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오픈] 뉴욕 사람들이 사랑하는 필 미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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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오픈] 뉴욕 사람들이 사랑하는 필 미켈슨
  • 김기찬
  • 승인 2018.06.14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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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오픈] 뉴욕 사람들이 사랑하는 필 미켈슨


독특한 뉴요커 스타일. 뉴욕 사람들은 필 미컬슨을 사랑한다. 그게 무슨 문제일까?

“까다로운 관중.” 코미디언 로드니 데인저필드(Rodney Dangerfield)는 고향인 뉴욕에 대해 이런 말을 자주 했다. 뉴욕에서는 관중이 볼거리가 될 때도 많다. “뉴욕은 관리인이 주정뱅이를 내쫓는 걸 보려고 챔피언십 권투 경기를 중단하는 곳이다.” 작가인 데이먼 러니언(Damon Runyon)이 이미 80년 전에 한 이 말은 시대를 초월해 여전히 뉴요커를 묘사하는 정확한 표현으로 남아 있다. 시네콕에서 열린 1986년 US오픈에 참가한 그레그 노먼이 야유를 보낸 어떤 사람에게 주차장으로 오라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여름에 시티필드(뉴욕 메츠의 홈구장)에서 웬 얼간이가 웃는 표정의 마스코트를 도발해서 가운뎃손가락을 들게 만들었다. 두꺼운 탈을 쓴 마스코트조차 참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레인저스의 팬들은 언젠가 필 에스포시토 감독에게 팀의 익숙한 응원곡인 “잘해라, 레인저스, 잘해라”를 개사한 야유 송을 만들어 부른 적도 있다(“죽어라, 에스포, 죽어라”). 그리고 골프에서는 문화적이고 세련됐다는 의미로 관중을 ‘갤러리’라고 부르지만 뉴욕 인근에서 열리는 메이저 대회의 풍경이 늘 그렇게 세련된 건 아니다.

베스페이지에 블랙코스서 열린 2002년 US오픈에서 타이거 우즈와 용감하게 선두를 다투던 세르히오 가르시아는 샷을 할 때마다 소젖이라도 짜는 것처럼 그립을 한없이 쥐어짰다. 그러면 팬들은 도와준답시고 이렇게 외치곤 했다. “빌어먹을, 샷 좀 해!”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플레이 속도가 개선되지 않자, 팬들은 그가 그립을 고쳐 쥘 때마다 수를 세기 시작했다. “나는 뉴욕을 사랑한다.” 세르히오는 2009년 대회를 앞두고 다시 베스페이지를 찾았을 때 이렇게 말했다.“이곳 사람들도 사랑한다.” 하지만 그건 언어폭력을 하지 말아달라고 선제적으로 애원하는 것처럼 들렸다. 1980년대와 1990년대의 뉴요커들이 자동차 도둑을 향해 “라디오 없어요. 감사합니다!”라고 적은 종이를 앞 유리창에 끼워놓았던 것과 비슷하다.

뉴욕 갤러리에게 심하게 시달린 콜린 몽고메리는 한때 미국 대회 출전 거부를 선언하기도 했다. 베스페이지에서 열린 2002년 US오픈을 앞두고 철회했다. 건장한 스코틀랜드 골퍼의 심리적인 건강 상태를 염려한 골프다이제스트는 대회 갤러리에게 ‘몬티에게 친절하게’라고 적힌 배지를 나눠줬다. 팬들은 실제로 그렇게 했던 것 같다. “잠깐만요, 몽고메리 씨?” 누군가 이렇게 소리치자 몬티는 갤러리 사이를 응시했다. “몬티, 나는 팬이에요! 팬이에요!” 그러지 않았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몽고메리가 경비원을 물리치고 팬이라는 사람을 바라보자 그 남자는 저속하고 걸쭉한 농담을 외쳤다.

하지만 뉴욕 팬들이 무작정 사랑하는 골퍼도 있다. 필 미컬슨은 1995년에 시네콕에서 열린 US오픈을 통해 뉴욕 무대에 데뷔했다. 대회 둘째 날 스물다섯 살이 됐으니 아직 새 파란 청년이었다. 그때 이미 강인함과 창의력으로 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54홀까지 마쳤을 때 선두와는 불과 한 타 차이였다. US오픈 우승이 꿈이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건 아직도 내 꿈이다.” 그는 마지막 라운드에서 74타를 기록하며 공동 4위를 차지한 후 이렇게 말하면서 원하는 사람마다 사인을 해주며 칭찬하는 말에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대회 기간 내내 아널드 파머와 비슷한 행보를 보이며 사람들의사랑을 받았다.

