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인터뷰] 완벽증을 버린 우직한 남자,이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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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인터뷰] 완벽증을 버린 우직한 남자,이경훈
  • 인혜정 기자
  • 승인 2016.05.0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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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갑옷을 장착한 이경훈이 이제 전쟁터에 나갈 채비를 마쳤다.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그가 미국 웹닷컴투어로 떠나기 일주일 전 패기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반복된 실패로 단단해진 심장
“2015년은 여린 마음을 단단하게 여물게 한 시기였어요. 그래서 목표에 한 걸음 더 빠르게 다가갈 수 있었죠.”
이경훈은 지난해 상반기 슬럼프에 빠지며 고전했다. 4년 전 일본프로골프투어(JGTO)에 진출한 그는 첫해에 나가시마시게오인비테이셔널세가사미컵에서 첫 승을 거두며 기대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달콤함도 잠시, 기다리던 다음 우승은 찾아올 기미가 없었다.
 
그는 우승 기회가 올 때마다 번번이 벽에 부딪혔다. 실패가 반복되면서 그는 점차 투어 생활에 부침이 있음을 느꼈다. “처음 한두 번은 ‘그럴 수도 있지’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어요.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부진의 원인은 그의 예민한 성격으로 만들어진 ‘완벽증’이 문제였다. 완벽한 스윙이 스코어에 직결된다고 생각하던 그는 점차 자신의 스윙에 집착했다. 특히 드라이버 샷이 먼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JGTO 평균 드라이브 샷 거리가 2012년 297야드(11위), 2013년 280.14야드(46위), 2014년 282.79야드(34위), 2015년 278.81야드(37위)로 첫해보다 줄어든 것. 일본 코스의 페어웨이가 좁아 이경훈은 손으로 샷을 컨트롤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소극적으로 플레이하게 되면서 거리도 나지 않았고 샷 정확도까지 떨어졌다.
 
“스윙이 안 되면 안 될수록 집착했어요. 스윙이 흐트러지고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부정적인 생각을 했어요.” 이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김경태는 그의 마음을 바로잡는 역할을 했다. “경훈아, 너무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굳이 완벽한 스윙이 아니더라도 다른 요인을 잘 활용하면 우승 기회는 충분히 만들 수 있거든.” 김경태의 진심 어린 조언에 이경훈은 자신 안에 갇혀 있던 생각을 버릴 수 있었다. 그는 스윙에 덜 집착하려고 노력했고 기술 이외에 게임에 필요한 샷 구질, 바람 등 여러 가지 요소에 신경을 썼다.
 
이경훈은 자신의 속을 가장 많이 썩힌 드라이버에 큰 애착을 갖고 있다. 그는 “경기가 안 풀리는 날이라도 드라이버 샷만 잘되면 후련한 느낌이 들어요”라며 드라이버 샷에 따라 그날의 기분이 좌우될 정도였다. 드라이버뿐만 아니라 퍼터에도 문제가 나타났다.
 

 
“퍼터 스트로크의 기복이 심해 경기가 끝난 뒤에도 연습 그린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경태 형은 바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저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어요. 형은 “스트로크가 감속되니 좀 더 과감하고 자신 있게 스윙하라”라고 하더라고요. 그 한마디가 큰 도움이 되었어요.”
또 그는 일정한 퍼트 스트로크를 갖기 위해 적절한 샷의 타이밍을 찾는 데 노력했다.

“샷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클럽과 몸이 따로 움직였죠. 그러다 보니 전체적인 스윙이 망가지고 몸도 힘들더라고요. 피곤한 날에는 문제가 더 심해졌어요. 그래서 클럽과 몸을 일체화하기 위해 유연성을 강화하는 데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긍정과 신념으로 자신감을 되찾다
완벽증을 버리고 샷의 타이밍을 되찾은 그는 점점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 KGT 코오롱한국오픈에서 정상에 오르며 슬럼프를 완벽히 이겨낸 모습을 보였다. 여세를 몰아 한 달 뒤에 열린 JGTO 혼마투어월드컵에서 연승을 거두며 잃어버린 자신감을 회복했다.
 
