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준의 긍정 투병기 [People :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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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준의 긍정 투병기 [People : 1709]
  • 김기찬
  • 승인 2017.09.12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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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준의 긍정 투병기 [People : 1709]
박혜준의 긍정 투병기

박혜준은 혈액암으로 벼랑 끝에 섰지만, 긍정 에너지로 기적을 만들어냈다. 1년9개월간의 투병기를 마치고 골퍼로 돌아왔다. 새 삶을 시작한 그의 희망 메시지. 글_인혜정



혈액암 판정을 받다 2006년 중학교 입학을 기다리던 박혜준은 TV 채널을 돌리던 중 골프 채널에 시선을 고정했다. 처음 보는 골프 방송이지만 자신도 모르게 호기심을 갖게 된 것. “골퍼가 작은 홀에 더 작은 공을 넣는데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더라고요. 순간 그 모습에 짜릿함을 느꼈어요. 저도 저곳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게 골프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죠.” 박혜준은 호기심을 그냥 넘기지 않고 곧장 실행에 옮겼다. 며칠간 아버지를 설득해 동네 연습장에 등록했으며 9개월 만에 명지대학교 총장배 골프 대회에 참가했다. “라운드를 딱 한 번 하고 나간 대회였어요. 경험이 부족한지라 성적은 그렇게 좋지 않았어요. 100타를 넘겼죠.”

경상북도 상주 출신인 그는 상주중학교에 입학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여주제일중학교로 전학을 갔다.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7개월 뒤 70타를 기록하며 빠르게 실력을 키워나갔다. 뒤늦게 골프를 시작했지만 스스로 가능성을 느꼈다. “프로로 데뷔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어요. 생일이 지나자마자 프로 테스트를 신청했습니다.”

2010년 7월, 그는 만 17세가 되자마자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 테스트에 응시했다. 예선 1위, 본선 2위로 단번에 준회원 자격을 얻었다. 기쁨도 잠시, 창창할 것만 같던 앞길은 순탄치 않았다. 프로 전향 4일 만에 몸에 이상 신호를 느낀 것이다. 집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구역질을 반복했고 검은색 코피가 흘러내렸다. 사실 이상 징후는 프로 테스트 최종일에도 나타났다. “본선 대회 마지막 날 갑자기 코피가 흐르고 구역질이 올라왔어요. 그저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생긴 현상이라 생각했어요.” 병원을 찾은 그는 충격적인 결과를 들었다. 10만 명 중 1.7명이 걸린다는 백혈병류 악성 버킷림프종 혈액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죠. 마치 신이 저에게 장난을 치는 것만 같았어요.”

죽음의 병동에서 탈출하다 그는 곧장 서울대학교 암병원에 입원해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그의 어머니는 “몸 안에 세균이 있으니 몇 년 치료하면 괜찮아질 거야”라며 아들을 다독였다. 아버지의 생각은 달랐다. 아들의 담당 주치의인 김태민 교수에게 병세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 아이가 혹독한 치료 과정을 견디려면 병세를 자세히 알아야 한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박혜준에게 “치료를 하다가 세상을 등질 확률이 80%이고 생존 확률은 20%”라고 설명했다. 박혜준에게는 ‘생존 확률 20%’라는 말만 크게 들릴 뿐이었다. “저는 이겨낼 수 있어요. 그러니 얼마든지 강하게 약을 써주세요.”

그의 말에 김 교수는 답했다. “힘들 테지만 풀 죽은 모습이 없어서 너무 좋다. 치료를 제대로 시작해보자.” 프로 골퍼가 된 지 28일 차, 준회원 합격증도 받지 못한 채 본격적으로 항암 치료가 시작됐다. 밝은 그였지만 치료가 두려운 적도 많았다. 치료를 시작한 지 3일 만에 녹초가 됐다. 강한 약 기운으로 머리카락이 빠지고 장기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을 겪었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고통스러웠어요. 손가락 하나가 잘려나가도 모를 정도로 아팠습니다.” 3주가량 진행한 첫 치료 경과는 안타깝게도 좋지 않았다.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졌다.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체중은 68kg에서 53kg으로 금세 줄었다. 다음 항암제 투입이 어려울 정도였다. 결국 서울대학교 암병원 12층,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졌다.

