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하시고 쏘세요! [대니엘 강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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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시고 쏘세요! [대니엘 강 인터뷰]
  • 한원석 기자
  • 승인 2018.07.26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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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엘 강과의 박력 넘치는 일대일 인터뷰. 코브라와 타란툴라는 찬조 출연이다.

[골프다이제스트] 대니엘 강은 2014년 US여자오픈 예선을 통과했다. 골프를 시작한 지 겨우 1년 반이 지났을 때였다. 2010년과 2011년에는 US여자아마추어에서 우승했고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한 후 열아홉 살의 나이로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6년 동안 144회의 LPGA투어 대회에 참가한 후에야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그에게 프로 첫 승을 안겨준 대회는 메이저 대회인 2017년 KPMG위민스PGA챔피언십이었다.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LPGA 대회가 끝난 후 올해 스물다섯 살이 된 대니엘 강을 만났다. 그는 2013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게임을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진 것부터 불규칙한 수면 패턴, 무예인 태권도 그리고 타란툴라를 사겠다고 했을 때 친구 미셸이 보인 반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대회에 참가할 때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어떻게 다른가? 상당히 차분하게 보내는 편이다. 나는 자명종 없이 일어나는 걸 좋아한다. 보통은 잠을 잘 자지 못하기 때문에 집에 있을 때는 그야말로 ‘죽은 듯이’ 보낸다. 사람들은 나더러 동면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떨 때는 열네 시간을 잘 때도 있다. 최고 기록은 스물한 시간이다. 나한테는 그런 날이 필요하다. 몇 주 동안 하루에 두세 시간씩 자기 때문이다. 나는 상당히 활력이 넘치는 사람이다. 새벽 2시에 일어나든 저녁 7시에 일어나든 늘 똑같이 외친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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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생활을 하면서 우정을 유지하는 건 힘들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친구들이 있다는 건 정말 축복 같은 일이다. 내가 뭘 하든 그들은 나를 지지해준다. 대부분 골프를 하지 않는 친구들이다. 그 친구들이 옆에 있기 때문에 제정신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집에 있을 때도 고등학교 때처럼 늘 어울려 지내는 건 아니다. 내 친구인 힐러리는 얼마 전에 부동산 중개 자격증을 취득했다. 내 전화기에 힐러리는 ‘진짜 직업을 가진 년’이라고 저장되어 있다.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전화할 때마다 이렇게 대답하기 때문이다. “안 돼, 나는 진짜 직업이 있잖아. 일해야 해.” 그냥 조금 일찍 끝내라고 해도 “안 돼, 나는 진짜 직업이 있어”라며 거절한다. 그래도 휴가를 내서 내가 플레이하는 걸 보러 온다.


골프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뭔가? 열세 살이 되기 직전이었다. 오빠인 앨릭스는 실력이 월등해지는 중이었고 사람들이 오빠 얘기를 하도 하니까 질투가 났다. 오빠는 지금 웹닷컴투어에서 활동하고 있다. 나는 관심을 받는 걸 좋아한다. 사람이 많은 게 좋다. 승부사 기질이 있고 사람들 앞에서 제 실력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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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 고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우승했을 때 당신은 18번홀 그린으로 달려갔다(2016년 이후 리디아의 첫 우승). 그의 우승을 지켜보는 심정이 어땠나? 골프에서는 긍정적인 얘기를 듣기가 쉽지 않다. 플레이를 잘하고도 2위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친구든 경쟁자든 최고의 순간을 누리면 진심으로 축하해준다.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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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우승했을 때도 그런 느낌이었나? 엄청난 안도감이 들었다. 한 동안 어둡고 부정적인 시절을 보냈고 다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왔기 때문이다. 프로가 되기 전에는 아마추어 랭킹 1위였는데 데뷔 후에는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으니까. ‘마침내.’ 이런 마음이었다. 노력의 보상을 받은 느낌. 우승에 강박증이 생길 정도였으니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러다 끝내 우승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늘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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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구심을 누르면서 고군분투할때 혹시 그만두겠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나? 아무리 실패를 거듭해도 계속 노력해야 한다. 그 시절 가장 힘들었던 건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우승을 할 수 없었다는(또는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열심히 노력할수록 좌절감에 짓눌렸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많은 사람이 아버지가 아픈데도 왜 계속 플레이를 했느냐고 물었다. 그걸 사람들에게 설명하기란 힘들었다.