“한국오픈은 저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 대회입니다. 일본에서 첫 우승을 한 뒤 3년 만의 우승이라 감회가 새로웠어요. 저에 대한 신념을 갖게 해준 대회죠.”
 
사실 이경훈은 국내 투어에선 존재감이 약했다. 투어 생활 5년 차이지만 그의 주 무대는 일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KGT에서 세 개 대회만 참가하고도 발렌타인 상금왕을 차지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더불어 JGTO 상금 랭킹 13위로 상위권에 올라서며 양국에서 상금만 약 8억9000만원을 벌어들였다.
 
시즌이 종료된 이후에도 그는 쉴 새가 없었다. 그는 지난 1월21일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훈련소에 입소했다. “처음으로 진흙밭도 굴러보고 고지도 점령해봤어요. 그동안 제가 너무 편하게 살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군대에서는 훈련 이외에도 제약이 많아 힘들더라고요. 평소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하지 못하는 일이 많았죠. 이런 경험으로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되었어요. 또 정해진 시간에 기상해 정량대로 밥을 먹는 등 규칙적인 생활을 한 점이 좋았어요.”
 
큰 키와 다부진 체격을 갖춘 이경훈은 외모답지 않게 여린 면을 매력으로 갖고 있다. 인터뷰 중간에도 순한 눈매를 드러내며 “방금 말하려던 걸 잊어버렸어요”라며 뒷머리를 긁적여댔다. 지난 2월호 인터뷰이인 김경태의 말이다. “경훈이는 심성이 착해서 항상 옆에서 챙겨주고 싶은 후배예요.”
이경훈은 이에 대해 “제가 딱 부러지는 성격이 아니에요”라며 “어떤 일을 할 때 계획한 대로 이행하지 못할 때가 많고, 물건이나 기억을 잘 잃어버리는 편이라 선배들이 많이 챙겨주는 편이죠”라고 답했다.
 

 

 

미국에서의 짜릿한 추억을 회상하다
이경훈은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하는 성격이다. 그의 소망이자 가까운 목표는 PGA투어에 합류하는 것이다. 지난해 11월14일 미국 플로리다주 PGA내셔널 챔피언•파지오 코스에서 끝낸 웹닷컴투어 퀄리파잉토너먼트(Q스쿨) 최종전에서 4라운드 합계 7언더파 279타로 단독 8위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일본 Q스쿨 이후로 오랜만에 두근거림을 느꼈어요. 한국 선수들이 없어서 그런지 경기 때 마치 코스와 저만 우주에 떠 있는 듯 묘했죠. 마지막 홀을 끝낼 때 성취감은 두 배였어요.”

그는 지난 2012년 JGTO 상위 랭커 자격으로 PGA투어 Q스쿨 최종 예선전에 직행했지만 아쉽게 낙방한 경험이 있다. 그 후로 미국 진출에 대한 갈망이 더욱 절실해졌다. 또 2014년 US오픈에 참가했을 때의 기억과 향기를 잊지 못했다.
 
그는 처음 PGA투어의 대회에 참가했던 터라 모든 것이 신기했다. 연습 그린에서 그의 옆에는 필 미컬슨이, 뒤에는 게리 우들랜드가 숏게임을 연습하고 있었고, 예선전에서는 세르히오 가르시아와 파드리그 해링턴이 함께 플레이를 했다. “그들에게 놀란 부분은 톱 프로임에도 불구하고 저를 편하게 대해준 점이에요. 자신을 높이지 않았고 오히려 파드리그는 ”자신이 합류해도 되겠느냐며 끼워줘서 고맙다”고 장난을 쳤죠. 덕분에 긴장도 풀 수 있었고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었어요.”

