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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 안선주의 일본 정복기 [1104] People

'빨간 머리' 안선주의 일본 정복기 

 <골프 다이제스트> : 오늘 촬영 어땠나?
안선주 :
재미났다. 정말 오래간만에 이렇게 스튜디오에서 촬영해서 그런지 처음에는 너무 어색했다.

예전 한국투어 시절 때보다 밝고, 씩씩해진 느낌이다.
스스로도 당당해지고 밝아진 것을 느낀다. 웃는 연습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웃는 연습을 했다?
일본에서는 사람들이 보기만 하면 웃는다. 그래서 너무 고마워서 웃는 모습으로 사람을 대하게 된다.

웃는 모습이 고맙다는 말의 뜻은?
웃는 모습이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전에 한국에 있을 때만해도 웃질 않았고 별로 웃을 일도 없었다. 그리고 날 보고 그렇게 환하게 웃어주며 환대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일본은 달랐다. 너나 할 것 없이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나에게 다가와 먼저 밝고 환하게 ‘안짱! 파이팅! ’을 외치면서 웃어준다. 그것이 가장 큰 힘이고 나에게는 ‘웃음’, ‘미소’ 라는 변화를 가져다 준 계기가 되었다.

일본으로 가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사실 먼저 미국투어를 준비했었다. 2008년에 미국 퀄리파잉(Q)스쿨을 준비했었고 그 과정에서 몸을 다쳐 결국 Q스쿨 도중에 기권을 하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욕심이 먼저 앞서는 바람에 무리한 연습을 하다가 게임 전에 컨디션 난조와 부상으로 결국 Q스쿨 기권이라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이 일은 큰 상처가 되었다. 프로답지 않게 컨디션 조절을 하지 못했다는 속상함과 자책, 이루고자 했던 것이 물거품 되자 괜시리 억울하기도 하고 좌절했다. 특히 그 시기에 한국투어에서도 항상 2인자 자리에 있었던 터라 더 그랬었고. 그때 주변 분들이 조언을 해줬다. ‘그냥 가까이에서 찾아라. 미국이 아니더라도 일본을 갈 수도 있다’ 라고. 그래서 일본을 선택하게 됐다. 특히 일본은 한국투어 상금 랭킹 10위 안에 들면 1차 면제를 받을 수 있었는데 그 자격에 부합됐기 때문에 1차 면제 받고 일본 Q스쿨을 준비하게 됐다. 2차 준비로 일본을 갔었는데 그때부터 일본의 매력에 빠졌던 것같다.

일본의 어떤 매력에?
음식, 그리고 생활 문화(예의 바른) 그리고 골프 선수에 대한 존경과 대접에 대한 부분이다. 한국에서는 그저 보이는 모습에 의해서만 팬이 생기고 응원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그곳에서는 골프 자체에 대한 열정과 관심, 그리고 선수에 대한 존경을 진심을 다해 표현하고 응원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 자체에 매료된 듯하다.

골프 선수를 존경하고 대접한다?
일본에서 골프 인기가 제일 높다. 유명한 선수에 대한 팬의 관심은 하늘을 찌를 정도다. 게다가 팬은 선수의 생일이나 사소한 것을 기억했다가 한국어로 노래를 불러준다. 선수의 볼 하나, 장갑 하나를 얻으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그런 마음과 열정적인 행동을 통해 감동하게 된다. 그 중 가장 큰 감동은 나를 향한 사람들의 미소였다. 비웃음이 아닌 따뜻한 미소였다. 이런 것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특별한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사람들의 진심어린 미소와 존경과 선망을 가득 담은 아무런 대가 없는 미소, 그리고 진심을 다해 걱정하고 응원하고 관심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모습이  내 마음을 녹였다. 그래서 일본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많이 야윈 것같다….
살을 뺐다. 예뻐지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골프를 잘 하기 위해서가 첫 번째 목표였다. 그 다음은 살을 빼면 자연스레 이뻐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2009년 겨울 내내 제주도에서 훈련을 통해 10kg을 뺐다.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대회를 하면서 4~5kg을 더 뺐다. 모두 15kg이다.