내가 계속 플레이한 건 나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깨어나서 내가 포기하지 않고 플레이를 계속해왔다는 걸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아버지에게 내가 우승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버지에게 병과 싸워서 이길 힘을 전달하고 싶었고 나는 괜찮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아버지가 내 스코어를 확인할 수 있길 바랐다. 아버지는 내가 버디를 하면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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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세상을 뜬 후로 골프를 대하는 마음이 달라졌나? 코스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골프를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냥 골프가 내게서 뭔가를 앗아간 기분이었다. 뭔가 텅 빈 느낌. 코스에 들어설 때마다 화가 났다. 그렇게 3년 동안 화를 내다가 2017년에야 화가 많이 날아갔다. 그걸 추진력으로 삼아서 우승할 필요가 아니라 우승하고 싶은 바람으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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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런 바람직한 마음을 갖게 된 건가? 솔직히 말하면 상당히 개인적인 얘기지만 얼마든지 털어놓을 수 있다. 나는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나는 상당히 축복받은 삶을 살고 있고 그런 사실에 감사하지만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아버지를 여의고 우승하지 못하면서 그 과정을 견뎌내는 동안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많은 이미지를 도저히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내면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얘기를 해야 했다. 상담은 그런 면에서 많은 도움을 줬다. 그는 내게 아무 문제가 없다면서 모든 게 잘 풀릴 거라고 말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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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배운 최고의 교훈은 뭔가? 사람들은 시간이 모든 것을 치유해준다고 말하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시간은 그걸 덮을 수 있도록, 그걸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다. 나는 삶이 계속된다는 사실, 내 몫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아버지가 나를 자랑스러워하고 내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자랑스러워할거라는 사실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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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승을 거둔 후 달라진 게 있다면? 사람들이 더 많이 알아보고 팬들이 늘어나고 방송에도 많이 출연했다. 다 헛소리들이지만. 그래도 인생이 아주극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았다. 우승한 후 많은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아낀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여자 골프를 보러 오고 관심을 둔다는 게 기쁠 따름이다. 내가 한 사람으로서 골프계에 이바지했다면 좋은 일이다. 내가 플레이를 잘할수록 이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좋게 만들 수 있다. 내가 유니세프 활동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활동을 시작한 지는 7개월 정도 됐다. 그건 예전부터 내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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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외에 다른 취미가 있나? 태권도를 즐긴다. 태권도 2단으로 검은 띠다. 나는 무예와 일대일 대결을 좋아한다. 발에 차이고 얼굴을 맞기도 하지만 나도 상대방에게 똑같이 한다. 어릴 때는 정말 강했다. 오빠는 내게한 손 푸시업을 시키곤 했다. 턱걸이도 자주 했다. 열네 살 때의 나와 대전을 한다면 지금의 내가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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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를 해본 적이 있나? 영화나 청바지 광고의 엑스트라 제안을 받아본 적은 있지만 찍지는 않았다. 골프를 시작할 때와 같은 시기였다. 배우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연기와 골프 중 하나를 골라야 해. 둘 다 할 수는 없어.” 나는 골프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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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영화에 출연할 수 있다면 어떤 배역을 맡고 싶나? 애덤 샌들러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 그는 골프와 관련한 영화에도 많이 출연했다. 역할은 상관없다. 그는 열심히 사는 평범한 사람 같고 화려한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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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톰 하디를 좋아한다. 