 

 
또 가르시아와 파드리그의 뛰어난 샷 능력에 놀라움을 느꼈다. “두 선수 모두 체격이 크지 않았어요. 가르시아는 저보다 조금 작았고 파드리그는 저보다 조금 더 큰 편이었죠. 그들은 스윙을 엄청 세게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도도 높았죠.” 하지만 그는 아쉽게 한 타 차로 컷 통과에 실패하며 대회장을 일찍 떠나야 했다.
 
매킬로이와 플레이를 꿈꾸다
“항상 로리 매킬로이가 출전한 대회에 나가 그와 함께 플레이하는 상상을 해요. 앞으로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겠죠.” 웹닷컴투어로 떠나기 전 그는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영어 공부, 체력 강화와 독서에 시간을 투자했다. 특히 체력 보강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다. 미국, 멕시코, 남미 등지에서 열리는 웹닷컴투어는 대회장 간에 이동 거리가 멀어 상위 성적을 기록하려면 체력이 밑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체력은 떨어지면 회복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그래서 운동 이외에 녹용 같은 보양식을 챙겨 먹고 있습니다.” 체력은 무거운 물건을 드는 웨이트트레이닝보다 가벼운 스트레칭을 통해 단련했다.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등산을 즐기며 기초 체력을 강화하고, 평소 규칙적인 수면 시간을 가지며 컨디션을 유지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또 박찬호의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라는 책을 통해 심리적 위안을 얻기도 했다. “박찬호 선수가 미국 진출 초기에 외로움을 극복하던 방법을 통해 초심을 되찾았어요. 박찬호 선수는 초창기에 숙소에서 한 시간 거리인 스타디움까지 일부러 뛰어다녔어요. 다른 선수들은 이미 스타디움에 도착해 몸을 풀고 있을 때 그는 집에서부터 뛰면서 이미 운동을 시작했던 거죠. 동양인으로 무시당하고 외로울 때 이 방법을 통해 마음을 다잡고 용기를 얻었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자신감을 갖고 영어도 하게 되었고 점차 자신의 영역을 넓혀갔다고 합니다.”
 
또 그는 미국 투어에 먼저 진출한 이동환, 김민휘를 통해서 미리 미국 투어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했다. 이동환은 일본 투어에서 함께 활동하며 가깝게 지냈으며 메인 스폰서가 같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민휘는 이경훈과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함께 석권하며 오랫동안 봐온 사이다. “민휘는 진지한 편인데 재미있는 동생이에요. 국가대표 때 150일간 함께 합숙하며 정도 많이 들었죠. 얼마 전 민휘는 미국에서 지내다 보면 체중이 더 불어날 거라며 악담을 했는데 아직 실감이 안 나네요.
 
(이)동환이 형은 웹닷컴투어에서 만난 주변의 친한 선수들을 소개해주며 조금 더 그들에게 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어요.” 이경훈은 일본 투어는 2017년까지, 국내 투어는 2020년까지 시드를 확보해놓은 상태다. 올 시즌 웹닷컴에서 정규 시드를 얻지 못하면 다시 돌아올 생각은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답했다.
 
“아…. 잔인하네요.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요. 그건 정말 어려운 문제인 거 같아요. 일찍 꿈을 접고 싶지 않습니다. 일단 될 때까지 도전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그는 떠나기 일주일 전 마지막 한마디를 남긴 뒤 3월17일에 열리는 치티마차루이지애나오픈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실 저 굉장히 강인한 남자예요. 더 단단해질 겁니다.”

 
 

 
 
이경훈
나이 : 25세 
후원 : CJ오쇼핑 
신장 : 178cm
프로 데뷔 : 2011년 
경력 : 광저우아시안게임 골프 단체전 금메달(2010년), 코리안투어 상금왕(2015년)
우승 JGTO 나가시마시게오인비테이셔널세가사미컵(2012년), JGTO 혼마투어월드컵(2015년), 
KGT 코오롱한국오픈(2015년)
 
[인혜정 골프다이제스트 기자 ihj@golfdig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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