제주도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해달라.
몸이 매우 많이 안 좋았다. 구체적으로 살이 너무 찌고 그러다 보니 다리, 어깨, 발목이 아프고 걷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산만해진 덩치 때문인 것 같았다. 걷는 것조차 힘겨웠기 때문에 혹독하게 훈련을 통해 살을 빼고 몸 컨디션을 정상으로 만들지 않으면 일본투어 스케줄을 소화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걱정과 불안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혹독하게 훈련했다.

혹독하게?
올레길 걷기와 등산 등 정해진 계획표 같은 건 없었다. 눈 뜨면 일어나고, 무작정 걷고, 또 걷고 그러면서 그동안 나를 짓누르던 스트레스를 풀어버리고 이를 악물기 시작했다. 새로운 모습이 되자고 마음 먹었다. 새롭게 변신해 일본투어에서 다시 태어나자고…. 매일 아침 8km 이상씩 올레길을 걸었다. 골프 연습이 아니면 항상 걷고 뛰고 등산하며 골프 연습할 때 루틴처럼 하루 일과 속의 운동을 습관화하기 위해 이를 악 물었다. 식이 요법도 중요했다. 비대해진 몸을 가다듬기 위해 식습관 개선을 했는데 그것이 제일 힘들었다. 제주도에 있는 두 달동안 고기는 입에도 안댔다. 생선과 한 숟가락 분량의 밥을 두 끼만 먹고 밀가루는 입에도 안댔다. 먹는 것을 워낙에 좋아했기 때문에 너무나 힘들고 지쳤다.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없고 늘 먹던 양의 3분의 1만으로 지탱하는 것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이 끝난 후에 찾아올 변화를 상상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 시기에 스폰서인 하이마트와의 계약도 끝이 났다. 재계약 불발이 살을 빼기로 마음 먹게 된 계기로 작용했나?
전혀 작용을 안했다면 거짓말이다. 투어 스케줄과 컨디션 관리를 위해서도 그랬고 여러가지 면에서 새로 태어나고 싶은 마음에 살을 빼고 그로 인해 통증 치료도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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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하필 제주도였나?
고립된 상태로 혼자 운동에만 전념 할 수 있는 곳이 제주도였다. 서울이나 근처에 있으면 유혹이 너무 많다. 친구를 만나거나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게 된다거나 게으름을 부리며 여유를 떨면서 사소한 것까지 신경쓸 테니 골프와 운동에 100% 집중할 수 없기 때문에 제주도를 선택했다. 

대인 기피증이 있는가?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고 아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것은 좋다. 하지만 나는 겉으로 따듯하게 표현을 잘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때론 퉁명스럽기 때문에 겪는 오해도 많다. 그래서 아무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스스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곳이어서 좋았다.

잠깐 동안이지만 스폰서가 없었다?
하이마트와의 결별은 오히려 나에게 약이 됐다. 왜냐면 나를 더 독하게 만들었으니까. ‘더 잘해야겠다’ 라는 마음이 들었다. 하이마트와 결별 후 그 어떤 스폰서도 나를 찾지 않았을 때 나는 ‘내가 이것밖에 안되나? ’라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더 잘하고 외모로도 상품성이 있었다면 지금 이 상태는 아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를 독하게 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자극이었다.

일본 진출을 결정하면서 다른 어떤 준비를 했는가?
준비한 것이 별로 없다. 실전을 통해 배워나가자는 생각이었다. 일부러 캐디를 일본인으로 구하고 직접 몸으로 부딪히면서 배워나가려고 했다. 김애숙 프로에게 일본 생활과 투어 전반에 관한 도움과 조언을 받았다.

