도널드의 설계는 인공적이기는 해도 불편하다거나 따로 노는 것 같은 느낌은 주지 않는다. 어느 한 설계가의 접근법이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스타일은 자연과 구분할 수 없는 코스를 만들고자 한다는 점에서 매켄지에 더 가깝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편안하게 앉아 맥도널드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건 그림과 비슷하다. 나는 루치안 프로이트(독일 태생의 사실주의 화가)보다 클로드 모네를 더 선호하지만 프로이트의 그림을 오랫동안 감상 할 수는 있다.

C. B. 맥도널드와 세스레이너는 이따금 그린을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으로 만들었다. 요즘은 이렇게 직선을 활용하는 경향이 덜한 이유는 그랬다간 설계가가 상상력이 없다고 혹평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맥도널드와 레이너의 작품은 효과가 있었다. 주변의 색깔이 단색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일 같은 코스에서는 풀이 자라면서 그린을 침범하곤 한다. 당연히 색상과 질감이 다채로울 수밖에 없다. 그린 주변의 모든 것이 촘촘하고 빽빽한 녹색이라면 성장의 정도를 짐작할 수도 없고 조화롭게 느껴지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가 만든 홀 중 단연 제일 좋아하는 홀이 있다. 리우 올림픽 코스의 파 4인 16번홀은 303야드에 불과하지만 그곳에서 펼쳐지는 플레이는 그야말로 내가 꿈꾸던 그대로다. 올림픽에서는 이글과 버디도 나왔지만 맷 쿠처의 스리 퍼팅 파도 있었다. 그곳의 티잉 그라운드에 도착한 선수들이 손을 클럽에 댄 채 어떻게 할까 궁리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뿌듯했다. 어떤 선수는 강공을 펼쳤고 헨리크 스텐손과 저스틴 로즈는 레이업을 했다. 그 홀은 세 사람(나와 짐 와그너 그리고 제프 섀컬퍼드)이 머리를 맞댄 결과물이다. 내가 그 홀을 사랑하는 건 단지 디자인 때문이 아니라 협업의 성격이다.

리우는 내 평생의 모험이었다. 힘든 순간도 있었다. 어느 날 밤에는 자다가 깼더니 얼굴에 커다란 지네가 붙어 있었다. 깜짝 놀라 움켜잡았는데 푸른 액체를 얼굴에 분비해 그걸 씻어내는 데 사흘이 걸렸다. 초목으로 무성한 부지를 살펴보기 전에 안전 여부를 거듭 확인했다. 그들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지만 산호뱀과 보아뱀 그리고 거대한 비단뱀을 만났다. 공격적인 카이만 악어는 끊임없이 미끄러지듯 물을 헤엄쳐서 일꾼들을 향해 다가왔고 그러면 그들은 괴성을 지르며 파이프를 움켜잡았다. 우리는 보초를 세워야 했다. 그곳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중장비에 연료를 공급하기 위해 디젤을 50갤런들이 드럼으로 실어 날랐다. 어느 가난한 남자에게 연료 옮기는 일을 맡겼다. 그는 일반 호스를 이용해서 입으로 그걸 빨아댔다. 연료를 한 번 빨 때마다 입에 디젤 연료가 가득했다. 미국이었다면 환경청과 노동안전위생국의 모든 규정을 어긴 잘못이었을 테지만 그 아래쪽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현대 설계가 중 최고는 피트 다이다. 그가 설계한 많은 작품을 1980년대에 만들었고 시각적으로 큰 매력을 지니지 않았지만(당시는 시각적인 요소가 과하던 때였고 PGA웨스트는 내가 봤을 때 끔찍하다) 그의 코스가 요구하는 플레이 방식은 아주 마음에 든다. TPC소그래스처럼 설계는 좋아하지만 시각적인 측면은 싫어할 수 있다는 사실도 전략적인 측면이 얼마나 강한지 웅변해준다.

우리가 발굴한 것 중 가장 근사한 건 로스앤젤레스컨트리클럽에서 나왔다. 노스 코스를 복원할 때 일이었다. 발굴 작업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전의 2번과 6번홀의 그린이 어디에 있었는지 대충 이야기를 들었다. 그 부분의 흙을 살며시 긁어내는데 땅이 갑자기 깨지듯 떨어져나갔다. 그리고는 그 밑으로 타르처럼 시커먼 게 드러났다. 100년이 지났지만 예전에 컵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형태를 유지한 오래된 그린이었다. 그야말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경험이었다.

우리는 지금 오클랜드힐스의 사우스 코스를 복원하고 있다. 알다시피 도널드 로스가 오리지널 코스를 만들었고 벤 호건이 1951년 US오픈에서 제압한 ‘몬스터’를 만든 건 로버트 트렌트 존스였다. 리스 존스가 나중에 아버지의 작업을 새롭게 손봤다. 우리의 계획은 로스와 존스의 설계를 절충적으로, 가장 좋은 점만 골라 복원한다는 것이다. 코스는 2019년부터 거의 2년 가까이 문을 닫을 예정이지만 작업을 마치면 몬스터가 되살아날 것이 틀림없다. 비록 호건이 무릎을 꿇게한 그때 그 몬스터와는 조금 다르겠 지만.

길이를 늘이는 것보다는 사실상 줄이는 것이 해답이다. 아마추어 남자 골퍼들은 5500야드의 골프 코스가 여성들이나 아이들, 심지어 일부 남성들에게도 얼마나 가혹한지 잘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제안하는 것(그리고 향후에 골프 설계에서 더 자주 보게 될 경향)은 코스의 길이를 5000야드 미만으로 줄이는 포워드 티이다. 5500야드의 세트는 포워드 티를 선택한다는 말을 할 필요 없이 그 거리에서 플레이하도록 실력 있는 여성이나 시니어를 위해 남겨둔다. 그리고 열정적인 클럽 회원들을 위해 더욱 전통적인 화이트 / 블루 / 블랙 세트를 지정한다. 이런 티에는 성이나 나이와 관련된 이름은 붙이지 않는다. 이런 접근법이 유쾌하기만 한 건 아니지만 골프를 생동감 있게 유지하려면 꼭 필요한 방법이다.

‘구식’이 되지 않기 위해 길이를 늘이는 걸 거부한 올드 코스에 찬사를 보낸다. 길이를 늘이면 그린과 티 사이의 거리가 줄어들고 그러면 각도와 샷의 가치가 달라진다. 종종 회복할 수 없는 변화로 이어진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1917년에 데브러 에밋이 롱아일랜드에 만든 세인트조지스골 프앤컨트리클럽이다. 그곳은 미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위대한 코스로 손꼽힌다. 그곳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그 뛰어난 모습에 입을 쩍 벌린다. 블루 티에서 길이는 6400야드가 조금 넘는다. 그곳에 간 사람은 처음의 레이아웃이 최고의 레이아웃이라고 느낀다.

스크린골프가 지금보다 훨씬 발전하는 게 두렵다. 앞으로 30년 후 기술력이라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현실 같은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풍경과 소리, 비와 기온을 포함한 날씨까지 재현할 것이다. 샷을 할 때마다 라이의 상태가 조정되고 경사도 현실처럼 기울어질 것이다. 바람도 불 수 있다. 어쩌면 볼까지 걸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냄새, 대화, 좋지 않은 바운스, 모든 걸 만들어낼 수 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불가피하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그런 일이 벌어질 때는 내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길 바란다.

[글_가이 요콥(Guy 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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