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가 떠오르는 시간 [People: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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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가 떠오르는 시간 [People:1607]
  • 김기찬
  • 승인 2016.07.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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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가 떠오르는 시간 [People:1607]

사진_공영규 / 헤어 & 메이크업_파크뷰칼라빈 by 서일주 / 스타일리스트_김혜림

카키색 캠프 캡은 시리즈 에피그램. 어깨에 걸친 그레이 니트 카디건은 꼼데가르송.

경쾌한 스트라이프 패턴의 스탠드칼라 셔츠는 시리즈. 잔잔한 체크 패턴의 네이비 반바지는 엠비오.

지난 5월 3년 9개월 만에 통산 3승을 올린 이상희. 변화무쌍한 삶의 그래프가 하향 곡선을 그릴 때도 패기와 자신감, 희망만큼은 잃지 않았다. 그가 털어놓은 ‘나 이상희’. 그리고 꿈에 그리던 디오픈 출전을 앞둔 그의 속마음을 들여다봤다. 글_전민선

기하학적인 패턴이 담긴 티셔츠는 엠비오. 네이비 핀스트라이프 베스트, 포켓 장식의 카키 팬츠는 비슬로우, 캐주얼한 화이트 스니커즈는 애드미럴.

 

3년 9개월이 걸렸다. 세 번째 우승을 거두기까지. 프로 무대에 데뷔한 2011년에 첫 우승을 하고 이듬해에 KPGA선수권대회에서 두 번째 우승을 거뒀다. 그리고 4년 가까이 우승이 없다가 올해 해냈다. 1라운드 전날 밤 고열로 밤늦게까지 병원에서 링거를 맞아가며 해낸 우승이다. 김경태 프로와 마지막 홀까지 치열한 승부를 펼쳤다. 대회를 지켜보던 갤러리도 재미있었을 것이다. 나 자신도 얼마나 흥미진진했는지 모른다. 골프의 재미를 오랜만에 느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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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우승을 했을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첫 우승을 했을 때는 온몸에 짜릿짜릿한 전율이 느껴질 만큼 흥분했고 뛸 듯이 기뻤다. 두 번째 우승을 했을 때도 기뻤다. 소름이 좍 돋을 정도로 짜릿하진 않았지만. 마지막 라운드를 챔피언 조에서 시작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순위가 뒤집어질까 봐 엄청나게 긴장했던 탓이다. 하지만 세 번째 우승을 했을 때는 가슴이 먹먹했다. 힘들게 보낸 지난 4년의 시간이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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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나쁠 순 없었다. 작년이 특히 그랬다. 프로로 데뷔한 후 최악의 해였다. 2012년 일본투어 Q스쿨을 수석으로 통과하고 일본투어와 국내 투어를 병행했는데, 일본에서 쉽사리 적응하지 못했다. 체력적인 문제도 있었고 일본 현지 캐디와의 의사소통 문제로 마찰도 빚었고 스윙 코치와도 의견이 잘 맞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기에 눌려 주눅이 든 데 있었다. 한국에서는 최연소 우승 기록자(19세 6개월), 한국프로골프 대상 수상자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는데 일본에서는 알아봐주는 사람 하나 없는 ‘완전 신인’으로 기에 눌려 꼼짝 못했다. 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그런데 또 국내 대회에선 준우승도 하고 성적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작년은 골프 인생(15년) 통틀어 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였다. 골프 대회에 나가는 게 좀처럼 기대도 안 되고, 재미없었다. 대회가 열리는 골프장의 어렵다고 생각한 홀에서 꼭 미스를 하니까 어떻게 공략해야 하나, 어떻게 쳐야 하나 걱정만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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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까지 내려가보니 나만의 골프, 나만의 색깔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가진 색깔대로 플레이하면 조금 더 자신 있게, 더 멋지게 플레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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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슬럼프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정말 슬럼프였더라면 준우승을 하거나 우승을 할 찬스도 맞이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공격적으로 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방법을 택해 우승 찬스를 잡지 못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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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스윙 코치이자 배상문의 스윙 코치였던 앨런 윌슨을 지난겨울에 만났다. 그래서 나만의 골프, 나만의 색깔을 찾아가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내게 농담조로 “똑딱이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말했다. 충격이었다. 거의 15년 가까이 골프를 해왔는데, 지금까지는 뭘 했나 싶었다. 새로운 코치는 회전을 중요시한다. 앨런은 스웨이 없이 그 자리에서 팽이가 돌 듯 몸을 회전하라고 코치한다. 이는 내가 원하는 스윙 이미지와 일치한다. 그래서 3주간의 겨울 전지훈련 기간에 쇼트 게임 연습 비중을 확 줄이고 샷 연습에 집중했다. 지금도 옛 습관을 다 버리지 못해 이따금씩 실수를 하지만 원하던 구질이 나온다. 곧 더 완벽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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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팅 라인을 보는 방법도 바꿨다. 홀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고 양발을 공과 홀을 잇는 선상에 나란히 둔다. 그런 뒤 옆으로 쭈그려 앉아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홀을 응시하는 방법이다. 내 주시가 왼쪽 눈이라 이번 시즌부터 이렇게 퍼팅 라인을 봤는데 효과가 있다. 지금은 적응이 돼 편하다. 아예 오른쪽 눈을 감고 라인을 볼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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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과 공도 바꿨다. 드라이버와 우드는 테일러메이드, 볼은 타이틀리스트로 교체했다. 주니어 때부터 9년 동안 캘러웨이를 사용해 빨리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 컸다. 하지만 작년에는 이보다 더 안 좋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기분 전환 겸 새 출발(?)을 하고 싶었다. 특히 드라이버는 묻어 맞는 타구감을 좋아하는데 마음에 쏙 든다. 거리도 15~20야드 정도 늘었다. 그러다 보니 같은 코스, 같은 홀에서의 공략이 달라졌다. 거리 때문에 넘길 수 없던 벙커도 넘기고 조금 더 편안하게 코스 매니지먼트를 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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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은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스윙을 뜯어고치며 나만의 골프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컨디션, 기분, 자신감을 북돋울 수 있었다. 하와이로 동계 훈련을 갔는데, 그곳에는 대회를 뛰는 선수들이 제법 많았다. 연습 라운드였지만 조그만 내기를 곁들였더니 대회를 치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경쟁을 하면서 기분과 자신감, 컨디션을 점점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 결과 올해 국내에서 우승했고, 일본에서도 우승은 아니지만 미즈노오픈에서 2위를 거뒀다.