언제 일본으로 갔고, 일본의 첫 느낌은?
지난해 1월12일에 태국에서 전지훈련을 했고, 한 달 간의 훈련 끝에 2월말쯤 일본으로 아빠와 함께 출국했다. 첫 느낌은 좋았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출발선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설레었다. 첫 대회에서 예상이나, 기대도 하지 않았던 우승이라는 것을 하게됐다. 이것이 부담이 되기도 했다.

승인데, 부담이라?
일본 데뷔 해, 그리고 첫 대회에서 우승하니 일본 언론과 방송에서는 ‘운’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2인자였는데 처음 일본 대회에 출전해서 우승한 건 거의 ‘운’ 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래서 ‘어디 한번 두고 보자? ’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시선과 언론의 표현이 부담스러웠던 것은 사실이었다. 

어떻게 극복했는가?
좋은 말과 긍정적 마인드로 스스로를 다스렸다. 그리고 (신)지애의 도움도 컸다. 신지애와는 한국투어에서부터 친분이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약간 미묘한 라이벌 의식이 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일본, 지애는 미국으로 가면서 어느 순간부터 서로를 의지하게 되더라. 미국과 일본의 시차로 전화는 자주 못하지만 격려의 문자나 이메일을 주고받는다. 지애가 내게 해주었던 말 중 가장 가슴 속에 오래 남은 것이 있다. 지애가 많은 좋은 말을 해주지만 맹장수술로 힘들어 하고 있을 때 이런 얘기를 했었다. “너무 힘들어 대회를 포기하고 싶고, 기권하려고 하다가도 99번의 마음이 ‘포기’라고 외칠 때마다 100번째 ‘하자’라는 마음 때문에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말이 의기소침해지려는 나를 일으켜 세워줬다. 김애숙 프로도 이런 말을 했다. ‘지금 포기하면 아무 것도 안 된다. 차라리 힘들고 불안해도 부상으로 인한 아픔과 친구가 되어라.’ 결국 불안 요소와 친구가 됨으로써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서 투어 적응이 수월해졌나?
일본 선수와 친해지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노력했다기 보다는 ‘사람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내 성격 그대로를 실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일본 선수와 어울려 생일 파티를 할 만큼 경계가 없어지고 친분을 쌓고 정을 나누었다. 이는 또 언어적인 실력이 쌓는 계기도 됐다. 그들이 한국말을 배워서 간단한 안부 인사는 한국과 일본식을 번갈아 가면서 하기도 했다. 특히 친한 프로는 아리무라 치에다. ‘좋은 아침! 잘 잤니? ’ 정도는 한국말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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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도 넓은 인맥을 쌓았다는 얘긴데?
스스로 이런 말을 하기 좀 부끄럽지만 모든 사람을 순수한 마음으로 대한다. 있는 모습 그대로 말이다. 앞에서는 웃으며 말하다가도 뒤돌아서면 금방 얼굴색이 변하면서 다른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앞에서 할 말은 하고 진심으로 대하다 보니 주변에 사람이 많아졌다. 특히 일본에서는 인상이 매우 중요하다. 되도록 인상을 쓰지 않도록 노력하고 애썼다. 웃는 연습을 할 정도로.

한국에 있을 때는 왜 웃지 않았나?
한국, 그리고 골프라는 무대 속에서 선수는 항상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경쟁 안에서 살아야만 하는 맹수같은 생활이었다. 일본도 마찬가지지만 한국은 좀 다르다. 친구로 지내다가도 챔피언 조에서 우승을 놓고 겨루게 돼 승자와 패자가 가려지면 예전처럼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지내는 것이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웃으면서 승자를 축하하면 주변에서는 ‘욕심이 없다’ , ‘속이 없다’, ‘열정이 없는 선수’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욕심이 앞서기도 하고 골프 자체를 즐기지 못하고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중압만이 남게 된다. 결국 자연스럽게 웃는 모습이 나올 만한 여유가 없었다. 일본은 다르다. 일본에서는 웃어야 복이 온다. 팬이 먼저 웃고 나도 따라 웃고 내가 웃으면 또 팬이 더 좋아하면서 따라 웃고, 그러면서 ‘안짱! 힘내! 우리가 있잖아! ’ 라고 말한다. 이것이 내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 그 속에서 내 표정이나 모습은 서서히 달라지게 됐다.