“호스피스 병동은 마지막 가는 환자를 조금 편하게 보내주는 곳이에요. 거기서 죽음은 일상과도 같았죠.” 그와 같은 병실을 사용하던 같은 병명의 한 살 많은 형은 경과가 좋았다. “옆자리 형은 정상 병동으로 옮겨도 좋다는 결과를 받았어요. 저는 그런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해서 마냥 부러웠죠. 그런데 형이 갑자기 없어졌어요. 급성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죠. 그때 세상일은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더 열심히 먹고 치료도 잘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습니다.”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느낀 그는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매일 기도했다. “오늘도 고통에서 잠들지만, 더 극심한 고통이 와도 좋으니 내일을 시작할 수 있게 눈을 떴으면 좋겠다고요.” 투병 중에도 골프는 잊지 않았다. 신문지를 돌돌 말아 그립 쥐기를 반복하고 빈 스윙도 여러 번 휘둘렀다. “주변의 학부모님들이 제 사정을 듣고 골프 그립을 많이 보내줬어요. 그 그립이 닳을 정도로 쥐고 있었죠. 그 덕분에 퇴원 후에도 스윙 감각을 쉽게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희망과 본보기가 되기 위한 노력 그렇게 병마와 싸우며 3개월째 되던 날, 그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죽음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일반 병동으로 이동하게 됐다. 그리고 4차 치료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같은 방을 쓰던 친구 네 명이 모두 세상을 떠났어요. 완치율이 높았던 친구들까지 말이죠. 저 혼자 살아남았습니다. 저는 기적이 있다고 믿었어요.” 박혜준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짧은 기간 내에 회복한 환자로 유명했다. 아버지는 뚝뚝 떨어지는 항암제를 보며 아들에게 말했다. “이 물방울은 나쁜 세포를 모조리 없애고 네 앞길을 열어줄 거야. 그러니 무조건 이겨내자. 더 큰 사람이 돼 너와 비슷한 처치의 사람들에게 본보기와 희망이 되자.”

박혜준은 아버지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의지가 약해질까 봐 눈물을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올 것 같지 않았던 고통의 끝이 보였다. 1년 반이란 치료 기간 끝에 예비 완치 판정을 받았다. 병마와 싸워 이긴 그의 치료 과정은 김 교수의 논문에도 실렸다. 퇴원한 지 5년이 지난 2016년 3월13일, 예비 완치가 아닌 ‘완치 판정’이란 기쁜 소식을 접했다. 김 교수는 “이제 검진을 받지 않아도 된다. 앞으로 내 얼굴을 볼 일은 없을 거야”라며 그를 포옹했다. 아버지는 김 교수와 악수를 하며 처음으로 굵은 눈물을 흘렸다.

새 삶을 얻은 박혜준은 과거보다 더 열심히 살고 있다. 지난 6월2일 KPGA 정회원 자격을 얻으며 오는 11월에 열릴 코리안투어 퀄리파잉 토너먼트를 대비하고 있다. 그는 정규 투어에 입성하면 가장 참가하고 싶은 대회로 ‘GS칼텍스매경오픈’을 꼽았다. “몸이 좋아지고 나서 갤러리로 나선 적이 있어요. 남서울골프장의 코스가 저와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까다롭고 감각이 필요한 코스를 좋아하거든요.”

플레이 성향은 공격적인 편이며 결정이 빠르다. “늦장 플레이 스타일은 아닙니다. 확신이 들면 바로 실행하는 스타일입니다. 병마와 싸우면서 저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졌기 때문이죠.” 투어 선수 중에서는 이수민과 가까운 친분을 자랑한다. “수민이는 배울 점이 많은 친구예요. 궁금한 점이 있으면 스스럼없이 묻고 또 따끔한 조언도 얻습니다. 지난달 정회원이 됐을 때 가장 기뻐해줬습니다. 그리고 수민이가 사적으로 말고 대회장 그린에서 정식으로 만나자고 제안하더군요.” 그의 롤모델은 애덤 스콧과 최진호. “꾸준하게 승수를 쌓고, 바른 이미지와 더불어 가정에 충실한 모습이 본받을 점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그는 정규 투어에 입성하기 위해 쇼트 게임과 체력 단련에 힘쓰고 있다. 장기적인 목표로는 일본프로골프투어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는 긍정적인 에너지와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 “밝은 생각과 신념을 잃지 않는다면 기적은 분명 나타납니다. 앞으로 더 성장해 병마와 싸우는 환우분들에게 희망이 되고 본보기가 될 테니 응원 많이 해주세요.”

 

Park Hye Jun 박혜준 나이 24세 신장 183cm 소속 마헤스골프 성적 KPGA 준회원 본선 2위(2010년), KPGA 정회원 본선 10위(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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