그로부터 23년 후, 미컬슨은 유독 US오픈과 인연이 없었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그를 보며 뉴요커들의 열정은 더 깊어만 갔다. 그들은 그의 무모한 도전을 사랑하고 US오픈에서만 여섯 번이나 2위에 그친 그를 위로하며 시네콕힐스에서 커리어그랜드슬램을 완성하길 간절히 기도한다. 2004년에는 미컬슨이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서자 7번 그린에 설치한 관람석에서 “물! 물! 물!”이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필의 티 샷(오로지 그의 샷)이 그린에 적중할 수 있도록 물을 뿌리라고 요구한 것이었다.

“나는 뉴욕 지역에서 플레이하는 걸 좋아한다.” 그는 2009년에 베스페이지에서 열린 US오픈을 앞두고 골프다이제스트의 밥 베르디(Bob Verdi)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곳 사람들은 대단한 스포츠 팬들이다.”

물론 그 팬들(그리고 그들의 선배들)이 모든 운동선수를 똑같은 방식으로 애호한 건 아니다. 미컬슨이 샌디에이고 출신의 왼손잡이 선수 중에서는 테드 윌리엄스보다 뉴요커들의 사랑을 더 받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뉴욕 팬들은 최악이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포수인 조 가라지올라(Joe Garagiola)는 말했다. “지금은 불펜 위에 차양을 쳐서 조금 나아졌다. 사람들이 침을 뱉어도 차양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것도 남자들이 중절모를 쓰고 폴로 경기장을 찾던한결 점잖았던 시절인 1956년의 얘기다.


1980년에 아흔일곱 명의 스포츠 기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스포츠 팬들이 제일 무질서하고 험악한 곳이 뉴욕이었다. 그 뒤를 필라델피아가 바짝 쫓아왔다. 당연히 팬들 입장에서는 불쾌한 조사였다. 필라델피아 팬들은 자신들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뉴욕 팬들이 최악이고 우리가 두 번째로 최악이라고 했다더라.” 1989년에 필리스와 메츠의 팬들이 베테랑스 스타디움에서 난투극을 벌일 때 누군가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 양측이 한데 모이면 싸울 수밖에 없다.”

뉴욕과 필라델피아 사이에는 물론 뉴저지가 있다. NFL의 로고가 찍힌 반바지와 골프 셔츠를 입고 대회에 출전하던 페인 스튜어트는 1993년에 발투스롤에서 US오픈이 열릴 때는 현명하게도 자이언츠나 제츠의 옷을 입지 않았다. 어떤 팬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하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버펄로 빌스의 옷을 입었다고 야유를 받았다. 뉴저지도 공격적일 수 있다. 올해 방영된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서는 뉴저지가 번호판의 슬로건을 ‘가든 스테이트’에서 ‘시바 뭐 봐(Da Fuh You Lookin’ At?)’로 바꿀 거라고 풍자하기도 했다.

그러니 뉴욕과 뉴저지의 골프 팬들이 미컬슨을 자신들이 사랑하는 왼손잡이의 전당(베이브 루스, 로버트 드니로, 윌리스 리드)에 포함시켰다는 사실이 더 놀라울 뿐이다. 미컬슨이 처음으로 대중의 품에 안긴 곳은 1986년 US오픈 3라운드에서 노먼이 더블 보기를 하면서 공동 선두로 내려앉았을 때 어떤 팬이 “쫄았냐?”고 외친 바로 그 코스(시네콕)였다. “세상 어디에서도 골프를 하면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다.” 노먼은 당시에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여기가 오거스타였다면 저 사람들에게 수갑을 채워서 코스 밖으로 쫓아냈을 것이다.”

러니언이 말했듯이, 뉴욕에서는 그런 장면에도 구경꾼이 모여들 것이다. 그들은 소리치고 야유하고 라즈베리를 던져대며 뉴욕특유의 ‘브롱크스 휘파람(라즈베리를 입에 물고 내는 소리)’를 불어댈 것이다.

 

글_스티브 러신(Steve Ru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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