힘든 점도 있었을 것이다.
언어가 제일 힘들다. 그리고 문화.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와 문화는 비슷하지만 너무 인사를 과도하게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 몇 번을 인사하는지 모른다. 처음 만나면 ‘안녕하세요’, 두 번째는 ‘수고하세요’, 세 번째는 ‘수고하셨습니다’다. 거의 75도로 인사한다. 또한 일본 클럽하우스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모자를 다 벗어야 하는데 적응이 되지 않아서 혼났다. 또 외로웠다. 너무 많이. 일본 팬이 있어도 나는 한국인이고 한국이 항상 그립다. 가족과도 떨어져 있으니 더욱 그렇다. 일본에 팬이 있지만 쉬는 날까지 팬과 갤러리가 사랑을 보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외로운 날이 많다. ‘혼자 헤쳐 나가야 하고 혼자 이겨야하는 지금,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구나’ 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대회가 없는 날에는 무척 우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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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버텨냈나?
집에서 혼자 오래 있게 되면 더 우울할까봐 쉬는 날에는 무조건 걷고, 돌아다니고, 보고, 들으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혼자서 되도록 많이. 밖에 있다 보면 지나다니는 사람과 섞여 평범한 소녀가 되기도 하고 우울해지던 기분도 좀 나아졌다. 백화점 구경이나 식품 코너에 가서 서성이기도 했다. 첨단 기계에 관심이 많아서 그것을 보러 다니거나 구경하기도 했다. 김애숙 프로 연습장에 가서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가끔 누군가에게 알리지도 않고, 목적지도 없이 떠나기도 한다는데?
제일 좋아한다. 유일하게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일본투어에서 한국 선수의 선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언론이나 협회는 경계를 하는 것 같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봤을 때 한국투어에서 일본 선수가 선전하면 한국 언론이나 협회에서도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해한다.
일본의 한 기자는 볼에 별을 그리는 이유에 대해 무척 궁금해 했다.
그냥 별이 좋아서, 별이 되고 싶어서 그린다. 프로 데뷔 이후로 쭉 해왔던 루틴이다.

일본투어에서 활동하는 한국 선수와는 어떻게 지내는가?
전미정, 이지희 프로와 잘 지낸다. 든든하다. 정신적 지주같은 느낌이다.
두 번째 우승에 대해 얘기 해 달라.
생각지도 않았는데 연장전에 가서 우승하게 됐다. 볼이 벙커에 빠졌는데도 턱을 맞고 그린에 올라갔다. 운이 따라 줬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연장전에서는 번번히 미끌어졌었다(연장전에서 1승3패). 그런데 일본에선 우승을 많이 했다.
분위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일본의 골프에 대한 열정과 긍정적인 분위기는 의기소침했던 내 마음을 바꿔놨고 나를 응원하는 분위기에 힘입어 더 자신이 생겼다. 우승을 할 수 있는 기운을 몰아다 준 것 같다. 체중 감량으로 한결 좋아진 체력과 컨디션도 한몫 했다.

3승, 그리고 4승은?
부담스럽기도 했고 잘해야 한단 생각 때문에 점점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처음 일본에 와서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했던 플레이의 기억을 더듬어서 다시금 마음을 다 잡았다.