앤젤리나 졸리는 내 우상이다. 여성과 어린이를 위해 참 많은 일을 한다. 인도주의자이고 엄마며 제작자이고 배우다. 정말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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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츠키 가족과는 어떻게 알게 됐나? 자랄 때 타이 그레츠키(웨인의 아들)와 어울려 지내면서 가족과도 알게 됐다. 셔우드에도 웨인의 회원권으로 출입했고 웨인과 그의 부인인 재닛과도 플레이를 여러 번 했다. 어렸기 때 문에 웨인이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 크면서 깨달았다. 캐나다에 갔더니 그의 동상이 있고 웨인 그레츠키 길이 있더라. 그들은 정말 좋은 사람들이다. 그는 LA 대회의 프로암을 몰래 신청해 나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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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암 파트너로서 웨인에게 점수를 준다면? 일단 무척 재미있었다. 어릴때처럼 둘이서 플레이했다. 팀을 지도 하느라 등이 휠 지경이었고 내가 팀의 얼굴이었다는 얘기를 여러 번 했다. 그는 실력이 아주 좋다. 중요한 퍼팅은 거의 성공시키고 드라이버 샷도 탁월하다. 내가 빗맞힐 때는 나보다 비거리가 더 나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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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암 파트너의 가장 좋은 점과 가장 나쁜 점은? 가장 좋은 점은 그들이 재미있어하고 라운드를 즐긴다는 것이다. 나는 헛소리도 많이 한다. 그걸 사람들이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면 나도 재미있다. 한번은 청크 샷을 아주 심하게 하는 사람이 있어 이렇게 말해줬다. “남은 열다섯 홀 동안 이걸 반복할 수는 없으니 여기서 고쳐봅시다. 나한테 5분만 줘요.” 그래서 그렇게 했다. 그는 친구들에게 내가 자기한테 소리를 질렀다고 말했다. 그를 다시 만난다면 아직도 청크 샷 때문에 고생하느냐고 묻고 싶다. 최악의 경우는 그들이 나를 이기려고 안간힘을 쓸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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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A투어의 중계를 자주 보나? TV 자체를 많이 보지 않는다. US오픈에서 더스틴 존슨이 우승할 때 마지막 두 홀을 봤고 그 후로는 아무것도 본게 없다. 플레이하지 않을 때면 다른 걸 하고 싶다. 다른 사람이 퍼팅에 실패하는 건 보고 싶지 않다.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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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많이 그리는 모양이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요즘은 많이 그리지 않는다. 실력이 있고 내가 그린 작품을 좋아하지만 그 과정은 즐겁지 않다. 나는 지나치게 완벽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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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를 그만두면 뭘 할 생각인가? 언제 은퇴할 생각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은퇴요? 이제 시작한걸요.” 골프를 그만둔 후에 하고 싶은 일이 있기는 하다. 나는 해양생물학을 좋아한다. 동물도 좋아한다. 수족관이나 동물원에서 일하고 싶다. 여행을 하지 않는다면 동물을 있는 대로 샀을 것이다. 희귀종이 나오면 이메일로 알려주는 곳이 있다. 타란툴라 소식을 듣고 미셸한테 전화를 걸어 사야 하는지 물어봤다. 미셸은 제발 사지 말라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다른 친구한테 타란툴라에게 먹이를 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러겠다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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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말고 시도해본 기이한 일이 있다면? 나는 귀가 얇은 편이다. 친구중에 “이거 해볼래?”라는 말을 자주하는 친구가 있다. 그렇다고 내가 한 일이 기이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스쿠버다이빙과 번지점프 정도니까. 태국에서는 식용으로 코브라를 판다. 아무도 나랑 같이 먹으려고 하지 않아서 결국 혼자 먹었다. 나는 뭐든 시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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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브라의 맛은 어떻던가? 닭고기랑 생선을 섞어놓은 것 같았다. 정말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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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선수에게 해주고 싶은 충고가 있나? 서둘러서 프로 선수가 될 필요는 없다. 성공은 멋지지만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기는 게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성공해도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어릴 때는 어린아이로 살아야 한다. 살다 보면 집에 와서 친구에게 점심을 먹자고 문자를 보내도 일해야 한다면서 거절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진짜 직업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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