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더컵] 리드 vs 로리. 어게인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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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컵] 리드 vs 로리. 어게인 2016년?
  • 한원석 기자
  • 승인 2018.09.27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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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그리고 팬들)은 그런 장면이 한 번 더 연출되길 희망하고 있다.

영웅적인 서사와 역사에 남을 순간이 속출한 헤이즐틴 이후이 두 사람(그리고 팬들)은 그런 장면이 한 번 더 연출되길 희망하고 있다.

데이비스 러브 3세의 집에는 2016년 라이더컵을 기념할 만한 물건이 곳곳에 놓여 있다. 하지만그중에서도 두 가지는 더 자주 들여다본다. 하나는 라이언 무어가 리 웨스트우드와 싱글 매치 18번홀에서 사용한 볼이다. 미네소타의 화창한 10월의 일요일이던 그날, 4시를 막 넘겼을 때 웨스트우드는 무어의 한 발짜리 파 퍼팅에 컨시드를 줬고 미국은 라이더컵을 되찾아왔다.

무어는 곧바로 팀 동료에게 에워싸였고 볼은 집어 들 생각도 하지 못했다. 러브는 그 볼을 대신챙겼다. “1993년에 내가 벨프리에서 퍼팅에 성공하면서 컵을 고수했을 때 나 역시 사람들에게 둘러싸였고 그런 다음에는 코스탄티노 로카와 악수하느라 볼을 챙기지 못했다.” 러브는 말했다. “그게 두고두고 후회스러웠다. 라이언이 그 골프공을 간직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러브가 무어에게 볼을 건넸을 때 라이더컵의 새로운 영웅이 된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단장님이 가져요. 그러면 좋겠어요.” 그는 말했다.

또 한 가지 그가 아끼는 기념품은 무어의 골프공보다 작다. 바로 패트릭 리드가 같은 일요일에 로리 매킬로이와 역사에 남을 싱글 매치를 벌일 때 18번홀에서 드라이버 샷을 하기 위해 꽂은 티다.

“그는 샷을 하자마자 마치 로리를 50야드쯤 추월했다고 확신하는 걸음걸이로 페어웨이를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러브는 이렇게 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 티를 집었다. 어떤 식으로든 그 매치를 기억할 뭔가를 갖고 싶었다.”

“로리가 패트릭보다 볼을 멀리 보냈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패트릭은 매치를 순순히 내주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건 본인이 알았고 로리도 알았고 나도 알았다.”

매킬로이의 티 샷은 실제로 리드보다 30야드를 더 날아갔다. 하지만 러브의 말처럼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리드는 세컨드 샷을 핀 3m 앞으로 보냈고 버디 퍼팅에 성공하면서 그 매치를 차지했다.

매킬로이는 세컨드 샷을 핀 1.8m 앞으로 보냈지만 리드가 퍼팅에 실패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는 그날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그는 말했다. “그런데 그걸 왜 실패하겠는가?”

나중에 러브에게 티를 챙겼다는 얘기를 들은 리드는 웃음을 터뜨렸다. “알아요. 봤어요.” 그가 말했다. 러브는 아직도 리드가 자신을 어떻게 볼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는 페어웨이를 따라 25야드 앞에서 거의 달리듯 걸어가고 있었다.”

나중에 세르히오 가르시아와 필 미컬슨도 탁월한 매치를 무승부로 마쳤지만(모두 63타를 기록했다) 그날 헤이즐틴에 있던 사람이 마치 15분 전에 끝난 것처럼 기억하는 것은 리드와 매킬로이의 결전이다.

“타이거가 그들과 함께 걸어가고 있었고 무전기를 열어놓은 상태였다.” 올해 9월 28일에 파리 외곽에서 개최될 라이더컵의 미국 팀 단장을 맡은 짐 퓨릭이 말했다. “무전기를 통해 엄청난 환호가 들려왔고 그는 최소한 1분, 어쩌면 그 이상 기다린 후에야 우리에게 얘기해줄 수 있었다. 그 소음이 정말 컸기 때문이다.”

일어나지 않을 뻔한 매치

미국은 토요일 포볼 매치를 마쳤을 때 9.5대 6.5로 앞서나갔다. 하지만 양 팀의 모든 선수는 2012년 메디나 대회를 기억했다. 당시 미국 팀은 싱글 매치를 앞뒀을 때 10 대 6으로 앞선 상황이었다.