1년 중 가장 행복했던 때는?
4승을 했던 그 대회 둘째 날에 프로 데뷔 이후 베스트 스코어인 10언더파를 쳤다. 그날 어떤 경지를 넘어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신인상, 상금 랭킹 1위까지 확정 되는 순간에 어떤 생각이 들었나?
가장 기쁘고 행복했지만 제일 힘든 순간이기도 했다. 2주 연속 우승으로 언론과 팬이 ‘신인상, 상금 랭킹 1위를 할 수 있겠다’며 기대를 비췄고 많은 관심과 조명을 받았다. 행복한 반면에 아이러니 하게도 타이틀 때문에 부담스러워 지기도 했다. 게다가 2주 연속 우승을 하고 나니까 나도 모르게 마음이 풀어지기까지 했다. 대회 하나 남겨놓고 상금 랭킹 1위를 확정해 놓아서 마지막 대회에 대한 긴장을 늦출 뻔 했지만 마음을 끝까지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하기 위해 경기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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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해지려고 할 때 다독이는 방법은?
혼자라서 그런지 무엇이든 이겨내고 견뎌내며 스스로 다독이는 법을 찾게 됐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드라이브를 한다. 집중도를 높일 수 있고 리프레시 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지칠 정도로 혼자서 막 돌아다녔다. 아무 생각 없이. 그러다 보면 지치고 그러다 보면 푹 잘 수 있게 된다.

일본 골프 팬 사이에서는 ‘빨간 머리 안’으로 통한다.
일본에서 염색했다. 파란색으로 할까 했는데 관심 받고, 튀어보고, 변하고 싶은 마음에 빨간색으로 했다. 그런데 점점 머리가 ‘핫 핑크’가 되어갔다. 생각했던 것 보다 반응도 좋았고 이를 계기로 팬도 기억해주고 더 좋아해주어서 만족스럽다. 그래서 올해도 ‘빨간 머리 안’이 되려고 한다.
팬의 응원과 관심, 신인상, 상금 랭킹 1위 등 일본투어가 남다르게 다가올 것 같은데….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었던 기회였고 도전과 변화를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줬던 곳이다. 일본투어에 가려고 살도 빼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시작했고 결국 적응했다. 부정적이고 표현을 잘 못하던 성격도 고치고 긍정적인 모습이 더 많이 늘어났다. 자신감도 얻었다. 하지만 아직 난 목마르다. 더 발전하고 더 변하고 싶다.   

한국투어에 대한 향수는 없는가?
아직까지는 없다. 기회가 된다면 2개 대회 정도는 참가할까 고민하고 있다. 많은 한국 팬이 응원해주어서 감사할 뿐이다. 일본 무대에 100% 적응한 것이 아니라서 일본에 전념하고 싶다. 그 후에 한국투어를 고려해 보겠다.

살을 빼면 비거리가 줄어들기도 한다는데?
살을 빼고 나서 비거리가 더 늘었다. 고등학교 때 가장 좋은 컨디션으로 골프를 했었는데, 고등학교 때의 모습으로 돌아간 듯하다.

살을 더 뺄 계획인가?
더 이상은 아니다. 골프를 그만둔다면 더 빼야겠지(웃음). 나는 서른두 살까지만 골프를 하려 한다. 그 때 일본투어에 도전하는 후배를 위해 도움을 주고 싶다.

올해 목표는?
지난해는 꾸준한 성적을 내지는 못했던 것 같다. 폭이 큰 경기를 했다. 그래서 발전된 모습으로, 꾸준한 성적을 유지하면서 항상 웃는 모습으로 임하고 싶다. 그게 내 바람이다. 또 포기하지 않고 자신한테 실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렇게 열심히 하다보면 타이틀이나 성적은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향해 쫓아가기보다는.

미국으로 갈 계획은?
아직 없다. 일본에 전념할 생각이다. 한국투어 계획도 아직 없다. 한국에 들어가더라도 쉬거나  운동에 집중하기 위해 제주도를 찾는 정도가 될 것이다.
일본투어에 진출하는 새내기에게 조언을 한다면?
일본어를 배워서 오면 반은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항상 웃으면서 즐기고 배우는 자세를 가져야한다. ‘웃으면 복 받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 팬에게 한마디 한다면?
많은 사랑과 격려와 함께 따끔한 충고가 있었기에 지난해는 잘 할 수 있었다. 올해는 더 많이 웃는 모습으로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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