 

 



 



화이트 & 네이비 스트라이프 반팔 티셔츠는 세인트제임스. 화이트 리넨 조거 팬츠는 비슬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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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픈챔피언십 출전권도 따냈다. 미즈노오픈 상위 네 명에게 이 출전권이 주어지는데 2위를 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얼떨떨하다. 동료들이 디오픈챔피언십에 나갈 때마다 ‘나도 언젠가는 갈 수 있겠지’라며 때를 기다렸는데 기회가 왔다. 이 대회까지는 50일도 남지 않았다. 대회장인 로열리버풀골프클럽은 전형적인 링크스 코스여서 바람의 영향이 강하다고 들었다. 깊은 벙커도 악명 높다. 대회를 잘 치르려면 샷을 더 단단하게 잡아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출전하려고 했던 대회를 스케줄에서 뺐다. 2주 동안 휴식을 취하며 새롭게 익힌 스윙을 내 것으로 만드는 데 더 집중할 계획이다. 그리고 2주 연속 대회를 치르고 영국으로 건너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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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는 예선전 통과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선전 통과를 목표로 두면 딱 예선전에 통과할 수 있을 만큼만 치기 때문이다. 쟁쟁한 선수들과 경쟁하다 보면 함께 분위기를 이어가려고 노력하게 될 테고, 나의 플레이에 더 집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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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티켓도 따내고 싶었다. 작년에 성적부진으로 세계 랭킹이 대폭 하락했다. 엔트리 마감 시한이 남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힘들 것 같다. 다음 올림픽 때도 골프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다면 꼭 한 번 출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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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GA투어 상금왕이 올해의 목표다. 원래는 국내에서 1승, 일본에서 1승이 올해의 목표였다. 반을 이룬 셈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1승을 하고 나니 더 큰 욕심, 더 큰 목표가 생겼다. 국내 남자 상금왕. 현재 상금 순위 3위에 올라 있고, 2위인 박상현과 제법 차이가 나지만 하반기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서 그 꿈을 이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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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덱스컵 우승이 나의 최종 꿈이다. 페덱스컵에서 우승한 아시아 선수가 아직 없기 때문이다. 그 꿈을 이루려면 PGA투어에서 우승하는 등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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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위해 ‘2011년 1월1일 이상희’를 항상 떠올리려고 노력한다. 2011년 1월1일은 내가 투어를 뛰기 시작한 첫해 첫날이다. 신인 때의 열정, 패기를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때는 대회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설레었고, 끝없는 도전 정신이 있었다. 그런 초심을 상기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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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골프만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평온한 삶을 누리고 싶다. 골프를 하긴 할 것이다.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골프를 하고 싶지 않다는 거다. 중압감, 긴장감에서 벗어나고 싶다. 하루 중 잠자는 시간을 가장 좋아하는 것도 그 이유다. 매년 거의 4주간 대회를 치르고 1주 쉬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냈다. 그렇다고 휴식을 전혀 취하지 못한 건 아니다. 시즌이 끝난 겨울과 대회가 없는 여름에는 친구들을 만나 볼링도 치고 다트도 즐기고 스트레스를 풀려고 노력한다. 온오프(On-Off)를 잘하려고 애쓰고 있다. 예전에는 하루 종일 골프만 생각했다. 스윙이 안 되면 집에 와서 동영상을 찾아보고 연구하고 잠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집이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집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골프에 관한 모든 것을 잊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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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니면서 평온함을 만끽하고 싶기도 하다. 대회 때문에 해외에 자주 나가봤지만 여행을 위해 해외에 가본 적은 없다. 제주도에도 대회에 나가기 위해 가봤을 뿐 여행지로 찾은 적은 없다. 대회를 치렀던 곳에 꼭 다시 한 번 방문하고 싶다. 가장 가보고 싶은 1순위는 하와이다. 동계 훈련지로 가봤는데 날씨도 좋고, 휴양과 레저를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여행지였다. 레이싱도 하고 싶다. 자동차를 좋아하고 스피드를 좋아한다. 지금도 배울 수는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부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배우지 않고 있다. 부상을 입어서 좋은 샷감을 잃을까 봐, 그게 더 무섭다.

 



 

 

 

 

Lee Sang Hee

이상희 : 나이 25세 프로 데뷔 2010년 경력 국가대표 상비군, KPGA코리안투어 최연소 우승 기록(19세 6개월), 2012 한국프로골프 대상 우승 2016년 SK텔레콤오픈, 2012년 KPGA선수권대회, 2011년 NH농협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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