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기술 [Feature :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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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기술 [Feature : 1712]
  • 김기찬
  • 승인 2017.12.26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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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기술 [Feature : 1712]


‘정숙!’ 이것은 같은 조의 선수에게도 해당되는 에티켓이다.

10년 가까이 투어에서 활동하면서 동료 프로와 충돌한 적이 딱 한 번 있다. 늑장 플레이로 악명이 자자했던 프로가 내게 골프백에서 클럽을 너무 일찍꺼내 들어 자신의 집중을 방해한다고 비난한 것이다. 나는 그저 셋업 자세에서 물러서는 이유를 만들기 위한 핑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스코어카드를 제출할 때 그는 이 문제를 거론하면서 내가 의도적으로 소음을 냈다는 식으로 말했다. 같은 조의 또 다른 선수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는데 그 친구에게 한 번만 더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얼굴에 펀치를 날려주겠다고 말했다.

그 느림보와 나는 화해했다. 비록 그 후에 다시 같은 조가 됐을 때는 다소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라운드가 진행됐지만 말이다. 늑장 플레이 때문에 한 방 맞기 싫어 그와 맞서게 됐을 때 나는 그의 대꾸에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봐요, 내가 벌금을 부담할게요”라고 했던 것이다. 그가 나보다 상금 랭킹에서 꾸준히 더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는 타당한 의견이었다.

대체로 대부분의 프로들은 서로를 대단히 존중해준다. 하지만 걸린 상금 액수가 워낙 크다 보니 아주 사소한 계기만 있어도 본격적인 상황으로 번질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상대에게 많은 반응을 보이지 않아도 되는 라운드를 선호한다. 나는 같은 조의 선수들과 서로 말을 건네지 않고 라운드를 한 적이 있다. 단 한 마디도 안 했다. 플레이를 시작할 때 첫 번째 티에서 서로 간단한 눈인사만 나눴고 18번 홀 그린에서 “좋은 플레이였어요”, “고마워요”라고 중얼거리며 악수를 나눴을 뿐이다. 우리 중 누군가가 요상한 규칙이 적용되는 상황에 빠져서 서로 논의를 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그저 머리를 박고 플레이를 할 수 있다.

물론 제이슨 본이나 어니 엘스같이 좋은 친구들과 한 조가 된다면 라운드 내내 소란을 피울 수도 있다. 나는 친구와 함께 있을 때 항상 행복해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잡담을 나눌 필요가 없는 선수와 같은 조가 됐을 때 더 좋은 플레이를 하는 경향이 있다. 송영한은 내가 한국말을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이들은 우리가 같은 음악을 듣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내가 먼저 날씨가 어떻다거나 아니면 지난밤 농구 경기에서 어느 팀이 이겼는지에 대해 서곡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상대방도 먼저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다. 일단 잡담이 시작된다면 대화가 끊기는 데 대한 부담을 안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우리 대부분은 같은 배를 타고 있다. 그저 끝없이 반복할 따름인 것이다.

아마추어 골퍼 시절의 나는 상당히 푼수였다. 대학 시절에는 같은 조의 선수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대단히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의 농담에 낄낄거리다 볼을 나무숲에 쳐 넣고 혹시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채 샷에 임한 것은 아닌가 돌아보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누구와 한 조가 됐든 간에 도대체 한시도 입을 쉬지 않는 프로들도 있다. 연습장에서 빌리 호셸을 보게 될 경우에는 나는 어김없이 그와 가장 멀리 떨어진 구석으로 간다. 나는 빌리를 좋아하고 그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는 화제의 중심에 있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다. 그는 멍청해 보이는 바지를 입고 대개의 경우 기자들과 가장 먼저 대화를 하는 사람이다. 어디에 가든 그가 있는 곳에서는 빌리의 서커스가 펼쳐진다. 나는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내가 반사회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대단히 치열한 승부가 펼쳐지던 대회에서 나는 막 아이를 낳은 동료 프로와 아주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그건 충분히 의미가 있는 대화였다. 누군가 최근 있었던 사건에 대해 흥미롭고 사려 깊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새로 구입한 자동차에 관해서 혹은 지난 휴가 때 어디 갔는지에 관해 이야기를 꺼낼 생각이라면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술 한잔 나누는 자리라면 즐겁게 들어주겠지만 일을 하고 있는 동안만큼은 사양하겠다.

글_맥스 애들러(Max Ad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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