그해에도 러브가 미국 팀 단장이었다. 일요일 늦게 유럽 팀 단장인 호세 마리아 올라사발과 그 팀 선수들에게 승리를 축하하러 찾아갔을 때 절친한 사이인 대런 클라크가 그를 한쪽으로 부르더니 어깨를 감싸 안고 이렇게 물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거야?” 유럽은 초반에 승기를 잡아야 한다고 판단해 가장 잘하는 선수 네 명을 먼저 내보냈다. 반면 러브는 균형 있게 라인업을 구성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메디나의 기적’이라는 말이 채 끝내기도 전에 유럽은 처음 다섯 매치를 차지했고 결국 컵을 유지했다. “그날 내가 배운 교훈이 있어. 나는 처음 이틀의 조 편성에 몇 달을 할애했고 상당히 잘해냈어. 일요일 라인업은 한두 시간밖에 생각하지 않았어. 매치가 열두 번인데. 다시 단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

헤이즐틴의 토요일 매치가 끝났을 때 러브는 다섯 명의 부단장(우즈, 퓨릭, 톰 리먼, 스티브 스트리커 그리고 버바 왓슨)에게 라커룸 뒤쪽에 모여 조를 짜게 했다. 그동안 그는 팀 룸으로 사용하는 식당에서 선수들과 함께 다가올 스물네 시간에 관해 이야기했다. 부단장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걸어갈 때 러브는 공황발작을 일으키기 직전이었다. 몇 달 동안 세운 계획은 일요일에 선공에 나선다는 것이었다. 이기든 지든 상관없이. 선수와 열광적인 팬 모두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도 아니면 상승세를 이어가기 위해서도 초반의 승리가 필수적이었다.

러브는 클라크(이번에는 유럽 팀 단장을 맡은)가 매킬로이와 헨리크 스텐손을 3번과 4번으로 내보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줄곧 매킬로이가 3번을 맡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팀의 베스트인 리드와 조던 스피스를 그들과 붙이고 싶었다. “패트릭과 조던을 뒤로 빼야 할지도 모르겠네.” 러브가 말했다.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에게 기존 계획을 상기시켰다.” 퓨릭은 말했다. “저쪽에서 로리와 스텐손을 뒤로 뺀다면 그건 그쪽 마음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강력한 대포를 쏘고 싶었다.”

한 가지가 걸렸다. “다들 왠지 로리가 처음에 나올 거라는 예감이 있었던 것 같다.” 러브가 말했다. “그가 처음에 나와야 했다.” 매킬로이도 그렇게 느꼈고 클라크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는 러브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 주에 이른바 ‘캡틴 아메리카’ 역할을 맡은 리드부터 내보낼 걸로 생각했다. “나는 물론 단장이 하라는 대로 했을 것이다.” 리드는 말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1번으로 나가고 싶었고 로리와 대결을 펼치고 싶었다. 나는 도전을 원했다.”

이언 폴터가 부상당하면서 부단장 역할을 하고 그레임 맥다월이 팀에 합류하지 못한데다 웨스트우드와 마르틴 카이머 같은 베테랑이 맥을 못 추는 상황에서 매킬로이는 자신이 여섯 명이나 되는 루키를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헤이즐틴 대회에 임했다. 클라크도 그걸 알고 있었다. “로리는 1번으로 나가야 했다.” 그는 말했다. “그는 대회내내 주장 역할을 하면서 팀 룸에 사기를 불어넣었다. 모두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가 나를 찾아와서 ‘1번으로 플레이하고 싶다’는 말을 해주길 원했다. 솔직히 말해서 만약 그가 예전부터 편안하게 느끼던 3번을 고수하고 싶다고 말했다면 내가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 잘 모르겠다.”

“나는 그가 그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실망시키지 않았다.” 클라크는 말했다. “그가 1번으로 나가고 싶다고 말하자 나머지 라인업을 구성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저쪽에서 당연히 처음으로 내보낼 거라고 생각하던 리드와 맞대결을 펼치기 위해서도 그랬지만 미국 팬들을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로리는 처음에 출전해야 했다.”

이틀 동안 매킬로이는 로프 안팎에서 맞수들을 상대했다. “그래야만 했다. 대회 직전까지 플레이를 잘했고(투어챔피언십 우승), 우리 팀의 리더 역할을 해준 몇몇 베테랑 선수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갤러리에게 압도당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매킬로이는 말을 이었다.

“내가 패트릭을 잡아서 팀을 상승세로 출발할 수 있게 한다면 메디나 때처럼 반전을 꾀할 수 있을 걸로 생각했다. 이번이 메디나와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때는 토요일 막판에 두 포인트를 따면서 격차를 4점으로 좁혔다. 우리가 승기를 잡은 셈이었다. 이번에는 막판에 포인트를 내주면서 격차가 벌어졌다. 승기를 되찾아오는 게 내 임무였다.”

헐크의 괴성

매킬로이의 플레이는 아무도 탓할 수 없다. 그는 첫 여덟 홀에서 다섯 개의 버디를 기록했다.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매킬로이는 3번홀에서 버디를 잡으면서 1홀 앞서나갔지만 리드는 짧은 파4인 5번홀에서 드라이버 샷을 한 후 2.4m 이글 퍼팅에 성공하며 매치를 다시 원점으로 돌렸다. 이후 세 홀에서는 어땠을까? 우즈의 말을 빌리자면 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는 접전이 펼쳐졌다. 6번홀에서 둘 다 버디, 7번홀에서도 둘 다 버디를 잡았다. 파3인 8번홀에서 매킬로이는 리드가 “500만 피트 퍼팅”이라고 말하는 버디 퍼팅에 성공했다. 맷 쿠처의 표현을 빌리자면 볼이 들어갔을 때 매킬로이는 셔츠를 찢지 않았을 뿐 그야말로 “헐크처럼”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리드가 멍군을 부르려면 약 7.5 퍼팅에 성공해야 했다. 볼은 컵 중앙으로 떨어졌고 함성이 어찌나 크던지 지붕이 터져나갈 정도였지만 그곳의 지붕은 알다시피 푸른 하늘이었다. 그 하늘이 거의 흔들릴 지경이었다. 리드는 돌아서더니 손가락으로 매킬로이를 가리켰고 아주 찰나였지만 분위기가 적대적으로 돌아설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매킬로이는 주먹을 쥐더니 그와 마주쳤고 두 사람은 9번홀 티잉 그라운드까지 긴 거리를 나란히 걸어갔다.

“같이 걸어간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리드는 말했다. “우리는 수많은 갤러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중요한 승부가 걸린 상황에서 이렇게 경쟁을 벌이는 게 무척 재미있다고 말했다. 라이더컵에서 플레이하면서 이런 기회를 얻는다는 게 말할 수 없이 근사하다는 걸 깨닫는 그런 순간이었다.”

매킬로이도 함께 걸어가던 그 길을 기억했다. 그는 갤러리에게 일찍부터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했다. 글렌이글스에서 패트릭이 스텐손과 매치를 벌일 때와 똑같이. “내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를 따라 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칭찬이라지.’ 그리고 함께 실컷 웃었다.” 매킬로이는 말했다. “아주 특별한 순간이 펼쳐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라이더컵에 네 번 출전했고 치열한 매치도 치렀다. 하지만 이런 적은 없었다. 그 정도 수준의 플레이와 감정을 경험한 적은 없었다. 나는 우리 팀에게 승리를 안겨주기 위해, 내 뒤로 출전할 동료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패트릭은 그걸 그냥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둘 다 처음 여덟 홀에서 펼쳐진 그런 수준의 플레이를 계속할 수는 없었지만 리드는 아직 여력이 남아 있었다. “그날뿐만 아니라 한 주를 보내면서 아드레날린이 조금 소진된 것 같다. 감정적으로 격한 한 주였다. 아널드 파머의 죽음, 대니의 친형을 둘러싼 논란(미국 갤러리에 대해 P.J. 윌릿이 한 말 때문에) 그리고 몇몇 군중이 보인 도에 지나친 행동. 그런 데다가 금요일 오전에 4 대 0으로 뒤진 다음부터였으니 초반부터 목숨을 걸고 싸워온 상황이었다. 그다음에는 기세를 올렸지만 에너지가 많이 소진됐다.” 매킬로이는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서 휴식을 취하기 전까지는 얼마나 지쳤는지도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라이더컵에서는 늘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이 정도인 적은 없었다.”

 

 

글_존 파인스타인(John Fein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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